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성렬의 "피라미드 문명의 코드"

공학자가 피라미드 고대문명을 엔지니어의 눈으로 되짚어 탐사하면서 과학과 문명, 신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행을 떠난다.

[연재] 콜럼버스 비난 궁정학자들도 '편평한 지구' 안믿어

피라미드 문명의 코드 (2) 

  

  

columbus_ship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아시아를 향한 열망

  

 

 

15세기 말 유럽은 대격변기를 맞고 있었다. 15세기 중반에 지금 터키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오토만 제국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이루어지던 동쪽 내륙을 통한 유럽과 아시아의 직접 교역이 중단되었다. 인도를 비롯해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나는 향료와 차, 비단, 보석, 귀금속 등은 유럽 상류층이 열광하는 애호품이었다. 이제 이런 물건들을 이슬람인들을 통해 사게 되면서 그전보다 훨씬 더 비싼 댓가를 치르게 되자 유럽의 여러 국가 통치자들 사이에는 이들을 통하지 않고도 아시아 국가들과 교역할 수 있는 새로운 뱃길 개척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가장 먼저 루트를 개발하면 그가 누구든 동서 교역의 독점권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오토만 제국의 팽창주의가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걸친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런 경쟁에 가장 앞서 나간 국가는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가 개척한 서아프리카 항해 루트는 그동안 주로 헤라클레스 기둥 안의 지중해 동쪽에 머물렀던 세계에 대한 관심을 그 바깥의 서쪽으로 향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콜럼버스의 대서양 황단은 이와 같은 시대적 맥락에서 조망해볼 수 있다.

 

 

콜럼버스의 제안을 포르투갈 왕이 거절하다.

 

포르투갈이 새로운 해상 루트 개척에 가장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마침 포르투갈 귀족 가문 출신의 여성과 결혼하는 등 나름대로 연고를 갖고 있던 콜럼버스는 1484년에 먼저 포르투갈 왕 주앙 2세에게 새로운 뱃길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하지만, 포르투갈 왕은 오랫동안 공을 들여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던 아프리카 우회 항로 개척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발상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정치적인 걸림돌도 콜럼버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해서 아시아로 가는 최적의 해류가 카나리 군도 근처에 있으며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카나리 군도는 당시 스페인이 점유하고 있었으나 포르투갈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첨예한 분쟁지역이었다. 포르투갈 왕은 카나리 군도에서 출발하기 위해 무리하게 접근했다가 스페인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던 것이다. 물론 왕의 정치적인 견해에 앞서 관련 학자들의 지리학적 판단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종합적으로 논의하겠지만 이들의 결론은 에스파냐에서 학자들이 내린 결론과 동일했다.

 

 

에스파냐의 이사벨라가 콜럼버스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

 

포르투갈의 주앙 2세 설득에 실패한 콜럼버스는 에스파냐로 향했다. 비록 콜럼버스는 에스파냐와의 연고가 없었지만, 처음부터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포르투갈보다는 협상에 유리했다. 무엇보다도 서쪽 방향으로 아시아를 가려면 필수적이라고 콜럼버스가 생각했던 카나리 군도 근처의 해류를 타는데 아무런 정치적 문제가 없었다. 그곳은 에스파냐가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에스파냐는 아시아 항해 루트 개척에서 포르투갈에 뒤떨어져 있었다는 점이 콜럼버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아프리카 주변을 돌아서 동쪽으로 가는 항해 루트는 상당 부분 진척되어 1487년에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메오 디아스(Bartolomeo dias)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루트를 개척했다.(1498년에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이 항로를 통해 인도에 도착했다.) 이런 사실이 에스파냐 왕실을 초조하게 했다. 하지만, 에스파냐에서 뒤늦게 똑같은 항로를 따라가봤자 교황청으로부터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바로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을 즈음에, 콜럼버스의 제안은 귀가 솔깃한 것이었다. 만일 포르투갈의 항로와 전혀 다른 루트로 인도에 더 빨리 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columbus_isabella »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1451–1504)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콜럼버스.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그런데, 비록 이사벨라 여왕이 그의 제안에 솔깃해 했지만, 콜럼버스가 여왕에게 제안한 1487년의 에스파냐 상황은 좋지 못했다. 711년부터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계통의 무어인들을 내쫒기 위한 전쟁을 치루고 있던 터라 콜럼버스의 제안에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스파냐 왕실은 콜럼버스의 제안을 검토할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에 이 문제를 일임했다. 그런데 에스파냐 궁정에 협조하고 있던 학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는 결국 포르투갈의 왕을 조언했던 학자들과 똑같은 지리학적 이유로 콜럼버스의 제안을 반대했던 것이다.

 

콜럼버스는 이제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을 직접 설득하기 위한 최종 준비를 하면서 무어와의 전쟁이 끝나 여왕이 시간을 할애해 자신의 주장을 경청해줄 시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1491년 말 콜럼버스는 에스파냐의 궁정에서 보강된 자료를 갖고 여러 학자들의 반박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사벨라가 콜럼버스의 주장에 호감을 보인 것이다.

 

물론 여왕은 콜럼버스가 완전히 옳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콜럼버스의 주장에 동조한 것은 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잣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비록 콜럼버스가 아시아에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 그가 어디든 가서 무엇이든 진귀한 물건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교황청에 에스파냐도 아시아 항로를 개척했다고 주장하며 포르투갈을 견제할 수 있는 대응 논리를 펼칠 수 있지 않겠는가? 콜럼버스가 혹시라도 옳아서 정말로 아시아에 도달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여왕에게는 콜럼버스에게 도박을 걸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뱃사람 콜럼버스와 서쪽의 대륙에 대한 전설

 

사실 콜럼버스는 유럽의 서쪽 바다 건너 비교적 가까운 곳에 커다란 대륙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뱃사람으로 잔뼈가 굵은 그에게 뱃사람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는 전설 속의 서쪽 나라는 전설이나 신화 그 이상이었다. 오늘날 역사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실제로 서기 10~11세기에 바이킹들은 북미 동북 지역을 점령하고 식민지를 건설 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과 관련된 지도들이 중세시대에 존재했고, 콜럼버스도 이 지도를 입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는 그리스 지리학자인 프톨레미오스나 스트라보가 남긴 지구의 둥근 형태와 크기에 대한 기록도 갖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이 두가지 사실을 연결시켰다. 유럽 서쪽에 큰 대륙이 존재하는데, 지구가 둥글다면 이 큰 대륙은 당연히 아시아가 아니겠는가? 그 당시의 유럽의 어느 학자들도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렇다면, 콜럼버스의 추리는 매우 타당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당대의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 왕실 자문 학자들은 이런 콜럼버스의 주장을 비웃었던 것일까?

 

 

콜럼버스

 

당대의 학자들이 콜럼버스의 제안에 반대한 이유

 

1828년 당시 미국의 유명한 대중 작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은 그가 입수한 스페인 왕실 문서를 토대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와 일생의 역사(History of the Life and Voyages of Christopher Columbus)'라는 제목의 두 권짜리 콜럼버스 전기를 저술했다. 그 뒤에 오랫동안 콜럼버스의 가장 권위있는 전기로 인정받았던 이 책에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궁정학자들이 콜럼버스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장면이 매우 현장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Untitled-2 copy » 워싱턴 어빙의 콜럼버스 전기(1828). 오늘날 일반인들이 대다수의 중세 학자들이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었다고 여기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여기서 일련의 학자들은 지구가 편평하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콜럼버스를 힐난하는데 자칫 그는 이단자로 몰릴 위험에 빠진다. 워싱턴 어빙의 콜럼버스 전기에 묘사된 이런 내용은 19세기 이후 미국 사회에서 널리 공인받게 되었으며 오늘날 일반인들이 대다수의 중세 학자들이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었다고 여기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정말로 당시에 권위 있는 학자들이 지구가 편평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 궁정이 자문을 구한 일련의 학자들의 정확한 소속과 성향은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그 당시 아무리 보수적인 성향의 신학자라도 지구가 구체라는 사실은 당연 것으로 믿고 있었다. 따라서,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의 왕실에서 신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들을 모두 동원해서 콜럼버스의 주장을 조사했다손치더라도 지구가 둥글다는 콜럼버스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학자들의 성향에 따라서 그 주장하는 바는 조금씩 달랐을 것이다. 아주 보수적인 신학자는 지구가 매우 크다고 했을 것이고, 중도적 성향의 학자는 지구가 콜럼버스가 주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크지만 상대적으로 작다고 했을 것이며, 아주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지구의 크기와 유사한 수치를 주장했을 것이다.

 

콜럼버스는 그 당시 알려진 그 어떤 수치보다도 실제의 지구 크기가 작다고 생각했다. 당시 포르투갈의 마르코폴로가 기록한 <동방견문록>에 의해 아시아의 중국과 일본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려져 있었는데 콜럼버스는 일본이 중국에서 2,400km나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고, 카나리 군도에서 일본까지의 거리가 4,400km 정도일 것으로 계산했다. 실제로 일본이 중국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카나리 군도에서 일본까지의 실제 거리는 무려 19,000km나 되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계산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북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속의 서쪽 대륙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터무니없이 멀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처음부터 아시아 대륙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았더라면 작고 허술한 배 몇척으로 항해하려는 꿈을 애초부터 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그릇된 신념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고, 그를 오늘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의 인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도대체 콜럼버스 시대에 대부분 학자들이 지구가 구체라는 사실을 한결같이 믿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 크기에 대해 왜 이렇게 다양한 견해들을 갖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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