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다윈의 호기심, 첫사랑, 주식투자...진화 지적여행

_올해의 과학책 - 7월 서평___

문지문화원 사이와 사이언스온 공동기획


00darwinold » 만년의 찰스 다윈. 출처/ Wikimedia Commons


charlesdarwin.jpg 찰스 다윈 서간집

기원: 진화론을 낳은 위대한 지적 모험 1822-1859
진화: 진화론이 던진 거대한 충격 1860-1870
찰스 다윈 지음, 김학영 옮김 | 살림 (전2권)


다윈은 일생 동안 2000여 명의 사람들과 1만5000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들은 다윈의 은밀한 생활을 엿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그의 지적 작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왔는지, 그는 어떤 사람들과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었는지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빅토리아 시기의 과학, 지식인, 사회상에 대해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스 다윈이 결혼을 하고서 정착해 살았던 영국 런던 동남부의 조그만 시골 마을 다운은 아름답다. 지금은 런던에서 지척이라 런던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만 다윈이 살던 19세기 중엽에는 훨씬 한적한 곳이었으리라. 그 마을에 사는 시골 신사 다윈의 하루는 일찍 시작했다.


해뜨기 전에 일어나 산책을 마친 다윈이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마치면 여덟 시 무렵. 그때부터 한 시간 반가량 공부를 하고 편지를 한 시간 읽는다. 가족들 사이의 편지는 부인 엠마가 큰소리로 읽어주기도 했다. 읽을 편지가 없으면 엠마는 소설책을 읽어준다. 다시 열 시 반부터 한 시간 반가량을 공부에 열중. 정오에 산책을 나서 개를 데리고 어슬렁어슬렁 온실에 키우는 식물들을 살핀다.


점심을 먹고 나면 두 시까지는 신문을 읽는다. 시골에 살지만 정치면을 주의 깊게 본다. 두 시부터 한 시간 가량 친지들에게 편지를 쓰고 세 시부터는 엠마가 읽어주는 소설을 배경으로 침실에 쉰다. 다시 네 시부터 짧은 산책을 한 번 더 하고 네 시 반부터는 다시 공부를 한다. 여섯 시부터 이런저런 글을 읽으면서 휴식을 하고 일곱 시 반에 저녁식사를 한다. 8시부터는 엠마와 주사위놀이, 책읽기 등을 하다가 엠마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침대 머리에서 엠마가 읽어주는 소설은 다윈에겐 훌륭한 자장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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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집에는 다윈의 일상 삶이, 사람의 숨결이…



스 다윈의 서간집을 읽으면서 그의 하루를 재구성해 본다. 먼 시간, 먼 곳에서 살았던 그의 삶이, 숨결이 가까이 다가온다. 이런 재미를 보려면 다윈의 서간집을 직접 읽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다윈은 일생 동안 2000여명의 사람들과 1만5000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 편지들은 다윈의 은밀한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그의 지적 작업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왔는지, 그는 어떤 사람들과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었는지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빅토리아 시기의 과학, 지식인, 그리고 사회상에 대해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영국의 우편 시스템은 다윈의 시대에도 훌륭하게 작동했다. 아침식사 무렵이면 어김없이 그날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 네트워크는 정확할 뿐만 아니라 방대해서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시절에도 자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만큼 편리하지는 않아도 그것에 많이 뒤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 그래도 오가는 데 하루 이틀 걸리는 편지는 이메일만큼 가벼운 이야기만 써서 보내기엔 무거워서 오히려 보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거르는 역할도 했다. 적당한 수준은 되어야 편지지에 옮겨졌을 터이니 쓰레기의 바다를 헤매는 수고를 덜어준 셈이다.


구체적으로 다윈의 편지들 중에 가장 큰 부분은 그의 작업과 이루어낸 사상의 궤적을 날짜별로, 그리고 순서별로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 워킹페이퍼들이다. 편지는 다윈이 자료를 모으고 동료들과 토론하고 자신의 성과를 알리는 중요한 도구였다. 그 밖에도 친구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지식으로서 다윈이 살았던 삶의 흔적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젊은 시절 품었던 곤충과 자연사에 대한 열정, 첫사랑에 대한 실연, 결혼 결심, 아이들에 대한 사랑, 일찍 세상을 뜬 딸에 대한 아픈 마음, 주식 투자와 재산 관리와 관련된 내용들이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과학자 다윈과 인간 다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윈이 편지를 주고받은 상대들인 찰스 라이엘, 아사 그레이, 조셉 달튼 후커, 토마스 헉슬리, 알프레드 월러스와 같은 당대의 과학자들, 그리고 외교관, 군인, 식민지 관료 등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자료의 보고이다(흥미롭게도 다윈이 같은 날 태어난 링컨으로 상징되는 노예해방을 지지한 증거들도 있다).


00darwindownhouse » 찰스 다윈이 살았던 집, 다운 하우스. 출처/ Wikimedia Commons

 


호기심 많은 어린 다윈, 과학열정 키운 청년 다윈



한 다윈의 편지를 통해 다윈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다윈은 눈에 띄는 식물마다 모두 이름을 알아내려고 했고 조개, 도장, 서면, 동전, 돌조각 따위를 모으는 수집벽이 있었다. 과일 서리를 하던 장난꾸러기 꼬마 다윈은 사냥, 낚시 등에 열중했다. 동네의 기숙학교에 다녔지만 거기서 배운 라틴어를 비롯한 고전 교육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형 에라스무스와 어울려 정원의 공구 창고에 화학실험실을 차려놓고 실험에 열중하는 일이 잦았다. 아니면 <세계의 불가사의> 같은 책들을 읽고 그 신기함과 놀라움에 빠져들었다.


집안의 기대는 할아버지, 큰삼촌, 아버지를 이어 다윈도 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윈은 별 뜻이 없었지만 에딘버러 대학으로 의학 공부를 하러 떠나야  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형이 모두 그곳 출신이라 입학은 수월했지만 다윈은 수업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특히, 마취제로 클로로포름이 사용되기 전이라 고통을 참아야 하는 환자들의 비명으로 가득찬 수술실은 끔찍했다. 그는 특히 피를 싫어해서 생각만 해도 치를 떨었다. 다윈은 고민했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아버지가 편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남겨 줄 것이라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는 두해 남짓 만에 의학 공부를 그만둔다. 다시 케임브리지의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는 그 공부에도 관심이 없었다. 케임브리지에서는 무엇보다도 딱정벌레에 열중했다.


열아홉 다윈을 딱정벌레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은 네 살 많은 육촌형, 윌리엄 다윈 폭스(1805-1880)였다. 함께 학교를 다닌 폭스와 다윈, 그리고 친구 몇몇은 어울려 다니면서 곤충을 잡았고 그것을 두고 열띤 토론도 했다. 그 시절, 다윈이 얼마나 딱정벌레에 열중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다윈이 오래된 나무껍질을 벗기다가 희귀한 딱정벌레 두 마리를 발견했다. 얼른 양손에 한 마리씩 잡았는데 다른 종류의 딱정벌레가 어슬렁거리며 등장했다. 다윈은 급한 마음에 한 마리를 입에 집어넣고 손을 뻗었는데 입 속의 딱정벌레가 독한 분비물을 내서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세 마리 다 놓쳤다.


딱정벌레에서 시작한 다윈의 관심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으로 폭이 넓어졌다. 다윈은 수십 년 간 생명과 환경을 연관 지어 사색하면서 새로운 종의 출현이라는 당시로는 혁명적인 생각을 했고 그 이유를 설명할 방도를 찾아냈다.



다윈의 일대기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사료



위대한 과학자 다윈의 일대기를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인 편지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가려 뽑아 정리한 책 두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다윈의 편지는 어렵지 않고, 어린 시절에 쓴 편지부터 나이 들어 쓴 편지까지 묶여 있어 어느 나이의 독자이든 자기에게 맞는 글을 찾아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원래의 책에도, 번역된 책에도 편지마다의 사정을 밝혀주는 친절한 주석이 달려 있지는 않으나 다윈의 글 자체만으로도 읽기에 즐겁다. 이달의 과학책을 선정하는 모임에서 지난달에 나온 과학책들을 검토하면서 선정모임에서 세웠던 기준에 걸맞는 국내 필자가 쓴 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고심을 했으나 위대한 과학자 다윈이 쓴 편지를 만나서 기뻤다. 언젠가는 이 땅의 과학자가 손수 쓴 이메일들을 뒤지면서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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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주일우 /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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