식물에도 프리온 단백질?…“기억 기능 분자역할”

곰팡이, 효모, 달팽이, 초파리 등에 이어, 식물에서도 프리온 첫 발견?

다른 단백질 감염해 점차 덩어리 생성, ‘식물의 기억’ 유사 역할 추정


미 연구진, PNAS 논문

00flower_Arabidopsis.jpg » 애기장대의 꽃. 출처/ Wikimedia Commons


우병의 원인물질로서 감염성 단백질로 알려진 ‘프리온(prion)’이 식물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결과를 낸 연구진은 식물체 안의 프리온 닮은 단백질이 식물에서는 일종의 ‘기억’을 저장하는 단백질 분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잠정적인 추론도 제시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와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트>를 보면, 최근 미국 화이트헤드 생의학연구소 등 소속 연구진(책임저자 수잔 린드퀴스트, Susan Lindquist)은 식물 애기장대에 있는 일부 단백질을 효모 안에서 발현시켰더니 감염성의 변형 단백질인 프리온처럼 거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런 보고가 후속 연구들에서도 확인된다면, 이는 식물에도 프리온 단백질이 존재함을 말해주는 첫 발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논문은 최근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실렸다.


책임저자 린드퀴스트의 연구진은 지난 2009년엔 프리온 단백질이 효모에도 존재하며 그것이 효모가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혀 생물학저널 <셀>에 발표한 바 있다. 프리온은 아미노산 연쇄사슬이 복잡하게 접히며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생성 과정에서 잘못된 접힘 구조가 생기고, 그 잘못된 접힘 구조를 다른 단백질에도 감염시키는 감염성 변형 단백질을 말한다. 프리온은 광우병과 크로이츠펠트-야콥병 같은 치명적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이나 소와 같은 포유류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프리온은 지금까지 곰팡이, 바다달팽이 종, 초파리 등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잇따라 보고돼 왔다.


00flower_Arabidopsis2.jpg » 식물 연구 실험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델식물 '애기장대'.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2010) 이번에 연구진은 실험용으로 널리 쓰이는 모델식물인 애기장대에 프리온 닮은 단백질이 존재할 가능성을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들은 효모에서 프리온을 찾아낸 자신들의 이전 연구 기법을 활용해서, 애기장대의 단백질들 중에서 프리온 후보를 먼저 추려냈다. 이어 후보 단백질들을 발현하는 유전자들을 효모에 집어넣었더니, 일부 단백질들이 잘못 접히고 동료 단백질에 잘못 접힘을 감염시키면서 덩어리를 이루는 프리온 닮은 거동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특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유전되었다. 연구진은 특히 빛과 온도에 반응해 식물의 개화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한 종류(루미니디펜던스, Luminidependence, LD)에서 이런 특성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식물의 프리온 유사 단백질은 외부 환경에 대한 경험을 누적해 기억했다가 반응하는, 일종의 '기억 저장'의 분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일 수 있다는 추론도 제시됐다.


“식물들도 외부 환경의 변화를 계속 추적해야 하는 데 그것을 일종의 기억 생성(memory-formation)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식물들은 몇 주 동안 낮은 기온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꽃을 피울 것이다. 논문에서, 린드퀴스트 연구진은 만일 루미니디펜던스 단백질이 식물 안에서 프리온처럼 거동한다면, 그 기능적 역할 중 하나는 단백질 덩어리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외부 온도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네이처 뉴스에서)


이런 설명은 낮은 기온을 겪는 동안에 프리온 단백질들이 점점 많아지며 누적되는 것으로 ‘겨울의 기억’이 생성되고, 누적된 프리온 덩어리가 겨울을 거쳐 비로소 꽃을 피우는 과정을 시작하는 데 관여하는 것일 수 있다는 추론으로 해석된다.


러나 이번 연구는 아직 잠정적 수준의 발견 보고와 추론을 제시한 데 머물고 있다. 애기장대 식물체 안에서 프리온 단백질을 직접 찾아낸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분자 수준의 기억 기능을 하리라는 해석은 현재로선 입증된 게 아니라 잠정적 추정이라는 점 때문에, 이번 연구논문은 어찌보면 그 자체로 결론적이라기보다는 더 많은 후속 연구를 부르는, '흥미롭고 중요한 물음을 던져주는' 연구논문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린드퀴스트는 ‘이번 연구결과가 식물이 분명하게 프리온 닮은 단백질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그러나 나는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리온이 식물에 없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네이처 뉴스에서)


   논문 발췌: ‘연구 의의’(Significance)

프리온은 단백질 기반의 분자 기억(molecular memory)과 관련해 가장 잘 연구된 양식(mode)이다. 포유류에서 발견된 이래 프리온은 곰팡이, 바다달팽이 군소(Aplysia), 초파리를 비롯해 다양한 유기체들에서 발견되어 왔다. 그러나 식물계에서 발견된 적은 없다. 우리 연구진이 효모 프리온을 밝히는 데 썼던 방법을 응용해, 우리는 잠정적으로 프리온과 유사한 도메인(potential prion-like domains, PrD)에 있는 거의 500가지의 단백질을 애기장대(Arabidopsis)에서 찾아냈다. 이런 도메인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 즉 루미니디펜던스(Luminidependens PrD)는 프리온 단백질의 고전적 특성 일부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특성들은 효모를 이용한 실험 검증에서 나타났다. 우리가 아는 한, 이런 결과는 진정한 프리온 속성들(bona fide prion attributes)을 지니는, 식물계에서 발견된 최초의 단백질이다. 중요한 점은 루미니디펜던스 단백질이 개화 처리(process of flowering)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개화는 겨울의 기억(memories of winter)을 비롯해 그 과정을 조절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내적-외적 신호들(cues)을 통합하는 중요한 전개 과정(development course)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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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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