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반도 지질에 숨은 자연사의 도도한 이야기

_올해의 과학책 - 6월 서평___

문지문화원 사이와 사이언스온 공동기획


00book » 십억년 전 따뜻하고 얕은 바닥에 살던 광합성 세균의 집단 서식지 스트로마돌라이트 화석.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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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자연사 기행
조홍섭 | 한겨레출판사


그렇다. 수억 년 동안 지속된 자연의 역사(役事) 앞에 인간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은 마술과 신비 그리고 모호함을 걷어내려고 과학을 통해 자연에 육박한다. 이미 자연의 위대함은 그 자체로 과학을 넘어서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자연사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하는 진솔한 인간사가 아닐지 모르겠다.
 




색다른 답사 여행



이번 여름은 오랜 장마와 폭우로 고통스럽기조차 하다. 역사학자로 답사를 할 만큼 했다는 나에게 얼마 전 한반도의 아름다움을 기행한 한 권의 책이 배달되었다. <한반도 자연사 기행>은 비에 지친 내게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책의 저자가 자연과 환경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취재한 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허언이 아니었다. 일단 저널리즘과 전문학자의 중용을 잘 이루어낸 저자의 내공에 놀랐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렇게 깊은 내용을 쉽게 쓰기 어렵다. 또 학자들이란 재미있게 쓰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일반인이 접하지 못할 과학계의 연구 동향을 여행기를 빌미로 잘 버무려 소개한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 한 권으로 최근의 지질학 및 고생물학의 연구 성과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상 제목만 보고 서평을 승낙한 뒤에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가장 먼저 든 깨달음은 이 책이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수백 년 인간사조차 벅찬 나에게 기본이 수십만 년이요 조금 더 하면 억만 년을 오르내리는 한반도 자연사는 버거움 그 자체였다. 이 서평은 전문가의 그것이 아니라 문외한의 독서감상기라는 편이 정확하다.



변하지 않는 자연



동아시아의 전통 속에서 자연은 시간의 대상이 아니었다. 시간은 인간과 관련지어 인식되었으며 자연을 상상하는 조건이 아니었다.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던 공자는 자연의 탄생과 관련된 억측들을 제거하고자 했으며, 불교가 강조하는 억겁의 세월 또한 인간세상의 유한성을 각성시키는 개념이었다. 자연은 유구하고 변함없는 ‘항상성’의 상징으로 유한하고 변화무쌍한 인간세상과 대조되었다.


물론 자연의 변화가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았다. 중국 송대의 주희는 ‘일찍이 높은 산에 올라 소라와 조개껍질이 박혀 있는 돌을 발견하곤 했는데 이 돌은 옛날 흙이고 소라와 조개는 곧 물 속의 동물이니, 낮은 것이 변해서 높게 되고 부드러운 게 강하게 되는 이치를 증거할 수 있다’고 말하여 지각 변동과 화석의 생성을 자연의 역사로 읽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자연을 시간의 대상으로 삼아 상대화하지 않았다. 자연은 태초의 모습 그자체로 원래부터 그러한 것, 이름 그대로 처음부터 그러한 것[자연]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돌이란 수토(水土)의 기가 엉켜서 이루어진 물건으로 바야흐로 수토가 뒤엉킬 즈음에 소라와 조개가 그 사이에 섞임은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으나, 이 소라와 조개가 높은 산에 있다는 것은 반드시 소라와 비슷한 한 물건이 산 위에 생겨나는 것이고 바다의 소라와는 다른 것이리라.  만약 일찍이 바다 속에 있던 것이 변해서 높은 산에 생겨나게 되었다면 나는 결코 그렇지 않을 줄로 안다’고 했다.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우주의 탄생 이후 자연이 쉬지 않고 ‘변화’했다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자연을 상대화하기 위해서는 ‘변화하지 않는 자연’을 거부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을 위치시키는 일이 필수적이다.



시간 속의 한반도



이 책은 누구나 한번쯤 올랐을 북한산을 한반도 자연의 역사를 깨닫는 첫 관문으로 삼는 기지를 발휘한다. 변함없는 북한산을 역사 속으로 던져 넣은 것이다.


첨단 장비를 이용해 밝혀진 북한산 화강암의 형성 시기는 약 1억7천만 년 전 중생대 쥐라기였다. 유라시아 대륙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한반도는 옛 태평양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파고드는 간접 영향을 받았다. 당시 격렬했던 지각 운동의 증거인 북한산은 한반도 탄생의 진통이 빚어낸 역사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나 같은 문외한들은 1억 년 전의 북한산 탄생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필자는 북한산의 침식토사가 서해안 백사장의 모래 또는 해안가 진흙이나 고령토가 되었다가 결국 조선시대 도자기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자연의 역사를 인간사와 연결짓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현재와 과거, 인간과 자연을 오가며 한반도 자연사를 설명하는 저자의 노력은 해돋이 구경으로 유명한 정동진에서도 그 힘을 발휘한다. 잘 알려진 정동진을 통해서 잘 모르는 동해의 탄생 비밀, 한반도가 솟아오른 과정을 설명한다. 해안가 배 모양의 리조트가 놓여 있는 평평한 언덕은 과거에는 파도가 치는 해변이었는데 해발 670m까지 융기하여 현재의 해안단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사 여행은 한반도를 오스트레일리아대륙과 연결하기도 하고 또 아열대 기후로 안내하기도 한다. 태백, 영월 지역의 삼엽충 화석이 중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통해 한반도가 오스트레일리아와 이웃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약 5억 년 전 영월의 김삿갓 계곡은 아열대 바닷가였음을 설명한다. 육지에서 쓸려온 모래가 바닷가에 쌓이고 먼 바다엔 가는 입자가 쌓여 조개가 서식하였는데 대륙의 이합집산에 따라 이 일대가 땅 속에 묻혔고, 후일 조개가 많던 지역에는 두터운 석회암층이 생기고 해안 습지와 평야의 양치식물은 석탄층을 이루어 우리에게 무연탄과 시멘트라는 선물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과학과 정치



저자는 자연 자체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역사와 연관시킨다. 수억 년 전 공룡시대에 한반도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지질학 연구가 한반도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획책이라는 북한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과학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많은 연구자들이 과학은 과학일 뿐이라면서도 한반도의 지질 상태가 가장 오랜 암석부터 최근의 암석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사실때문에 축복의 땅으로 자축하면서 일본 지질학자들의 시샘을 즐기곤 한다. 특히 울릉도와 독도처럼 영토분쟁의 대상을 설명하면서 과학은 현실과 더욱 밀접해진다. 독도의 생성이 동해 바다의 화산활동에서 생긴 것에 비해 오키섬은 일본 대륙붕의 연장이라 그 탄생과정이 전연 다르다는 구절을 읽다보면, 과학은 과학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치와 전연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 또한 들게 된다.


현존하는 위험들과 관련되면 과학이 바로 정치이다. 한국인에게 특별한 백두산이 백 년 안에 화산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필자는 폭발 가능성이 있는 백두산 화산활동을 한국 및 중국, 북한의 학자들이 공동 연구할 필요성을 제안한다. 화산재의 가공할 위험과 다량의 유독가스, 여기에 천지에 고여 있는 수십억 톤의 물 피해는 가공할 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적 문제로 북한과 중국 그리고 남한의 협동 연구가 난항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주 단층은 어떠한가? 최근 경주의 방사성 폐기장 건설에서 드러났듯이 지질의 안정성보다 지역 여론을 먼저 고려하는 정부의 정책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지질학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을 선정한 뒤에 사회적 수용 여부를 고려해야 하는데 일단 터부터 선정한 것이다. 중국 고대의 성왕으로 불리는 순 임금은 ‘학문처럼 위대한 설교는 없다’고 했다. 과학이 정치에 어떻게 개입해야할지 생각해 보게 하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한 생명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재미있는 이야기다. 인천 앞바다의 남조세균 스토리는 한 편의 공상과학(SF) 소설 같다. ‘인천의 소청도 해변에는 초록의 융단이 깔려 있었다. 남조세균은 강한 자외선을 막기 위해 점액을 뿜어냈다. 점막층에 주변의 퇴적물이 들러붙었고 여기에 세균이 배출한 탄산칼슘이 엉겨 시멘트처럼 굳었다. 남조세균은 햇빛을 향해 마치 아파트처럼 성장했다. 이른바 스트로마톨라이트다.’


원시 박테리아 이야기는 철광석 탄생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이어진다. 물에 녹아 있던 철 성분은 남조세균의 광합성으로 나온 산소와 결합하여 산화철 형태로 침전한다. 그리고 이런 산화철 덩어리들이 곧 오늘날의 철광석 산지가 되었다. 소청도로 우리를 실어 나르는 쾌속선의 ‘철판’에서 남조세균의 오래된 인연을 발견하는 저자의 상상력에서 과학은 인문학으로 융합되고 있었다.


공룡 이야기 또한 즐겁다. 생명체이기는 하나 상상하기 어려운 세균보다 상상하면 할수록 흥미진진한 게 공룡이다. 시화호 주변의 초식공룡 알의 발견이나 남부 지방의 백악기 공룡 발자국 화석은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또한 익룡이 한반도를 휘젓고 다녔을 상황을 상상하며 발자국 화석을 찾는 과학자들의 진지한 사진은 현장의 생동감을 전하는 데 충분하다.


특히 동굴 석순을 통해 고기후를 복원하는 연구는 수년 전 고기후 복원 연구에 참여했던 나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당시 수명이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과거의 기후를 복원하였다. 이 책에는 수백 개의 성장선이 있는 석순을 통해 과거의 건조한 기후를 복원한 연구를 소개하였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세계적으로 소빙기가 찾아왔는데 조선시대에도 이 기간 동안 극심한 가뭄과 홍수, 냉해 등이 빈발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자연의 무한감동



임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고경명은 무등산의 서석대[주상절리]를 보고 ‘천지개벽의 창세기에 돌이 엉키어 우연히 이렇게 괴상하게 만들어진 것인가. 귀신같은 장인이 조화를 부려 속임수를 다한 것인가?’라는 기행시를 남겼다. 나 역시 오래 전에 서석대에 올라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이 있다. 서석대의 비밀이 화산활동의 결과임을 알았다 해도 감동이 고경명과 다르지 않았다.


불암산을 예명으로 취한 최불암씨의 시비에는 ‘광대의 길에 들어서 염치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수억 년 동안 지속된 자연의 역사(役事) 앞에 인간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은 마술과 신비 그리고 모호함을 걷어내려고 과학을 통해 자연에 육박한다. 이미 자연의 위대함은 그 자체로 과학을 넘어서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자연사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하는 진솔한 인간사가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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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김호 / 경인교대 교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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