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감기약의 슈퍼 판매가 소비자를 위한 것일까?

[endo의 편지] (17)




공중보건 관점으로 다시 보는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 논란


00medicine감기약, 해열제 등 가정상비약을 약국뿐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2월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국에서 갖가지 약물 오남용에 의한 부작용은 해마다 약 45만 명의 입원 환자에게 추가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약 53만 명의 외래 환자를 발생시키는 심각한 건강 위험 요인으로 분석되어 왔습니다. 2006년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산하의 의학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는 이것마저도 과소 평가된 수치로서 실제로는 최소 150만 명 정도의 예방 가능한 환자들이 해마다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각종 약의 오남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를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가적 유행병’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처방이 필요하지 않은 약의 오남용에 의한 부작용 사례는 비록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울지라도 1990년대 후반부터 상당히 증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방이 필요하지 않은 약을 쉽게 살 수 있는 편의성이 오히려 약의 오남용을 촉진하는 양면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료보험이 없는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는 처방이 필요 없는 약이 그들에게 유일한 대안이 되어 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입니다. 물론 무의료보험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처방약보다 처방이 필요 없는 약에 대한 의존도는 높게 나타납니다.



약물 안전성보다 더 심각한 용법·용량의 오남용



근 한국에서는 감기약이나 처방이 필요하지 않은 일부 약품에 대한 약국외 판매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국회나 언론 등의 논의를 보면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소비자의 편의성이 약국외 판매를 지지하는 핵심 근거로 부각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전제로서 안전성의 균형이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품목이 점점 늘어날 것이 거의 확실하고, 의료시스템 자체도 민영화에 의한 미국화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볼 때에 실효성 없는 안전장치에 기대어 소비자의 편의성을 앞세우는 결정은 현재 미국이 겪는 심각한 문제가 곧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line » ■ endo는? 미국에서 현업 의사이자 대학 초빙교수로 일하는 의학자 ‘endo’(필명) 님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온라인 게시판에 유익한 글을 올려 주목받아왔습니다. 사이언스온의 독자이기도 한 endo 님은 생의학의 쟁점들에 관한 글을 부정기적으로 사이언스온에 보내오고 있습니다. -사이언스 온

약품의 포장에 쓰인 용법과 용량을 준수하거나 의사나 약사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많은 부작용은 예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문제가 몇십 년 동안 미국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왔지만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사전에 마련되지 않는다면 약품의 약국외 판매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소비자를 희생시켜 이윤 추구를 하는 영리업자를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소비자의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을 빌미로 자가 치료를 부추겨 사실상 정부와 보험회사의 의료비용 부담을 소비자에 전가하는 사전작업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에, 1951년 이전에는 제약회사의 판단으로 처방약과 처방이 필요없는 약을 결정했지만 그 이후부터 현재에는 처방약보다 복용량이 적으면서 효과가 있는 약들을 미국 식약청이 평가해 결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시된 용법과 용량을 따랐을 때 부작용이 최소화하고 처방약보다 안전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오남용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알려지지 않았던 약품 자체의 안전성 문제가 새롭게 발견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약국외 판매라는 편의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약국에서만 약을 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의 오남용 역시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약을 약국에서만 판매해야 한다는 시각이나 약국외 판매를 무턱대고 주장하는 시각은 모두 다 근원 문제에 대한 접근과 해결방안이 없다면 어느 쪽도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남용 문제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국외 판매에서 우려되는 근원 문제는 처방이 필요 없는 약 중에서 가장 흔한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을 예로 삼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처방이 필요 없는 감기약이나 진통해열제의 유효 성분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되며, 가장 안전한 성분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이레놀의 주요한 유효 성분이기도 합니다. 2007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연구에 따르면, 미국 애틀란타 주변 지역의 인구를 대상으로 급성간부전 환자들을 분석한 결과 어른의 경우에 아세트아미노펜의 부작용으로 인해 발생한 급성 간부전 환자의 숫자가 분석 대상의 절반에 가까운 41%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을 미국 전역으로 확대해 추정하면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인해 해마다 약 656명의 급성 간부전 환자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한 사망율은 역시 40%로 비교적 높은 편이었습니다.

 

이에 앞서 2002년에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의 포장에 간 손상 위험을 알리는 경고 문구를 넣는 방안이 제시되었고, 2004년에 미국 식약청은 간 손상에 대비한 안전한 사용법 캠페인을 벌이는 교육까지 시작했지만 질병통제연구센터의 연구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여전히 오남용에 의한 간 손상 환자들은 발생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 자체가 간 손상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아세트아미노펜의 과다 복용에 의해 만들어진 대사산물이나 음주를 통한 알콜 등에 의해 독성이 발생한다는 측면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자체의 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용법과 용량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슈퍼마켓들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감기약에는 325mg의 아세트아미노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이레놀을 하루 최대 복용량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추가로 감기약을 복용했을 때 간 손상 여부와 상관없이 아세트아미토펜 과다 복용은 쉽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00supermarket슈퍼마켓. 한겨레 자료사진

 

 

근본문제는 ‘환자와 쌍방향 소통 원활한 체제인가’


 

국 국립과학아카데미 산하 의학연구소는 예방 가능한 약물의 부작용 문제에 대한 책임을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 간호사, 약사, 제약회사, 병원, 미국 식약청 그리고 모든 관련 정부기관에도 동등하게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개선책으로 제시된 것은 의외로 ‘환자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핏 약물 부작용과 관련이 없어 보일 수 있는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미국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일차적 대책 방안으로 지목되는 사실에 주목하는 한국 내 논의는 별로 없습니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은 가부장적 의사소통이나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 정보 전달이 아니라 환자의 적극적 참여에 의한 양방향 의사소통으로서 환자 중심으로 나아가는 패러다임의 이동입니다. 즉 의사, 간호사, 약사 그리고 제약회사나 정부기관들이 대중과 양방향 소통을 하는 관계 설정이 실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패러다임의 변화와 관련해서 국가의 의료시스템이 단순히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교육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부분입니다.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 연구에서 대중에 대한 정보 제공과 교육 부족이 약물의 오남용을 유발하는 중요 원인으로 꾸준하게 지목되어 왔습니다. 여기에서 국립과학아카데미 의학연구소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중요한 개선책으로 제시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한국에서 이뤄지는 약품의 약국외 판매 논의에서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과 의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처방이 필요하지 않은 약품의 약국외 판매에 대해 다양한 기술적, 제도적 안전 대책이 논의되고 언론에도 그 내용이 보도되고 있지만, 그 대부분들은 미국에서 몇십 년 전부터 지적되어 개선 노력의 대상이 되어왔으나 여전히 그 부작용이 줄지 않은 채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들입니다. 미국에서 이미 실패한 것으로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대책들이 한국에서 이뤄지는 의약품의 약국외 판매 논의에서도 표면적으로 거론되고 있을 뿐입니다. 근본 문제에 대한 논의와 대책 없이 슈퍼마켓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전국민을 상대로 먼저 안전성을 실험해 본 뒤에 부작용이 생기면 그때에 가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미국에서도 수십 년 동안 전혀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했고 오히려 악화해 왔습니다.

 

따라서 의약품의 약국외 판매에 대한 한국 내 논의는 약품 자체의 안전성 문제보다는 약국외 판매에서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오남용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의 타당성과 실효성 쪽으로 논의의 무게 중심이 옮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감기약의 슈퍼 판매가 소비자를 위한 것이 될 만큼 준비된 상태인지의 판단이 곧 약국외 판매 허용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슈퍼마켓에서 산 약으로 증상을 완화함으로써 정작 조기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질병의 치료 시기를 놓치는 식의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과연 있는지, 또는 부모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주의가 필요한 어린아이들에게 약물 오남용을 초래시키는 사례를 최소화할 방안이 있는지 등과 같은 여러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근원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묻는 논의가 이뤄지는것이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한 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중보건의 시각에서 다양하고 세밀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므로 이해관계자들의 언론 플레이에 공중보건이 농락당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주요 참고자료]



Institute of Medicine. Preventing medication errors. 2006.
http://www.iom.edu/~/media/Files/Report%20Files/2006/Preventing-Medication-Errors-Quality-Chasm-Series/medicationerrorsnew.pdf


Laura P. Shone, Jennifer P. King, Cindy Doane, Karen M. Wilson, Michael S. Wolf. Misunderstanding and Potential Unintended Misuse of Acetaminophen Among Adolescents and Young Adults. Journal of Health Communication 2011.
http://www.tandfonline.com/doi/pdf/10.1080/10810730.2011.604384


Patricia Harrington, Marvin D. Shepherd. Analysis of the Movement of Prescription Drugs to Over-the-Counter Status. J Managed Care Pharm. 2002.
http://www.amcp.org/data/jmcp/Review-499-508.pdf


The National Council on Patient Information and Education. The Attitudes and Beliefs about Over-the-Counter Medicines: An Executive Summary. 2001.
http://www.bemedwise.org/survey/summary_survey.pdf


William A Bower, Matthew Johns, Harold S Margolis, Ian T Williams, Beth P Bell. Population-Based Surveillance for Acute Liver Failure. The American Journal of Gastroenterology 2007.
http://www.nature.com/ajg/journal/v102/n11/abs/ajg2007481a.html


한겨레. ‘감기약 편의점 판매’ 복지위 소위 통과. 2012년 2월13일.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5188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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