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진의 "문학 즐기는 과학자의 요즘 과학 산책"

통계학을 통해 과학을 다루며 틈틈이 문학 활동도 즐기는 고대진 교수가 생물의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해 요즘 과학의 이야기를 찬찬히 전한다. 그의 이야기엔 간간이 문학 이야기가 섞인다. (예전에 틈틈이 썼던 글을 보강해 다시 쓰거나 새 글을 씁니다)

세포자살: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세포 죽음의 프로그램을 밝히는 유전자와 텔로미어 연구들


00apoptosis3.jpg » 실험실에서 유도된 세포자살 과정(왼쪽→오른쪽)의 영상.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Apoptosis_DU145_cells_mosaic.jpg


람 같은 다세포 생물은 세포가 모여 형성된 일종의 ‘세포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단세포 수정란에서 시작해 분열하고 또 분화해 여러 가지 복잡한 기관을 지닌 약 100조(10에 14승)개의 세포가 이루는 사람이라는 ‘세포사회’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세포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세포가 분열해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것만으로는 다 설명될 수 없다. 우선 세포들이 분화하여 눈, 코, 입, 살갗, 심장 등 기관을 이루어야 하고 또 만들어진 기관끼리 상부상조하며 거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포는 끊임없이 증식도 해야 하지만 또한 소멸도 해야 한다.

  

세포의 소멸, 즉 세포의 죽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괴사’ 또는 ‘네크로시스(necrosis)’라 불리는 죽음인데 박테리아 등에 의한 감염이나 상처, 또는 독물 등의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수동적인 세포의 붕괴 과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외부 신호나 내부 신호에 의해 유도되는, 유전자 안에 입력되어 있는 프로그램화 된 죽음이다. 이런 세포의 죽음을 ‘세포의 자살’ 또는 ‘아포프토시스(apoptosis·애팝토시스)’라고 부른다.



세포의 자살과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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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apoptosis2.jpg » 세포자살 과정. 출처/ Wikipedia,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6/Apoptosis.png 괴사의 경우에는 세포 안팎의 삼투압 차이가 수만 배까지 나면서 세포 밖의 물이 세포 안으로 급격하게 유입돼 세포가 팽화, 용해하여 내용물이 유출되고, 그곳에 백혈구가 모여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세포가 자살하는 경우에는 죽을 때가 되었음을 안 세포가(죽기로 결정하고?) 생체 에너지(ATP)를 적극적으로 소모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은 유전자가 작용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이 단백질에 의해 세포는 축소하고 세포 표면의 미세한 융털이 소실되며, 표면은 편평해진다. 또 크로마틴(염색질: 세포핵을 구성하는 단백질과 DNA)이 핵막 주변에 응축하여 단편화되고 세포도 단편화하여 기름방울 모양의 작은 조각이 되고, 마크로파지(대식세포) 같은 식세포한테 잡아먹히는 형태로 변해 조용히 소멸해 간다.


요즘은 ‘세포의 죽음’이라면 괴사보다는 세포자살을 의미할 정도로 프로그램된 죽음에 많은 관심과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세포가 죽어가는 과정을 연구하려면 사람보다 덜 복잡한 생명체를 찾아 연구해야 하는데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는 약 1 밀리미터 크기로 1000개 미만의 세포를 지녔으며,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선형동물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elegans)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 선충류는 다루기 쉽고 또 투명해서 세포 분열이나 분화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연구에 적합하다. 브레너 실험실에서 연구한 존 설스톤(John Sulston)은 분열하는 세포가 어떤 시점에 도달하면 항상 죽는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런 과정에 관련된 유전자(nuc-1)를 찾아냈다.

  

나중에 이 연구실에 들어온 로버트 호르비츠(Robert Horvitz)는 세포의 죽음에 관련하는 유전자들(ced-3, ced-4, ced-9)을 발견하여 세포가 자살하는 것은 DNA에 프로그램되어 있고 유전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람의 세포가 죽는 과정에도 이와 비슷한 유전자가 관련된다는 것을 알아내어 기관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왜 어떤 세포는 반드시 죽는지 알게 된다. 이 공적으로 세 사람은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1]

  

  

텔로미어의 이론과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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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telomere.jpg » 사람의 염색체(회색)와 끝부분의 텔로미어(흰색). 출처/ Wikipedia,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a/Telomere_caps.gif 그러면 세포들은 죽어야 할 때를 어떻게 정확히 알고 죽음의 유전자를 발현할까? 그 이론 중 하나인 ‘텔로미어(telomere·틸로미어)’ 이론을 연구한 세 과학자인 불랙번(Elizabeth Blackburn)과 조스택(Jack Szostak) 그리고 그라이더(Carol Greider)에게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수여되었다.[2]

  

텔로미어 이론은, 보통 세포는 약 40번 세포 분열을 하는데 이런 세포의 수명은 염색체의 끝부분에 존재하는 텔로미어라는 반복적 염기서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세포 분열이 진행되면서 그 길이가 매번 일정한 길이씩 짧아지고 일정한 길이 이하로 짧아지면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결국 죽는다는 이론이다. 즉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 횟수를 기록하는 ‘세포의 시계’로 간주할 수도 있다. 매번 분열할 때마다 세포시계는 똑딱똑딱 시간을 기록하고 그때가 될 때 세포는 자살하게 되는 것이다.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를 생각한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세포’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00blackburn.jpg » 세포의 노화와 텔로미어 이론을 깊이 연구한 블랙번 교수(UCSF). 출처/ http://biochemistry.ucsf.edu/labs/blackburn/images/stories/wblackburn1.jpg 앞에 말한 2009년 노벨상 수상자들은 짧아지는 텔로미어를 원상 복구할 수 있는 효소 ‘텔로머라제(telomerase·틸로머레이즈)’도 발견했다. 텔로머라제는 보통 체세포에서는 억제돼 그 활성을 찾을 수 없지만, 생식세포와 줄기세포, 그리고 암세포 등에서는 그 활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들 세포는 지속적으로 분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텔로머라제라는 효소는 규정된 세포의 프로그램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죽지 않고 계속 불어나기만 하는 세포로 변종된 세포 중 하나가 암세포다. 죽고 싶어도 세포의 시계에 고장이 생겨 죽을 수 조차 없게 되고 자꾸 불어만 나는 불멸의 세포로 변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생명을 연장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진시황이 그렇게 찾던 불로초가 ‘텔로머라제’라는 효소(단백질)로 나타난 것이다.

  

최근 블랙번(Elizabeth Blackburn) 교수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은 세포가 많아지면 심장병이나 당뇨병 혹은 암이나 다른 병에 걸렸을 확률이 많다는것을 발견하고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하여 건강 진단에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안에 그런 테스트를 쓸 수 있게 한다니 얼마나 유용한지 곧 알 수 있을 것 같다.[3]



죽음이라는 자연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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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의 자살은 생명체 내부의 유전자들에 의해 결정돼 완전히 자연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를 이용하여 죽음을 유도하는 세포도 있다.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 등을 죽이는 역할의 T-면역세포(T- cell)는 세균이 몸 안에 침입하면 세균에 달라붙어 세균이 원치 않는 자살의 과정을 겪도록 프로그램을 주입함으로써 그 세균이 5분 안에 자살하게 만들기도 한다.[4] 과학자들은 세포자살을 유도하거나 막는 방법을 개발하여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제어하려 하고 있다. 프로그램된 세포의 자살 과정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00apoptosis1.jpg » T-면역세포에 의해 유도되는 세포의 자살. 출처/ http://www.ncbi.nlm.nih.gov/books/NBK27101/bin/CH8F35.jpg

T-면역세포 같은 예외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세포자살은 생명체 내부의 유전자들에 의해 그 때가 이미 규정돼 있고 생명을 둘러싼 환경 요인들이 그 때를 결정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이런 죽음은 완전히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올챙이의 꼬리가 없어지는 것도 꼬리 부분의 세포들이 때가 되어 자살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엄마 뱃속에서 하나로 뭉쳐져 있던 우리 손가락이 자궁에서 나올 때에는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것도 손가락 사이의 세포들이 때가 되어 자살함으로써 그렇게 된다.

  

죽는 것이 결국 다른 부분을 살게 하는 것이다. 세포가 죽어도 다른 세포에 있는 동일한 유전자들이 살아남게 되므로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세포를 위한 순수한 희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의 세포들이 ‘나’ 전체를 위해 기꺼이 죽고 식세포에 공양된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로 여겨진다.

  

어찌 가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할까? 보낼 때 보내는 것도 또한 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일 것 같다. 꽃을 보내야 열매 맺는 가을을 맞을 것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형기 시인은 노래한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불멸의 생명이 과연 바람직할까? 삶이 진정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짧기 때문이 아닐까? 내 안에서 때가 되어 자연의 법칙으로 소멸하는 세포들처럼 먼저 간 사랑하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 꽃잎이 떨어지는 이 봄, 나도 이제 그들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주기로 한다. 그리고 나에게도 ‘죽음’이라는 자연 섭리 안의 축복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또 내가 가야 할 때를 알고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인연의 끈을 놓고 아름답게 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참고 문헌]


[1]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업적 자료

   http://www.nobelprize.org/nobel_prizes/medicine/laureates/2002/

[2]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업적 자료

   http://www.nobelprize.org/nobel_prizes/medicine/laureates/2009/

[3] NY Times(2013.4.9): Charting Her Own Course

  http://www.nytimes.com/2013/04/09/science/elizabeth-blackburn-molecular-biologist-charts-her-own-course.html?_r=0

[4] T cell-mediated cytotoxicity

   http://www.ncbi.nlm.nih.gov/books/NBK27101/


Wikipedia: Apoptosis. http://en.wikipedia.org/wiki/Apoptosis

김정훈, <과학도시락>, 은행나무, 2009.

이성규, “세포는 왜 자살할까”, The Science Times 2010년 07월1일


[* 이 글은 <미주문학>(2009년 겨울호)에 썼던 글을 확장하고 보강하여 다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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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미국 텍사스대학(산 안토니오) 교수, 통계학
과학의 문제를 통계 모델로 접근하는 과학도이다. 미국 텍사스대학(산 안토니오)의 통계학과 교수로 있으며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등을 강의하며 연구하고 있다. 문학과 신경과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과학과 문학을 연결하는 글을 써오고 있다.
이메일 : djko.sananton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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