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

생물학 연구의 모델동물인 ‘예쁜꼬마선충(별칭 엘레강스)’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발생과 진화를 비롯해 생물학의 굵직한 주제를 담은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실험실 안과 밖의 진지하고 유쾌한 소통을 시작한다.

'길들여짐'의 슬픈 유전학

'실험실의 모델동물'


사실 작물 재배나 목축을 통해 사람이 다른 생물의 유전체에 인위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목축업자가 아닌, 생물학자들도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실험실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적응’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상태에서는 사회적 행동을 했던 예쁜꼬마선충들이, 실험실에 있는 동안 어떠한 이유로 고립 행동을 하도록 변한 걸까요?
00C.elegans50.jpg » 실험용 모델동물인 예쁜꼬마선충을 유지시키는 과정.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eTQtkQm5hOw

이번 글의 주제 논문


· De Bono, M., & Bargmann, C. I. (1998). Natural Variation in a Neuropeptide Y Receptor Homolog Modifies Social Behavior and Food Response in C. elegans. Cell, 94(5), 679-689.

· Macosko, E. Z., Pokala, N., Feinberg, E. H., Chalasani, S. H., Butcher, R. A., Clardy, J., & Bargmann, C. I. (2009). A hub-and-spoke circuit drives pheromone attraction and social behaviour in C. elegans. Nature, 458(7242), 1171-1175.

· McGrath, P. T., Rockman, M. V., Zimmer, M., Jang, H., Macosko, E. Z., Kruglyak, L., & Bargmann, C. I. (2009). Quantitative Mapping of a Digenic Behavioral Trait Implicates Globin Variation in C. elegans Sensory Behaviors. Neuron, 61(5), 692-699.



“예쁜꼬마선충이 예뻐 보일 무렵, 학생들이 졸업을 합니다.”

저의 지도교수님이 학부생들에게 실험실을 소개하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박사과정이 끝나가는 시기가 되니, 저 자신한테 물어보게 됩니다. 예쁜꼬마선충이라 부르기도 하고, 벌레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동물이 저에게 어떤 존재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박사과정 기간뿐 아니라 앞으로도 선충 연구자로 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을 보니, 제가 어느 정도 선충을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순히 예쁜꼬마선충의 겉모습이 예쁘기 때문도 아니고 유용한 실험모델 동물이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예쁜꼬마선충 덕분에 즐겁기도 슬프기도 했던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버렸습니다. 어쩌면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행위에서, 그 이유를 대상의 성격 자체에서만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와 보냈던 시간이 현재의 제 자신과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 아닐까요. 저에게 ‘예쁜꼬마선충을 사랑한다’는 말은 실험실에서 지냈던 20대의 시간, 지도교수님, 그리고 더불어 지냈던 동료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심지어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을 사랑하는 일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 키웠던 반려동물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을 갖고 계신 분들은 이미 그 의미를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도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인간과 최초로 더불어 살기 시작했던 반려동물의 시작은 어땠을까요? 늑대와 달리 인간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최초 개의 자손들은 다시 야생에서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겠죠. 그 이유는 그들의 유전정보가 야생보다는 인간과 함께하는 삶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엘레강스 펜클럽 연재 글에서 예쁜꼬마선충의 자연사와 생활사를 소개해드렸던 기회가 있었습니다. 실험실에서 몇십 년 동안 인간과 더불어 살았던 선충도 역시 그 유전정보에서는 자연에 있는 선충과 다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험실에서 저와 더불어 살아가는 예쁜꼬마선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예쁜꼬마선충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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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실험실에 처음 발을 내밀던 때가 생각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예쁜꼬마선충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분이신 이준호 교수님은 학생이 재밌어 하는 연구라면 뭐든지 지원해주고 조언해주는 분이었습니다. 선충을 이용해 세포사멸뿐 아니라 행동이나 생태, 진화까지 연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당시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로 선충을 통해 연구하고 싶은 질문이 무엇인지 쉽게 생각해낼 수 없었습니다.


러던 중에 1998년 발표된 논문 한 편(‘Natural variation in a neuropeptide Y receptor homolog modifies social behavior and food response in C. elegans.’)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의 사회적 행동이 npr-1(뉴로펩티드수용체-1)이라는 신경펩티드 수용체의 자연 변이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이 논문은 제목부터 세 가지 이유로 제게 큰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등해 보이던 예쁜꼬마선충이 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복잡해 보이는 사회적 행동이 선충의 경우에 하나의 유전자로 단순하게 조절되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실험실에서 수행된 연구 논문에서 진화생물학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던 ‘자연변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물행동학, 분자유전학, 진화생태학이 전부 생물학에 중요한 분야들이지만 한 논문에서 이렇게 융합된 경우는 지금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재밌는 연구를 할 수 있다면 성공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행복할 것 같다는 느낌에 젖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지도교수님은 ‘닉테이션(nictation, 까닥거림)’이라는 불리는 선충의 특이 행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닉테이션 역시 예쁜꼬마선충의 행동, 유전, 진화론적인 연구들이 어우러지는 연구주제입니다. npr-1에 의해 조절되는 선충의 사회적 행동과 닉테이션 행동이 제가 실험실 생활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였습니다.

[ 닉테이션 참고 자료 - 사이언스온 ‘과학자로 산다는 것: 예쁜꼬마선충을 사랑한 사람들’ ]


아마 예쁜꼬마선충이 사회적 행동을 한다고 말하면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해부학적으로 눈, 팔다리도 없고, 크기가 1mm밖에 안 되는 선충이 보여주는 사회적 행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영국서 온 고독한 솔로, 하와이에서 온 파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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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학에서는 같은 종에 속해도 다른 특성을 지닌 경우에는 아종, 품종 같은 하위의 분류 단계를 두기도 합니다. 아종(subspecies)은 주로 지리적 분포가 다른 동물 군집에 사용하는데, 예쁜꼬마선충에도 다양한 종류의 아종 군집이 존재합니다. 아종은 거의 유사한 유전자를 지니지만, 그 정보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이라는 종은 모두 적혈구의 항원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가지지만, 그 종류가 A형, B형 등으로 동일하진 않습니다. 유전학 연구를 할 때는 이런 차이 혹은 변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연구한 내용과 미국에서 연구한 내용이 아종의 특이성에 의해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세계 유전학자들은 한 가지의 기준(reference) 종을 가지고 연구합니다. 예쁜꼬마선충의 경우, 영국에서 채집된 N2가 기준 종입니다.

00C.elegans1.jpg » 그림1. A, C: 고립 행동을 보이는 N2, B, D: 사회 행동을 보이는 CB4856, C, D: 먹이인 박테리아가 원형으로 뿌려져 있고 바깥쪽에서 CB4856이 모여 있다. [De Bono, M., & Bargmann, C. I., 1998]

1998년 발표된 논문에서 마리오 드 보노와 코넬리아 바그만은 N2이 실험실 배지 환경에서 각자 돌아다니며 먹이를 먹는 데 비해, 하와이에서 채집된 CB4856은 서로 뭉쳐 다닌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연구진은 전자에 속하는 행동을 고립 행동(solitary behavior), 후자를 사회적 행동(social behavior)이라 이름 짓고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그림 1). 비유하자면, 영국에서 온 N2는 시크하게 혼자 다니는 데 비해, 하와이에서 온 CB4856은 의리 좋게 뭉쳐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충의 뭉쳐 다니는 행동을 사회 행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약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즉, 선충의 사회 행동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사회 행동과 분명히 다른, 좀 더 원시적인 형태의 행동입니다. CB4856이 뭉쳐 다니는 것은 인간의 사회 행동보다 단순한, 하지만 선충 수준에서 보면 상당히 복잡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행동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여러 가지 신경계의 조절이 필요하고, 이를 밝히는 것이 과학자들의 관심사입니다.


1998년 연구자들이 첫 번째로 수행한 방법은 전통적인 유전학 방식이었습니다. 즉, 고립 행동 선충인 N2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회적 선충으로 변하는 유전자를 찾는 방법입니다. 그 결과 N2에서 npr-1(뉴로펩티드수용체-1)이라는 유전자가 망가졌을 때 행동 패턴이 사회적으로 변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npr-1은 일종의 신경펩티드 수용체입니다. 신경펩티드는 뇌의 다양한 활성을 조절하는 물질로, 알려진 종류만도 100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지난 연재 글에서 소개했던 옥시토신이나 잘 알려진 엔돌핀이 신경펩티드에 속하는 물질입니다.


디엔에이(DNA)에 있는 유전정보는 아미노산 서열을 만들고, 이 아미노산이 특정 순서로 배열되어 각종 단백질을 만들어 냅니다. 연구자들은 다른 군집에서 npr-1의 서열을 분석해보았습니다. 고립 행동을 하는 선충에서 npr-1 단백질을 이루는 아마노산 서열에서 215번째에 발린(Valine)이라는 아미노산을 지닙니다(줄여 npr-1 215V). 이와 달리, 사회적 행동을 하는 선충은 같은 단백질의 215번째 서열에 페닐알라닌(Phenylalanine)이란 아미노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npr-1 215F). 


연구자들의 실험 결과를 보면, 고립 행동 선충의 발린은 그 단백질의 활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냅니다. 사회 행동 선충에서 페닐알라닌은 단백질의 활성을 아주 약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npr-1 유전자가 망가진 경우와 npr-1 215F를 가진 군집에서 사회적 행동이 유사하게 나타났던 이유입니다. 예쁜꼬마선충에서는 유전자 한 부분의 차이가 고독한 성향을 나타낼지, 사회적 성향을 나타낼지 결정하는 요소였던 것입니다.



신경망의 허브, 중심지를 조절하는 np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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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r-1이 망가졌을 때 어떻게 예쁜꼬마선충이 사회적 행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었습니다. 2002년에는 선충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두 편의 논문이 동시에 발표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사회적 행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종류의 감각 신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선충의 먹이를 감지하는 신경이 중요하고, 다른 하나는 산소 농도를 감지하는 신경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림 1을 보면 선충이 서로 뭉치는 현상은 먹이의 바깥쪽에서 일어납니다. 선충의 먹이인 박테리아는 바깥쪽에서 더 잘 자랍니다. 박테리아의 농도가 높기 때문에 바깥쪽 부분은 국소적으로 산소 농도가 낮습니다. 박테리아가 많고 산소 농도가 낮은 곳을 인지해서 선충이 서로 뭉쳐있게 되는 것입니다. 2004년 후속 연구에서는 실제로 산소 농도의 차이가 사회적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렇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습니다. 먹이 감지 신경과 산소 감지 신경은 둘 다 감각 신경으로서 행동을 만들어내려면 그 신호를 일종의 중추신경에 전달해야 합니다. 이때의 중추신경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각각 신경들의 신경망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 신경이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2009년 이에 대한 의문을 푸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이 연구진은 여러 시도 끝에 RMG라는 신경세포가 npr-1의 작용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그림 2). 이 RMG 신경세포가 지금까지 밝혀진 먹이 감지 신경과 산소 감지 신경에 전부 연결돼 이들의 작용을 종합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RMG는 기존에 밝혀진 신경들 외에도 선충의 페로몬을 감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경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에 영감을 얻은 연구진은, 페로몬 역시 선충의 사회적 행동을 조절하는 또 다른 환경적 요소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00C.elegans2.jpg » 그림2. A: 예쁜꼬마선충의 사회행동을 조절하는 신경회로, B: hub-and-spoke를 보여주는 수레바퀴 모양 [Macosko, E. Z., et al., 2009]

이쯤 되면 십 년 동안 연구를 통해 예쁜꼬마선충의 사회적 행동이 조절되는 원리가 거의 밝혀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원리란, 다양한 환경적 신호들(페로몬, 산소 농도, 먹이)이 그림 2 왼쪽에서 나타난 신경망을 통해 통합된다는 것입니다. 네트워크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로 허브앤스포크(hub-and-spoke: 대도시 터미널 집중 방식)라는 모델이 있습니다. 가운데 중심을 두고 여러 바퀴살을 지닌 수레바퀴의 모양(그림 2 오른쪽)과 비슷해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허브앤스포크 모델은 현재 교통, 통신 등 여러 네트워크 이론에서 많이 연구되고 산업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생명체의 신경회로 역시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변이를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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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충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연구는 신경 네트워크의 작용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1998년에 나왔던 npr-1 연구는 또 다른 의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의의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논문의 키워드가 ‘자연변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npr-1은 단순히 실험실에서 찾아낸 돌연변이가 아니라 각각의 자연 종마다 변이를 가지고 있던 유전자였습니다. 유전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변이들은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도구로서 큰 의미가 있지만, 생태적, 진화적인 의미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 연구는 운 좋게도 돌연변이를 통해 찾은 유전자가 자연 군집에서도 차이를 일으키는 유전자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npr-1의 215번째 변이는, 실험실의 선충을 넘어 지구에 살고 있는 여러 선충의 행동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격적으로 군집에 대한 변이를 연구하려면 실험실에서 돌연변이를 연구하는 전통적인 유전학으로는 힘듭니다. 돌연변이를 연구하는 것이 좁은 의미의 전통적 유전학이라면, 군집 간의 다양한 차이를 연구하는 것을 집단유전학 분석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N2와 하와이의 CB4856은 npr-1 외에도 다양한 유전적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차이가 N2와 CB4856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QTL이라 불리는 집단유전학 기법이 필요합니다. 


이 방법을 간단히 설명 드리면 먼저 N2와 CB4856을 교배해 다양한 자손을 만들어 냅니다. 이 자손들이 부모 중 누구의 유전자를 가지게 되는지는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예를 들면 1번 염색체는 N2와 동일하고, 2번 염색체는 CB4856과 동일한 자손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 자손의 행동 패턴이 N2와 닮았으면 그 행동을 조절하는 유전자는 1번에 있을 것이고, CB4856과 닮았으면 2번에 있을 것입니다. 즉, 군집 간 차이를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염색체의 어디 위치에 있는지 추적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QTL 분석을 위해서는 자손들의 유전정보를 전부 알고 있어야 합니다. 1998년 당시에는 유전체 서열분석의 비용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이 실험실 유전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최근에는 차세대 염기서열(NGS) 기술의 발전으로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서열 분석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2009년에 코리 바그만 연구팀은 QTL 기술을 이용하여 npr-1 외에도 N2와 CB4856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다른 유전자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솔로는 등산이 좋고 파티광은 클럽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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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L 기법에서는 N2와 CB4856의 자손에서 많은 양의 행동 분석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선충의 사회적 행동을 분석하는 것은 많은 양의 실험을 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본 연구팀은 사회적 행동보다 좀 더 단순한 측면에서 N2와 CB4856의 차이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바로 산소/이산화탄소에 대한 감지 반응의 차이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CB4856의 사회적 행동을 위해서는 낮은 농도의 산소를 감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CB4856은 사회적 행동을 선호하기 때문에 또한 낮은 농도의 산소 및 높은 농도의 이산화탄소를 선호합니다. 이에 반해 N2는 높은 농도의 산소 및 낮은 농도의 이산화탄소를 선호합니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CB4856은 클럽에 가는 걸 좋아한다면, N2는 등산을 좋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00C.elegans3.jpg » 그림3. A: 싫어하는 자극이 있을 때 몸을 돌리는 반응, B, C: 낮은 산소/높은 이산화탄소에서 N2와 CB4856의 몸을 돌리는 행동 패턴. [McGrath, P. T. et al., 2009]

약 N2에 낮은 농도의 산소/높은 농도의 이산화탄소를 불어 넣어주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요? 우리가 싫어하는 걸 쳐다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가는 것처럼, 선충도 싫어하는 방향에 가지 않으려고 몸을 180도로 돌립니다. 즉, 몸을 돌리는 행동은 선충의 선호도를 분석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입니다. 그림 3에서 보이는 것처럼 연구진이 낮은 산소/높은 이산화탄소의 상황(회색으로 색칠 된 영역, 예를 들면 클럽 안에 들어간 상황)을 일시적으로 주었을 때, 고립 행동을 하는 N2의 몸을 돌리는 비율이 갑자기 올라갑니다. 반대로 CB4856은 회색 영역이 좋아하는 부분이므로, 그 자극이 끝나는 시점을 인지해 회전의 비율이 올라갑니다. 회색 영역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는 몸짓이겠지요.



또 다른 변이 유전자, gl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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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진은 N2와 CB4856의 유전 정보가 다양하게 섞인 78개 자손들에서 행동 분석과 염기서열 분석을 실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N2와 CB4856의 행동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 유전자가 5번 염색체에 하나, X 염색체에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X 염색체에 있는 변이는 바로 기존에 밝혀졌던 npr-1이었습니다(그림 4). 5번 염색체의 변이는 실험 결과 glb-5라는 글로빈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과 같은 글로빈 구조를 가진 친척 단백질입니다.

00C.elegans4.jpg » 그림4. N2와 CB4856에서 QTL 분석 결과. [McGrath, P. T. et al., 2009]

소/이산화탄소 농도에 대한 취향을 만드는 것이 산소가 달라붙는 구조를 지닌 글로빈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신기하기도 한 결과입니다. 예쁜꼬마선충은 혈관계가 없기 때문에 글로빈 단백질들이 산소 운반을 위해서 중요한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선충 글로빈 단백질의 발현 양상들을 보면 대부분 신경세포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glb-5의 경우 앞서 말한, 산소 농도를 감지하는 신경에서 발현하고, 이들 신경의 기능에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인간에게도 글로빈 단백질들이 신경계에 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경글로빈(neuroglobin)이라 명명되어있지만, 실질적인 기능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선충의 경우와 유사하게, 대기 중 산소/이산화탄소 농도를 인지하는 작용을 할 거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npr-1, glb-5는 정말 자연변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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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진은 glb-5가 자연에 있는 예쁜꼬마선충 집단 내에서 얼마나 변이가 되어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장소에서 채집된 203개의 예쁜꼬마선충 군집을 분석하였는데, 놀랍게도 190개 군집이 하와이 선충(CB4856)과 똑같은 npr-1, glb-5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 선충(N2)와 똑같은 변이를 가진 경우는 생각보다 너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 대한 해석은 자연 상태에서 살아남는 데 하와이 군집이 훨씬 유리하다는 결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진이 제안한 것은 비단 그것뿐이 아닙니다. 연구진은 영국 선충의 변이, 즉 고립 행동을 만드는 유전자는 자연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실험실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영국 선충과 동일한 변이를 가진 아종들은 처음 채집된 1951년 이래로, 대부분 실험실에서 오래 유지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최근에 채집된 예쁜꼬마선충에서는 고립 행동의 유전자 변이를 지는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N2와 몇몇 종에서는 50년 넘게 실험실에서 유지되어오면서 사회적 행동의 유전정보를 잃어버렸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1998년 npr-1 연구의 첫 논문에서 썼던, ‘npr-1의 자연 변이(Natural variation in npr-1)’는 틀린 말입니다. “npr-1의 실험실 유래 변이(Lab-derived variation in npr-1)‘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사실 작물 재배나 목축을 통해 사람이 다른 생물의 유전체에 인위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심지어 목축업자가 아닌, 생물학자들도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연구자들도 그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논문 말미에는 연구자들은 인간이 야생 동물을 길들여 그 천성을 순하게 만드는 것처럼, 실험실에서 생명체를 배양하는 일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적응’이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길들여짐'에 대한 슬픈 유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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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자연상태에서는 사회적 행동을 했던 예쁜꼬마선충들이, 실험실에 있는 동안 어떠한 이유로 고립 행동을 하도록 변한 걸까요? 진화의 이유에 대한 정확한 가설을 세우긴 어렵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이 선충을 유지할 때, 선충이 살고 있는 배지에 밥을 주기적으로 주면서 키우지 않습니다. 배지는 쉽게 오염이 나고 선충들은 4일이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기 때문에, 새로운 배지로 4~5마리만 이사를 시켜줍니다(그림 5).

00C.elegans5.jpg » 그림5. 예쁜꼬마선충을 유지시키는 과정.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eTQtkQm5hOw

회적 선충들은 낮은 농도의 산소를 좋아하기 때문에 실험실 배지의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충 연구자들이 손에 쥐고 있는 백금선으로 선충들을 붙여서 한 마리씩 새로운 배지로 이사시킬 때, 이미 배지 안쪽에 들어가 있는 사회적 선충은 선택되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한 서로 붙어 있는 경우보다는 따로 돌아다니는 선충을 고를 확률도 높습니다. 즉, 야생성을 가진 선충들과는 다르게 어느 순간 연구자들의 손에 쉽게 접근 할 수 있었던 최초의 고립 행동 선충이 선택되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을 것이라고 저는 상상합니다. 마치 처음 사람이 주는 밥을 의심 없이 먹고, 손을 내밀었을 때 머리를 기꺼이 내주었던 그 개의 조상처럼 말이죠.


현재 실험실에 유지되는 고립 행동 선충이 만약 자연으로 방생된다면, 다른 사회적 선충들보다 자연에서 살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 적응할 때까지 많은 개체가 생존에 실패할 것입니다.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선충이 진화한 과정이 인간이 그들을 착취한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강아지와 고양이의 머리를 만질 때마다, 저는 그들의 조상과 야생에서의 삶이 떠오릅니다. 인간과 함께하는 삶이 이미 생태적 서식처가 되어 버린 그들이, 주인을 잃어버린 채 방치되는 모습들을 떠올립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함께 지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야생의 무언가를 희생시켰을지 모릅니다. 진화 과정 자체에는 윤리를 따질 수 없지만, 저는 그 길들여짐이 그저 슬퍼지기도 합니다.



[그밖에 참고한 문헌]



Rogers, Candida, et al. “Inhibition of Caenorhabditis elegans social feeding by FMRFamide-related peptide activation of NPR-1.” Nature neuroscience 6.11 (2003): 1178-1185.

Coates, Juliet C., and Mario de Bono. “Antagonistic pathways in neurons exposed to body fluid regulate social feeding in Caenorhabditis elegans.” Nature 419.6910 (2002): 925-929.

Gray, Jesse M., et al. “Oxygen sensation and social feeding mediated by a C. elegans guanylate cyclase homologue.” Nature 430.6997 (2004): 317-322.


최명규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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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과정
선생님과 동료들 덕분에, 과학을 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초짜 과학도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오직 저 한 사람 재밌고 행복한 일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과학이 단지 편리한 세상만이 아닌,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보 전진이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이메일 : mg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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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우어 유충의 춤사위, '닉테이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에서 애벌레들은 서로를 타고 넘으며 거대한 탑을 만들어 냅니다. 애벌레들은 탑 꼭대기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처절하게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죠. 실제로 야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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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최명규 | 2014.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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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유전체 속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의 비밀생명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인간은 바이러스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공격받고 있습니다. 인간은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단순한 질병학을 넘어 바이러스와 인간 사이에 벌...

  • 순수 클론은 없다순수 클론은 없다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김천아 | 2014. 06. 16

    유전자 발현과 그 과정의 '잡음'순수한 의미의 클론(clone)은 없습니다. 동일한 유전자, 동일한 환경을 가진 개체에도 유전자의 '잡음'이 나타납니다. 잡음이 부여한 다양성 덕분에 어떤 개체는 살아남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물은 다양할 여지를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