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토론장 어디서 보겠나?...참여폭 넓혀야"
’과학기술인, 말하다: 정책제안 타운미팅’ 0차모임의 참석자 인터뷰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다니는 김윤후씨는 “교수님이 보내서 왔다”고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상향식 과학기술 정책 입안’과 ‘민주적인 과학기술정책’에 강한 의견을 표명한 그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다시 참여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말하는 정책이 과학기술인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건가요? 정책이 미치는 범위도 중요하죠.”
“저는 생각이 달라요. 말씀하신 코스모스 님과 달리 저는 수혜자 범위보다는 정책의 내용이 더 중요하고 거기에 (우리 논의를) 집중해야 된다고 봅니다.”
불꽃이 튀었다. ‘코스모스’라고 쓰인 명찰을 달고 있던 이는 카이스트 대학원생 김윤후씨였다. 그는 방금 전에는 때론 웃으며, 또는 조용하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있었다. 상대는 40대의 잔뼈가 굵은 연구원이었다. 불안한 긴장이라기보다는 ‘무슨 의견이 오갈까’ 하는 기대감에 가까운 긴장이 이어졌다. ‘퍼실리테이터(토론 촉진자)’가 즉시 상황을 정리를 하지 않았으면 볼만한 토론이 이어질 수도 있었다.
교수나 윗사람에게 밉보여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데에 유독 민감한 게 과학기술인 사회이지만, 그날 그곳만큼은 격이 없었다.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걸까? ‘제대로 된’ 정책에 대한 갈증이었을까? 호기심 또는 자신감일 수도 있겠다. 7일 낮 대전 월평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과학기술인, 말하다’ 타운미팅에 참석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지 사뭇 궁금해졌다. 행사 중간에 쉬는 틈틈이 그들한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과학정책이 우리 삶에 영향주기에 참여”
“정책은 잘 모르지만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책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 묻자 겸손하게 말을 아낀 정우용(66)씨. 그는 우송공업대 전 교수로 타운미팅 자리에서는 ‘원로’에 속했다. 정책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과학기술 정책을 이야기하는 곳에 참여자로 온 이유가 있는지 다시 물으니 “아들과 딸, 가족이 모두 이공계에 종사하기 때문에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 정우용 전 교수는 “이런 자리(타운미팅)가 서로 다른 의견들을 이렇게 모아내는 걸 직접 경험해보니 무척 재미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과학기술 정책이 중심축을 잃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논문을 읽고 전공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을 대학원생들은 어떨까?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의 박승(원자력 및 양자공학, 석사과정)씨는 “이공계 대학원생에게는 과학기술 정책이 자기 삶의 다양한 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연구비 분야의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역시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잘 모른다”고 밝힌 대학생 연합동아리 ‘사과인’의 대표 한기종(카이스트 전산학3)씨는 “이공계 분야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 과정이 돈에 묶여 있고 권위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는 문제를 느껴왔다. 이런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막연한 문제의식만 갖고 이 자리에 왔다”라고 말했다.
» ‘사람과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 이노베이터스(‘사과인’)’라는 이름의 연합동아리에서 나온 졸업생 김혜민씨와 학부생 한기종, 김창원씨(왼쪽부터)
이번 행사는 대한민국에서 아직은 생소한, ‘집단지성’을 모으는 타운미팅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서로 말을 나누며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의 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날 토론이 어떻게 다가왔을까? 토론이 시작되기 전에 “새롭게 선보이는 토론 방식이라니 기대된다”고 한 카이스트 정책대학원의 김윤후씨는 “타운미팅에 대해 잘 모르지만, 더 일반적인 사람이 더 많이 와야 (이 행사의 취지에) 더 맞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 많은 이들에 알려 참여폭 넓혀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정선종(69) 전 원장은 타운미팅이 무척 신선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예전에는 전문가들만이 앉아서 토론을 했지만, 언로가 많이 터졌다는 기분이 든다.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 자리에서는 이름, 직책을 모두 떼어내고 토론에 임하도록 꽃 이름의 가명을 썼고, 정선종 전 원장도 ‘호박꽃’ 명찰을 달고 있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예비모임이니 더 발전해야 한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행사 말미에 개인 사정 때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런 공간 어디에도 없다. 옵서버 자격으로 계속 참여 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날 거의 모든 참석자들이 “다시 참여할 뜻이 있다”는 반응을 보여 타운미팅의 취지에 상당히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정선종 전 연구원장. “정부가 과총만 불러다 놓고 회의해서 정책을 만드는 관행이 뿌리뽑혀야 한다”는 강한 비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 “(은퇴한 사람이라) 나만이 이런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는 아직 공개적인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 과학기술계의 안타까운 현실이 느껴졌다.
이 모임을 더 알렸더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무척 컸다. 타운미팅을 끝내고 나오는 자리에서 ‘사과인’의 김혜민(카이스트 졸업생)씨는 “홍보가 부족했다.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나 (과학기술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포스터를 붙이는 방식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토의 자리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문제였던 ‘참여 대상’과 ‘정책의 혜택을 받는 대상’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김창원(한밭대, 산업경영공학3)씨는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전문가와 비지식인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과학기술 정책은 국가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이니 과학기술인뿐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주변에게 권유하고 참여하겠다는 이도 많았다.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 박승씨는 “다양한 계층에서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학생이 대부분”이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과인 한기종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도 한 명의 참가자로서 참여하고 싶습니다. 또 많은 지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어요. 타운미팅이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의미가 더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함께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알림] 대선 과학기술정책 토론방이 열렸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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