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천의 "자연사로 둘러보는 우리 세상"

자연사(Natural History) 연구는 자연보존과 생태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종종 박물학 정도로 인식되곤 한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있는 손재천 님이 우리 삶과 환경에 닿아 있는 자연사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스김라일락과 나고야의정서

[13] 세계는 지금 생물자원 전쟁중


00nagoya_misskimlilac2.jpg » 꽃이 활짝 핀 미스킴라일락. 라일락 중에서도 키가 작고 꽃향기가 진해 인기가 높다고 한다. 미스킴라일락.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2008), 임소영 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피는 춘삼월이라 하였던가? 봄이 찾아오면서 세상은 점차 꽃으로 물들어간다. 하지만 지난해 봄에 눈 앞에서 벌어진 참사 때문인지, 올해는 그 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보다 차라리 처량하게 보인다. 이런 애처로운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꽃이 있다. 바로 ‘미스김라일락(미스킴라일락, Dwarf Korean Lilac)’이다. 김진숙 시인은 "미스킴라일락"이라는 시에서 이 꽃을 다음과 같이 담아내었다.


들리네요, 화분 속에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

 

눈물로 피고 지던

기지촌의 꽃밥 한술

 

미스 킴 혼혈의 언니,

라일락이 웃네요


시인은 미스김라일락 꽃에서 기구한 인생을 산 기지촌의 한 여인을 보았나 보다. 하지만 시에 투영된 이미지와 달리 미스김라일락의 ‘미스 킴’은 기지촌 여성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미스김라일락은 우리 생물자원이 해외로 유출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평창에서 열린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 중에 ‘생물·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나고야 의정서(이하 줄여서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어, 바야흐로 생물자원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이에 따라 나고야 의정서를 잘 활용해 제2의 미스김라일락이 탄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근대사의 질곡을 떠안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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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김라일락의 탄생에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아픔이 일조를 했다.[1] 1945년 9월 해방 직후 남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미국에 의한 ‘군정 통치’가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서울에 재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줄여서 ‘미군정청’)이 설치되었다. 그런데 미군정청에는 행정관료뿐 아니라 미국 연구기관에서 파견나온 학자들도 있었다.


국 농무성에서 파견된 엘윈 미더(Elwin M. Meader)는 1947년 북한산 백운대에서 식물을 채집하던 중, 마침 열매를 달고 있는 털개회나무를 발견했다. 이 나무에서 종자를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가 뉴햄프셔대학의 원예학과 실습장에 파종했다. 여기서 일곱 그루가 성공적으로 자라났는데, 그 중 하나가 유달리 키가 작고 꽃 향기가 진했다. 1954년 미더는 이 나무를 대량 증식하는 데 성공했고, 이렇게 새로 탄생시킨 품종에다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곁에서 도운 ‘미스 킴’의 이름을 붙여 미스김라일락이라고 불렀다.

00nagoya2.jpg » 왼쪽 위: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판매 중인 구상나무.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왼쪽 아래: 미국의 한 화훼시장에서 판매를 기다리고 있는 미스킴라일락 묘목. 오른쪽 위: 잉거비비추라는 이름으로 화훼시장에서 불리는 흑산도비비추의 꽃. 오른쪽 아래: 한국의 야생백합을 교잡해 만든 화훼용 백합의 하나. ‘왜성 아시아 백합(Dwarf Asian Lily)’이라 불린다.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sunnyside-gardens.com, www.johnjearrard.co.uk

미스김라일락은 가지 뻗음이 고르고 내병성이 강해 조경용으로 인기가 높다.[2]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미스김라일락이 차지한다고 한다.[3] 이 인기에 힘입어 미스김라일락은 비싼 로열티를 물며, 우리나라 조경수 시장에 역수입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식물이 해외에서 자원으로 개발되어 역수입된 사례는 또 있다. 20세기 초에 미국과 유럽으로 반출된 구상나무(Korean Fir)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재탄생했고, 여기서 파생된 품종도 22개에 이른다.[4] 1985년에는 미국국립수목원의 잉거(B. R. Yinger) 박사가 이끄는 원정대가 남해안과 서해안 일대에서 약 900여 종의 식물을 채집해 갔다. 특히 전남 홍도에서 채집해 간 흑산도비비추(Hosta yingeri)는 1989년 외국 학자에 의해 새로운 종으로 기록되었고, 1993년에는 ‘잉거비비추’라는 이름의 원예종으로 개발되었다.[5] 2008년도 네덜란드에서 국내로 수입된 백합의 알뿌리는 약 76억 원어치에 달하는데, 이 중 대부분이 하늘말나리, 털중나리, 참나리 등의 한국 야생백합을 교접해 만든 품종이라고 한다.[6]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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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김라일락이나 구상나무는 한국 사람에게 배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항간에서는 마치 대단한 나라의 보물이 수탈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심지어 자원 수탈에서 우리 식물을 지키지 못한 선배들의 무지를 원망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들 사례가 주는 진짜 교훈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가 아니라 “너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미안해”가 되어야 한다. 자원으로 개발하려는 투자와 노력이 없이 생물자원 유출 방지에만 몰두한다면, 실리가 없는 ‘국수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구나 국내에 서식하는 생물 중에는 이웃 나라에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스김라일락의 원종인 털개회나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9년 중국과학원과 베이징식물원의 연구팀은 털개회나무와 근연종들의 종 구별을 형태 형질의 통계학적 분석을 통해 규명했다.[7] 그 결과, 우리나라의 털개회나무(Syringa pubescens var. patula)는 별도의 종이 아니라 쉬링가 푸베센스(Syringa pubescens)의 세 아종 중 하나에 해당되며, 한국뿐 아니라 중국 라이오닝성에도 분포한다고 밝혔다. ‘미스김라일락’을 애초에 ‘우리 식물’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뜻이다. 설령 미국의 미더 박사가 무심코 북한산의 털개회나무를 지나쳐버렸더라도 어디에선가 ‘미스김라일락’은 다른 이름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00nagoya3.jpg » 왼쪽: 삐에르 잔 프랑수와 터핀(Pierre Jean Francois Turpin)이 1833년에 저술한 식물도감 <약용식물지(Flore Medicale)>에 소개된 팔각.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지대에 자라는 식물로 열매는 중요한 향시료의 원료로 쓰인다. 오른쪽 위: 중국 광시성의 농장에서 수확한 팔각의 열매, ‘팔각회향’. 오른쪽 아래: 팔각회향에서 항바이러스 성분을 추출해 감기약으로 개발된 로쉐홀딩사의 타미플루.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생물자원이 유출된 나라가 비단 우리나라만은 아니었다. 유출된 생물자원 중 일부는 외국 제약업체에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개발되었다. 회사에 막대한 이익이 창출되면서도, 정작 원산지 국가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국가간 분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조류독감의 치료제로 유명한 ‘타미플루(Tamiflu)’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9년 신종플루가 전세계적 위협으로 떠올랐을 때, 스위스 제약회사 로쉐홀딩(Roche Holding)은 타미플루를 개발해 3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8] 타미플루의 원료는 팔각(Chinese Star Anise: Illicium verum)이라는 붓순나무과의 중국 토종식물이다. 팔각의 열매는 ‘팔각회향’이라 부르며 향신료로 오래 전부터 이용되어 왔다. 팔각회향에는 감기바이러스가 숙주세포를 감염해 증식한 뒤 숙주세포의 세포막을 뚫고 나올 때 이를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오셀타미비어(oseltamivir)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9] 타미플루 판매로 개발업체만 배를 채우자, 중국은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국내법을 정비하고 있다.[10]


불법으로 유출된 생물자원을 상품화한 개발업체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권리를 되찾은 경우도 있다. 인도멀구슬나무(Azadirachta indica)는 ‘님(Neem)’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약용식물이다. 인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나무의 잔가지를 칫솔로 사용했다. 나무에 함유된 항균 및 항바이러스 성분이 구강 청결을 돕기 때문이다.[10] 미 농무성과 다국적 기업인 그레이스사(W. R. Grace and Company)는 이 나무에서 항균 성분을 추출해, 1995년 유럽특허국에서 특허를 따냈다. 이 성분을 이용해 ‘니믹스(Neemix)’라는 살충제 개발 소식이 알려지자, 인도 정부에서 제동을 걸었다. 인도 정부는 유럽연합의 녹색당을 끌어들이고, 자국 연구기관을 동원한 적극적인 설득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00년 유럽특허국은 제약업체에게 주었던 특허권을 취소하였다.[11]

00nagoya4.jpg » 왼쪽: 인도에서 약용식물로 잘 알려진 인도멀구슬나무. 오른쪽: 인도멀구슬나무의 잔가지를 수집해 시장에서 팔고 있다. 잔가지는 칫솔 대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총성 없는 ‘종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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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9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나고야 의정서는 특정 국가의 토착생물 자원과 그 이용에 관한 전통 지식을 권리로 처음 인정한 국제협약이다. 이에 따라 생물 자원에서 얻은 혜택을 개발한 측과 원산지 국가가 공정하게 배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고야의정서의 목표는 ‘제6의 대멸종’이라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생물 멸종 속도를 202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는 데 있다. 지난해 9월 29일 우리나라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나고야의정서를 정식 발효시키는 한편, 생물 멸종 속도를 감소시키기 위한 전략들에 대해 중간 점검이 이루어졌다.

00nagoya5.jpg » 왼쪽: 지난해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총회의 부대 행사로 열린 세계지방정부 정상회의에서 ‘강원·평창 선언문’을 채택하고 성과를 자축하고 있다. 오른쪽: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장 건설을 위한 가리왕산 벌목 현장. 평창은 생물다양성 보존과 산림 파괴라는 상반된 가치가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한겨레

성없는 전쟁이라 부르는 생물자원 개발 경쟁에서 나고야 의정서는 분명한 한계를 보여준다. 의정서가 발효되면 기업들은 원산지에 해당 생물자원의 개발 여부를 통보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개발 이후 생기는 이윤도 원산지 측과 나누어야 한다. 현재 50개 국만이 의정서를 비준한 상태이고, 비준한 국가도 의정서 발효로 이익을 보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가 대부분이다. 먼 옛날 전세계를 돌며 생물자원을 수집해 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같은 선진국은 대부분 비준에서 빠졌다.[12] 나고야 의정서를 ‘반쪽짜리 출발’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나고야 의정서에 서명만 했을 뿐 비준은 미루고 있는 상태다. 비비준국가도 생물자원 이용에 대한 이익 분배의 의무가 따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의정서 비준을 서두르고, 의정서를 적극 활용해 우리 생물자원의 부가가치 창출에 노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8]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나고야의정서 발효로 의해 국내 바이오업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연간 136억 원에서 최대 639억 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8] 약재의 이용에서 중국과 많은 부분이 겹치는 국내 한의학계가 특히 비상이다. 생물자원의 연구와 생물자원을 이용하는 전통지식의 특허권 선점에 대한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평창에서 열린 총회를 다녀온 한 환경단체의 대표는 개최국인 한국이 생물다양성 강국으로 거듭 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실제적인 행동 전략과 대책은 없는 공허한 선언이 될 가능성을 염려했다.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국제적인 회의장이었던 평창은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게 되어 있다. 이 행사를 위해 산을 깎고 각종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다. 올림픽의 그림자에 이미 숨어버린 ‘평창 선언’이 웬지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참고자료


[1] 노창현, 2011. ‘미스킴 라일락’의 애달픈 환향. 뉴스로 12월 6일자.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wr_id=160

[2] 이영이, 2010. 미스킴 라일락의 원조 ‘털개회나무’. 과학과기술 9월호. pp. 64-65.

 http://www.kofst.or.kr/kofst/PDF/2010/n9s496/GGDCBE_2010_n9s496_64.pdf

[3] 김진수, 2009. ‘토종’털개회나무는 어떻게 미스킴 라일락이 됐나. 오마이뉴스 12월 30일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92413

[4] 노영대, 1999. ‘토종 식물’도 술술 샌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s_plus/news143/np143aa040.html

[5] 이혜영, 2010. 생물주권을 지켜라. 웹진 사이누리 10월호.

 http://www.kasc.re.kr/information/webzin.php?board_code=board_view&board_idx=115&page=14&start_page=1&Category=&order_type=RegDate&align=desc&sF=&sT=&date_idx=10&mode=shop_board_webzine

[6] 변태섭, 2009. “거북이 걸음 걷는 생물 주권 정책”. 동아사이언스 5월 4일자.

 http://news.dongascience.com/PHP/NewsView.php?kisaid=20090504200000018255

[7] Chen, J.-Y. et al., 2006. A taxonomic revision of the Syringa pubescens complex (Oleaceae). Annals of the Missouri Botanical Garden. 96: 237-250.

 http://www.bioone.org/doi/abs/10.3417/2006072

[8] 박혜미, 2014. ‘나고야의정서’…최대 연 5000억 부담 전망. 뉴시스 9월 23일자.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921_0013183224&cID=10805&pID=10800

[9] Wikipedia. “Oseltamivir”. http://en.wikipedia.org/wiki/Oseltamivir

[10] 김성모, 2014. “생물자원 해적질 막아라”.. 막오르는 ‘종의 전쟁’. 조선일보 9월 29일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29/2014092900148.html?Dep0=twitter&d=2014092900148

[11] BBC News, 2005. India wins landmark patent battle. 9 March.

 http://news.bbc.co.uk/2/hi/science/nature/4333627.stm

[12] 길윤형 & 김정수, 2014. 나고야의정서 ‘반쪽’ 출발…생물다양성 보존취지 실종. 한겨레 10월 13일자.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659589.html


손재천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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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천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박사후연구원
곤충분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다. 나비목 곤충과 식물과의 관계를 DNA와 화석 수준에서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메일 : ptera2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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