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재] 이공계생의 "만들어진 정치·사회 무관심"

:::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23)


--- 이공계생의 낮은 사회참여 왜일까?

00Kaist3_2 » 올해 초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사태로 학내 학사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발적인 목소리들도 높아졌다. 비상학생총회를 알리는 현수막. 사진/ 이은지




궁금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말을 온 국민이 알 정도로 분명히 우리 이공계에 문제가 있는 듯한데, 왜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이공계 학생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 걸까? 살인적인 커리큘럼 체계, 불합리한 이공계장학금 제도, 일부 교수의 부적절한 발언처럼 학교 안에 대자보가 붙을 만한 일이 꽤 많은데도, 이공계 학생들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꼭 대자보를 붙이거나 특정 대상을 규탄하는 것처럼 ‘운동권스러운’ 활동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모여 학교 쪽에 요구를 하는 것 정도는 있을 법한데, 내가 아는 선에서는 눈에 띌만하다 할 규모의 움직임은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이공계생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문제를 체감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변화를 요구하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필요하다. 철거민 투쟁에는 철거민이 나서며, 법인화 투쟁에는 학생과 교수들이 나선다. 이공계 문제도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공계 문제 해결에 이공계인들이 앞장서야 한다면, 기성 연구원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학생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공계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을까? 이런 물음이 이번 글의 출발점이다. 나의 경험과 몇몇 이공계생들이 들려주는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사회참여 경험 부족, 자기 문제 해결에도 소극적?


 

“이공계생들의 이익과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사회의 문제를 분석해서 이를 극복할 대안을 스스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사회 참여 자체가 저조하다보니 이런 움직임이 적을 수밖에 없겠죠. 늘 이공계가 위기라고 얘기하면서도 명쾌한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손아무개씨,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생존’을 위한 ‘스펙’ 경쟁이 치열한 요즘에, 대학생들이 현 상황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경향은 전반적으로 낮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도 이공계의 참여도는 눈에 띄게 낮다. 말을 하는 주체들, 글을 쓰는 주체들은 대개 인문계 학생들이다. 물론 이공계에서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적잖이 있지만, 크게 볼 때 이런 경향이 있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이공계 학생들에 대해서 ‘사회 문제에 무지하다’, ‘탈정치화되어 있다’라는 통념이 꽤나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classroom사회 참여 경험의 부족은 자기 자신의 이익과 직접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문제의식을 갖고서 행동하는 습관에 워낙 낯설기 때문에, 이공계 내부 문제도 이공계 사람이 앞장서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체감하는 사회 문제를 구체화하고 구조화하는 방법을 인문계열 학생들에 비해 일상적으로 덜 훈련받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인문계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갖가지 예시들도 함께 고려하는 법을 자주 배우지만, 이공계에서는 그런 훈련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한 몫 한다. 예를 들어 이공계장학금 제도에 불만이 있더라도, 한국장학재단이나 정부에 문제 제기할 정도로 고민을 구체화하지는 못하며, 그런 문제의식을 어떤 행동으로 제기하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런 물음도 해본다. 우리나라 이공계에는 애초부터 그런 성향의 사람들만 들어오는 것일까? 사실 그게 아니라 학생들이 처해 있는 이공계 환경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왜 이공계 학생들은 사회 참여 경험을 인문계열 학생들보다 쌓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5·18을 광복절로 아는 친구도…사회문제 배울 기회 자체가 없어”


 

난 8월에 참여했던 ‘이공계 3차원 지식포럼’에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 중 인문계 학생보다 이공계 학생이 더 적은 이유에 대해 참가자들과 함께 토론한 적 있다. 그때 토론에서는, 첫째 인문계열에 비해 너무 커리큘럼이 빡빡한 것, 둘째 전공 수업이 사회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아 담론 자체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 셋째 인문계 학생에 비해 글쓰기,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말하기 교육을 덜 받는 것 등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사회적 담론을 접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이과를 분리해버리기 때문에 담론은커녕 기본적인 지식도 제대로 배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사회에 무심한 것은 모든 대학생들한테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공계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사회·정치 분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 대학에 와서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배울 기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제 친구 중 하나는 종종 5·18을 광복절로 기억하곤 합니다. 카이스트 대학원생인데 말이에요.”(정아무개씨,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친구들과 사회 쟁점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그런 거에 왜 신경을 쓰느냐’는 반응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복잡한 것들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이공계가 좋은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손아무개씨,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가 학내 언론 활동을 하며 느꼈던 점들을 여기에 조금 더 보태고자 한다. 우선 인문계열 학생이라면 느끼지 않았을 당혹스러움을 나도 많이 겪었다. 학내 언론단체의 기획회의 시간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사회·정치학 용어나 이론을 이공계생인 나만 알아듣지 못했던 적이 꽤 있었다. 당시에는 단순히 내가 무식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인 그네들과 이공계생인 내가 너무도 다른 것을 배워왔다는 점도 그런 이유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내 언론 활동을 하는 데 내가 남들보다 시간을 1.5배 정도 더 들이고 있다는 느낌도 있었다. 인문계열 학생들은 매체에 실을 글을 쓸 때에 전공 지식을 반영할 수 있고, 언론 활동을 통해 늘어난 글쓰기 실력은 자신의 전공 성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에 비하면 나한테서 전공과 글쓰기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활동이었다.

 

00lab2대학 시스템은 졸업할 때까지 한 분야의 지식을 집중해 가르치기 때문에, 때로는 전공의 경험은 한 개인의 향후 관심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이 유전자변형 식품이나 방사선오염 식품과 관련한 뉴스에 더 귀를 기울이거나, 원자핵공학과 학생들이 원전 사고 사태가 터졌을 때 인터넷 게시판에 ‘출동’하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 똑같이 미술관을 가더라도 미리 공부하고 가거나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 그냥 지나칠 법한 것에도 주목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회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끊임없이 ‘사회’를 탐구하는 인문사회계열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이공계 학생들은, 사회에 대한 관심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공계 수업은 과학적인 것들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인문계 수업들보다 사회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경우가 적고, 과제나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사회 문제에 대해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이렇게 이공계 학생들은 사회 분야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흥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이런 흥미 부족은 점점 더 사회 문제에 무심하게 만들어 더욱 흥미가 없게 하는 악순환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회 문제에 무심하면 당연히 그에 대한 지식도 적어지고, 이런 상황에서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점점 더 사회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최아무개씨,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누구나 사회에 속해 있고, 사회는 사람과 사람들이 얽혀서 이뤄지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는 문제’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아무런 문제에도 휘말리지 않을 수는 없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사람은 사회 생활을 하기에 좀 더 편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이공계 교육은 학생들이 수학, 과학을 잘하게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만 말하지 그 이외의 것에는 너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인류를 위해 훌륭한 엔지니어와 훌륭한 과학자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도 또한 우리 교육이 고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헉헉 대는 학업량·학점 이수, “다른 일 곁눈질할 틈 없어욧!”


 

부하기 쉬운 학문은 없다. 특히 이공계에서는 학부생 때부터 공부를 ‘많이’ 할 것을 요구받는다. 기본적인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식이 탄탄하게 쌓여 있어야 응용 학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만 ‘기본’이지 내용은 말 그대로의 ‘기본’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공부에 치이게 된다. 끊임없이 공식을 이해하고, 외우고, 연습문제를 풀어야 한다. 기계과 등 실습이 많은 학과의 학생들은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까지 진행해야 한다.

 

“이공계 학생은 사회·정치에 특별히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이공계 전공이라는 게 특성상 전문성이 더 요구되기 때문에 학부 수준의 학업량이 다른 단과대학들과는 크게 차이가 나고, 그래서 학업 이외의 분야에 투자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습니다.”(정아무개씨,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00lab3이공계 학생들에게 전공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그밖의 공부까지 열심히 다 챙기라고 하는 것은 정말 잔인한 요구이다. 서울대학교의 경우에, 대부분의 인문·사회계열 학과에서는 전공을 39학점 정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다. 반면에, 대부분의 공대 소속 학과는 60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기계항공공학부 10학번 기준 62학점). 이런 상황에서는 전공 공부 이외의 것들이 모두 ‘남의 문제’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커리큘럼에 여유가 있다면 다양한 교양을 ‘섭취’할 수 있어 자연스레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수업의 방향도 역시 커리큘럼 문제가 해결된다면 학생들이 알아서 선택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아무개씨,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이공계 학생은 이공계 학생이기 이전에 대학생이고, 곧 사회인이 될 사람들이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어진 대학생 시절에 각자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로 나가 여러 다른 사람들과 섞일 준비도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시간에 치여 그 꿈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한, 어떤 의미에서 과외 활동을 위한 시간은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리, 화학 등을 특별하게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어떤 과학이 필요한지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필요하다. 예컨대 경영대 동아리를 한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소비자가, 그리고 세계가 어떠한 것을 원하는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보조 봉사활동을 한 학생은 그 일을 계기로 장애인을 위한 제품 개발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전공 공부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이공계의 특성상, 필수 이수 과목을 대폭 줄이고 난도를 낮추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공계 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과 교수가 함께 커리큘럼을 조율하는 과정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당사자가 나서야


 

공계 학생들이 발화하기 어려운 여러 조건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른 이유들도 더 많을 것이다. 분명 어려운 상황인 것을 알기에, 활동에 소극적인 학생들으 탓하고 행동에 나서기를 촉구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다만 어려운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 문제가 있음은 확실하다.

 

이공계 고유의 문제들은,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기울였다면, 지금보다 더 상황이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이공계 외부 사람은 대개 이공계 문제에 관심을 적극적으로 가지지 않는다. 보통 ‘공대 애들은 살기 힘든가보다, 인문대는 더 힘든데’ 하고 만다. 정부에서 내놓는 대책들도 너무 피상적이다. 그러니 이공계가 스스로 말하고 움직여야 한다. 힘든 커리큘럼 때문에 과외 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지만, 움직여야 그 커리큘럼도 바뀐다.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작은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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