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

생물학 연구의 모델동물인 ‘예쁜꼬마선충(별칭 엘레강스)’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발생과 진화를 비롯해 생물학의 굵직한 주제를 담은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실험실 안과 밖의 진지하고 유쾌한 소통을 시작한다.

잠자는 1mm 꼬마선충, '꿈'이라도 꾸는 걸까?

잠의 생물학


잠을 자는 동안 신경들이 제각기 활성화하는 것을 보면, 이 현상은 예쁜꼬마선충에게 일종의 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꿈은 프로이트 이후에 무의식과 욕망의 발현이라고 여겨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의 다채로운 꿈만큼 복잡치 않더라도, 선충이 만약 꿈을 꾼다면 혹시 단순히 잠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00sleep8.jpg » 출처 / openclipart.org

이번 글의 주제 논문


· Raizen, David M., et al. “Lethargus is a Caenorhabditis elegans sleep-like state.” Nature 451.7178 (2008): 569-572.

· Cho, Julie Y., and Paul W. Sternberg. “Multilevel Modulation of a Sensory Motor Circuit during C. elegans Sleep and Arousal.” Cell 156.1 (2014): 249-260.


[ 동영상 http://youtu.be/pkQMJBlO0v8 ]


의 동영상은 팝아티스트로 유명한 앤디 워홀의 영화 <잠(Sleep)>입니다. 당시 연인이던 장 지오르노가 자는 모습을 무려 5시간 20분 동안 찍은 영상입니다. 10분 분량으로 편집되어 올라온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저도 주인공처럼 잠에 빠져들 것 같았습니다. 과연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앤디 워홀 본인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자는 모습을 몇 시간 동안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정해진 각본 없이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 이 영화는, 사회 유명 인사들과 자본주의의 이미지를 활용한 그의 실버스크린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달라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회화와 영화에는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비단 앤디 워홀뿐 아니라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창의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순간을 생각해보면, 예술과 과학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논문들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연인의 자는 모습을 촬영했던 앤디 워홀처럼, 현미경 렌즈 너머로 예쁜꼬마선충의 자는 모습을 관찰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잠의 생물학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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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네이처>에 ‘Lethargus is a Caenorhabdaitis elegans sleep-like state’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논문의 제1저자이면서 교신저자인 데이빗 레이즌 박사가 진행하였습니다. 흔하게 쓰지 않는 ‘lethargus’란 단어는 우리말로 혼수 상태나 무기력한 상태를 뜻합니다. 예쁜꼬마선충은 알에서 깨어나 어른이 되기까지 허물을 벗는 과정(탈피, molting)을 네 번 거치는데, 허물을 벗는 시기가 다가오면 선충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제목에 쓰인 ‘lethargus’는 구체적으로 탈피 과정에 앞서서 나타나는, 선충이 가만히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그림 1). 선충이 휴면 상태에 있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수면과 유사한 상태(sleep-like behavior)라는 것이 이 논문의 주제입니다.

00sleep1.jpg » 그림1. 예쁜꼬마선충의 발생중 허물벗기(ecdysis)와 휴면 상태(lethargus)

물을 벗는 동안 가만히 있는 것이 어떻게 잠자는 것과 비슷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 논문이 나오기 전까지 선충에게서 수면이 보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수면이란 보통 24시간을 주기로 생활하는 생명체가 갖고 있는 일주기성 행동(circadian rhythm)의 대표적인 행동입니다. 선충은 땅속에서 살고 있으니 24시간의 주기나 이에 따른 수면 행위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게다가 선충의 수명은 불과 3주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재빨리 어른이 되어 자손을 번식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래서인지 탈피 과정 단계에서 일어나는 휴면 상태는 약 3시간 정도밖에 안 됩니다.


선충의 휴면 상태가 잠과 유사한 상태라고 주장하려면, 먼저 잠의 정의를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잠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집니다. 첫 번째로 감각 신경의 반응이 평소보다 무뎌집니다. 두 번째로는 자는 동안은 활동성이 줄어들어 있지만, 강한 자극이 오면 비교적 빠르게 다시 깨어 있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약물에 의한 마취와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항상성(homeostasis)이 있다는 점입니다. 네 번째 특징으로 많은 동물에서 수면은 24시간의 일주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잠과 얼마나 비슷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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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sleep2.jpg » 그림2. 휴면 상태일 때 옥탄올 자극에 대한 회피 반응.00sleep3.jpg » 그림3. 수면 방해 후 측정한 옥탄올 반응.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예쁜꼬마선충의 휴면 상태는 잠의 특징 중 24시간 일주기를 제외한 모든 특성(무뎌진 감각 신경, 빠르게 깨어날 수 있는 점, 항상성 유지)을 갖고 있습니다. 선충의 잠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먼저 연구자들은 휴면 상태에 있는 선충을 깨워보았습니다. 이 실험은 우리가 누군가를 깨우기 위해서 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잘 자고 있는 선충의 집을 흔든다거나, 선충이 싫어 할 냄새 나는 물질을 뿌린 것입니다.


충에서 물리적 자극이나 악취와 같이 위험한 자극은 대부분 ASH라는 감각 신경을 통해 인지됩니다. 특히 옥탄올(1-octanol)에 대한 회피 반응이 감각 신경 세포인 ASH를 통해 일어나는 현상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옥탄올은 알코올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는 접하기 쉽지 않은 물질입니다. 저도 옥탄올을 이용한 회피 반응 실험을 수행한 적이 있는데, 선충보다 제가 먼저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안 좋은 자극이었습니다.


잠을 자고 있지 않은 상태인 유충(L4)와 성충 단계에서 옥탄올 자극을 주면 선충은 3초 안에 회피 반응을 나타냅니다(그림 2). 이에 반해 탈피 중인 L3와 탈피 중인 L4 단계에서는 반응 속도가 10초 넘게 걸릴 정도로 느려집니다. 즉, 선충의 휴면 상태 동안에는 감각이 무뎌져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잠의 첫 번째 특징). 인간에 비유하자면, 눈을 뜨고 자더라도 바깥 환경을 볼 수 없는, 혹은 누군가가 업어가도 모르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 3은 이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로 많은 시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림 3의 x축의 기준선(baseline)이 있는 원점이 바로 처음 옥탄올 반응을 조사한 시점입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그림 2와 동일한 실험입니다.


그 시점에서 2분 뒤에 다시 옥탄올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휴면 상태가 아닌 선충들의 반응(검정색 선)과 휴면 상태였던 선충들의 반응(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선들)이 거의 차이가 없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극을 통해 빠르게 휴면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잠의 두 번째 특징).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잠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항상성입니다. 쉽게 말하면, 잠이 부족할수록 더 길고 깊은 잠을 자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휴면 상태에 있는 선충이 만약 수면 행위와 유사하다면, 수면을 지속적으로 방해했을 때 무언가 그 수면 자체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위해 단순히 한번 깨우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수면을 방해해보았습니다. 20분, 30분 내내 잠자는 선충의 꼬리를 건드려서 쉴 수 없도록 한 것이지요. 선충에게 꽤나 가혹했던 이 실험은 30분 동안 연구자가 내내 벌레를 툭툭 건드려야 했던, 어찌 보면 연구자 자신에게도 가혹했던 실험입니다.


그림 3의 파란 선은 수면 박탈을 하지 않은 선충들이고, 초록색과 빨간 색은 각각 20분, 30분 동안 수면을 박탈한 선충들입니다. 최초 옥탄올 반응 이후 4분과 6분에서 나타난 옥탄올 반응을 살펴보면 30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경우의 옥탄올 반응 속도(빨간 색 선)가 다른 경우에 비해 훨씬 느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충은 총 자는 시간은 약 세 시간 정도인데, 초기 30분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선충들은 남은 시간동안 더 깊은 잠에 빠져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연구자들은 수면이 방해 받은 경우에 더 오랫동안 수면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피곤한 선충일수록 훨씬 단잠을 자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충의 잠을 깨워 알아낼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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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꼬마선충은 잠도 잡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잠과 유사한 행동을 합니다. 이 사실은 신기해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또 다른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선충이 잠을 자는 걸 연구하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이로운 점이 있을까요?


이에 대답하기 위해 먼저 잠이 생명체에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난해 <사이언스온>의 뉴스 기사에서 소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 내는 과정입니다.(“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씻는 과정” -쥐실험) 잠은 뇌를 통해 일어나는 현상이면서 동시에 뇌를 위해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죠. 따라서 뇌를 가진 동물들에게 수면은 아주 오래 전에 진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초로 잠을 잤던 조상 이후에 그 후손들은 오랜 동안 서로 조금씩 잠자는 다른 방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잠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생물학적 방법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변주곡은 유전자와 분자 신호 체계라는 주제 선율을 이용해 재창조됩니다. 예쁜꼬마선충의 원시적인 수면 행동을 만들어 내는 분자들은 결국 우리 인간에게도 수면의 근본적인 원리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처음으로 선충의 수면이 보고된 이후에, 많은 후속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이 유전학에 용이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수면에 중요한 여러 유전자들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림 1에 나타나 있는 LIN-42/PERIOD, EGF, PKG 등은 선충의 수면에 중요한 유전자들로서, 다른 동물이나 인간의 수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즉, 선충에겐 미안하긴 해도 수면을 방해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지식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피리어드(PERIOD)라는 유전자는 초파리를 통해 행동유전학의 문을 연 시모어 벤저의 연구실에서 찾았던 생체시계 유전자입니다. 피리어드와 같은 생체시계 유전자의 순환을 통해 우리는 하루 24시간 동안의 주기를 가지게 됩니다.


신기한 사실은 선충은 24시간의 일주기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데도 피리어드 유전자가 수면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입니다(그림 1). 아마도 피리어드 유전자는 생명체가 대지 위로 올라와 하루라는 시간에 적응하여 살기 이전부터 수면과 주기성을 조절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피리어드는 수면 상태를 언제 유도할지 그 타이머로 작동합니다. 허물을 벗기 전 타이밍에서 잠을 자는 선충, 밤에 자는 인간이나 낮에 자는 야행성동물 각각에서 피리어드의 조절 패턴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을지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잠든 뇌, 비동기화 되는 신경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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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찾는 연구 외에도 선충 연구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신경회로의 시냅스가 전부 밝혀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이용하여 칼텍(CalTech)의 폴 스턴버그 교수팀은 올해 “Multilevel modulation of a sensory motor circuit during C. elegans sleep and arousal” 이란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선충이 잠이 든 후 다시 깨어날 때, 신경회로에서는 다양한 층위에서 조절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내용입니다.


00sleep4.jpg » 그림4. 회피 반응의 신경회로. 전통적인 수면 연구는 주로 뇌전도(EEG: electroencephalogram) 측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수면에는 다양한 단계에서 그 패턴이 변화하고, 특히 잘 알려진 REM(Rapid Eye Movement) 수면과 같은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뇌전도는 뇌의 전체에서 나오는 평균적인 신호를 알 수 있을 뿐, 어느 신경세포와 회로가 작동하는지를 자세히 알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난번 엘레강스 펜클럽 연재에서 소개한 칼슘 이온 시각화 기법은, 개별적인 신경 세포에서 다양한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폴 스턴버그 연구팀은 선충의 수면에서 칼슘 이온화 패턴의 변화를 측정하고자 하였습니다. 만약 수면뇌파와 같은 현상을 신경세포 수준에서 관찰할 수 있다면, 수많은 뇌세포들 중 수면에 작동하는 신경회로를 찾고, 그 패턴을 측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진이 주목한 신경세포는 일명 뒷걸음질 신경(backward interneuron)인 AVA와 AVD 신경입니다. AVA와 AVD 신경에서 나온 신호는 운동신경과 근육을 거쳐 선충을 뒤로 기어가게 만듭니다. 레이저로 뒷걸음질 신경을 제거하는 경우, 선충은 더 이상 뒤로 가는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평소 움직임에서 뒤로 가는 행동과 뒷걸음질 신경의 활성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 또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연구에서 옥탄올에 의한 회피반응 역시 뒷걸음질 신경의 활성화를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면 상태가 아닐 때, 뒷걸음질 신경세포들의 활성은 동시에 올라갔다가, 동시에 내려갑니다. 이를 통해 회피 반응이 재빠르게 일어나도록 유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휴면 상태에는 AVA와 AVD의 활성이 따로따로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림 5).


그렇다면 뒷걸음질 신경세포의 비동기화 현상은 수면 상태에만 나타나는 현상일까요? 연구자들은 자고 있는 선충을 잠시 깨운 뒤 신경 활성을 측정해 보았습니다. 예상대로, 수면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깨어난 선충들에서는 뒷걸음질 신경세포의 활성이 다시 동기화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00sleep5.jpg » 그림5. 휴면시의 중추 신경세포의 활성 변화.

이런 패턴이 혹시 포유류에서 발견되는 수면 단계의 패턴이나 렘(REM: Rapid eye movement) 수면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이 결과는 여태까지 알려진 잠의 성질과는 다른 새로운 시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수면에 의한 변화가 감각신경뿐만 아니라 신경회로 내부의 중추 신경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잠자는 꼬마선충, 입맞춤 아닌 빛으로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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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sleep6.jpg » 그림6. 광유전학 방법을 통한 수면방해 실험. (* 클릭 하면 화면 확대)00sleep7.jpg » 그림7. 잠에서 깨어나기 위한 중간 신경의 동기화 현상. 뒷걸음질 신경의 비동기화 현상은 수면에 무슨 역할을 할까요?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가설은, 비동기화는 수면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자고 있는 선충들에게서 동기화를 유도하여 수면에서 즉각 깨어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광유전학 방법을 통해 각각의 신경세포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였습니다. 그 후 어떤 상황에서 수면 상태에서 벗어나는지를 관찰하였습니다(그림 6).

광유전학은 빛으로 신경을 활성화하는 '채널로돕신'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신경을 원하는 타이밍에 켜고 끌 수 있는 방법입니다. ATR이란 물질이 들어가야 채널로돕신이 작동하기 때문에, ATR을 넣지 않은 샘플이 대조군으로 사용됩니다.


위험 감지 신경(ASH)을 활성화하는 경우엔(그림 6B, 빨간색 상자), 수면 상태를 깨울 수 없습니다. 이는 앞서 수면의 정의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수면 상태에서는 감각신경이 둔해져 있습니다. 수면상태에선 감각신경이 위험을 감지하는 단계뿐만 아니라, 감지한 신호를 전달하는데도 둔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뒷걸음질 신경중 하나(AVA)만 활성화했을 때(그림 6C, 빨간색 상자)도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뒷걸음질 신경 모두를 전부 활성화 하여, 동기화를 유도했을 때(그림 6B, 빨간색 상자), 즉각 수면에서 깨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수면 상태에서만 일어나는 뒷걸음질 신경세포들의 비동기화는 수면상태를 유지하는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그림 7). 본 연구에서 밝힌 수면시 비동기화 현상은 아직까지 잘 밝혀져 있지 않을뿐더러, 비동기화가 개별적인 신경세포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은 이 연구에서 최초로 밝힌 것입니다.


미롭게도 인간의 수면에서도 인간의 대뇌피질과 시상 영역 사이에서 비동기화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선충과 인간의 뇌가 서로 많이 닮아 있다면, 이 연구에서 제시한 바처럼 비동기화는 수면 상태를 지속시키고, 동기화를 통해 다시 깨어나는 현상에 작용할 것입니다. 어쩌면 수면 상태에서 제대로 비동기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의식은 깨어있지 않으면서 몸이 움직이는 몽유병 증상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요. 반대로 의식이 깨어났는데도 신경회로 내부의 동기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가위눌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꼬마선충도 '꿈'이란 것을 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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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동안 신경들이 제각기 활성화하는 것을 보면, 이 현상은 예쁜꼬마선충에게 일종의 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꿈은 프로이트 이후에 무의식과 욕망의 발현이라고 여겨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의 다채로운 꿈만큼 복잡치 않더라도, 선충이 만약 꿈을 꾼다면 혹시 단순히 잠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 논문을 보면서 AVA와 AVD 사이의 이온 통로를 막아서 평상시에도 인위적인 비동기화를 유도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영화 <수면의 과학>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선충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실험 방법을 생각하고, 무엇을 볼지, 그리고 어떤 질문을 던질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선충이 무슨 생각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충을 이용한 수면 연구는 이제 시작입니다. 수면시 AVA-AVD 신경세포의 비동기화는 어떻게 이뤄지고, 잠에서 깨어나면 어떻게 재빠르게 동기화가 일어나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다른 동물 수면에서도 동기화 과정이 어느 정도 보존이 되었는지도 알아봐야 하겠죠. 앞으로도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이 오늘 소개해드린 과학자들의 꿈일 것입니다. 잠을 자는 행위 자체에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앤디 워홀처럼, 과학자들은 생명 안에 담겨 있는 근본적인 규칙을 찾아내기 위해 오늘도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앤디 워홀은 영화, 미술 외에도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밴드의 음반을 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영화 <수면의 과학> 오에스티(OST)에서 ‘if you rescue me’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어 다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과학자들의 잠 못 이루는 밤들이 현대인들의 수면장애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점점 더 기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 Zimmerman, John E., et al. “Conservation of sleep: insights from non-mammalian model systems.” Trends in neurosciences 31.7 (2008): 371-376.

· Nelson, Matthew D., and David M. Raizen. “A sleep state during C. elegans development.” Current opinion in neurobiology 23.5 (2013): 824-830.

· Lewis, Sian. “Sleep: A rude awakening.”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5.3 (2014): 136-137.

· Cirelli, Chiara. “The genetic and molecular regulation of sleep: from fruit flies to humans.”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0.8 (2009): 549-560.

· Driver, Robert J., et al. “DAF-16/FOXO Regulates Homeostasis of Essential Sleep-like Behavior during Larval Transitions in C. elegans.” Current Biology 23.6 (2013): 501-506.

· Hobson, J. Allan. “Sleep is of the brain, by the brain and for the brain.” Nature 437.7063 (2005): 1254-1256.

· 최명규, "간이 맞아 가까이, 너무 짜 멀리…소금과 생명체 맛의 '밀당’ 관계", 사이언스온 연재 ‘엘레강스펜클럽’ (2013. 07. 18)

· 오철우, "'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씻는 과정' -쥐실험", 사이언스온 기사 (2013. 10. 22)

· 이대한, "마음의 작동을 보는 ‘신경망 시각화 기법’ 어디까지", 사이언스온 연재 ‘엘레강스펜클럽’ (2014. 09. 15)

· 이대한, "'신의 리모컨' 광유전학, 뇌의 판도라 상자를 열까", 사이언스온 연재 ‘엘레강스펜클럽’ (2013. 09. 16)

· 조너던 와이너, <초파리의 기억 : 인간의 행동유전에 대한 거침없는 탐구>, 파주 : 이끌리오 (2007)


최명규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후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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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과정
선생님과 동료들 덕분에, 과학을 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초짜 과학도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오직 저 한 사람 재밌고 행복한 일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과학이 단지 편리한 세상만이 아닌,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보 전진이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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