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해를 20살 청년 브릭과 함께 맞으며

  새해를 맞는 글 ①  


국내 생명과학계의 커뮤니티 '브릭(BRIC)'은 올해 20년째를 맞는다. 브릭과 함께 19년을 달려온 이강수 브릭 운영실장이 새해를 맞는 마음을 풀어놓는다.

00BRIC.jpg » '브릭'이라는 이름을 처음 선봰 현판식을 시작으로 19년 동안 브릭과 함께한 운영진과 과거 브릭 홈페이지의 모습을 담은 영상 모음. 출처/ BRIC



난해 5월 무렵, 가수 아이유가 ‘꽃갈피’를 타이틀곡으로 내건 음반을 발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추억의 흔적을 담은, 누구라도 오래전에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노래들을 리메이크 해서 만든 음반이었다. 수록곡 중에서 단연 인기를 끈 것은 산울림의 김창완과 함께 부른 ‘너의 의미’일 것이다. 꽤 오랫동안 음원 차트에서 상위에 올라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아이유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


“곧 브릭 20년째를 맞는 거 아닌가요? 20주년도 다가올 텐데 뭔가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브릭 운영진한테서 나온 말이 아니다. 평소 브릭을 아껴주시는 이용자 한 분이 몇 달 전 언젠가 뜬금 없이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브릭은 1995년 10월 과학재단 전문연구정보센터 중 하나로 지정돼 설립됐으며, 여섯 달가량 준비를 거쳐 1996년 5월 웹서비스를 시작했다.)


“헉!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그런데…, 20주년이 다가오면 뭔가 해야 하나요?” 모른 척 되물었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지나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찌 보면 20주년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할 뿐, 무슨 ‘의미 거리’나 되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무슨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나의 어설픈 꼼수는 “아이디어 좀 주세요~”라는 말로, 고민을 질문자한테 되돌려 보내는 것이었다.



2014 마지막 주말 내내 맴돌던 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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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은 브릭도 나도 유난히 바쁜 달이었다. 한쪽에선 매듭을 풀면서, 또 다른 한쪽에선 매듭을 다시 매야 하는 일로 분주했다. 그래서 풀고 또 다시 매는 일에서 잠시나마 도피하기 위해 2014년의 마지막 주말을 앞둔 12월 26일 금요일 오후 6시, 나는 “칼퇴근”을 결심한다.


이상하게도 금요일 오후만 되면 업무와 관련해 갑자기 급한 자료를 요청하는 전화나 메일이 들이닥쳐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묶여 있곤 한다. 그런데 지난해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아무곳에서도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다들 한 해를 잘 마무리 하라고 배려해주는가 보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상식적인 행동이 고맙다.


런데…, 오후 5시21분. 페이스북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사실 이메일은 제목과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 당장 열어보지 않을 선택권이 있다. 전화도 이런저런 핑계로 안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 메시지는 가까운 사람들의 네트워크라 완전히 무장 해제된 방식의 연락 수단이다. 페이스북 메시지의 붉은색 알림 숫자는 ‘어서 열어보라’는 유혹의 숫자이다. 무의식적으로 메시지 창을 열어본다.


의외의 공격이다. 자료 요청보다 더 강력한(!) 원고 요청이 들어왔다. 못 본 것으로 할 방법은 없을까? 몇 초 동안 잔머리를 굴리지만, 가까운 사람들의 네트워크라는 함정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 더구나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원고 요청의 고수다. 고수를 상대하려면 한 번의 승부에 집착하면 안 된다. 나도 언젠가 그에 상응하는 ‘괴롭힘으로 공격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야’라는 희망으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우스갯소리였지만, 사실 가까운 사람의 요청이라 거절하기 힘들었다기보다는 그가 요청한 그 원고의 글감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 거절할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라고 해야 하겠다. 주말 내내 나의 머릿속을 맴돈 주제는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다시 생각하는 브릭! 도대체 넌 나한테 누구냐?’였다. 그래, 내 인생의 19년을 채운 브릭의 지난 한 해, 그리고 브릭의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그래 그걸 써볼까?



사우나와 목욕의 차이, 그리고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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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우 ‘주관적인’ 차원에서 사우나와 목욕을 구분하곤 한다. 목욕은 몸을 씻기 위해 노동을 하는 행위이고, 사우나는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자 하는 행위라고 말이다. 이렇게 다른 두 가지이지만, 실은 장소도 동일하고 거기서 하는 행동도 거의 매한가지다.


요일 오전에 아들과 함께 사우나를 하는 것은 나의 일상 중의 작은 행복이다. 따뜻한 탕에 들어가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다 보면 몸의 피로보다 마음의 피로가 먼저 풀린다. 이때 생각의 틈바구니에서 걸려드는 아이디어들이 브릭의 서비스로 탄생하곤 한다.


브릭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참 쉴 틈 없이 돌아간 것 같다. 내가 사우나를 너무 자주 갔기 때문에 바빠진 것이라는 동료 운영진의 아우성도 있다. 사우나에서 탄생한 아이디어는 업무로 연결될 가능성이 많으니 틀린 말도 아니지만, 아우성에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주 토요일의 사우나는 편하지 못했다. 브릭의 1년이 매우 치열하고 바쁘게 돌아간 건 사실이지만, 마치 내가 싫어하는 목욕을 한 해 동안 동료 운영진한테 요구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매주 이 시간을 함께하는 아들놈도 사우나가 하기 싫은 숙제, 또는 목욕의 노동이라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4년 브릭 운영진에게 여유라는 삶의 빈 공간을 제공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기초체력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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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전 거의 10년 만에 배드민턴 라켓을 다시 잡았다. 매주 두세 번 정기적으로 모여 운동하는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한 뒤, 나는 왕년의 실력이 금방 회복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다시 잡은 라켓을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불어난 몸무게와 허약해진 체력으로 첫 달은 파스와 함께 살았고, 둘째 달은 정형외과의 물리치료를 받아가며 배드민턴을 치러 다녔다. 10년 이상 방치한 기초체력이 문제였다.


릭도 어느 부분에서는 비정상적으로 기초체력이 매우 약하다. 바로 운영비 부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운영비에는 무관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열심히만 하면 알아줄 것이고 운영비 지원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 순진한 자신감으로 버틴 것이다. 방심과 자만은 브릭을 점점 허약한 체질로 만들었고, 이는 연구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로 보답해야 한다는 우리의 역할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실력 있는 동료, 좋은 라켓만으로 나 자신이 배드민턴을 잘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이용자들이 있고 열정적인 운영진이 함께한다고 해서 브릭이 건강하게 잘 운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2014년은 어느 해보다 브릭의 기초체력 보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아직도 회복해야 할 부분들이 산 넘어 산이다. 브릭이 좀 더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더욱 탄탄한 운영비 기초체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2014년 브릭의 기초체력 증진을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함께 노력해준 운영진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정전…12시간 브릭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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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늘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매긴다는 것은 항상 부담스럽다. 브릭의 가치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기술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금액으로 환산해 전하는 뉴스를 보면 신기하다. 경제적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무형의 자산은 더더욱 난감하다.


난해 마지막 주, 소속 대학의 정전으로 12월 28일 일요일에 12시간 동안 브릭이 멈추었다. 브릭이 잠시 동안 사라진 것이다. 가끔 브릭이 사라지는 상상을 해보는데, 일요일 정전 동안에 브릭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니 좀 더 애틋함이 더해진다.


10년 넘게 거의 매일 함께 지낸 친구이자 동료 같은 브릭이지만, 늘 함께하여 소중함이 둔감해진 것은 아닌지. 브릭은 나에게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어릴 적 프라모델 장난감을 아들에게 사준 적이 있다.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아들 녀석은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장난감이 싫은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아 서운했다. 그런 아들 녀석이 조금 크고 나니 프라모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프라모델로 나오니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인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프라모델을 아들과 함께 만들며 일요일 오전 시간을 보냈다.


호기심은 경계의 벽을 넘어서게 하고, 흥미는 관심과 애정을 만들게 하고, 재미는 삶 속에 녹아내리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브릭은 나에게 호기심과 흥미 그리고 재미를 준 첫 직장이다. 브릭에서 처음으로 이용자와 주고받은 전자우편의 신기함과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2014년 브릭이 연구자들에게 어떤 호기심과 흥미와 재미를 주었는지 궁금하다. 무한한 신비와 탐구의 대상인 생명과학의 세계를 브릭이 잘 안내해 주었을까?



2015년: ‘브릭 몇 돌? 더 중요한 건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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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이 그렇게 좋아요? 가족들이 질투심으로 툭 던지곤 하는 말이다. 새벽잠에서 깨면 밤새 브릭이 탈나지 않았는지, 밤새 어떤 이야기들이 올라왔는지 살펴보고 안부를 묻는다. 누군가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행동을 10년 넘게 매일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이제 습관이 되어 버렸다.


나에게 브릭은 생명체이다. 구체적인 종을 묻는다면 ‘사이버 호모 사피엔스’라고 칭해도 될까? 인간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생명체에게 성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다.


2015년 새해, 브릭은 이제 스무 살 청년이 된다. 잘 성장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깟 지난 20이라는 숫자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20년이란 세월은 단순한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의미로 돌아볼 때 더욱 큰 가치가 있는 듯하다. 지난 시간 속에 많은 사건을 겪으며 단단하게 성장한 청년 브릭이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더욱 많다.


청년 브릭도 여느 청춘과 같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을 함께 가지고 있다. 새해 2015년, 브릭도 배우고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해가 바뀔수록 책임과 역할도 높아질 것이며, 도전과 실패 또한 반복될 것이다.


사람들은 365일마다 한 번씩 ‘새해’라는 시간적인 이벤트를 만들어 과거의 우리와 현재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우리를 구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 구분의 과정에서 새해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래도 다시 시작함을 뜻하는 ‘리부팅’과 같은 게 아닐까? 브릭도 2015년 새해를 맞아 리부팅을 하려 한다. 스무 살 브릭의 리부팅, 그 중심 키워드는 ‘초심’이다.


새해를 맞아 브릭은 ‘과학 전달자’로서 과거 20년 전 초창기 운영진들이 어떤 생각과 다짐으로 브릭을 탄생시켰을지 생각해 본다. 매년 거듭된 새해를 맞으며 브릭은 계속 변화해왔다.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초심의 끈이 약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반성과 함께 브릭의 존재 이유를 되새기며 새로운 다짐의 리부팅 버턴을 힘껏 눌러본다.


브릭 이용자분들께,

그렇지만 새해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유의 좋은 음악이 계속 나오길 기대하고, 아들과 함께 사우나를 하고 프라모델도 만들고 싶습니다. 파스를 붙이더라도 배드민턴을 치러 가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이른 아침이면 브릭을 통해 연구자 분과 만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한 해 동안 브릭을 이용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브릭을 통해 어떤 대가도 없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생각을 많은 동료 연구자들에게 스스럼 없이 나눠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15년도 을미년 새해! 소망하시는 바가 모두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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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강수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 운영실장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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