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병, 전쟁, 춤: 질병의 은유 (1)

  시 각   | 질병과 은유 ① |





7월 초, 가슴 아픈 소식을 하나 또 접했다. 4세 여아가 용혈성 요독 증후군(Hemolytic Uremic Syndrome)에 걸려 신장 기능의 90%를 상실했다는 것이다.[1] 아이는 현재 투석 중이며, 어머니는 햄버거 패티가 덜 익은 것이 원인이라고 지목해 업체를 고소했다. 이 '햄버거병'이라는 별명이 생긴 원인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1980년대 미국에서 속이 덜 익은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은 사람들에게 집단 발병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인 것 같다.[2] 덕분에 햄버거 공포증이 퍼지고 있으며, 점심마다 빨리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직장인들로 붐비던 업체는 고객의 발길이 끊겼다.[3] 그러나 햄버거병이라는 명칭은 잘못이며 햄버거가 원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4] 이 와중에, 강원도 원주의 어린이집에서 지난달 장 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이 집단 발생했으며, 이 중 10%가 악화하여 용혈성 요독 증후군으로 이어졌다는 보도가 나와 충격을 더하고 있다.[5]


질병 원인에 관해서는 철저한 역학 조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만약 업체의 부실로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판가름 난다면, 업체는 응당 피해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은 물론이다. 한편으로는, “햄버거병”이라는 별명이 문제를 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병은 햄버거를 먹어서 걸리기 때문에 “햄버거병”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햄버거병”이라는 별명, 아니 은유가 붙게 된 것은 아닐까.



햄버거병이라는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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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햄버거를 먹은 사람들에게 집단 발병했다는 설의 진위를 파악해보자. 이 질병이 크게 보고되었던 데에는 1985년 9월, 요양 시설 거주자 169명 중 55명, 직원 137명 중 18명한테서 대장균 O157:H7으로 인한 장염이 발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6] 거주자 중 19명이 사망한 이 사건은 샌드위치로 일차 감염이 발생한 뒤, 접촉을 통해 질병이 퍼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해당 사건의 경우, 햄, 칠면조, 치즈 샌드위치를 통해 종업원의 감염이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햄버거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인균이 쇠고기의 장과 완전히 구워지지 않은 쇠고기 분쇄육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이 질병을 햄버거와 연결하게 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7] 그러나 용혈성 요독 증후군이라는 어려운 이름과는 달리 햄버거병은 기억하기도 쉬우며,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파급력도 강력하다. 결국, 시작되지도 않은 역학 조사와 무관하게 햄버거는 바로 용의자가 되어버렸다.


diseasemetaphor1.jpg » 이미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버린 햄버거가 질병의 원인일까? (출처: Wikimedia Commons)


것이 은유의 힘이다. 과학적 증거와는 무관하게, 쇠고기 분쇄육-햄버거-햄버거병-대장균-용혈성 요독 증후군의 은유적 연쇄는 사람들에게 햄버거를 피하게 만든다. 은유적 연쇄란 말은 보기에 복잡한 것 같지만, "내 마음은 호수요" 하던 국어 수업 시간을 떠올리면 생각보다 간단하다. 은유법이란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하는 수사법으로, 보통 다른 사물에 빗대어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은유가 단순히 꾸미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강력한 이유가 존재한다. 1970년대 미국의 철학자 존슨과 언어학자 레이코프의 "체험주의(Experientialism)"가 인간 이해의 바탕이 은유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인지 이론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8]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가 복잡한 개념을 이해할 때, 개념을 직접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신체 경험 여럿을 결합하여 이해한다는 것이다. 일상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더 복잡한 경험들을 이해하게 되며, 이때 은유가 작동한다. 따라서 은유는 인간 이해의 기본을 형성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9] 오히려, 우리는 지나간 연인을 생각하거나, 소설이나 영화에서 관찰한 사랑의 장면, 또는 부모님의 따스함 등을 연상하게 된다. 즉, 언어생활에서 사랑이라는 어휘를 사용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적 정의가 작동한다기보다는 사랑이라는 어휘가 연결된 일상적 체험들의 중첩이 사랑이라는 개념망을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햄버거병”은 쇠고기 분쇄육과 대장균 감염증의 중첩이 만들어낸 은유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좀 더 큰 층위에서 문제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질병과 의학의 은유는 어떨까? 과연 우리는 질병과 건강, 치료를 생각할 때, 어떤 것들을 떠올릴까?



질병과 '전쟁'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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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관련한 경험을 표현할 때, 우리는 '싸워 이긴다'라는 표현을 자연스레 떠올리곤 한다. 흔히 우리는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는 질병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며, 그 몸은 병균과 면역, 약, 치료법이 점령과 후퇴를 거듭하는 '전쟁터'라고 생각한다. 질병과 싸우는 의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장군처럼 환자와 주변에 '명령을 하달한다.' 그 결과, 전쟁을 거듭 승리로 이끈 의사는 명의라고 부르며 ‘영웅’ 대접을 받는다. 이런 표현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질병, 특히 감염성 질병을 병균과 벌이는 전투에 빗대어 생각하는 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신체라는 ‘배양기’에서 병균을 ‘선별’한다는 표현은 사실에 가깝지만, 영 어색하게 느껴진다. 미생물 배지에서 항생제를 사용해 원하는 세균의 종류만을 골라내는 과정은 질병 치료 과정과 흡사한데도 말이다.


리는 감염병이 전쟁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을 최근에도 경험한 바 있다. 2009년의 신종 플루가 그랬고, 2015년의 메르스가 그랬다. 병원 앞에는 임시 텐트가 설치되어 환자의 감염 여부를 판별했고, 감염된 환자는 격리되었으며, 전파를 차단하는 데 실패한 책임자들은 자신들이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문을 발표했다.[10] 이에 공중보건의 '최전방'을 되짚어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11] 한 교수는 "심리전에 패배했다"라고 논평했다.[12] 또, 한 정치인은 "'메르스 전쟁'에 패배하는 일이 없길 희망한다"고 의견을 표한 바 있다.[13] 치료제 없는 대규모 감염 사태를 그린 영화 <컨테이젼>(2011)은 감염성 질병과 치르는 '전쟁'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미국 새턴상(Saturn Award) 공포 영화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감염성 질병은 전쟁의 참상만큼이나 두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이를 전쟁과 동일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의 생각은 최근의 것이 아니다. 질병의 '전쟁' 은유는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도 이미 나타나 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 2년(기원전 430년)에 아테네를 덮친 역병은 도시 전역을 덮쳤고,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에서 3분의2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스파르타는 도시에 화장의 불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질병을 피해 후퇴했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을 묘사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테네를 덮친 병을 묘사한다.[14] 고열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환자들은 '굴복'하며, 사람들은 '공포에 도망쳤으며', 체질이 강하건 약하건 '저항'하지 못했다.


diseasemetaphor2.jpg » 전쟁을 피하는 것처럼, 원인 모를 질병을 피해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림의 소실점이 위치하는 오른쪽 위의 건물 방향으로 가면 사람이 점점 더 줄어든다. 반면, 왼쪽 위의 동굴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건과 무관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The Plague of Athens, Michiel Sweerts, c. 1652-1654. (출처: Wikimedia Commons)


감염병을 전쟁으로 은유하던 것은 점차 모든 질병을 전쟁으로 은유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15] 암이 '침투'하고, 몸의 '방어'를 뚫는다. '공격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우리는 홍역을 '퇴치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은유가 역으로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끼쳐, 전쟁을 사고하는 방식으로 질병과 그 치료를 사고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예컨대 다큐멘터리 <명의> 시리즈의 주인공은 의사와 그가 치료한 질병이다. 주인공=의사, 악당=질병, 무기=첨단 의료 기술의 등식은 이미 우리가 보는 의학 소재 드라마를 지배하고 있다. 의사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악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환자에게 가해질 고통과 불편은 두 번째 문제가 된다. 지금은 '전쟁' 상황이니, 그런 문제는 참고 감내해야 한다. 잠깐, 의학이 질병을 퇴치하는 것이었던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었던가? 이쯤 되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은유 반대'와 '자기 배려': 손택과 푸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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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은유를 말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책이 있다. 1978년에 출간된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미국 철학자 수전 손택은 결핵과 암의 예시를 들면서, 두 질병의 은유가 사회적으로 활용되어 온 방식을 살핀다.[16] 치료법이 발견되기 전, 결핵은 질병이 아니라 신체의 상태, 자연의 신비로 여겨졌다. 환자는 특별한 인간성의 한 형태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며, 그는 영적, 도덕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결핵은 영혼의 고귀함, 낭만주의의 멜랑콜리, 욕망의 과잉과 연결되었다. 유럽, 미국의 예시가 좀 멀다면, 20세기 초의 한국과 일본 소설에 등장하는 가냘픈 여성을 떠올려 보자. 핏기 없이 하얀 여성의 각혈은 병적 아름다움의 상징이다.[17] 이 모습은 백혈병에 걸린 현대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에게 그대로 투영할 수 있다. 또, 손택이 재구성하고 있는 20세기의 암 환자는 감정 없는 패배자, 느림보이며, 중산 계급이자,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 분노를 억제해온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암에 걸리기 쉽다.[18]


택은 질병에 계속하여 영적 의미를 부여하는 은유에 반대한다. 질병은 질병이며, 거기에는 어떤 악도, 잘못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질병에 도덕적인 의미를 부가하는 은유를 계속 생산해내고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손택은 "암의 정치적 활용"을 언급한다. 예컨대 그 자신도 베트남 전쟁을 비난하면서 "백인은 인간사에서 암적 존재이다"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용어 사용은 "운명론을 부추기며, '심한' 방법들의 활용을 정당화한다. 질병이 운명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는 섣불리 결론을 지으려고 시도하다가, 암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과 전쟁의 용어가 "암의 운명론"이라는 미신을 내쫓을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면서 모순에 빠지고 만다. 질병의 은유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손택이,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다른 은유에 기댄다. 심지어 은유는 은유로 물리쳐야 한다는 식으로 결론을 받아들이려고 해도, 전쟁과 (화학, 방사선) 폭격의 표현들이 암의 은유를 더 악화시켜 왔으며, "무조건 살리고 보자"라는 식의 의료적 선택이 존엄사와 관련한 논쟁을 증폭시켜 온 사회적 현실을 겪은 우리가 그 결론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은 암에 걸린 것이 암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고, 그의 저작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일컬어지게 된다.[19]


10년 뒤 출간된 <에이즈와 그 은유>(1989)에서 손택은 기존의 견해를 손질한다.[20] 그는 암에 덧씌워진 '운명론'과 벌인 싸움, 즉 병에 걸린 것이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주장을 에이즈로 옮겨오려 시도한다. 하지만, 에이즈는 당시 치료법이 없다고 여겨지던 상황이었으며, 4H(1983년 CDC가 Homosexual, Hemophiliacs, Heroin addicts, Haitians의 4개 사회 계층이 헌혈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이들이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강화되었다)에서만 발생한다는 사회적 믿음이 굳건한 상황에서 같은 전략이 성공하긴 어려웠다.[21] 따라서 그는 에이즈에 씌워져 있는 '역병'과 '타락'의 은유와 맞서 싸우려고 노력한다. '역병' 은유는 에이즈를 처벌이자 하늘의 '천벌'로 여기게 만든다. 에이즈는 얼굴의 육종 때문에 매독이나 한센병과 같이 '타락'의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무런 근거 없는 망상일 뿐이다.


손택은 글을 맺으며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은유 없이 생각할 수는 없다." 따라서, 에이즈와 관련해서 은유가 잘 선택되었는지, 잘못 선택되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잘못 선택된 은유는 질병의 고통을 가중할 뿐이다. 손택이 과거의 주장을 수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따져볼 만한 결론에 안착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병의 잘못된 은유는 간혹 질병이라는 현실보다 더 크게 개인을 괴롭힐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사회적 압력 때문에 평생을 고통받았던 한 사람이 내놓은 해결책을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초기 저작인 <광기의 역사>, 중기 저작인 <말과 사물>로도 주목받았지만 그의 책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것은 <감시와 처벌>이 아닐까 싶다. 그는 권력이 움직이는 방식을 깊이 탐구하여, 권력이 타인을 지배하고 억누르는 힘이라는 기존의 소극적 인식을 넘어선다. 권력은 인간 정체성의 모든 측면을 만들어내는 힘이다.[22] 그가 분석한 권력이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며, 우리의 생각은 그 권력에 기반을 둬서 만들어진다. 당대의 지식과 '진리' 또한 권력을 벗어날 수 없다. 학교, 병원, 감옥 등에서 권력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을 세밀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는 지배 받음과 지배함의 상호 관계가 없이 한 쪽에서만 억누를 수는 없으며, 지배와 그에 대한 반발은 역동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을 파악해 간다. 다시 말해, 신하 없는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왕 없는 신하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이 점이 푸코를 좌절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푸코가 성적 지향성과 관련한 탐구를 계속 해왔던 것은 분명해 보이며, 이를 사회와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한 이론적 탐구에의 매진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23] 문제는, 권력이 생각을 만들고 정체성을 구축한다면, 그곳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질병과 치루는 '전쟁'은 의학적 권력에 '병적 인간'을 정의할 수 있는 학문적 정당성과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여기에 저항한다고 해서 삶에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푸코가 그린 권력의 그림에서는, 하나의 조건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른 조건에 편입됨을 의미할 뿐이다. 진정한 독립은 존재할 수 없다.


diseasemetaphor3.jpg » 푸코는 고대 그리스에서 해방의 모형을 찾는다. 그의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남성 간의 성적 관계는 스스로 정한 행동규칙 안에서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해석된다. ΗΟ ΠΑΙΣ ΚΑΛΟΣ ("The Boy is Beautiful"), Athenian Red-figure Kylix, 5th c. B.C. (출처: Wikimedia Commons)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푸코의 마지막 작업이 말하고 있는 '자기 배려' 때문이다. 푸코는 <성의 역사> 연작을 발표하기로 하고 1권을 발표하면서 앞으로의 저술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유고를 모아 출간된 2, 3권은 1권에서 살핀 근대의 성 과학(scientia sexualis)에 관한 탐구에서 벗어나, 갑자기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뛰어넘는다.[24] 그의 마지막 작업은 삶의 여러 규칙, 또는 삶을 규정하는 여러 권력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집중되었다. 마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 그것이 푸코가 권력의 촘촘한 그물망 안에서 발견한 '자기 배려'였다. 그는 외부의 힘과 맺는 관계 속에서 무작정 끌려가지 않고, 자신을 정립해가는 방식을 찾아내고자 했다.


이것을 '춤'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무용가가 무대에서 자신의 신체를 빚어내고자 기울이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근육과 호흡을 다듬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통해 춤은 탄생한다. 중력이 끌어당기고, 관절과 신체의 작동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몸의 움직임을 제약한다. 기존의 예술적 형식은 자유스러운 몸짓에 제동을 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모여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신체와 건강을 생각하는 하나의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질병과 의학적 권력, 과학은 신체를 규격화, 구조화하여 끊임없이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의하려 하지만, 끊임없는 자기 수양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신체를, 그 건강을 빚어갈 수 있다. 질병이 벌인 '전쟁터'였던 몸은, 수양과 창조의 공간으로 바뀐다. 병 앞에서 우리는 몸을 빚어낸다. 질병의 모진 풍파를 이겨낸 환자의 얼굴에서 존엄함의 빛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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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은 처음에 "은유에 반대"하지만, 결국 사고하는 데에 은유는 필수적이며 따라서 좋은 은유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한다. 그것은 <은유로서의 질병> 서두에서도 이미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질병은 삶의 밤이며, 부담스러운 국적을 떠안는 것이다"라는 은유로 시작하는 책이 은유를 반대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일 수도 있으니까.


제는 "좋은" 은유이다. "햄버거병"은 좋은 은유는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일상생활의 친숙함을 무기로 잘못된 공포를 전파한다. 질병의 "전쟁" 은유도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전쟁"이라는 예외 상황은 모든 것을 허용하며, 따라서 환자는 "영웅" 의사의 행위를 감내해야 한다는 식의 암묵적인 동의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답을 찾다 보니 푸코의 "춤"으로 흘러 왔다. 바깥의 압력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 가는 개인은 숭고하기까지 하며, 이렇게 건강과 질병을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표현처럼 "세속의 수도승"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25]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서로 손을 붙잡고 가야 하지 않을까. 다음 번에 건강과 질병의 다른 은유가 있는지, 과연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한 번 더 살펴보려고 한다.



[참고자료]



[1] 최용석, "'햄버거병' 얼마나 위험하나? 신장기능 90% 상실… 여아 가족, 맥도날드 고소", 동아일보, Jul 6, 2017. Available at: http://bizn.donga.com/3/all/20170706/85226232/2. Accessed Jul 11, 2017.

[2] 이민영, "네 살 소녀 매일 투석 받게 한 '햄버거병' 알아보니", 중앙일보, Jul 7, 2017. Available at: http://news.joins.com/article/21737641. Accessed Jul 11, 2017.

[3] 최민호, "햄버거병 논란에 '햄버거 포비아' 확신, 매장 상황 어떻길래", 헤럴드경제, Jul 10, 2017. Available at: 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707101129197104501_1. Accessed Jul 11, 2017.

[4] 전승민, "HUS가 햄버거병이 아닌 까닭", 동아사이언스, Jul 11, 2017. Available at: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18906. Accessed Jul 11, 2017.

[5] 김효진, "강원도 원주서 '햄버거병' 원인 감염증 집단 발병", 아시아경제, Jul 11, 2017. Available at: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71115223105685. Accessed Jul 11, 2017.

[6] Carter AO, Borczyk AA, Carlson JAK, Harvey B, Hockin JC, Karmali MA, Krishnan C, Korn DA, Lior H. A Severe Outbreak of Escheriichia coli O157:H7-Associated Hemmorrhagic Colitis in a Nursing Home, N Engl J Med, 1987;317:1496-1500. doi: 10.1056/NEJM198712103172403

[7] 미국에서 Hamburger Disease를 찾아보면, 쇠고기 분쇄육에서 발견되므로 “햄버거병”이라고 불린다는 언급만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위키피디아에서는 Hamburger Disease 항목에 O157:H7 대장균 감염의 링크만 존재할 뿐이며, 대장균 감염에는 햄버거와 관련한 아무런 언급도 발견되지 않는다. Wikipedia contributors, Hamburger disease,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an 23, 2013, Available at: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Hamburger_disease. Accessed Jul 11, 2017.

[8] Larkoff G, Johnson M. Metaphor We Live By / 노양진, 나익주 역, 삶으로서의 은유. 1995. 서울: 서광사.

[9] 네이버 국어사전, "사랑1", 네이버, Available at: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19124200, Accessed Jul 11, 2017.

[10] 김현희, "이재용, 대국민 사과 '메르스 사태 책임 통감한다'", 헤럴드 POP, Jun 24, 2015. Available at: http://pop.heraldcorp.com/view.php?ud=201506240025497363199_1, Accessed Jul 11, 2017.

[11] 서한기, "<메르스 교훈> ④ 공중부건 최전방 공공의료 '튼튼히'", 연합뉴스, Jul 8, 2015. Available at: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06/0200000000AKR20150706153700017.HTML?input=1195m, Accessed Jul 11, 2017.

[12] 신선미, "제2의 메르스 막으려면 '감염병 전쟁' 수준의 대처 필요", 동아사이언스, Jul 1, 2015. Available at: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7470. Accessed Jul 11, 2017.

[13] 송수경, 서혜림, "이종걸 '메르스 전쟁'에 공안총리 아닌 방역총리 필요", 연합뉴스, Jun 9, 2015. Available at: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6/09/0200000000AKR20150609050800001.HTML?input=1195m. Accessed Jul 11, 2017.

[14] The Plague. Jul 17 2016, Available at: http://www.livius.org/sources/content/thucydides/the-plague/. Accessed Jul 11, 2017.

[15] Hodgkin P. Medicine is war: and Other Medical Metaphors. BMJ, 1985:291(6511):1820-1821.

[16] Sontag S. Illness as Metaphor. 1978.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17] Kojin K. Nihon Kindai Bungaku No Kigen, 박유하 역.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2010. 서울: 도서출판 b.

[18] 우리에게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화병'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암'과 한국의 '화병'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이 사뭇 다르다는 점은 흥미롭다.

[19] Washington E. The AIDS epidemic has always been defined by what we don't know. Colorlines. Dec 1, 2010. Available at: http://www.colorlines.com/content/aids-epidemic-has-always-been-defined-what-we-dont-know. Accessed Jun 13, 2017.

[20] Sontag S. AIDS and its Metaphors. 1989. New York: Picador.

[21] Younge G, Susan Sontag: the risk taker. The Guardian. Jan 18, 2002. Available at: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02/jan/19/politics. Accessed Jul 13, 2017.

[22] Foucault M. Surveiller et Punir,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2003. 서울: 나남.

[23] O'Higgins J, Foucault M. II. Sexual Choice, Sexucal Act: An Interview with Michel Foucault. Salmagundi, 1982:58-59:10-24.

[24] Foucalut M. L'usage des Plasirs, 문경자, 신은영 역.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 2004. 서울: 나남.

[25] Joyce J.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1916. Reprinted in Dover Thrift Editions, 1994. New York: Dover Publications.


김준혁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생(의료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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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생(의료윤리학)
소아치과 전문의가 된 것이 오히려 고민의 시작이 되어 의료인문학을 공부했다. 의학교육의 다음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의료윤리를 통해 길을 찾기 위해 유학길을 떠났다.
이메일 :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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