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첨단의술 발전해도 의료 질 저하' 불편한 진실
endo의 편지 :::
OECD, 한국 의료서비스 질 평가보고서를 읽고
의료과학기술 못잖게 의료체제 개선 관심 필요
막연히 운명은 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던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사람의 운명이 의료과학기술의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이기도 하다. 사진은 첨단 의료기술을 이용한 수술 장면으로, 이 글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는 자료 사진임. 한겨레 자료사진
의료과학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진단과 치료 방법이나 기술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생명을 각종 질병에서 구해내거나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어, 전 세계 국가들에서 평균 기대수명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여기에서 의료과학기술의 발전이란 의료 지식의 발전, 새로운 진단과 치료 장비, 기존에 없던 신약 개발, 새로운 수술방법 같은 의료서비스의 발전 등 의료서비스와 관련한 모든 과학기술의 발전을 뜻합니다). 18세기에 대략 40세이던 평균 기대수명은 현재 많은 나라들에서 80세 안팎으로 약 2배가 되었습니다. 막연히 운명은 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던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사람의 운명이 의료과학기술의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의료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명을 구하고 또한 수명을 늘리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대중에게 항상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과학기술의 발전이 의학적 관점에서 선의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혜택을 받는 사회의 다른 측면에서는 의료비 상승으로 인한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를 동반할 수도 있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딜레마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는 의료체계에서는 의료과학기술의 발전이 선의의 역할에 못잖게 사회악의 역할을 동시에 하기도 합니다.
‘의료과학기술 최고’ 미국에 숨은 굴욕적 사실
2007년 8월12일치 미국 일간신문 <뉴욕 타임스>는 당시에 부시 미국 대통령과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 같은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 보건의료체계가 세계 최고라는 망상을 품고 있다는 오피니언 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미국이 의료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병원 수준의 시각일 뿐이고 실제로 미국인들이 그런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것은 아님을 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국민이 그 나라의 의료서비스 혜택을 질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잘 받고 있는지를 비교평가 할 때에 쓰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 중 하나가 평균 기대수명입니다. 2012년 기준으로 미국 중앙정보국(CIA) 통계자료에 나타난 미국의 기대수명은 78.49세로서 세계 50위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79.30세로 세계 41위인 한국보다도 낮습니다.
이렇게 의료 분야에 대한 지출이 세계에서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과학기술을 지닌 미국의 기대수명은 선진국으로서는 굴욕적인 수준입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이런 굴욕적 평균 기대수명을 국민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려 왔습니다. 의료서비스의 질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건강을 돌보지 않는 개인의 의료 외적인 생활방식 때문에 평균 기대수명이 낮다는 근거를 찾는 데 노력이 집중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표적으로 지목된 개인적 책임은 흡연과 비만, 교통사고, 자살 등입니다. 국민 개개인에게 책임 소재가 있는 이런 요인들에 의해 조기 사망자 수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많기 때문에 평균 기대수명이 낮다는 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미국 보건단체인 커먼웰스펀드(Commonwealth Fund)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미국 콜럼비아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는 이렇게 국민 개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던 전통적인 시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1975년부터 2005년까지 45~65세 남녀의 15년 생존율을 선진국 13개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니, 미국의 평균 기대수명이 낮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미국 보건의료체계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비교 대상국들보다 평균 기대수명이 낮은 이유로 흡연과 비만 등과 같은 보건의료체계 이외의 요인을 비교분석 했지만 그런 수준으로 평균 기대수명에 차이가 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에 평균 기대수명과 가장 큰 연관성을 지닌 것은 비교 대상국들의 보건의료체계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질의 차이였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낮은 평균 기대수명은 세계적 수준의 의료과학기술 서비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보건의료체계를 지닌 결과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콜럼비아대학 연구진의 이런 결론은 거의 반론의 여지 없이 과거 다른 자료들에서도 뒷받침되었고, 또한 이후 자료들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2007년에 미국 의회 연구보고서는 이미 미국 의료서비스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우수하다는 연구결과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부분을 논외로 해서 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들만 고려하더라도 미국민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있습니다.
2011년 OECD의 보건의료 질에 대한 지표 보고서도 역시 같은 결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보건의료체계는 고비용 의료서비스 중심으로서 불공평한 의료서비스가 고착화해 있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질이 낮아져 평균 기대수명을 낮춘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cKinsey Global Institute: MGI)도 미국 보건의료체계의 약점으로 평균 기대수명의 문제를 지적해 왔습니다. 비록 평균 기대수명이 전적으로 보건의료체계에 의존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지표로서 미국의 굴욕적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료과학기술의 딜레마’를 좌우하는 것은 의료체계
미국이 병원 수준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굴욕적인 평균 기대수명을 지닌다는 사실을 볼 때에, 의료과학기술의 수준과 실제 공급되는 의료서비스의 질 사이에는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원인이 다름 아니라 의료체계에 있다는 것도 입증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의료과학기술 발전의 딜레마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의료체계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근원적으로 의료과학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의료비 상승이라는 현상을 동반합니다. 이 때문에 의료체계에 대한 적절한 간섭이 없다면 의료비 상승으로 인한 의료서비스 질의 저하라는 딜레마에 빠지는 필연적 과정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의회 예산국에 따르면 미국 의료 비용 증가분의 약 절반은 의료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새롭게 가능해진 새로운 의료서비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의료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일부 가격 하락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가격을 상승시킨다 것은 반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지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의료과학기술에 변화가 없다고 가정할 경우,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장기적으로 늘려가더라도 그에 따른 의료 비용의 장기적 증가 추세는 전체 의료비용의 증가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10% 내외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회 예산국의 분석결과에서 나타난 의료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약 50%의 비용 증가를 고려하면 상당한 충격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의료체계가 이런 비용 증가의 충격을 적절히 흡수하지 못하고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세부 요인들로는 대체로, 통제되지 않은 행위별 수가제, 부적절한 의료보험 제도, 그리고 일차 의료서비스의 부족으로 인한 전문의 의존도 심화 등이 지적됩니다. 이런 요인이 새로운 의료과학기술 혜택의 분배를 왜곡하고 방해하여 결국 전체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규명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로 저소득층을 위주로 의료 불평등이 발생하고, 또 한편으로는 치료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의 의료서비스 질은 높이고 치료 비용이 적게 드는 분야의 의료서비스 질은 낮아지게 하여, 전체적인 의료서비스 질의 저하를 가져오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미국 의료서비스와 의료제품에 대한 가격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도 새로운 의료과학기술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의료비용 지출 수준이 높다고 결론을 내린 미국 의회 연구보고서로도 뒷받침됩니다.
OECD의 한국 의료서비스 평가보고서
지난 2월27일 OECD는 일부 회원국들의 의료서비스 질을 평가하고 권고하는 시리즈 작업의 첫번째로 한국 의료서비스 질에 대한 평가와 권고가 담긴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 보고서 내용에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 의료체계가 실패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또한 의료과학기술 발전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들을 현재 한국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고 OECD가 지적했다는 것입니다. 행위별 수가제의 문제나 일차 의료서비스의 미비, 만성질환 의료서비스 문제 등 많은 부분이 한국의 경우에도 그대로 지적되거나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OECD 보고서에서 한국의 단일 건강보험제도가 강점으로 부각되었지만 사실상 미국보다 더욱 심각할 수도 있는 숨겨진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2011년 OECD 국가들의 건강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의료 비용 지출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OECD국가 중에서는 슬로바키아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이 증가했습니다. 가계 소비지출에서 의료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34개 국가중 5번째로 높았습니다. 그만큼 한국민들은 의료 비용에 대한 실질적 가계 부담을 많이 지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단일 국민건강의료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한국인은 높은 비중의 의료 비용을 직접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의료 비용에 대한 정부의 부담이 칠레, 미국, 멕시코 다음으로 적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의료비용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담은 58%이고 국민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 32%입니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정부 부담율이 72%임을 감안하면 한국 의료체계는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국민에게 부담을 많이 전가하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결과 새로운 의료과학기술에 속하는 의료서비스일수록 환자의 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므로 새로운 의료과학기술에 의한 과잉 진단 및 치료 문제와, 역으로 방어적인 진단 및 치료 문제가 공존하게 되고 환자와 의사 간의 불신감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역할 부족을 의료서비스 공급자와 환자들 사이의 문제로 만들어 의료서비스의 질 논란을 만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의료체계가 인구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치료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OECD의 권고에 심각한 숙제를 안겨주는 데 있습니다. 의료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기대수명이 높아지는 반면에 고령화로 인한 만성질환자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지만 높은 환자 비용 부담은 다시 그러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는 정확한 측정은 가능하지 않을지라도 어느 정도 한국의 평균 기대수명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의료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비용 증가를 국민에게 전가한 결과는 이번 OECD의 한국의료서비스 질에 대한 평가 내용에 의료 비용 지출의 증가가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의료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고 이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빠른 의료과학기술 발전은 동시에 그만큼 빠르게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상승시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의료서비스는 더욱 전문화할 것이고 진단과 치료에 첨단기구를 사용하는 일이 증가될 것이며, 새로운 기법의 유전자 분석처럼 기존에 가능하지 않았던 새로운 각종 과학적 검사에 많이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자료의 양이 증가함으로써 자료 해석에 더욱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최신 의료과학기술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습득해야 하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은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반면에 의료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부담이 적을수록 새로운 의료서비스에 대한 사용을 증가시켜 기대수명을 늘리고 생활의 질을 높이게 됩니다. 환자 중심 의학의 패러다임에 의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이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며, 환자의 의료비용 절감을 위해서 기존의 저렴한 의료과학기술과 고비용의 새로운 첨단 의료과학기술 사이에 비교효과분석(Comparative Effectiveness Research)을 근거로 한 선택적 사용 문제 또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입니다.
서로 상충하는 이런 딜레마를 풀려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와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는 국민의 책임을 둘러싼 갈등의 문제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이에 앞서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부분을 책임지는 의료체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을 우선해야 합니다. 의료 혜택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대체의학이나 사이비 의료서비스에 현혹되어 인명 손상을 입거나 경제적 손실을 입는 것조차 국가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주요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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