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우의 "과학과 우리, 과학소통의 길을 찾아서"

막연하게 생명과학자를 장래희망으로 꿈꾸던 청소년이 이공계 대학과 대학원 실험실 생활을 거치고 직장인으로 살면서 점차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담히 얘기합니다. 그가 찾아나선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의 다채로운 면면 엿보기

[3] 과학소통은 무엇이고 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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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연재 글에서 얘기한 ‘세계과학기자대회’에서 과학 기자의 소명 의식에 압도되었던 나. 그래도 과학과 사회의 사이에서 무언가 기여하고 싶다는 미련과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입맛을 다시던 즈음, ‘과학창의연례컨퍼런스(이하 ’컨퍼런스‘)’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성격의 행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 내용을 살펴보니 웬걸, 그해(2015년 당시) 컨퍼런스의 주제가 마침 ‘과학과 사회의 대화’라는 것이다.[1] 그때의 나에게는 ‘과학 소통’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지만, 과학과 사회의 연결고리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매력이 나의 진로 탐색 레이더에 감지되었다. 이 중에 하나쯤은, 내가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지 않을까?


K3_1.jpg » 2015 과학창의연례컨퍼런스가 열린 힐튼호텔 컨벤션 센터. 출처/ 강지우



과학창의연례컨퍼런스, 꼼꼼히 예습하기


나는 여행을 가면 비행기, 기차 스케줄은 물론 어디에서 뭘 먹을지까지 미리 체크해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물론 가끔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지만). 이번 컨퍼런스에서도 참가하기 전에 스케줄과 프로그램 설명을 꼼꼼히 살피고 어떤 세션을 들을지 고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프로그램은 크게 창의성, 과학교육, 과학소통, 글로벌 협력, 과학문화 공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영국, 일본, 독일 등지의 경험 많은 전문가들을 초청해 마련한 기조 강연이나 워크숍도 값져 보였다. 그런데 왜 항상 듣고 싶은 세션들은 시간이 겹치는 것일까? 고민과 번뇌에 시달린 끝에 과학교육과 관련된 세션들을 많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을 위한 과학 소양’이 무엇인지 과학계, 인문계, 예술계 등 사회를 이루는 각계의 대표가 패널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제목만 봐도 흥미롭지 않은가? 우리가 교양처럼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과학적 소양’이란 것이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는 이 과학적 소양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을까? 합의가 없었다면 앞으로 무엇이 과학적 소양이 되어야 할까? 인문학자나 예술가가 생각하는 ‘과학적 소양’은 과학자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르지 않을까? 그 세션에서 충분한 논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보아도 우리나라의 과학 소통에서 중요한 고민의 포인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쉬움을 뒤에 남기고, 데스매치를 뚫고 살아남은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음미해 보았다. ‘과학소통’이라고 하면 과학 보도나 대중강연 정도의 개념밖에 없던 나에게 다채로운 과학소통의 세계가 펼쳐졌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소통 베테랑들이,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과학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것은 단연 ‘과학관’과 관련된 세션이었다. ‘관객’으로만 경험했던 과학관의 이면이 궁금하기도 했고, 과학관에 대한 보물 같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잊지 못할 과학관의 추억, 일본과 호주의 과학관은 어떨까?

등학교 저학년 때 단체 견학으로 엘지(LG) 그룹이 운영하는 과학관에 간 적이 있다.[2] 거의 20년 전의 일이지만, 어지간히 인상에 남았던지 지금도 장면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감자와 토마토의 유전자를 조합해 뿌리에서는 감자가, 줄기에서는 토마토가 열리게 만든 ‘포마토’ 모형에 감탄했던 것, 내 얼굴 사진을 찍은 뒤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변형해 30년, 50년 뒤의 내 얼굴을 보여주는 코너에서는 내 생각보다 너무 못생겨진 내 모습에 충격받았던 것, 화가 로봇이 초상화를 그려주는 코너에서는 로봇은 고장 나 있고 시연 동영상만 볼 수 있어서 못내 아쉬웠던 것, 마지막으로 3차원(3D) 안경을 끼고 3D 영화를 보면서 (실제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정말로 괴물이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가리며 몸을 피했던 것.


 일련의 장면들이 내가 ‘과학의 경이와 멋짐’을 체험했던 최초의 기억이다. 어쩌면 이 기억이 내가 과학을 공부하고, 과학 분야에서 일하도록 이끌어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나 컨퍼런스에서 다시 과학관의 세계를 접하고, 관장의 강연을 들었던 인연으로 일본의 국립과학관에서 인턴까지 하게 되었으니(이 경험은 앞으로 이 연재에서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 나와 과학관의 인연도 보통이 아닌 듯하다.


저, 일본 미래관의 첫 관장인 일본 우주비행사 모리 마모루(毛利衛, [3])는 1992년과 2000년 두 차례의 우주비행 동안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탑승과학기술자)로서 고유 미션을 수행했으며 또한 일본 국민과 적극 소통했다. 컨퍼런스에서는 한 초등학교 교실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우주 공간에서 물리 실험을 시연했던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과학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2001년 일본과학 미래관(日本科学未来館, 미라이칸)의 첫 관장으로 취임했다.


K3_2.jpg » 우주 공간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모리 마모루(1992년). 출처/ JAXA 홈페이지(http://iss.jaxa.jp)


그런데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 18만 명이 사망했다. 과학은 지진, 쓰나미 등의 대형 자연재해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믿어왔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 재난이 일어난 뒤 일본 사회에서 ‘과학자들의 설명을 믿을 수 있는가?’에 ‘예’라고 답하는 사람의 비율이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모리 관장은 지진 이후 3개월 간 과학관을 닫고, 과학관 소속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사회로 나가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혼란한 시국에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찾아가는 과학관’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국립과학관인 ‘퀘스타콘(Questacon)’이다.


K3_3.jpg » 퀘스타콘의 찾아가는 과학관 프로그램인 ‘셸 퀘스천 사이언스 서커스(Shell Questacon Science Circus)’의 광경, 대형 트럭이 각 지역으로 찾아가 과학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출처/ 퀘스타콘 공식 홈페이지(https://www.questacon.edu.au)


스타콘은 개관한 지 37년째를 맞는 호주 국립과학관이다. 컨퍼런스에서는 개관부터 지금까지 37년의 근무 경력을 가진 스튜어트 콜하겐(Stuart Kohlhagen)이 직접 퀘스타콘의 독자적인 프로그램들을 설명했다. 퀘스타콘은 지역사회에서 만들어 운영하다가 나중에 국립과학관이 된 특이한 사례로, 지금은 약 절반의 예산을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다. 이런 태생 때문인지 퀘스타콘에는 지역사회 친화적인 프로그램이 많이 운영되고 있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교통이 불편한 작은 마을에 직접 찾아가 과학 공연과 부스를 운영하는 ‘퀘스타콘 서커스’다. 퀘스타콘의 연간 방문객 50만 명의 두 배인 100만 명을 찾아가 만날 만큼, 찾아가는 과학관 프로그램은 퀘스타콘의 곁다리가 아니라 핵심으로서 운영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일선의 과학교사와 과학연구자를 연결하는 교사워크샵 프로그램이었다. 일단 연구자(주로 젊은 신진 연구자)가 과학 교사에게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면, 과학 교사가 스스로 생각한 이 연구의 의미와 중요성을 덧붙이면서 다시 연구자에게 설명하는 방식이다. 연구자는 교사한테서 연구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 갇히지 않고 더 넓은 시각에서 자신의 연구가 지닌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 교사는 첨단 과학연구에 대해 1:1 눈높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이를 학교에서 과학교육에 응용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교사로서 이수해야 하는 교육시간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어 교사들의 참여가 더 활발한듯 하다.



과학자가 왜 과학소통을 해야 하나?

일선의 연구자 중에는, 본업인 연구만 잘하면 되지 왜 굳이 일반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컨퍼런스에서 ‘대중과의 과학 소통 필요성’에 대해 강연한 서울예술대학교 한수연 교수는 과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내재한 특성이 이런 경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과학 지식의 종적 상대성[4], 실천적 성격, 정형화된 언어, 암묵성, 동료 집단의 인정 등 요소 때문에 ‘집단 바깥과의 교류’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연구자가 과학대중강연을 하거나 과학대중서를 집필할 필요는 없다. 연구자가 ‘본업’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집중하고 충실하게 임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멋진 일이다. 그러나 그 ‘본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과학소통’이 거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존중되었으면 한다. 사실 과학소통을 ‘과학연구 종사자와 비종사자 간의 대화’라는 넓은 범위로 본다면, 정부, 산업체에 연구과제를 제안하고 연구비를 받는, 또 나의 연구가 사회에 끼칠 파장에 대해 고민하는 등의, 연구에 꼭 필요한 활동에서도 과학소통은 필수적이다. 더군다나 앞으로는 과학지식이나 과학과 관련된 가치관, 윤리관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것이다. 과학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과학자도, 과학자가 아닌 사람도 균형 잡힌 가치관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는 이공계 전공자들이 더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과학고와 공과대학을 거치며 느꼈지만, 이공계 전공자들에게 ‘연구자’가 아닌 진로는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희망 진로는 교수, 연구원 등으로 매우 한정적이고, 연구자가 적성에 맞지 않을 경우에 전공을 살리면서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는 막막할 정도로 그에 관한 정보가 없다. 나 또한 그 한정된 진로 ‘바깥’의 길을 찾아 오랫동안 떠돌았지만, ‘정석’인 ‘연구자 트랙’에서 벗어난다는 두려움이나 낭패감이 나를 사로잡을 때도 많았다. 그 자신도 학부와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한수연 교수는 이런 상황을 지적하며 과학커뮤니케이터를 포함해 더 다양한 진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비전공자를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이공계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과학커뮤니케이터 양성 교육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다가가는 과학소통

그렇다면 좋은 과학커뮤니케이터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종류의 소통이 그렇듯이, 과학소통도 ‘무엇을 전달하느냐’ 못지 않게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과학소통에서는 유난히 ‘무엇’에만 방점이 찍히는 듯하다.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도 그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컨퍼런스에 참가한 과학소통, 또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마치 미리 입을 맞춘 듯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내용이 바로 소통하기에 앞서 ‘상대방을 이해하라’였다.


7년 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UCL)에서 대중소통(Public Engagement) 부서의 대표를 맡았고 지금도 대중소통/커뮤티케이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스티브 크로스(Steve Cross)는 과학소통의 개념과 영국의 과학소통 전략을 소개했다. 지금까지는 과학소통을 과학자가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 모형(Transmission model)’으로 생각했다. 청중은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므로, ‘어떤 지식’을 전달할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전달 모형 대신 ‘구성주의 모형(Constructivist model)’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구성주의 모형에 따르면 청중이 각자의 생각과 관심, 기억을 바탕으로 과학자가 전달한 아이디어를 재구성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즉, ‘누구’에게 전달하는지를 고려해야만 의도한 메시지를 온전히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래서 영국의 과학소통은 대중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침투하는 전략을 택한다. 대중강연의 형태가 정보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긴 하지만, 원래 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전공을 했던 사람들만 주로 참여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영화관이나 대형 음악페스티벌에서 기습적으로 과학공연을 열거나[5], 유명한 개그맨을 앞세워 과학공연을 열기도 한다. 청중들은 처음에는 과학이 아닌 다른 관심사와 목적을 위해 공연장을 찾지만, 결국에는 한 가지라도 ‘검색(구글링)해 볼 만한’ 과학 관련 궁금증을 갖고 돌아간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한국 최초로 시도되었던 성인을 위한 유쾌한 과학공연 ‘사이언스 나잇 라이브(Science Night Live, SNL)’도 비슷한 맥락에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SNL 공연팀은 팀원을 충원하고 그동안의 노하우를 반영해 최근 대학로에서 ‘라이어(LiAr)’라는 과학연극[6]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를 통해 한국에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과학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K3_4.jpg » 컨퍼런스의 마지막 날 저녁에 열린 성인 대상 과학공연 ‘사이언스 나잇 라이브(SNL)’의 오프닝 장면. 사진/ 강지우



‘누구에게’를 상상하는 페르소나 기법

K3_5.jpg » ‘과학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노하우’에 대해 강연하는 스티브 크로스(Steve Cross) 스티브 크로스는 기조 강연에 이은 작은 세션에서 ‘과학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노하우’로서,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른 맞춤형 소통 전략을 제안했다. 같은 과학 개념이라도 어린이와 어른, 청소년과 할머니에게 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이 될 것이다. 반면 청중의 특성을 가능한 구체화한 뒤 청중을 고려한 소통 전략을 짠다면 성공적인 과학소통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를 들어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기생충의 약제내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면 어떨까? 우선 ‘아버지’의 캐릭터를 최대한 구체화 해보자. 이 사람은 40~50대이며,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 이슈에 관심이 많을 것이며,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 자식 걱정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아이들에게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해 먹이는 편이고, 개도 한 마리 키우고 있으며, 평일에는 자가용을 타고 30분 거리의 직장으로 통근한다. 그렇다면 아버지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세미나실의 대중강연보다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기습 이벤트, 대형마트의 행사, 또는 라디오 프로그램 등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갈고리처럼 청중의 관심을 낚을 수 있는 도입부인 ‘후크(Hook)’를 생각해보자. 직접 요리해서 가족과 함께 먹기 때문에 ‘고기를 덜 익혀 먹었을 때 처할 수 있는 위험’, 개를 키우니까 ‘사람이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도록 반려동물에게 어떤 조치를 해야 할까?’ 등의 이야기로 시작하면 어떨까? 다음으로는 약이 기생충을 어떻게 죽이는가, 어떤 경우에 내성이 생기는가 등의 주제로 점점 확장해 나가는 식이다. 우리가 어떤 병에 걸리면 그 병에 대해 자발적으로 검색해보고, 발병기작이나 치료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듯, 사람은 자신과 관련이 있는 주제에 관심을 보이게 마련이다.


K3_6.jpg » 페르소나 디자인의 예시. 화면 갈무리/ https://fakecrow.com/free-persona-template/런 식의 접근법을 산업디자인에서는 ‘페르소나(Persona)’ 기법이라고 한다. 잠재적인 고객의 보편적 특징을 아우를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을 설계한 뒤, 이 페르소나를 위한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과학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교육방송(EBS)의 김형준 피디도 “효과적인 스토리텔링과 매체 활용” 세션에서 타겟 시청자가 구체적일수록 성공적인 작품이 나온다며 그가 이용한 페르소나 기법을 소개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문명과 수학’ 기획 당시, 42세 남자, 대졸, 문과 출신, 수학을 싫어하며 1년에 교양서적을 한 권 읽는 정도, 분수 정도를 이해하는 초등학교 6학년의 수학 수준을 가진 사람을 타겟 시청자로 잡았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는 ‘입상진의(立象盡意,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함)’를 마음에 새기며, 가능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자 했다. 간접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는 속뜻이 무엇일지 스스로 ‘생각’해야 하고, 더 큰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과학 글쓰기를 ‘요리’에 비유해 도움이 되는 팁들을 재기발랄하게 소개한 허두영 테크업 대표는 음식(글)은 우선은 먹기에(읽기에)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먹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사람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애편지를 쓸 때는 독자가 누구고 그 성격은 어떤지에 대해 자세히 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들고 제대로 전해지도록 온 힘을 다해 편지를 쓰기 마련이다. 우리가 과학 관련 글을 쓸 때도 이처럼 독자를 가능한 구체적으로 예상하고, 배려하는 글쓰기가 필요한 것이다. 과연 나는 지금 예상 독자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결국, 내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기가 소통 핵심

지금까지 내가 컨퍼런스에서 얻은 과학소통의 성공사례와 전략적 노하우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떤 전략을 쓰더라도 먼저 ‘나’의 목소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를 분명히 하고, 나의 개성과 매력을 담아 진정성 있게 전해야 한다. 이것이 컨퍼런스의 마지막에 들었던 서혜정 성우의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스피치 방법” 세션에서 내 마음 깊이 남은 메시지다.

나는 한국 성우를 좋아하고, 관련 콘텐츠를 모으는 팬이다. 컨퍼런스의 연사 리스트에서 성우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서혜정 성우는 최근에 ‘남녀탐구생활’의 무뚝뚝한 나레이션으로 유명해졌지만, 나는 성우 팬으로서 10년이 넘도록 그의 활동을 지켜봐 왔다. 그는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아들면서도 성우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는 탁월한 연기자였다. 그리고 목소리를 멋지게 꾸미기보다는 ‘진정성’을 갖고 ‘나만의 언어와 내 영혼의 울림 찾기’를 강조하는 서혜정 성우의 강연에서 나는 그 탁월함의 비결을 살짝 엿본 듯했다. 비단 스피치 뿐일까. 글쓰기도, 일상 대화도, ‘내’가 드러나지 않으면 지루하거나 신뢰성을 잃게 될 것이다. 과학소통에서 재미와 신뢰는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던가.



과학창의연례컨퍼런스는 나에게 ‘과학소통’이라는 새로운 진로를 찾아준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나의 배경을 살려 과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런데 그 과정이 재미있기까지 하다는 점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또 무척 운이 좋게도, 과학소통이 진정한 ‘소통’이 되기 위한 고민들도 일찌감치 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과학관 학예사부터 방송국 피디에 이르기까지 ‘과학소통’과 관련된 무척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어요!’라고 장래 희망을 정하자마자, 거기에는 또 다시 엄청나게 다양한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셈이다. 맥이 좀 빠진 것도 사실이다. 롤플레잉게임(RPG)에서 마왕을 물리쳤는데 알고 보니 그를 배후에서 조종하던 진짜 최종보스가 나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숨겨진 이야기가 밝혀지는 그 시점에서 게임은 더욱 흥미진진해지게 마련이다. 과연 나는 어떤 엔딩을 맞이하고, 어떤 이야기를 남기게 될까?


[주]


[1] 참고로 2016년 컨퍼런스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과 휴머니티’였고, 2013년은 ‘창의공간과 상상, 도전, 창업’이었다. 마침 2015년에만 과학소통이 컨퍼런스의 중심 주제였던 것이다. 역시 나는 과학소통과 뭔가 인연이 있나 보다, 하고 감사할 수 밖에.

[2] 당시(1998년 즈음) 부산에는 국립과학관이 없었다. 국립부산과학관은 2006년 100만 명 시민 서명운동까지(!) 거치고서야 2015년 12월에 개관했다. 내가 방문했던 엘지(LG) 사이언스홀은 2017년 현재 입장료 무료로 운영되며, 전시물도 최신 과학기술을 반영해 멋지게 리뉴얼 되어 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반갑게도 화가 로봇과 3D 영화 상영관은 그 당시 그대로 남아 있는 듯 하다. 과학관의 개념과 우리나라 과학관의 변천에 대해서는 윤아연 학예연구사님의 <사이언스온> 연재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http://scienceon.hani.co.kr/510663

[3]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이지만, 일본 국가프로젝트로는 처음으로 우주에 오른 과학자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일본에서 ‘일본 최초 우주비행사’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다. 우주로 가기 5년 전 일본우주소년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4] 일반적으로 문화는 횡적 상대성을 갖고 교육은 종적 상대성을 갖는다고 한다. 문화의 영역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를 ‘다름’으로 인정하지만, 교육에서는 가치 판단을 유예할 수 없고, ‘틀린 것’과 ‘맞는 것’이 존재한다는 의미.

[5] 게릴라 사이언스(http://guerillascience.org/)는 축제, 박물관, 미술관 등의 장소에서 과학공연이나 전시를 기획한다. 과학자, 디자이너, 예술가 등이 협업해 과학적 개념을 대중과 함께 탐구하는 창의적인 길을 개척한다.

[6] 본격 코믹 과학추리극 ‘라이어(LiAr)’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141609018&code=960313

 

강지우 포스텍 교직원/연구기획팀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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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우 포스텍 연구기획팀 교직원
포스텍 생명과학과를 졸업.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세포동역학 연구로 석사학위. 포스텍 연구기획팀에 재직 중. 과학의 멋짐과 한계를 성찰하며 세상에 전하고 싶은 과학 커뮤니케이터 지망생
이메일 : feel88fr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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