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화석연료 시대’의 에너지, 수소를 잡아라

미래과학의 산실, 융합연구 현장을 가다 (3)



00title2.jpg 2011년부터 고등학생들은 ‘융합과학’ 교과서로 과학을 공부한다.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으로 엄격하게 구분된 개념 위주로 공부해온 학생들은 낯설고 어렵게 느끼기도 하지만 우주·자연·생명에 대한 현대과학적 해석과 인류 문명에 대한 현대기술의 기여를 융합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가히 현대는 ‘융합의 시대’라 할 만큼 융합이 유행이다. 정부는 2008년 ‘국가융합기술발전 기본방침’을 세우고 융합형 기초·원천 과학기술 연구에 정책의 방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추격형·모방형에서 창조형·창의형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서 있다. 그 근간의 하나가 융합 연구다. 융합 연구 현장을 4차례에 걸쳐 찾아가본다.

00OIH.jpg » 오인환 ‘자기냉각 액화물질 융합연구단’ 단장이 프로토타입으로 만들고 있는 5ℓ짜리 액화수소 저장용기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근영


러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2002년 저서 <수소경제>를 통해 2020년이면 세계 석유생산이 하락하고 그 대안으로 수소 에너지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 예견하며 이른바 ‘수소경제’를 주창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2005년 ‘수소경제마스터플랜’을 발표해 2040년까지 최종 소비에너지 가운데 수소에너지 비중을 15%로 높이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수소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고려하면 수소는 에너지원이 아니라 ‘에너지를 저장하고 이용하는 운반체’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보든, 단순한 ‘에너지 운반 기술’로 보든 탈화석연료 시대에 수소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운반하는 기술은 확보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수소는 물을 분해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체이지만 워낙 가벼워서 고압으로 압축하거나 액화시켜 사용해야 해 에너지 값보다 저장과 운반 비용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키스트) 안에 둥지를 튼 ‘자기냉각 액화물질 융합연구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연구단은 수소를 액화시켜 사용하는 것이 고압으로 압축해 사용하는 것보다 2.8배 에너지효율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소를 액화해 저장하고 운반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오인환 융합연구단 단장은 “선진국에서는 우주로켓용이나 수소자동차용으로 극저온 액화기, 저장용기, 펌프, 수송차량 등을 상용화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일부 기업이 액화질소나 액화산소를 제조하는 정도의 기술수준을 보유하고 있을 뿐 수소를 액화하는 기술조차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00OIH2.jpg 수소를 액체로 만드는 이유는 다른 저장방식보다 에너지 밀도가 크기 때문이다. 에너지 밀도는 연료 안에 수소원자가 얼마나 조밀하게 저장돼 있는지를 나타낸다. 무게당 에너지 밀도는 액체수소가 22MJ(메가줄)/㎏인 데 비해 금속수소화물(메탈 하이드라이드)은 1.7MJ/㎏, 고압수소는 4.8MJ/㎏에 불과하다. 부피당 밀도도 액체수소는 7.8MJ/ℓ이지만 금속수소화물은 4.4MJ/ℓ, 고압수소는 2.5MJ/ℓ에 지나지 않는다. 수송비용에서도 차이가 있다. 액체수소는 생산과 이송에 들어가는 총 비용이 1㎏당 3.66달러인데 파이프라인을 이용하면 5달러, 대형 튜브 트레일러는 4.39달러나 든다. 특히 생산비용은 액체수소가 2배 이상 높지만 이송비용은 파이프라인과 튜브 트레일러가 각각 2.94달러, 2.09달러인 데 비해 액체수소는 0.18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생산비용을 낮추면 수소를 액체로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얘기다.


수소 액화 작업의 1단계는 ‘오르토 수소’를 ‘파라 수소’로 바꾸는 일이다. 상온에서는 2개의 분자가 한방향으로 자전운동(스핀 운동)을 하는 오르토 수소가 75%, 반대방향의 스핀을 가진 파라 수소가 25%를 차지하지만, 절대온도 20K(영하 253도·절대온도 0도는 영하273.15도)에서는 ‘파라 수소’가 100%가 된다. 문제는 수소분자는 마치 의식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한방향으로 스핀운동을 하다 온도가 떨어져 추우면 한 분자가 거꾸로 돌아 스핀운동을 양쪽으로 하면서 열을 내 스스로 기화한다. 미리 ‘파라 수소’를 만들어 놓고 냉각하면 그만큼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여기에는 자성을 띤 촉매가 널리 사용되는 데 좀 더 효율 높은 촉매 사용법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단의 숙제다.


00OIH3.jpg 수소 액화 작업에서 뛰어넘어야 할 또다른 과제는 재액화 기술이다. 수소를 냉각해 액체로 만들어 놓아도 저절로 증발하는 비율이 큰 용기의 경우에는 하루에 0.06%, 작은 용기는 3%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단의 제1세부과제에 참여해 10짜리 저장용기를 개발하고 있는 김서영 키스트 책임연구원은 “증발하는 수소를 다시 냉각시켜 증발률을 하루 1% 이하로 줄이고 궁극적으로 0%를 추구한다는 게 연구단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곳에 쓰이는 비장의 무기가 ‘자기냉각기술’이다. 냉동기와 자기냉각 원리는 똑같다. 냉동기는 프레온가스 등 냉매를 압축해 액체 상태로 만들면 분자들이 잘 정렬돼 있던 것이 기화하는 순간 무질서한 기체로 변하면서 에너지가 필요해져 주변의 열을 빼앗아 오는 방식이다. 자기냉각은 자기장 안에 자성물질을 쑥 집어넣으면 고체 안에 무질서하게 돼 있던 분자들이 정렬 상태로 됐다가 다시 빼내면 분자들의 정렬 상태가 흐트러지면서 주변의 에너지를 흡수한다. 열량 자체가 크지 않다는 단점이 있지만 부피가 작아 액체수소 저장 용기 안에 설치해 증발하는 수소를 다시 냉각하는 용도로는 적합하다. 통상 가스냉매 냉각의 에너지 효율이 40%인 데 비해 자기냉각은 60%에 이르고, 친환경적이라는 이점도 있다.


연구단의 위탁과제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태양에너지연구소의 백종훈 박사는 “이론적으로 사용 가능한 냉동온도 범위가 넓기 때문에 현재 쓰이고 있는 냉동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 다만 상용화하기 위한 성능 및 효율개선 등 많은 해결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자기냉각 분야는 아직 블루오션이라는 말이다. 이 기술은 액체헬륨으로 지속적인 냉각이 필요한 초전도자석 기반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기냉각 기술 개발은 충북대의 유성초 교수(물리학) 연구팀과 카이스트의 정상권 교수(기계공학) 연구팀이 맡고 있다.


액체수소 저장 효율을 높이려면 수소는 열에 약하기에 단열 성능을 높이고, 수소에 의한 저장용기의 손상(취화)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연구단은 수소 차단층 후보물질로 그래핀을 꼽고 있다. 그래핀의 탄소 격자 지름은 1옹스트롬(Å·1옹스트롬은 100억분의 1m)인 데 비해 수소 분자의 지름은 1.5옹스트롬이어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전북대 이중희 교수(재료공학) 연구팀이 수소투과방지 복합차단층을 개발하고 있다. 수소취화나 수소투과 방지 등 저장용기 평가를 위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남승훈 박사팀도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액체수소, 우주로켓·자동차에도 쓰이는 ‘팔방미인’…수요 크게 늘듯



액체수소는 수소자동차 등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가치가 크지만 이밖에도 우주로켓 개발, 반도체 및 액정 산업의 환원제 등 여러 분야에 쓰인다.


지난해 5월 우리나라 인공위성 ‘아리랑 3호’는 일본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H2-A’라는 로켓에 실려 우주로 발사됐다. ‘에이치’(H)는‘하이드로젠’(수소)의 머리글자다. 일본은 우주개발을 시작하면서 기술적으로 어려운 액체수소 로켓 개발에 나서 현재 90% 이상의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다. 액체수소 로켓으로는 퇴역한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프랑스 아리안5 등이 있다. 인도는 20여년 동안 연구해왔지만 끝내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소는 케로신(등유)보다 비추력(단위 중량으로 날아갈 수 있는 거리)이 좋지만, 케로신 로켓에 산화제로 쓰이는 액체산소가 영하 183도에서 유지되는 반면 수소는 영하 253도에서 액화하기에 고도의 기술과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장영근 항공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액체수소 로켓 기술도 확보해야 하겠지만 적은 재원을 고려하면 현재 케로신 로켓엔진(한국형 발사체) 개발에 집중하고 액체수소 로켓은 대학 차원의 기초연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액체수소 자동차 개발에 가장 앞서고 있는 것은 베엠베(BMW)다. 베엠베는 독일 가스공급 업체 린데와 함께 액체수소를 연료로 한 자동차를 만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시연한 적이 있다. 자기냉각 액화기술 융합연구단은 연료탱크를 구해 분석해보려 했지만 공식적으로 판매를 하지 않아 재질 등 제원만 확보한 상태다.


고순도의 액체수소는 자동차, 화학, 광섬유, 반도체, 액정, 유리 등의 생산과정에 환원제로 사용돼 액체수소의 수요는 앞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액체산소나 액체질소 기술은 민간기업에서도 상당부분 확보했지만 액체수소 분야 연구는 미약하다. 15년 전 키스트 연구팀이 냉동기를 이용한 수소액화 장치를 개발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당시 연구에 참여한 백종훈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태양에너지연구소 연구원은 “수소에너지 이용기술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에너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총괄적 해법의 하나로, 수소에너지 저장 및 이용을 위한 자체기술 개발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경제·외교·안보적 위상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위 기사는 <한겨레> 1월22일치 22면에 보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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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선임기자
때론 현미경으로 과학, 과학자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때론 멀리서 망원경으로 방관하는 문과 출신 과학기자. 과학과 대중의 소통과 과학기자의 역할에 관해 연구 중.
이메일 :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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