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임수,모른체,협력,경쟁.. 동물들의 인지능력

00wrass » 다른 물고기 주변을 배회하면서 기생충 제거와 같은 청소일을 도맡아 해주는 청소놀래기(사진에서 위쪽의 작은 물고기). 출처/ 동물과 인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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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인간 사이
프리데리케 랑게 지음, 박병화 옮김 | 현암사


침팬지와 원숭이부터 늑대, 개, 까마귀, 케아앵무, 미어캣, 쥐와 바다물고기인 놀래기와 곤충인 개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 종의 행동에 숨어 있는 인지 능력을 자신 또는 다른 연구자들이 벌였던 여러 실험과 관찰을 통해 현장감 있게 펼쳐놓았다. 갖가지 실험 장면을 담은 사진과 실험 장치의 설계도는 그런 현장감을 더해준다.






닷속 산호초 주변에 사는 작은 물고기인 청소놀래기의 능수능란한 속임수가 놀랍다. 독일인 인지생물학자 프리데리케 랑게가 <동물과 인간 사이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른 동물들의 사고방식에 대하여>에서 소개하는 그동안 동물 행동 연구에 따르면, 자리돔 같은 큰 물고기들의 몸에 붙어사는 기생충이나 상태가 나빠진 비늘을 청소해주는 ‘협력적인’ 놀래기들 중에는 더러 자리돔의 건강한 살점까지 뜯어먹는 놈들이 있다고 한다. 자리돔의 몸을 청소해주며 안심시키다가 어느 순간에 살점을 뜯어먹는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뒤따르는 여러 관찰 연구들에서는, 얌체 같은 청소놀래기가 있는 걸 아는 자리돔도 ‘성실한’ 청소놀래기를 만나기 위해서 제 몸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지 정보를 얻기 위해 몸을 맡기기 전에 여러 놀래기들을 관찰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놀래기만의 속임수 전략이 또 있다고 한다.


“연구진은 ‘속임수’를 쓰는 청소놀래기가 작은 고객과 협력 활동을 할 때 자신의 가슴지느러미로 고객의 등을 자극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이런 태도는 자신에게 흔쾌히 청소를 맡기지 못하고 망설이는 고객의 환심을사려고 하거나 속임수를 쓴 뒤 다시 고객에게 좋은 느낌을 주려고 할 때 나타났다. 만약 ‘속임수’를 쓰는 청소놀래기가 더 큰 고객을 유혹하려고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면 그 결과가 곧바로 나타나야 했다. 바로 이때 연구진은 청소놀래기가 앞선 고객을 지느러미로 자극한 후에는 일반적으로 다음 고객에게 훨씬 빈번하게 속임수를 쓰는 모습을 목격했다.”(133-134)


지은이 랑게는 이런 “전술적 유혹”은 “고도의 정신 능력을 요하는 흥미로운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개체에 잘못된 정보를 주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는 속임수를 쓰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며 시치미를 떼는 지능적인 행동들이 더러 동물들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인지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동물들도 나름의(인간과는 다른 차원의) 지능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은이 랑게는 책에서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더 소개하고 있다.


개코원숭이의 행동 습성에서도 여러 속임수들이 관찰됐다.


“또다른 일화도 있다. 난폭한 수컷 개코원숭이가 자신보다 어린 개코원숭이를 괴롭혔다. 어린 개코원숭이의 비명 소리를 들은 수컷 여러 마리가 어린 개코원숭이를 도와주려고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개코원숭이를 괴롭히던 수컷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는 개코원숭이가 적을 발견했을 때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다른 성체 수컷들도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며 말썽꾼 개코원숭이에게 벌을 주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물론 적은 없었다.”(154)


개코원숭이는 ‘고도의 속임수’를 행한 것일까? 지은이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동물이 속임수의 의미를 실제로 이해하고 행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우연한 경험들에서 학습한 것인지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치미 떼기는 까마귀의 행동 습성에서 관찰됐다.


까마귀는 매우 높은 지능을 지닌 새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그만큼 기억력도 뛰어나다. 먹고 남은 먹이를 어딘가에 숨겨두었다가 며칠이나 지난 뒤에도 찾아와 먹이를 꺼내먹기도 한다. 그런데 까마귀들은 자신이 숨겨놓은 먹이만을 찾아먹는 게 아니라 남이 먹이를 숨겨놓은 장소도 기억해두었다가 몰래 먹이를 꺼내먹기도 한다. 다른 까마귀가 먹이를 숨길 때에 유심히 관찰해두었다가 나중에 훔치는 것이다. 당연히 먹이를 숨기는 까마귀는 다른 까마귀가 훔쳐보고 있지는 않는지 경계하는 습성을 보인다는 관찰 연구도 보고된 바 있다. 또한 먹이 장소를 몰래 지켜본 까마귀는 자신이 먹이를 숨겨놓은 장소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 시치미를 떼는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약탈자[훔쳐먹는 까마귀]는 종종 먹이를 숨기는 까마귀를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또 숨긴 곳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런 까마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른 까마귀가 먹이를 쉼기는 모습을 훔쳐보다가 주인이 사라지면 곧장 은닉처로 접근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곳을 얼쩡거리는 척하다가 일단 자리를 뜬 다음 주인이 사라졌을 때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기도 한다.”(168-169)


동물 행동 실험에서는 먹이를 숨겨 놓은 까마귀와 이를 지켜본 까마귀를 나중에 숨겨진 먹이가 있는 곳에 동시에 풀어놓으면 몰래 지켜봤던 까마귀가 서둘러 숨겨진 먹이를 찾아먹으려고 경쟁하지만, 몰래 지켜본 까마귀와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제3자 까마귀를 동시에 풀어놓으면 지켜봤던 까마귀는 숨겨진 먹이를 천천히 여유 있게 찾아먹는 습성이 관찰됐다.


그러니까 이것은 까마귀가 ‘내가 아는 걸 너도 알고 있다’거나 ’내가 아는 걸 너는 모르고 있다’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의 인지 여부를 인지해 그에 걸맞는 경쟁이나 협력 같은 행동 전술을 짤 줄 아는 것은 원숭이 종한테서도 여러 실험에서 확인되었다고 한다.



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러 생물체들이 집단행동 또는 합동작업을 하는 '협력'은 동물 사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행동들이다. 동물의 협력은 단순해보일 수도 있지만, 지은이 랑게는 이 책에서 협력은 우정, 관용, 서열 같은 여러 요소들이 뒤섞여 매우 복잡하게 나타나는 인지 행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협력이 필요한 때와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때를 구분하고, 공동 작업에서 자신의 역할과 몫을 스스로 맡으며,  집단 내에서 나이와 서열을 고려해 행동하는 복잡한 경우의 수가 동물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력은 높은 인지 능력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혈연, 친척을 우선해 돕는 일이나 뚜렷한 보상이 없는 데도 동료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며 서로 돕는 일은 여러 동물의 사례에서 발견된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인상적인 예를 보면, 먹이를 구해 동굴로 돌아온 흡혈박쥐 암컷은 먹이를 찾지 못한 동료를 위해 사냥감에게서 빨아들인 피를 토해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자기 무리의 생존을 위한 상호이타주의 행동으로 보인다고 지은이는 전한다.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협력자를 구하는 행동도 영장류에서 발견된다. 이 때에도 매우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두 마리 이상의 동물이 공동의 적을 상대로 동맹을 맺을 때는 협력자를 잘 골라야 한다. 예를 들어 적과 친하거나 혈통이 같은 상대를 협력자로 선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일정한 적에게 대응하기 위해 협력자를 선발하고자 하는 동물은 적이나 잠재적인 협력자와 자신의 관계를 파악해야 하고 적과 협력자 사이의 잠재적인 관계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120마리가 한 집단을 이루는 경우에서 세 마리씩 관계를 맺는 경우의 수는 16만 건에 이르렀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복잡한 세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억력이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보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이를 꼼꼼하게 고려해야 한다."(34)


그러나 사람의 눈에는 이타주의적인 협력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이기적인 행동이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앞에서 소개한 청소놀래기는 큰 물고기의 몸 청소를 돕기도 하지만 청소하는 도중에 몸의 살점을 뜯어먹는 행동도 보여준다. 또 자기 무리의 안전을 위해 사막 한 복판에서 몸을 곧추세운 채 꼼짝하지 않고서 혼자 경계 보초를 서는 미어캣의 경우도 자기 무리를 돕는 헌신적인 협력 행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 미어캣은 미리 봐둔 은신처 부근에서 보초를 서면서 약탈자가 접근할 때 동료들한테 경계 울음을 내고는 누구보다 먼저 은신처에 숨는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무조건적 헌신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00crow » 동료의 시선을 따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까마귀. 염소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다른 동물의 시선을 좇는다는 사례가 많이 보고되었다. 출처/ 동물과 인간 사이



일인 인지생물학자이자 현재 오스트리아 빈대학에 있는 프리데리케 랑게 박사가 쓴 책 <동물과 인간 사이>는 동물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여러 인지 능력과 행동 전략들을 쉽게 풀어쓴 실험과 관찰 보고서이다. 침팬지와 원숭이부터 늑대, 개, 까마귀, 케아앵무, 미어캣, 쥐와 바다물고기인 놀래기와 곤충인 개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 종의 행동에 숨어 있는 인지 능력을 자신 또는 다른 연구자들이 벌였던 여러 실험과 관찰을 통해 현장감 있게 펼쳐놓았다. 갖가지 실험 장면을 담은 사진과 실험 장치의 설계도는 그런 현장감을 더해준다.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루트비히 후버 교수가 이 책의 앞부분에 실린 추천사에서 썼듯이, 지은이 랑게는 ‘동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낄 줄 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동물과 인간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지은이의 숨결은 ‘동물도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할 줄 안다’는 감상도 아니며 ‘인간은 동물과 차원이 다른 사고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인간중심주의도 아니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그저 호기심 많은 관찰자이다. 관찰 대상의 특징을 세심하게 살피며 기록하는 꼼꼼한 관찰자이다. 또한 지은이는 야생 관찰과 실험 관찰에서 얻어진 결과를 과연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동물 자신의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반문하는 절제 있는 과학자이다. 여러 대목에서 지은이는 과학자로서 독자들한테 단정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새로운 물음을 던져준다. 동물들은 지능적인 행동을 스스로 의식하며 행동했을까? 동물이 보인 통찰은 단지 시행착오와 반복을 거친 경험에서 생겨난 습관은 아닐까? 동물의 지능적인 전략은 인간의 관념에서 그렇게 이해될 뿐은 아닌가? 실험 설계에 인간 관찰자의 선입견이 투사된 것은 아닐까?


야생에서 관찰하려는 동물의 행동이 나타날 때까지 이어지는 인내의 기다림, 야생 동물과 오랜 동안 스스럼 없이 사귀며 동물 관찰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능수능란한 여유, 정말 알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은 끝에 고안됐을 법한 기발한 행동 실험의 설계들…, 이런 것들이 이 책에서 동물 연구의 현장감을 더해준다.


00parrot » 통찰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케아앵무에게 먹이가 달린 끈을 잡아당기는 실험 과제가 주어졌다. 놀랍게도 케아앵무는 수단과 목표의 상관관계를 인식하고 한번이 문제를 해결했다. . 출처/ 동물과 인간 사이


러 실험과 관찰 사례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법한 동물들의 다양한 인지 능력들을 보여주기에 흥미롭다. 예컨대 먹이를 묶어 늘어뜨린 끈을 부리와 다리를 써서 잡아당겨 먹이를 먹을 줄 아는 케아앵무는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단계적 수단들(부리로 잡아당기기, 당겨진 끈을 다리로 붙잡아두기, 다시 부리로 끈을 더 당기기)이 먹이 먹기라는 목적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자 씻는 요령을 오랜 동안 자기 집단 안에서 전수해온 일본 짧은꼬리원숭이나 다른 원숭이들의 또다른 습성은 집단을 이룬 동물 세계에도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둘기는 실험에서 남자와 여자의 사람 얼굴을 식별해 구분할 줄 아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비둘기가 나름의 범주화 인지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실험들에서 원숭이나 까마귀 같은 동물은 상대방이 무엇을 알고 있거나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높은 인지 능력을 보여준다고 이 책은 전한다.


추천의 글을 쓴 루트비히 후버 교수의 다음 글이 이 책이 보여주려는 바를 잘 설명해준다. “동물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과 같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삶[생명]이라는 커나란 나무의 나뭇가지 끝에 자리한 작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00dove » 비둘기는 판별과 범주화 영역에 관한 실험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같은 사진을 인식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서 비둘기가 터치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동물과 인간 사이





잠 • 깐


00bookwhy


최근에 나온 미국 발달심리학자 마이클 토마셀로의 번역서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 -인간은 왜 협력하는가>(허준석 옮김, 이음 펴냄)는 미리 설정된 실험들에서 나타나는 여러 행동을 관찰해 인간과 다른 영장류의 인지 능력, 특히 이타적 협력 행동을 비교·분석한 책으로서 눈길을 끈다. 물론 인간에게도 이기심이 크지만, 인간의 이타성과 협력은 다른 동물에 견줘 매우 뛰어나며 아마도 타고난 특성인 것으로 보인다는 게 책의 뼈대이다. 인간만의 이타성과 협력이 바탕이 되었기에 인간의 사회 제도와 문화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즉 이타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별한 특징이라는 주장이다. 여러 흥미로운 행동 관찰 실험의 결과들이 이런 주장의 주요 논거로 제시된다. 책 말미에 인류학·심리학·사회학 분야 석학 4명의 논평과 옮긴이의 깊이 있는 해제가 함께 실려 있다.










책 • 갈 • 피 •• 동 • 물 • 과 • 인 • 간 • 사 • 이





과학자가 동물의 지능을 연구하는 이유는 결국 인간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이 동물보다 특별한 존재인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어느 정도나 동물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도 동물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동물의 정신적인 능력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인간 능력의 진화에 대해서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1)


(헤른슈타인과 러브랜드의) 실험은 비둘기에게 복잡한 그림을 분류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둘기는 나무가 그려진 80장의 그림과 나무가 없는 80장의 그림을 구분했다. …(루트비히 후버) 연구진은 비둘기에게 남자 50명과 여자 50명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었다. 배경은 모두 같았고 머리카락이 지워진 채 얼굴만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운 과제였다. 그럼에도 비둘기는 남자와 여자의 얼굴을 구분해냈다. 비둘기가 이 과제를 해결하고 난 뒤 똑같은 얼굴이지만 아주 흐려진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비둘기는 또다시 얼굴을 구분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결과였다. 하지만 똑같은 얼굴로 된 흑백사진을 보여주자 이번에는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비둘기는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 약간씩 다른 색조를 지녔다는 것을 판별한 뒤 그 색깔 차이로 얼굴을 구분했던 것이다. (54-55)


개코원숭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서열이 높은 개코원숭이는 위협적인 소리를 내면서 상대를 공격하고 공격을 받은 개코원숭이는 비명을 지른다. 다양한 분석과 연구를 거친 결과 이 울음소리는 개별적으로 구별이 가능하며 같은 집단 내의 원숭이들도 이 울음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재생실험을 위해 이 울음소리를 이용했는데 먼저 서로 다른 개코원숭이의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컴퓨터 작업으로 다양한 울음소리를 연출했다. 그리고 확성기로 실험 대상인 몇몇 개코원숭이에게 이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개코원숭이들은 각각 3일에 걸쳐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1. 가족 내의 서열 관계를 뒤바꾼 소리. 예를 들어 '이모 엠마'는 이제 '자매 마틸데'보다 서열이 높지 않다. 말하자면 마틸데가 가족 내에서 서열이 더 높으며 집단 내에서도 똑같이 받아들여지도록 했다. 이를 위해 들려준 소리는 마틸데가 위협하고 엠마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
2. 두 가족 간의 서열을 뒤바꾼 소리. 서열이 높은 가족 A의 개코원숭이가 비명을 지르고 서열이 낮은 가족  B의 개코원숭이가 위협을 가하는 소리였다.
3. 원래의 서열을 반영하는 소리. 이것은 서열이 높은 가족 A의 개코원숭이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낮은 가족 B의 개코원숭이는 비명을 지르는, 평소와 다름없는 울음소리였다.…

....실험결과는 동물도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울음소리를 구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가족 간의 서열이 교체되었다는 울음소리를 들은 암컷 원숭이는 가족 내에서의 서열 교체를 나타내는 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현재의 계급 질서와 일치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거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 개코원숭이는 가족 집단 내의 계급 질서를 재분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 안에서의 관계와 다른 가족 간의 관계를 질적으로 다르게 이해했다. (66-68)


개 지능 실험에서 밝혀진 흥미로운 결과들 중에는 개가 터치스크린 실험 방식을 즐긴다는 사례도 있다. 개는 원래 컴퓨터로 작동하는 개 실험실에만 들어오게 되어 있다. 개가 실험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먹이 때문만은 아니며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깊은 관심을 지녔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매우 긴장을 할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기르던 개가 실험을 마친 다음 날 “지쳐서 하루 종일 잠을 잤다”고 말하기도 했다. (73)


원숭이가 전통을 만들 수 있다는 첫 번째 증거는 1950년대 중반 일본에서 짧은꼬리원숭이가 감자 씻는 능력을 어떻게 전파하는지 관찰하면서 발견됐다. 이 관찰에서 새끼 원숭이들은 어미뿐 아니라 다른 어른 원숭이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 어린 짧은꼬리원숭이는 모두 감자를 씻을 줄 알게 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의 꼬리감는원숭이(카푸친원숭이)도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손에 입을 맞춘다거나 손가락이나 귀, 꼬리 빨기, 그밖에 다양한 놀이 등 집단이나 무리에 따라 특별한 행동 방식이 발견된 것이다. (92-93)


갤리프와 동료들이 연구한 두 번째 핵심 사항은 쥐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 서로 학습하는가라는 문제였따. 흔히 사람들은 쥐가 다른 쥐를 병들게 한 먹이를 먹지 않기 때문에 독이 든 미끼로 쥐를 유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일까? 여러 차례 실험을 거친 결과 병이 든 시범 쥐와 함께 행동한 쥐는 시범 쥐가 먹은 먹이를 피하기보다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쥐를 병들게 한 먹이의 부정적인 요소를 학습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복통을 일으키는 먹이를 피하도록 학습한 쥐도 동종에게 아무런 경고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런 경험이 없는 쥐가 그 먹이를 먹지 못하도록 흔적을 남기지도 않았고 그것이 발견된 장소에 표시도 하지 않았따. 결국 쥐는 다른 동료가 갔다 온 곳에 있는 먹이를 아무런 의심 없이 선택한 것이다. (99)


동물의 세계에 내재된 ‘전통’을 해명하려는 또 다른 실험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집단에 속해 있는 한 동물이 막대를 사용해서 획득할 수 있는 먹이를 발견한다. 다른 동물은 이 동물이 먹이에 접근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먹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관찰 학습을 한다. 이들이 막대를 성공적으로 사용할 때마다 보상 먹이를 주면 결국 이들은 행동 방식을 고착시킨다. 우연히 다른 동물이 막대를 사용하는 것보다 앞발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이들은 더 복잡한 방법을 고수할 것이다. 그 이유는 집단 대부분이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보상을 통해 강화된 일종의 습관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 행동 구조는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들 자신에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집단의 기준에 순응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지학적으로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107)


인지생물학자라면 당연히 대상에 자신의 직관이나 주관을 투사하고 싶은 유혹에 맞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종종 동물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왜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지 안다고 너무 성급하게 생각한다. 이런 직관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그들의 생각을 읽고 감정에 동화할 수 있는 인간 특유의 --하지만 이 책에서 볼 수 있는듯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능력에서 비롯한다. 그러면서 일반화를 거쳐 별 뜻 없이 자신이 히해한 것을 자주 동물에게 투사한다. 하지만 동물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과 같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삶이라는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 끝에 자리한 작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8, 인지과학자 루트비히 후버가 쓴 ‘추천의 글’)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동물의 지능을 연구하는 동안 내가 느꼈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또한 나는 동물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고 특정 사물에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는지를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다. 우리와 함께 이 세계를 공유하는 생물체는 절대로 어리석지 않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와 공존하는 동물들의 학습 태도와 관련해서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2-13, 지은이의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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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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