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이 과학 발전 밑돌” 이공계에 페미니즘 바람

※ 이 글은 한겨레 8월7치 <한겨레>의 “미래&과학” 지면에 실렸습니다. 취재 중에 이뤄진 이메일 일문일답들 중 일부를 덧붙여서 웹진용 기사로 사이언스온에도 옮겨 싣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00feminist&Shim.jpg » 지난 4월 이공계 여성을 지원하는 소셜벤처 걸스로봇 등이 심상정 정의당 당시 대선 후보를 초청해 서울 역삼동 디캠프에서 젠더 정책 특별대담 행사를 열고 있다. 이진주 대표는 “이날 참석자 200여명이 신체적, 정신적 안전부터 성차별, 성폭력, 경력단절, 육아, 동성애 등을 주제로 울고 웃으며 열띤 대화를 나눴다”며 “특히 이공계 여성의 경력단절과 여고생에게 물리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많다는 현실이 화제가 됐다”고 전했다. 걸스로봇 제공


전문성 더 요구하는 과학기술계

여성들, 성차별 고통 더 깊어

페미니즘으로 돌파구 찾아나서


“남자인 제가 페미니즘에 관심 갖는 이유는 두 가지 같아요. 첫째는 앞으로 공동연구할 기회가 생길 텐데 실력 좋은 사람이랑 하면 좋겠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스트레스 받고 돌봄노동 떠맡는다면 잘하던 사람도 연구를 꾸준히 하기 어렵겠고, 그러면 주변에 실력 좋은 사람이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요.”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으킨 ‘여혐’ 논란으로 유난히 힘들어하던 실험실의 여자 동료, 그리고 공감하던 남자 동료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생물학 실험실의 페미니즘 공부’를 경험했던 대학원생 김준(서울대 생명과학부)씨는 “그리고 여성 또는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연구자가 더 많아져야 연구 주제도 더 다양해질 거니까”라고 이유를 꼽았다.


대학원의 남자 연구생이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김준씨처럼, 요즘 이공계에선 성평등을 말하는 젠더나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공계 페미니즘, 테크노 페미니즘이라는 말도 익숙해지고 있다.


“이공계 분야에 더 많은 여성이 진출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문화 사업을 펼치는 소셜벤처 ‘걸스로봇’의 이진주 대표는 이런 흐름에 대해 “그동안 인문계 페미니즘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견인해온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를 이제 이공계 페미니스트들이 받아 요즘 시대에 맞는 언어로 번역하고 있는 중”이라고 평했다. 같은 연구자이면서도 이공계에서 소수자로 살아야 하는 여자 과학기술인들의 차별 해소 요구가 이제는 페미니즘의 언어와 결합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지속성과 전문성이 더 요구되는 과학기술계의 특성 때문에 여성 과학기술인이 겪는 어려움은 흔히 ‘유리천장’, ‘새는 파이프라인’, ‘엘(L)자형 생애 주기’ 같은 표현으로 요약되곤 한다. 결혼·육아 등으로 전문 인력군에서 점차 빠져나가는 ‘새는 파이프라인’ 현상이나, 경력단절 뒤에 아예 복귀를 포기하는 바람에 일반적인 ‘엠(M)자형’이 아니라 ‘엘(L)자형’ 생애 곡선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도표.jpg » 이공계 여성 인력에 나타나는 엘(L)자형 생애 주기의 문제는 최근 들어 완화됐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제공


이진주 대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같은 단체의 언니 세대들이 실태 조사, 멘토링 지원, 경력단절 뒤 복귀 지원 같은 많은 활동을 벌였고 그런 것이 기반이 되어, 이제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모여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서 최근 눈에 띄는 것은 지난 3월 카이스트, 포스텍,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 디지스트(대구경북과학기술원),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같은 과학기술 중점대학들에 있던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처음으로 조직적인 연합모임을 만든 일이었다. ‘페미회로’라는 이름으로 주로 페이스북(facebook.com/femicircuit)을 무대로 활동하는 이 단체에는 이공계 대학의 대학생, 대학원생, 졸업생들이 참여했다. 페미회로의 운영진은 “평등한 과학을 지향하기 위해 페미니즘 가치를 지지하고 이공계 소수자로서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00femicircuit.jpg » 이공계 페미니즘 그룹인 페미회로는 오프라인 회의도 자주 연다. 걸스로봇 제공


“소수자들 연대해 목소리 내자”

대학 연합 모임 ‘페미회로’ 결성

소셜벤처 ‘걸스로봇’과 의기투합

이공계 성차별 사례 수집도 활발


페미회로는 여성 연구자의 삶과 정체성을 듣고, 알리고, 얘기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일엔 걸스로봇과 함께 ‘우리에겐, 결코 평등하지 않은 과학’이라는 주제의 두툼한 보고서인 <젠더서밋 10>을 펴냈다. 창작자와 후원자를 이어주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후원금 500만여원을 받아 과학기술 연구에 평등한 성과 젠더의 관점을 확산하고자 하는 ‘젠더 혁신’ 분야 연구자들의 학술회의인 ‘젠더 서밋’ 일본 행사에 참여한 경험, 그리고 여성과 과학의 이야기를 담은 보고서였다.


00girlscandoanything.jpg » 페미회로 회원이 그린 캐릭터.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페미회로 제공 주변의 현업 연구자 또는 예비 연구자들한테서 남성 중심의 과학기술계에서 일상으로 겪어온 이야기들을 듣는 특별한 인터뷰 프로젝트(‘사이언티스트 ∩ 페미니스트’)는 “그동안 여성 연구자의 롤모델은 ‘연구와 가정을 동시에 지키는 슈퍼맘’ 정도였는데, 다양한 여성 과학자들이 실제 살아온 이야기들은 여성 연구자들이 겪는 우리의 문화적인 어려움을 보여준다.”(페미회로 활동가 조희수씨, 유니스트 대학생) 인터뷰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한 이진주 대표는 “일상에서 겪는 잔잔한 난관들, 그래서 더욱 길고 지난한 싸움의 과정을 전하고, 여성 과학기술인의 평범성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걸스로봇 누리집(girlsrobot.co.kr)에 실려 있다.


페미회로 활동가인 강미량(포스텍 대학생)씨는 “모두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어 대부분 온라인으로 협의하는데, 저마다 바쁜 실험이나 학업 속에서도 카카오톡은 물론이고 구글 행아웃, 트렐로, 슬랙, 아사나, 잔디 같은 갖가지 온라인 협업 도구를 사용해 교류한다”고 말했다. 페미회로엔 남자 페미니스트도 참여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공간에선 이공계의 성차별·성희롱 사례를 수집하는 활동도 벌어지고 있다.

페미회로와 협력하면서도 별도 그룹에서 운영되는 ‘이공계 내 성차별 아카이빙 프로젝트’라는 페이스북 페이지(facebook.com/STEMGenderEquality)의 운영진은 “페이지를 연 지 3주 만에 100건 넘는 사례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 4명으로 이뤄진 운영진은 “여성 연구자의 성차별 논의는 많지만 여러 자료를 찾아봐도 과학자를 꿈꾸며 교육을 받는 예비 연구자들이 현실에서 겪는 성차별 이야기는 거의 찾기 힘들다는 걸 알고서 이런 페이지를 열었다”고 말했다.


심각한 성희롱 사건을 고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많은 경우엔 일상적인 언어폭력이나 남성 중심 문화에선 보이지 않는 성차별이 이공계 여성이 과학기술 연구자로 성장하는 데 큰 장벽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운영진은 사례를 계속 모으면서 사례를 분석해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페미회로의 조희수씨는 “남자 비율이 매우 높은 남초 사회, 그리고 연구·실험실 개개의 독립적인(폐쇄적인) 문화 때문에 여성 연구원이 겪는 문제를 개인 문제로 여기는 일이 잦아, 이공계의 젠더 문제에 대해 더욱 논의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진주 대표는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와 함께 하반기엔 국회 같은 상징 공간에서 이공계 페미니스트들이 1박2일 동안 밤샘 정책토론을 펼치는 그런 행사도 구상중”이라고 말했다.


   ▒ 일문일답

소셜벤처 ‘로봇걸스’ 이진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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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인터뷰 이전에 잠시 나눈 얘기를 들어보면, 최근 여성 연구자 정체성을 보여주는 여성 (예비)연구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데에는 이전 세대들의 노력도 한몫했군요. 특히나 이공계 내에 젠더/페미니즘의 관심과 논의가 근래 들어 소셜미디어(SNS)의 덕분인지 많이 높아진 것 같은데요. 그런 분위기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이런 흐름이 나타나기까지 이공계 내 여성 (예비)연구자들 사이에선 어떤 흐름이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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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운동도 맥락과 계보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모르는 분들은 ‘랜선 페미니즘’이 시작이며 전부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는데요. 거칠게는 이른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SNS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가시화된 페미니즘 운동을 말합니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둘러싼 논쟁과 실천을 비롯해, 페이스북 중심의 ‘페페미’, 트위터 중심의 ‘트페미’ 등이 있으며, 이들의 활동 양상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역사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과학기술 페미니즘, 이공계 페미니즘, 테크노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미 있어 왔던 운동에 SNS가 기폭제 역할은 한 것은 분명하지요. 이공계 대학들과 여성 연구자들은 점점이 떨어져 분포해 있어 현실에서는 숨어 있거나 발언권이 없을 확률이 높은데요, SNS는 그런 거리상의 장벽을 무화시키고, 익명성에 기반해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발언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숨어 있던 동료들을 찾아 연대하기에도 편리하고요.

 한국 테크노 페미니즘의 역사와 관련해 저희 동생 세대들은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위셋)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셋은 이미 한 세대 전부터 백희영 교수님, 문미옥 보좌관님 등이 주도해 과학기술계 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페미니즘’이라고 드러내놓고 말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입장과 정황이 있어 조심스러우셨던 것 같지만, 그 지향과 활동 내역들은 명백히 페미니즘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언니들이 과학기술 학계와 산업계 전반을 십 년 동안 전수조사하고,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해 이공계 여학생 멘토링이나 경력단절 여성 복귀사업,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사업을 해온 것들은 결코 가벼운 업적이 아닙니다. 그런 기반들이 있었던 덕분에, 우리는 마침내 입을 열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과학과 공학에 관심이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그 길에서 벗어나왔다가 다시 되돌아온 저 같은 사람도(걸스로봇), 이제 겨우 학부생 수준인 꼬꼬마 당사자들도(페미회로), 마초적인 가부장제에 의문과 문제의식을 품은 이공계 남성들과 퀴어들도요.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는 모두 위셋의 자장 안에 있습니다.

 제가 소셜벤처 걸스로봇에서 활동하던 중에 여교수님 여러 분이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이 있다며 위셋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곧바로 일을 함께 하거나 제안서를 넣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제가 일하는 방식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괜찮지만, 위셋과 같은 공적인 영역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위셋에서 먼저 요청이 들어와 ‘창립 5주년 토크 콘서트’를 받아 치르게 되었습니다.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자유도가 높고,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관과의 협업도 담당자의 의지에 따라 창조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하반기에도 위셋과 ‘테크페미 해커톤’이라는 행사를 함께 해보기로 했습니다. 국회 등의 상징적인 공간에서 이공계 페미니스트들이 1박 2일동안 밤샘 정책 마라톤을 펼치는 컨셉트입니다. 관이 가진 정보와 네트워크에 제 기획력과 추진력을 더하는 것이라 이번에도 매우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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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이름을 지닌 걸스로봇은 소셜벤처로 알려져 있는데, 여성 (예비)연구자들의 활동을 북돋우는 기획사업을 하는 벤처기업인지요? 조금 설명해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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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걸스로봇을 시작한 건 2015년 11월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위셋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막연히 로봇계의 여성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만 있었습니다. 그 생각이 너무 압도적이라 다른 어떤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비슷한 종류의 사업이나 활동에 대한 스터디 없이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 머릿속에는 ‘로봇’이라는 상징을 활용해 이공계 전연령대의 여성 전반을 아우른다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가장 남성적인 학문인 공학에서, 가장 미래적인 분야인 로봇을 하는, 가장 소외된 존재인 여성을 말하게 하면, 가장 ‘후진’ 이 바닥에서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생겨나,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위셋과 미래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조사에 의하면, 2015년 현재, 한국 로봇계의 가장 핵심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금속/기계공학 분야’의 여성인력은 6.2퍼센트에 불과하거든요. 런칭 파티를 함께 준비하던 로봇계 여학생들에게 ‘걸스로봇’은 결국 ‘걸스싸이’ ‘걸스엔진’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걸스로봇은 로봇으로 상징되는 이공계 전반의 여성 과학기술 인력들이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거의 모든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 11월 국내 최초의 여성 로봇공학자 네트워크로 시작해 장학사업, 네트워킹 파티와 컨퍼런스, 로봇학회 여성세션 조직부터 여학생 멘토링, 성폭력 피해자 지원, 여성 과학기술인 인터뷰 프로젝트 등을 해왔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대학교 컨소시엄이 유치한 ‘인간중심 소프트로봇센터(소프트로봇ERC, 센터장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와 올 11월 삼청동 개장 예정인 과학서점 ‘갈다(대표 이명현 천문학 박사, 전 연세대 교수)'에는 투자자로 참여했습니다. '조지형 빅히스토리 협동조합(이사장 김서형 교수)'에도 조합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걸스로봇은 인간중심소프트로봇센터 여학생들의 로봇학회 참석을 지원하고, 센터는 제 펠로우들에게 인턴 근무 기회 등을 제공합니다. 소프트로보틱스 분야에 페미니즘적이고 젠더평등한 시각을 불어넣는 방안도 함께 고민하며 제안하고 있습니다. ‘갈다’에는 여성과 과학을 다루는 북 섹션과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일주일이나 한 달 단위의 걸스 메이커 워크숍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제가 ‘핑크랩’이라고 부르는 활동의 베타 테스트 버전입니다. 조지형 빅히스토리 협동조합에서는 인류의 역사라는 큰 틀에서 로봇, 인공지능 시대와 젠더 이슈를 다루는 방법을 함께 공부하고 모색해볼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돈을 벌겠지만, 초기 3년 간은 수익보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킹 파티 한 번에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들이는 등 사재를 털어 활동하고 있고, 저는 이것을 일종의 마케팅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집행합니다. 메이커 활동은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고루 대상으로 하고요, 멘토링이나 롤모델 제공은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자원을 쏟아부어 가장 핵심적으로 지원하는 계층은 20대 여대생과 대학원생입니다.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생애주기상의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 다양한 시각과 정보, 롤모델을 보여주고 스스로 판단해 선택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페미회로는 그 과정에서 만난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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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페미니즘 그룹인 ’페미회로’와 독특하고 흥미로운 여성 과학기술인 인터뷰를 공동기획해 진행하고 계신데요, 페미회로와 함께 이런 인터뷰 프로젝트에 나서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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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회로가 생긴 것은 2017년 3월입니다. 주요 이공계 대학의 여학생 당사자 그룹이 학과나 학교 단위를 벗어나 조직화, 가시화된 것은 처음입니다. 포항과 대전, 대구 등지를 오가며 페미회로의 회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와 경험, 자본을 나누었고, 일부 방향을 잡고 사업을 제안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젠더서밋 프로젝트는 제가 페미회로에 크라우드 펀딩으로 함께 다녀오자고 제안하고, 카카오 스토리 펀딩 담당자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탁월한 업적을 쌓았거나 유명한 성공사례가 아니라 무명의 이공계 페미니스트들을 인터뷰하는 “사이언티스트 (교집합) 페미니스트” 프로젝트도 함께 하고 있는데요, 이전까지의 인터뷰 작업이라는 것이 탁월한 여성 연구자들의 비현실적인 난관과 그것을 극복한 슈퍼우먼 스토리 위주로, 또 과학기술계의 무시할 수 없는 업적 중심으로 인물을 조명했다면, 요즘은 그런 슈퍼우먼은 일종의 허상이며 지금까지 성공사례로 소개된 많은 경우 진실의 일부만을 드러낸 반쪽짜리임을 인정하는 추세인 듯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일상에서 매일 겪는 잔잔한 난관들과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길고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노출하고,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평범성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과학기술이라는 건 일부 천재만의 것이 아니고, 과학기술자 대부분이 결국은 매일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롤모델을 발굴하고 과학기술의 팬시함을 널리 알려 이쪽에 들어오는 여성인력의 인풋을 늘리는 일도 물론 병행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성폭력을 포함해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날 것으로 노출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분야에 어떤 심리적 보호장치도 준비도 없이 들어온 여학생들이 기만당하고 희생됩니다. 저는 제가 동경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는, 재능 있는 여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소비되고 희생되고 사라지는 데 분노를 느낍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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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개선되어야 하는 여성 연구자들의 삶과 연구환경 문제들은 산적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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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계 는 여성인력 비율이 19퍼센트에 불과하고 리더십을 가진 여성은 그보다 훨씬 적습니다. 수적 열세가 학문적 소외, 문화적 배제, 정치적 무력함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이곳에서 숫자와 데이터에 기반한 변화가 나타난다면 사회적인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해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제 겨우 당사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지만, 목소리 내는 일은 여전히 어려워 보입니다. 페미회로의 많은 친구들이 성별을 불문하고 가명으로 활동하며, 사진에서도 얼굴을 가립니다. 과학기술계의 인력 풀이란 아직까지 너무나 작으며, 특히 우수인재들이 모인 일부 대학은 교수-학생, 선후배만이 아니라 과학고/영재고, 영재원 등을 통해 부모들까지 연결돼 있는 촘촘하고 좁은 세상입니다. 한 번 어떤 방향으로 소문이 나면 돌이키기 어렵고, 결국은 해당 여학생이 스스로 그만둠으로써 궤도에서 이탈합니다. 우리는 그걸 ‘아웃 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그런 일을 막기 위해 익명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대신 전하는 것이 걸스로봇과 페미회로의 역할입니다. 언젠가 그들이 직접 무대에 오를 때를 위해 아카이빙을 하고 증언할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말해야 하는 분들이 직접 말하게 될 때, 저희의 운동은 제 2막을 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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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에서 젠더/페미니즘 관심과 논의는 어떤 점에서 중요할까요? 앞으로 이런 흐름은 어떻게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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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과학기술은 우리 시대의 리터러시가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테크노 페미니스트들은, 과학기술에서 소외된 여성들은 더 빠르게 추락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2등 시민’의 지위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문계 페미니즘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견인해 온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를, 이공계 페미니스트들이 받아 요즘 시대에 맞는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공계 여성 페미니스트만이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퀘스쳐너리(자신의 타고난 성정체성 등에 의문을 품은 존재) 등 이공계 퀴어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가 어떤 성별을 타고났든, 어떤 성적 지향과 취향, 정체성을 가졌든, 모든 인류가 인종이나 국적이나 종교나 배움이나 빈부 등에 따라 차별 받지 않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별받지 말아야 합니다. 로봇시대, 인간으로 태어나기란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일인가요. 기왕 인간의 몸을 받아 안고 태어난 이들이 자신을 너무 의심하거나 부정하거나 학대하지 않고, 동등한 권리와 지위를 누리고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공부하고 일하는 세상이 되기를 꿈꿉니다. 이공계 여성 페미니즘 운동은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젠더 혁신

“실험동물에도 암수 균형 필요하다”


수컷동물에게만 실험한 신약

여성에게 부작용 일어날 수도



“생물학적인 성과 사회문화적인 젠더의 남녀 차이를 과학기술에 올바로 반영해 편견 없는 연구를 하자는 게 젠더 혁신이지요. 실험동물의 성별이 실험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지금은 성별 데이터를 밝히고 암·수컷 균형을 맞추도록 권고하고 있지요.” 여성과학기술인단체총연합 부설 젠더혁신연구센터의 백희영 센터장(서울대 명예교수)은 “국제사회에서 연구 과정에 성·젠더를 고려하도록 의무화하는 곳이 늘고 있어 우리도 젠더 혁신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젠더 혁신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론다 시빙어 교수가 주창하고, 이후에 확산한 과학·공학의 새로운 연구 태도 또는 방식으로, 과학기술에 스며 있는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 편견 없는 지식을 얻자는 제안으로 요약된다. 국내에선 2013년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관심이 일기 시작해 2015년 국제 행사인 ‘젠더서밋’을 서울에서 연 데 이어 지난해 젠더혁신연구센터가 정식 출범했다.


00labmouse.jpg » 질환 연구에 쓰이는 실험동물 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젠더 혁신의 동향을 담고 있는 누리집(genderedinnovations.stanford.edu)을 보면, 성·젠더 차이를 과학기술에 반영해야 하는 근거를 밝히는 연구나 젠더 혁신을 통해 이룬 연구 사례들은 그동안 많이 쌓여 왔다. 널리 알려진 사례로, 수컷 동물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개발된 신약이 여성들에게 효과가 더 낮거나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 1990년대부터 제기됐다. 2014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실험에서 동물과 세포를 쓰는 모든 전임상 연구에서 양성 균형을 맞추도록 지침을 공고한 바 있다.


자동차 충돌 실험에 남자 인체 모형만 쓰다 보니 실제 사고에서 목뼈를 다칠 위험이 남자보다 여자가 2배 높다는 분석도 있었고, 이후에 충돌 실험에 여자·임신부의 인체 모형을 쓰는 자동차회사도 생겨났다. 기계번역에선 남성 위주의 언어 번역이 나타난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개선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통증 메커니즘에도 남녀 차이가 있다는 연구도 있어 통증의 성별 차이 연구도 불가피해졌다. 젠더 분석은 사회문화적인 성별 차이가 중요한 의생물학, 보건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조된다.


백 센터장은 “최근엔 통증 실험에서 연구자 성별에 따라 실험동물이 다른 영향을 받는다는 캐나다 맥길대학의 연구도 있었다”며 “남자 연구원도 성·젠더 차이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편견 없는 연구에 기여하겠지만 실험 대상을 대하는 연구자 자체에도 양성 균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활동 방향과 관련해 “젠더 혁신을 국내에 확산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국내의 여러 연구개발(R&D) 과제에서도 성·젠더 분석의 중요성을 인식해 편향 없는 지식을 생산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 적합한 기술과 제품이 더 많이 개발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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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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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오철우 | 2017. 08. 21

    ‘히치하이킹’ 꼬마선충 춤사위 습성 관련 유전인자 밝혀‘사회성 곤충’ 개미 후각 유전자 변이 때 사회행동 변화  +   일문일답 이준호 서울대 교수 삶이 팍팍해지면 작은 벌레 ‘예쁜꼬마선충’의 알은 성장하다가 독특한 애벌레 단계...

  • ‘박기영 혁신본부장 반대’ 서명 확산‘박기영 혁신본부장 반대’ 서명 확산

    뉴스오철우 | 2017. 08. 10

    과학기술인단체 ESC의 성명서에 동참 1851명으로 늘어 ‘황우석 논문 조작 사태’와 관련해 연구윤리 등 논란을 일으켰던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임명에 반대해, 과학기술인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가 시작한 온라인 서명에...

  • ‘개미가 개미지옥 못 빠져나오는 이유는?’ -물리실험의 설명‘개미가 개미지옥 못 빠져나오는 이유는?’ -물리실험의 설명

    뉴스오철우 | 2017. 08. 09

    “모래 경사면 변형과 마찰계수의 영향” 물리학술지에 발표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게일때 빠져나오기 힘들어 ‘개미귀신’으로 불리는 명주잠자리의 애벌레는 모래에다 쉽게 쏟아져 내리는 미끄러운 구멍을 파놓고서 곤충 먹잇감을 기다린다. 아...

  • ‘황 사태’ 관련 박기영 혁신본부장에 비판·반대 잇따라‘황 사태’ 관련 박기영 혁신본부장에 비판·반대 잇따라

    뉴스오철우 | 2017. 08. 08

    공공연구노조, 과학기술·시민단체 등 반대 목소리* 과학기술인단체 ‘ESC’의 9일 성명을 기사에 추가했습니다. -2017.8.9. 오전 10시 ‘황우석 논문 조작 사태’와 관련해 연구윤리 논란을 일으켰던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인 박기영...

  • 유전자 드라이브에 야생의 저항성 만만찮네유전자 드라이브에 야생의 저항성 만만찮네

    뉴스오철우 | 2017. 07. 27

    특정 유전자를 심어 후손들에게 빠르게 퍼뜨리도록 하여 해충 종을 제어하려는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전략이, 야생에선 저항성 돌연변이의 출현으로 인해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초파리 실험에선 저항성 돌연변이 출현이 적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