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의 "남극의 과학자, 남극의 동물"

까치를 연구하던 젊은 동물행동학자가 우연한 기회에 찾아간 새로운 생태계 연구 현장인 남극. 극지연구소의 이원영 박사가 남극에서 겪은 연구자의 삶, 그리고 거기에서 경험한 다양한 동물과 자연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람들 관심이 부담스러워’ 스트레스 받는 펭귄

[13] 펭귄과 인간


1_1.jpg » 서울에 있는 대형 뽀로로 조형물. 출처: 위키코먼스, by Mar del Este


상의 때가 묻지 않은 맑은 눈동자는 하얀 눈을 응시한다. 매끈한 곡선의 유선형 몸매에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얼음 위를 걷는다. 펭귄을 떠올릴 때 흔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다. 이렇게 귀여운 모습의 동물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여태껏 펭귄을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조류공포증(Ornithophobia) 때문에 새만 보면 기겁을 하는 사람들도 펭귄만은 예외로 했다.(펭귄이 조류가 아니라 포유류라고 착각하는 분이 많았다.) 게다가 펭귄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남극의 야생을 대표하며,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만화영화나 캐릭터 주인공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펭귄을 좋아하는 만큼 펭귄도 사람을 좋아할까? 직접 펭귄에게 물어보고 확인할 순 없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펭귄은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싫어한다’에 가까울 것이다. 펭귄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직접 사냥을 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새끼를 키우고 있는데 근처로 다가와 사진을 찍고 만지려고 하는 존재를 달가워할 리 없다. 연구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펭귄들은 인간의 방해(human disturbance)로 인해 심한 생리적 영향을 받아 번식이 저하됐으며 장기간 반복된 노출에 의한 습관화된 행동을 나타냈다.



‘펭귄은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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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엘렌버그(Ellenberg) 박사와 동료 연구자들은 인간의 접근에 대한 펭귄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펭귄에게 실험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그 행동과 생리적 변화를 측정했다. 연구진은 2003년 뉴질랜드 스네어스 섬(Snares Islands)에 사는 스네어스펭귄 둥지에 심장 박동을 잴 수 있는 기기가 들어 있는 가짜 알을 넣어 두고 그 반응을 살폈다.


스네어스 펭귄들의 심장 박동은 같은 펭귄이나 갈매기가 지나갈 때엔 조금 증가하다가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인간이 둥지에 접근했을 땐 심장 박동이 최고 80-100 bpm(bpm은 1분당 박동수 단위) 가까이 증가했으며, 회복되는 데 200-300초의 시간이 걸렸다. 겉으로 보기에 스네어스펭귄들은 인간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은 채 태연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심장 박동이 증가할 때엔 날개를 미세하게 떠는 모습도 함께 관찰되었다. 특히 이런 경향은 1년 전 인간의 접근을 경험했던 개체들에서 높게 나타났다. 이 실험을 통해 스네어스펭귄들은 인간이 다가왔을 때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생리적인 변화를 겪으며, 인간과의 접촉을 오랜 기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_1.jpg » 뉴질랜드 스네어스 섬에서 번식하는 스네어스펭귄(Snares penguin). 출처: 위키커먼스, by lin padgham


렌버그 박사는 2005년에는 뉴질랜드 토착종인 노란눈펭귄의 번식 성공률과 혈액을 조사했다. 인간의 방해에 의해 노란눈펭귄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고 있는지 비교하기 위해 한 달에 3800명의 관광객이 들어오는 오타고(Otago) 해변의 개체군과 인간의 출입이 특별히 제한된 그린 섬(Green Island)의 개체군을 골았다. 그리고 두 지역에서 펭귄 혈액을 뽑아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코르티코이드(stress-induced corticosterone)의 농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처럼 인간의 영향을 자주 받는 오타고 해변의 노란눈펭귄들이 그린 섬의 펭귄들에 비해 평균 53% 높은 코르티코이드 수치를 나타냈다. 번식률도 역시 두 지역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오타고의 펭귄들은 평균 0.75마리의 새끼를 키워냈지만 그린 섬에선 그 두 배에 가까운 1.39마리의 새끼가 나왔다. 인간이 주는 스트레스가 궁극적으로 노란눈펭귄의 번식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결과였다.


3_1.jpg » 뉴질랜드 오타고 해변에서 번식하는 노란눈펭귄(Yellow-eyed penguin). 출처: 위키커먼스, by Steve from Bangkok



반복노출이 습관화 된 젠투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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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스네어스펭귄과 노란눈펭귄의 결과에 비해, 젠투펭귄들은 인간에 노출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런 환경에 습관화(habituation) 된 반응을 보였다. 호주의 홈스(Holmes) 박사 연구진은 2002년 호주령 무인도 맥쿼리 섬(Macquarie Island)에 있는 젠투펭귄들의 행동 반응을 측정했다. 연구진은 인간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머무는 연구기지 주변에 있는 펭귄들과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펭귄들의 반응과 번식성공률을 비교했다.


측정 결과를 종합해보니, 인간 활동이 적은 지역에 사는 젠투펭귄들은 인간 활동이 많은 기지 인근의 펭귄들에 비해 더욱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간에 자주 노출된 곳에 사는 젠투펭귄들은 상대적으로 인간들에 익숙해져서 둥지 곁을 지나는 인간에게 무심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였다. 또한 두 지역의 번식성공률을 비교해보니 인간의 활동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4_1.jpg » 호주령 맥쿼리 섬에서 번식하는 젠투펭귄 가족. 출처: 위키커먼스, by Hullwarren


종기지 인근 펭귄마을에 사는 젠투펭귄들도 인간에게 자주 노출된다. 펭귄 번식지는 2009년에 ‘남극특별보호구역(Anatarctic Specially Protected Area) 171번’으로 지정되어 이곳에는 허가를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지만 여전히 2-9명으로 이뤄진 연구진이 하루 평균 2-3개 그룹을 이루어 지나다닌다.


과연 맥쿼리 섬의 젠투펭귄들처럼 이곳의 펭귄들도 인간 접근에 습관화 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이 펭귄 번식지를 지나갈 때 늘상 걸어다니는 길 가까이에 있는 개체들과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개체들을 비교했다. 우리 연구진은 인도에서 불과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2곳(G1, G3)과 인도에서 언덕을 넘어 50미터 가량 떨어져 있어 사람이 지나가도 잘 보이지 않는 2곳(G6, G7)을 정하고, 사람이 천천히 걸어갔을 때의 반응을 캠코더로 찍어 녹화했다.(아래 지도 참조)


총 123마리 젠투펭귄들의 반응을 분석한 결과, 인도 가까운 곳에 있는 펭귄들은 고개를 드는 정도로 약한 반응을 보이거나 둥지를 피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반면 인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펭귄들은 부리로 사람을 공격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펭귄마을의 젠투펭귄도 맥쿼리 섬의 펭귄들처럼 반복된 인간의 출현에 습관화되어 행동 반응이 약해진 결과로 생각된다.

 

5.jpg » 남극 사우스셔틀랜드 군도 킹조지섬 펭귄 번식지 내에 사람들이 다니는 길(점선으로 표시)과 인근에 있는 젠투펭귄 번식지 4곳(길에서 가까운 G1, G3. 길에서 멀리 떨어진 G6, G7)의 지도. 공식 명칭은 나레브스키 포인트(Narebski Point)로 남극특별보호구역(Anatarctic Specially Protected Area) 171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일명 ‘펭귄마을’이라 불린다. 출처: Figure 1 in Lee et al. (2017)

6.jpg » 인도에 가까운 지역에 있는 60마리의 펭귄들은 인간의 접근에 대해 모두 공격적이지 않은 약한 반응을 보였다.(100%) 반면 인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63마리의 펭귄들은 인간에 대해 공격적으로 반응하며 부리로 물려는 행동을 많이 보였다.(82.54%) 출처: Figure 4 in Lee et al. (2017)에서 변형



‘생태관광’…관심도 지나치면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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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과 인간의 관계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까치나 제비처럼 사람들이 사는 곳 부근에서 오랜 기간 함께 해온 동물들도 있지만, 펭귄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남극과 인근 지역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펭귄들은 최근 인간의 잦은 방문을 받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습관화 된 반응을 보이는 펭귄도 있지만,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새끼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펭귄들도 있다.


경보호와 생물보존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 사람들은 ’생태관광(Ecotourism)’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동물들을 관광상품화 한다. 남극도 예외가 아니라서 펭귄마을에서 야외조사를 하다 보면 바다 멀리에서 관광객들을 실은 크루선이 지나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펭귄을 좋아하다 보니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짝사랑도 지나치면 상대를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글을 쓰면서 나도 역시 연구라는 명목으로 펭귄들을 힘들게 하진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연구자라는 본분을 잊고 관광객의 마음으로 펭귄에게 다가가진 않았는지 되돌아보다가, 깊이 반성했다.


[참고문헌]


Ellenberg U, Setiawan AN, Cree A, Houston DM, Seddon PJ (2007) Elevated hormonal stress response and reduced reproductive output in yellow-eyed penguins exposed to unregulated tourism. Gen Comp Endocr 152:54-63

Ellenberg U, Mattern T, Houston DM, Davis LD, Seddon PJ (2012) Previous experiences with humans affect responses of Snares penguins to experimental disturbance. J Ornithol 153:621-631

Holmes ND, Giese M, Achurch H, Robinson S, Kriwoken LK (2006) Behavior and breeding success of gentoo penguins Pygoscelis papua in areas of low and high human activity. Polar Biol 29:399-412

Lee WY, et al. (2017) Behavioral responses of chinstrap and gentoo penguins to a stuffed skua and human nest intruders. Polar Biol 40:615-624​


이원영 극지연구소 극지생명과학연구부 선임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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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극지연구소 극지생명과학연구부 선임연구원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연구자입니다. 지금은 남극에서 펭귄을 비롯한 극지의 해양조류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원영의 새, 동물, 생태 이야기’라는 과학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 wonyounglee@kop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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