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새 이론·원리 쏟아낸 '30년 블랙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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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전쟁
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이종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떠들썩함은 짧았지만, 그 순간까지 이어진 1976년 이래 블랙홀 과학 논쟁의 역사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블랙홀 전쟁>은 호킹의 반대쪽에 섰던 미국 이론물리학자이자 끈이론의 대가인 레너스 서스킨드(71)가 논쟁의 시작과 우여곡절, 그리고 종결을 자신의 시선으로 정리한 책이다.




‘내 블랙홀 이론이 틀렸다.’ 2004년 7월21일, 혁신적인 블랙홀 이론을 개척하면서 널리 알려진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아일랜드에서 열린 한 국제학회에서 30년 가까이 이어진 ‘블랙홀 논쟁’에서 자신이 패했음을 인정하며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다음날치 국내외 언론은 스타 과학자의 과거 논쟁과 극적이며 용기 있는 항복 선언을 떠들썩한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호킹이 누구였던가? 잘 알려지지 않은 천체였던 블랙홀이 ‘온도를 지니며 에너지를 방출(복사)해 결국 증발한다’는 놀라운 이론을 세워 ‘블랙홀 과학’을 다시 쓴 권위자였는데, 그가 블랙홀 논쟁에서 졌다는 건 큰 뉴스였다. 논쟁의 승패를 두고서 그가 백과사전과 1달러를 걸었다는 애교 있는 내기도 화제가 됐다.


떠들썩함은 짧았지만, 그 순간까지 이어진 1976년 이래 블랙홀 과학 논쟁의 역사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블랙홀 전쟁>은 호킹의 반대쪽에 섰던 미국 이론물리학자이자 끈이론의 대가인 레너스 서스킨드(71)가 논쟁의 시작과 우여곡절, 그리고 종결을 자신의 시선으로 정리한 책이다.


논쟁을 촉발한 건 호킹의 ‘블랙홀 정보 소멸’ 학설이었다. 그는 ‘블랙홀에 빠진 모든 정보는 블랙홀 증발 때 함께 사라진다’는 놀라운 주장을 제시했는데, 이는 에너지와 정보 보존 원리를 위배해 현대 물리학의 여러 부분을 흔들 만한 것이었다. 호킹은 주로 중력이론(일반상대성 이론)의 관점에 서 있었고, 서스킨드와 다른 물리학자들은 양자이론의 관점에서 반격했다. 결국에 논쟁은 중력이론과 양자이론의 대결처럼 비쳐졌다.


책은 그 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사고실험과 이론, 그리고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작은 논쟁이 어떻게 물리학의 주요 개념을 흔들어 새로운 패러다임과 이론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는지 찬찬히 보여준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의 회귀불능점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과 실제로 빨려들어가는 사람에 따라 달리 경험된다는 ‘블랙홀 상보성 원리’, 그리고 3차원 실체도 결국에는 이를 둘러싼 2차원적 경계면에 박힌 정보 조각들이 투사된 것이라는 ‘홀로그래피 원리’ 같은 이론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블랙홀에 대한 재인식도 이뤄졌다. 블랙홀 안으로 빨려들어간 정보는 산산조각이 난다는 기존 인식에 반하여, 블랙홀 바깥에서 바라보는 블랙홀 의 파괴적인 모습과 블랙홀의 회귀불능점을 건너는 지점에서 바라보는 블랙홀의 평온한 모습은 모두 다 존재할 수 있는 상보적인 상태라는 인식이 등장하고 이는 여러 원리와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블랙홀은 모든 걸 집어삼킨다지만 그 논쟁은 오히려 새로운 이론을 뱉어내는 과정이었다. 서스킨드의 또 다른 책 <우주의 풍경>과 함께 이 책은 이론과 이론, 원리와 원리가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과학적, 수학적 개념들을 동원하며 벌어지는 이론물리학의 주요 논쟁이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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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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