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정다면체'가 빚는 나노세계의 안정성

정다면체 기하학과 나노과학기술


윤복원 미국 조지아공대 연구원(물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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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테스의 제자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현실 세계가 흙. 물, 공기, 불 이렇게 네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원소론을 주창했다. 플라톤은 이 원소들이 각각 정육면체(꼭짓점 8개), 정이십면체(12개), 정팔면체(6개), 정사면체(4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 정십이면체를 보태 오직 다섯 개만의 정다면체가 자연에 존재하며 이를  ‘플라톤의 정다면체’라 부른다. 이렇게 고대부터 알려져 있는 이 다섯 가지 정다면체와 여기에서 파생하는 다면체들은 현대에 와서 나노입자의 구조와 관련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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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나 분자가 모여 덩어리를 이룬 ‘클러스터’를 연구하는 물리학 분야가 ‘클러스터 물리학’이다. 30여년 전에 이미 나노미터 크기의 클러스터, 즉 ‘나노클러스터’(편의상 ‘나노입자’라고도 부르겠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이 분야에선 지금도 적잖은 과학자들이 최신 나노과학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자들 사이에선 플라톤 정다면체가 때때로 관심사가 된다.



나노세계에 나타나는 ‘마법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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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정다면체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원자나 원자핵의 세계에서 안정성과 관계되어 종종 얘기되는 이른바 ‘마법의 수’에 관한 기본 설명이 필요하다. 마법의 수는 화학 교과서에 실리는 원소 주기율표에서 볼 수 있다. 불활성 기체라 불리우는 헬륨(He, 원자번호 2), 네온(Ne, 10), 아르곤(Ar, 18) 등은 원자 둘레를 감싼 전자 구조에서 맨 바깥쪽 전자껍질(같은 양자수를 지닌 전자들의 자리)을 다 채우는 구조를 지니고 있고 다른 원소와의 화학 결합이 쉽지 않아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원소다. 이와 같은 이유로 2, 10, 18 같은 이런 원자번호가 주기율표에선 마법수로 불린다. 원자핵 구조에서도 특정 개수의 핵자(양성자·중성자)로 이뤄진 핵은 다른 크기의 원자핵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데 이런 숫자들도 마법수로 통한다.


원자나 핵이 아닌 나노입자에서도 마법수가 있다. 리튬, 나트륨 같은 알칼리 금속을 포함하는 일부 금속 나노클러스터에서는 각 원자의 맨바깥쪽 전자들이 모여 새로운 전자껍질을 만드는데 이런 전자의 총 개수가 2, 8, 18, 20 등일 때 전자 껍질을 채운다. 이때 클러스터는 안정적인 구조를 이루게되고, 실제 합성되는 클러스터의 양도 비슷한 다른 크기의 클러스터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나노입자를 이루는 원자 개수에도 마법수가 있는 것이다.


마법수는 나노입자가 특정 다면체 모양을 할 때 나타나기도 한다. 일례로 20개 정삼각형으로 이뤄진 정이십면체가 그런 경우다. 껍질이 하나인 정이십면체 모양의 나노클러스터는 중심원자와 함께 총 13개 원자, 껍질이 둘일 때엔 55개 원자, 껍질이 셋일 때엔 147개 원자로 구성된다. 불활성 기체인 아르곤(Ar), 크립톤(Kr), 제논(Xe)등으로 이뤄진 나노입자들이 이러한 크기에서 안정적인 정이십면체 모양을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숫자들은 ‘기하학적 마법의 수’로 불린다.  

ICOs_Low.jpg » 여러 겹 구조의 정이십면체들

특히 세 겹 정이십면체인 147개 원자 나노클러스터는 매우 흥미있는 구조이다. 먼저 내부의 두 겹으로 된 55개 원자의 정이십면체를 제거하면 92개 원자로 이루어진 껍질만 있는 정이십면체가 된다. 여기에서 다시 각 면 중심에 있는 20개 원자를 제거한 뒤 12개 꼭짓점에 있는 원자들 마저 제거하면 60개 원자로 이뤄진 ‘깎인 정이십면체’가 된다. 

TruncatedICOs_Low.jpg » 정이십면체와 깎인 정이십면체. 깎인 정이십면체는 1996년 노벨화학상을 안겨준 탄소60 플러렌 나노입자의 구조이기도 하다. 

어디에서 많이 본 구조 아닌가? 이 구조는 ‘아르키메데스 다면체’의 하나인데 1996년 미국의 리처드 스몰리(Smalley) 교수를 포함한 세 명에게 노벨 화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탄소60(C60) 풀러렌’ 나노클러스터다. 요즘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사용하는 피파(FIFA) 공인 축구공은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축구공 하면 바로 이런 ‘깎인 정이십면체’처럼 12개 오각형 모양과  20개 육각형 모양의 가죽 조각들로 이어 만든 것이 기본이어서 아직도 이 탄소60 나노클러스터를 축구공 모양에 비교하곤 한다. 탄소60에 관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1985년 <네이처>논문을 보면, 첫 번째 그림으로 실제 축구공 사진이 있다.

C60_Low.jpg » 탄소 원자 60개로 이뤄진 ‘탄소60 플러렌’ 나노입자와 이와 닮은꼴인 축구공

 


나노입자에 숨은 정다면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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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입자 세계에서 다른 정다면체들은 어떨까? 정삼각형 4개로 만들어진 정사면체는 원자 4개로 이뤄진 분자인 ‘4원자분자’에서 흔한 구조이다. 4개 이상 원자들로 짜인 나노입자에서는 흔치 않은 모양이다. 그런 흔치 않은 정사면체 모양의 나노클러스터가 바로 금 나노입자이다.


2003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서 금 원자 20개로 만들어진 나노클러스터(Au20)가 정사면체 모양을 하고 있는 마법수의 나노클러스터임이 밝혀졌다. 여기에서 20이라는 숫자는 전자껍질을 채우는 마법수이기도 하다. 한편 그보다 작은 금 원자 16개 크기의 나노입자(Au16)는 정사면체인 금20 나노입자의 꼭짓점에 있는 4개 원자를 떼어낸 구조를 이루는데. 이 모양은 정다면체는 아니지만 대칭성이 큰 아르키메데스 다면체인 ‘깎인 정사면체’로 불린다.

Tetra_Low.jpg » 정사면체와 깎인 정사면체

금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크기에서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어서 변색도 잘 일어나지 않는 원소다 하지만 나노미터 크기로 작아지면 화학 반응 촉매로 쓰일 정도로 화학적 성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특성을 지녀 금 나노입자는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나노클러스터 중 하나이기도 하다.

dual_Low.jpg » 서로 쌍을 이루는 쌍대 다면체인 정육면체와 정팔면체, 그리고 정이십면체와 정십이면체. 맨 오른쪽 정사면체의 쌍대 다면체는 자신, 즉 정사면체다.

정육면체 각 면의 중심을 꼭짓점으로 잡으면 정팔면체가 되고, 정팔면체 각 면의 중심을 꼭짓점으로 잡으면 정육면체가 된다. 이런 관계로 쌍을 이루는 다면체를 ‘쌍대 다면체’라고 부른다. 특히 정육면체 각 면의 중심을 꼭짓점으로 잡아 정팔면체를 만드는 경우는 결정학에서 ‘공을 가장 조밀하게 쌓을 수 있는 구조’인 면심입방 구조의 뼈대를 만드는 방법과 동일하다. 따라서 면심입방 구조를 지니며 크기가 충분히 큰 나노입자는 그 안에 정육면체와 정팔면체를 자연스레 포함하고 있게 된다. 정이십면체와 정십이면체도 서로 쌍대 다면체다. 예를 들어 147개 원자의 정이십면체 나노입자는 각 면에 중심원자를 하나씩 지녀 총 20개의 면 중심원자를 지니는데, 이런 중심원자를 이으면 바로 정십이면체가 된다.



대칭구조 안정성, '보호된 은 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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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십이면체와 정이십면체 모양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나노입자의 최신 사례로, 최근에 미국과 중국 연구팀이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그 구조를 밝힌 ‘보호된 은 나노입자’[Ag44(SR)30]가 있다. 엑스(X)선 결정학 방법으로 확인한 그 구조는 다른 나노입자에선 보기 힘든 독특한 정십이면체와 정이십면체 이중구조를 하고 있다. 


마치 쌍대 다면체 그림처럼 이 나노입자의 중심부에는 12개 금 원자로 된 정이십면체를 20개 금 원자로 구성된 정십이면체가 감싸고 있다. 그 주변을 6개 금 원자 짝(총 12개)이 둘러싸고 있다. 다시 그 위에 결합된 6개 황 원자는 큰 정팔면체 모양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매우 대칭적인 구조는 나노입자의 물리·화학적 안정성에 크게 기여한다.

Ag44_Low.jpg » 물리·화학적 안정성을 갖춘 은 나노입자의 구조. 중심부는 20개 원자로 이뤄진 정십이면체(초록)와 다시 그 안에 12개 원자로 이뤄진 정이십면체(빨강)로 구성됐으며, 그 주변을 금 원자 짝 6개가 감싸고 있다. 그위에 다시 크게 정팔면체 모양을 한 6개 황 원자가 결합돼 있다. 이런 정다면체 구조는 나노입자의 안정성에 기여한다. 윤복원 제공

하나 남은 플라톤 정다면체인 정사면체의 쌍대 다면체는 무엇일까? 정사면체 4개 면으로 4개 꼭짓점을 만들므로 답은 ‘정사면체 그 자신이 된다’이다. 금20 나노클러스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4개 면의 중심원자들을 이으면 4개 원자로 이뤄진 정사면체가 만들어진다.


나노클러스터는 원소 성분과 구조, 그리고 크기에 따라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변할 수 있고, 나노클러스터가 표면에 올려져 있는지 또는 다른 물질 안에 심어져 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지에 따라서도 그 성질이 변한다.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성질을 찾고 그 메카니즘을 알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나노입자가 매우 대칭적이면서 간단한 기하학적 구조를 지닐 때 물리적 화학적 안정성을 얻기도 한다는 점에도 항상 주목하고 있다. 먼 옛날의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이 원자론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의 원소론을 통해 거론했던 정다면체들이 실제 나노세계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참고논문


O. Echt, et al, Physical Review Letters, Vol. 47, 1121 (1981)

H. W. Kroto, et al, Nature Vol 318, 162 (1985)

W. A. de Heer, Reviews of Modern Physics Vol. 65, 611 (1993)

J. Li, et al, Science Vol 299, 864 (2003)

A. Desireddy, et al, Nature Vol. 501, 399 (2013)

H, Yang, et al, Nature Communications, Vol. 4, 24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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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윤복원 미국 조지아공대 전산재료과학센터 연구원 (클러스터물리학)


* 이 글은 한겨레 11월6일치 '사이언스온' 지면에 싣고자 원고분량을 조절하기 이전의 원고입니다.

지면에 다 싣지 못한 자료그림, 참고문헌 목록과 함께 이곳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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