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학 넘나드는 물리박사, 알츠하이머 조기진단법 탐색

미래과학의 산실, 융합연구 현장을 가다 (2)



00title2.jpg 2011년부터 고등학생들은 ‘융합과학’ 교과서로 과학을 공부한다.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으로 엄격하게 구분된 개념 위주로 공부해온 학생들은 낯설고 어렵게 느끼기도 하지만 우주·자연·생명에 대한 현대과학적 해석과 인류 문명에 대한 현대기술의 기여를 융합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가히 현대는 ‘융합의 시대’라 할 만큼 융합이 유행이다. 정부는 2008년 ‘국가융합기술발전 기본방침’을 세우고 융합형 기초·원천 과학기술 연구에 정책의 방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추격형·모방형에서 창조형·창의형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서 있다. 그 근간의 하나가 융합 연구다. 융합 연구 현장을 4차례에 걸쳐 찾아가본다.

00SKB.jpg » 송기봉 ‘의료인지융합연구단’ 단장이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검출 장비를 직접 제조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 대덕연구단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트리) 안에 있는 의료인지융합연구단 연구실에는 생명과학 실험실이나 의학연구소에나 있을 법한 비커, 피펫, 내시경, 원심분리기 등 실험도구들이 즐비하다. 물리가 전공인 송기봉 의료인지융합연구단장도 이제는 생물학이나 의학 전공자로 오인받을 정도로 관련 용어 사용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의료인지융합연구단은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2009년 출범시킨 14개 신기술융합형 성장동력사업 연구단의 하나다. 송 단장은 “연구단은 모두 8개의 세부과제로 구성돼 있는데 3세부과제까지가 의대 소속이다. 이분들과 처음 연구과제에 대해 의논을 하는데 각자 전공 학위과정에 쓰던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마치 외국인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에트리팀이 ‘특정 물질을 올려놓으면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장치’인 광자전계효과트랜지스터(P-FET)에 대해 설명할 때 다른 과제 담당자들은 이해를 쉽게 하지 못했다. 이 장치는 첨단장비가 아니라 1950년대에 개발된 트랜지스터를 반도체 기술로 작게 만들어 디램(D-RAM)에도 들어가는 회로에 불과한데도 그랬다. 거꾸로 의사들이 ‘벡터’에 대해 설명할 때 송 단장은 한동안 어리둥절해야 했다. 물리에서 쓰는 ‘벡터’ 값을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생물학 쪽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할 때 정해진 서열에 따라 하는 순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00SKB2.jpg 송 단장은 “2년 동안 금속에서부터 전기전자 원리까지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또 그분들한테서 의학 용어와 개념에 대해 설명을 듣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이제는 서로 잘 알아듣고 다른 곳에 가서 상대쪽 전문용어를 써가며 설명하는 것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송 단장이 맡고 있는 세부과제 연구팀도 전산, 전기전자, 생물, 기계공학, 화학, 재료 등 여러 전공자들이 고루 섞여 있다.


연구단이 이렇게 다양하게 구성된 것은 연구목표 자체가 융합형인 데서 기인한다. 질병과 인간의 감각기관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이를 토대로 질병을 예측하는 장치나 장비를 만드는 것이 연구단이 5년 동안 이뤄내야 할 과제다. 입이나 코에서 검출된 발병원인물질 등의 바이오마커를 스마트폰에 장착된 센서에 묻혀 발병 여부를 조기에 알아내고 관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연구단이 조기진단 목표 질병으로 꼽은 것은 알츠하이머, 만성폐쇄성폐질환, 아벨리노각막이상증이다.


송 단장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연구단 전체 연구를 총괄하면서 동시에 알츠하이머 인지방법 연구과제를 맡고 있다. 알츠하이머는 65살 이상 고령인구의 15%가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도 빨리 발견해 치료만 하면 5~10년 지연시킬 수 있다. 연구단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인지기능보다 후각기능을 먼저 잃는다는 데 주목을 하고 있다. 연구단에 참여하고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문재일 교수 연구팀은 유전자변형쥐 실험을 통해 알츠하이머 질환을 일으키는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Aβ)가 콧속의 후각상피세포에서 먼저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00SKB3.jpg » 알츠하이머 환자가 인지기능보다 후각기능이 먼저 저하되는 것은 후각상피세포에 베타아밀로이드가 먼저 쌓이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에트리팀은 여기에 착안해 콧속 내시경을 개발하고 있다. 부비동 쪽의 5㎜ 공간에 들어갈 정밀한 내시경뿐만 아니라 세포를 직접 뚫지 않고 상피세포 50마이크로미터(1㎛는 10만분의 1m) 깊이까지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건강검진 때 망막 안 조직 상태를 검사하는 장치(OPT·빛간섭단층촬영)와 원리가 같지만 극히 소형으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타액이나 콧속에서 추출한 체액에 들어 있는 베타아밀로이드의 양을 측정하기 위한 장치도 개발중이다. 이 장치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미국 엘리사 제품보다 5배 뛰어난 성능을 지녔다.


송 단장은 “현재 개발한 장비로 알츠하이머 예측과 실제 발병 여부를 비교한 결과 80% 정도의 일치율을 보였다. 샘플 수가 적다는 한계가 있지만 숫자가 늘어나도 70% 이상의 일치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정부출연연구소의 좋은 특허 판매를 대행하는 프로그램에 지난해 에트리 특허가 120개 뽑혔는데 이 가운데 의료인지융합연구단 특허가 10개나 포함된 것은 이런 뛰어난 연구 성과 덕분이다.


또 만성폐쇄성폐질환 바이오마커 개발을 목표로 하는 제2세부과제를 맡고 있는 경북대 재생의학연구소의 임정옥 교수 연구팀은 내쉬는 날숨(호기)에 들어 있는 일산화탄소 등 질병 특이 화학성분을 피피비(ppb·10억분의 1의 정밀도) 수준까지 검출해 폐질환을 진단하는 감지장치를 만들어 경북대병원에 10대 이상 설치한 뒤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안구의 각막에서 생성되는 이상단백질에 의해 시력 저하가 발생하는 아벨리노각막이상증 진단방법을 찾고 있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응권 교수팀(제3세부과제)은 아벨리노각막이상 환자에게도 알츠하이머처럼 베타아밀로이드가 생성된 뒤 배출되지 못하고 쌓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팀은 발병 원인 단백질의 합성을 리튬 이온이 저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키나제(반응을 촉매하는 효소) 활성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원인 단백질을 간편하게 검출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등 연구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덕연구단지/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



“융합은 새로운 유행이 아니라 정석의 길”



00LPS.jpg “과학을 자기 아집이나 욕심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인류 복지를 위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학문으로 만들려면 목적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분열이 된 학문적 언어로 물리, 화학, 공학, 생물 논문만 쓰다 보면 다른 사람 얘기 듣기가 어려워집니다. 융합은 새로운 유행이 아니라 애초 그렇게 해야 하는 정석의 길입니다.”


의료인지융합연구단에 위탁과제로 참여하고 있는 이평세(54·사진·미국 이름 루크 리)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4일(현지시각) “연구와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를 유명 저널에 싣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보조장치 도움 없이 진단하는 바이오칩’을 개발해 빌&멀린다재단으로부터 150만달러,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1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교수는 “이제 생명의학 쪽에서 좀더 정선되고 신뢰도 높은 바이오마커를 찾고 이공계에서 신속하게 신호를 증폭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일만 남았다”며 융합연구를 강조했다. 이 교수 연구실이 위치한 ‘스탠리홀’ 자체가 2007년 재건축을 하면서 물리, 화학, 생물학 등 다양한 이공계 교수들이 함께 머물며 자연스럽게 협력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는 “다만 건물 짓는 데만 너무 많은 투자를 해 정작 융합연구에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스스로가 융합형 연구자다. 고등학교 때 이민을 온 그는 학부 때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10년 동안 회사를 다니다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어” 34살의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재입학해 생물물리학(바이오피직스)으로 학위를 받았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그가 꼽는 역사적으로 매우 훌륭한 융합형 과학자다. 패러데이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에 불과했지만 책제본공을 하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 전자기학, 화학, 발전기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업적을 내어놓아 영국의 산업 부흥을 이끌었다.


00LPS2.jpg 이 교수는 “한국이 추격형 연구에서 창의적 연구로 전환하려면 남이 안 하는 것 중에 인류의 복지를 위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분야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바이오칩 진단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그는 제안했다.


이 교수는 최근 나노스케일의 장치로 살아 있는 세포 안 분자의 상태와 활동을 직접 보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디엔에이가 아르엔에이로 전사돼 단백질이 형성된다는 원리는 어느 누구도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 직접 관찰하지 않았음에도 생물학의 중심이론(센트럴 도그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하는 일은 과학자에게 중요한 일일뿐더러 후생학, 질병의 근본적 원인 분석 및 치료에 핵심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생물학자나 의학자들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로 고립된 학문적 언어의 벽을 허물고 겸손히 배우면서, 생물, 물리, 화학 그리고 공학의 조화로운 융합을 위해 시간을 성실히 아껴 쓰며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


* 위 기사는 <한겨레> 1월8일치 22면에 보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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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선임기자
때론 현미경으로 과학, 과학자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때론 멀리서 망원경으로 방관하는 문과 출신 과학기자. 과학과 대중의 소통과 과학기자의 역할에 관해 연구 중.
이메일 :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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