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진의 "문학 즐기는 과학자의 요즘 과학 산책"

통계학을 통해 과학을 다루며 틈틈이 문학 활동도 즐기는 고대진 교수가 생물의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해 요즘 과학의 이야기를 찬찬히 전한다. 그의 이야기엔 간간이 문학 이야기가 섞인다. (예전에 틈틈이 썼던 글을 보강해 다시 쓰거나 새 글을 씁니다)

대화하는 병원균, 그들의 '독한 커뮤니케이션' 차단하기

세균들의 대화


00bassler5.jpg » 출처 / http://youtu.be/TVfmUfr8VPA, 배슬러 교수의 'TED 강연' 동영상  


균(박테리아)도 서로 의사소통 한다는 사실이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보니 배슬러 교수(Bonnie L. Bassler) 연구팀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잠시 그 연구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세균은 ‘에이아이-2(autoinducer-2, AI-2)’라는 화학물질을 공통 언어로 사용해 자신들의 개체수를 측정하고 함께 상황에 대처할 뿐아니라 다른 종 박테리아의 의사소통까지 교란한다고 한다. 세균은 주변의 세균 수가 늘면 개체수 측정(quorum sensing) 기능을 가동하기 시작하는데 충분한 수가 밀집했다고 감지하면, 어떤 종은 독소를 분비하며 반응하기도 하고, 어떤 종은 다른 환경으로 옮겨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흔히 세균은 자연상태(Free-living state)에서는 제거하기도 쉽고 병원성도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세균이 독성 세균으로 전환할 때이다. 이런 독성 전환 과정에서, 세균들이 방출하는 AI-2라는 작은 확산성 분자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세균들은 AI-2 농도에 따라, 제 주변에 얼마나 많은 세균들이 함께 존재하는지 감지한다. 만일 같은 세균 종이 충분히 많다면, 이제 세균들은 특정 유전자를 발현할 조건이 조성됐음을 감지하고는 그 유전자를 발현해 단백질을 생산하는데 거기에는 숙주에 질병을 일으키는 독소 단백질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균의 손자병법, 감염과 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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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니 놀랄 만한 일이다. 물론 그 의사소통이 공기의 진동을 이용한 언어 대신에 화학물질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세균의 대화를 생각하며 우리가 목감기(급성 편도선염)에 걸린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자. 흔히 목감기는 일명 '지에이에스(GAS: Group A β-hemolytic streptococcus)'라 불리는 박테리아들에 의해 생기는데 초기에 세균이 목 안에 조금 있을 때에는 제거하기도 쉽고 병원성도 없어 그저 소금물로 목 안을 자주 씻어주면 된다. 그러면 세균이 수가 적어 독성을 발하지 않게 되거나 기침 몇 번으로 감기 증상이 없어지는 것이다.


허나 밤에 잠 자는 사이에 목 안이 그들의 놀이터가 되면 목 안에서 세균 수가 점점 불어나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안개를 표현한 대로 ‘밤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무진을 쭉 둘러싸는 것’처럼 밤에 진군해온 세균들이 목 안을 빙 둘러싸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 여기 있다. 너는 어디 있나?” 하는 말을 화학물질을 통해 서로 주고받으면서 말이다.


주변 동료 세균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많이 들린다고 감지하면 세균들은 주위 세균이나 숙주를 공격해도 될 만큼 자신들의 숫자가 많아졌다고 여기고는 한꺼번에 독소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 스위치를 누를 것이다. 수많은 세균들이“공격!”하면서 독소를 뿜기 시작하면 내 목 안은 침도 못 삼킬 정도로 아프고 붓게 되고, 이때면 벌써 독성이 퍼져서 소금물 양치질로는 독성을 제거하기 어렵게 된다.


00bassler6.jpg » 보니 배슬러 교수는 세균들도 대화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으로 “세균들의 커뮤니케이션”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는 병원균을 물리칠 방법을 찾게 할 뿐아니라 사람의 세포들 사이에 어떻게 대화가 이루어지는가를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있다. 배슬러 교수는 집 근처 와이엠시에이(YMCA)에서 10년 넘게 에어로빅 수업을 맡아 가르치고 있기도 한 에어로빅 댄서이기도 하다. 출처/ Bassler Lab, https://sites.google.com/site/basslerlab/ 내 몸에서도 침략을 막기 위해 항균제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세균들의 '인해전술', 아니 '균해전술' 작전이 무섭고 신기하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세균들끼리 서로 정보를 조작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먼저 말한 배슬러 교수 연구팀은 대장균을 해양 박테리아인 '비브리오 하베이아이(Vibrio harveyi)'와 섞어주면 대장균이 처음에는 AI-2를 분비하지만 곧 더욱 많은 양의 AI-2를 흡수하여 해양 박테리아의 정보를 교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해양 박테리아는 숫자가 많아지면 형광을 발산하는 유전자를 발현해 어둠에서도 빛을 내는 특성을 지니는데, 교란 정보 때문에 자기들의 숫자가 적은 것으로 여겨 형광을 발산하는 유전자를 발현시키지 않게 되고, 따라서 빛을 발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세균의 교란작전에 속아서 “아직 때가 아니다. 우리 수가 많지 않으니 기다려라, 오버”라고 말하는 셈이다.


병원성 세균에 따른 감염도 마찬가지라서, 의사소통이 차단된 세균은 주위에 같은 종 세균의 숫자가 충분히 많지 않다고 생각해 독성 모드(virulent mode)로 전환하지 않고 불활성 형태(inert form)에 머물러 독소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도 같은 연구팀에 의해 발견됐다. 세균에게도 손자병법이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진화하는 내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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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는 미생물이 생산하는 대사산물로, 소량으로도 다른 미생물의 발육을 억제하거나 사멸시키는 물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여 균을 죽일 수 있는 최소의 혈중농도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 지금까지 병원성 세균들은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 개발로 치료에 별로 문제가 없다고 여겨져왔다. 허나 항생제의 남용으로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유전자를 가진 병원성 세균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항생제는 증세가 완전히 없어진 뒤에도 2∼3일은 더 사용해야 하는데도 증세가 없어졌다고 항생제의 사용을 중단하면 몸 안에 남아 있던 균들이 내성균으로 변할 수 있다. 내성균은 다른 균에도 내성을 전이시켜 내성균이 계속 늘어나게 하기 때문에 내성이 생기면 항균력이 더 강한 항생제를 사용하든지 다른 계열의 항생제로 바꾸어야 한다.


세균들은 항생제에도 내성이 생기는 쪽으로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에 다른 항생제를 이용한 치료는 임시방편밖에 안 된다. 즉 박테리아는 인류의 항생제 개발 속도보다 더 빨리 내성을 획득하고 전파하고 있다. 항생제 폭탄을 맞은 세균들이 이를 악물고 견디어 싸움에서 살아남는다. 어떤 때에는 전멸하지만, 어떤 때에는 한두 개 살아남는다. 그래도 이렇게 얼마 안 되지만 살아남은 세균들은 이를 갈면서 다음을 기약하며 내성을 기른다. 사실은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만 살아남아 자손을 번성시킨다. 박테리아의 진화인 것이다.


내성을 갖춘 세균들이 살아남아 자꾸 불어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의 군대로 더 강하게 변할 것이다. 이들은 항생제 폭탄이 떨어져도 유유히 포화 속을 누빌 수 있는 ‘수퍼균’의 몸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주위 세균들과 대화를 통해 자기 세력이 얼마나 큰지 인지하면 “공격!”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물론 항생제도 잘 듣지 않는 내성세균이 된다. 누가 이 단세포 생물인 세균을 단순하다 할 수 있을까? 멸종하지 않고 수억 년을 생존해온 이유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자주 진화하는 데 있으리라.


요즘 미국 병원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내성균(MRSA: Methicill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감염’은 항생제가 잘 듣지 않아 치사율이 무척 높다. 세균들이 항생제를 이길 수 있게 자신을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더 좋은 항생제(폭탄)를 개발해 투여해도 이들을 쉽게 이길 수 없게 되었다. 이 항생제에 또한 내성을 갖는 세균으로 진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성균의 커뮤니케이션을 차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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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서운 병원균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세균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차단하는 방법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즉 세균의 손자병법을 역이용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내성세균이 많아져도 자기들이 많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없다면 독성을 만들지 않고 병원균으로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때가 아니다. 우리 수가 많지 않으니 기다려라, 오버”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의 라호야(La Jolla) 지역에 본부를 둔 스크립스연구소(Scripps Research Institute, 한국 강원도에도 지부가 있다)가 개발한 내성세균 백신도 이런 세균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차단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이 방법은 일반 항생제와 달리 세균을 직접 죽이지 않기 때문에 항생제에 적응한 내성세균의 탄생을 억제할 수도 있어 항생제보다 더 좋은 치료법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균들 사이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흥미롭다. 사실 모든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단세포 생물이건 다세포 생물의 세포들이건 그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밝혀 나가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과제이다. 세균은 수십억 년의 시간을 견뎌온 삶의 승자들이다. 이들의 존재가 아직까지 지구상에 계속되는 이유가 있으리라. 과연 사람이 어떻게 세균의 빠른 진화 속도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 Bassler BL, Losick R. (2006) Bacterially speaking. Cell 125: 237-246

* Bassler BL. (2006) Cell-to-cell communication in bacteria: a chemical discourse. Harvey Lect. 2004-2005 100: 123-142

* Camilli A., Bassler BL. (2006) Bacterial small-molecule signaling pathways. Science 311: 1113-1116.

** https://sites.google.com/site/basslerlab/v


Ng WL, Bassler BL (2009) Bacterial quorum-sensing network architectures. Annu Rev Genet 43: 197-222

Antunes LC, Ferreira RB, Buckner MM, Finlay BB. (2010) Quorum sensing in bacterial virulence, Microbiology 156: 2271-82

Bassler BL. (2010) Small cells--big future. Mol Biol Cell. 21: 3786-3787

Rutherford ST, Bassler BL. (2012) Bacterial quorum sensing: its role in virulence and possibilities for its control. Cold Spring Harb Perspect Med. 2(11). doi:pii: a012427. 10.1101/cshperspect.a012427.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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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미국 텍사스대학(산 안토니오) 교수, 통계학
과학의 문제를 통계 모델로 접근하는 과학도이다. 미국 텍사스대학(산 안토니오)의 통계학과 교수로 있으며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등을 강의하며 연구하고 있다. 문학과 신경과학 등에 관심이 많으며 과학과 문학을 연결하는 글을 써오고 있다.
이메일 : djko.sananton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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