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

인간의 과학과 기술인 뇌과학과 인공지능은 다시 ‘나, 너,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뇌과학 박사과정 송민령 님이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의 모습을 전하면서 나, 너,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의 이야기를 독자와 나눈다.

‘의식’은 뇌속 어디에 있는가? -신경망의 관점에서 보면

[15] 뇌가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생겨난 특징들 ②       [ ①편 읽기 ]


brain_network1.jpg » 신경 네트워크. 출처/ youtube.com


‘뇌는 네트워크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한 말인데도 막상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뇌가 네트워크이면 어떤 특징들을 갖기에, 네트워크 네트워크 하는 걸까?

지난 번 글에 이어, 이번에는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의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끌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00dot.jpg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왜 그럴까? 요소들이 연결된 전체에서는 요소들이 서로 제약하므로, 개별 요소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때와는 다른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2] 아래 그림 A처럼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5개의 빨간 공을 36개의 칸을 가진 상자 위에 떨어뜨렸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분포를 생각해보자. 빨간 공들이 서로 독립적이기 때문에 5개의 빨간 공들은 그림 A처럼 다양한 형태로 분포할 수 있고, 어떤 분포든 일어날 확률이 동일하다 (아래 그림 C).


이번에는 아래 그림 B처럼 고무줄로 연결된 5개의 빨간 공을 36개의 칸을 가진 상자 위에 떨어뜨렸을 때 생길 수 있는 분포들을 생각해보자. 5개의 요소들이 고무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빨간 공들은 대체로 가까이 분포하게 된다. 빨간 공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그림 A의 상황과는 달리, 네트워크에서는 분포에 따라 일어날 확률이 다르다. 고무줄이 늘어나야 하는 분포일수록 불안정하므로 일어날 확률이 낮다 (아래 그림 C). 예컨대 그림 B의 세번째와 같은 분포는 그림 B의 첫번째나 두번째 분포에 비해 일어날 확률이 낮다.


brain_network2.jpg » 요소들의 합과 요소들의 네트워크. [A]: 서로 독립적인 5개의 빨간 공을 36개의 칸을 가진 상자 위에 떨어뜨렸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분포들. [B]: 고무줄로 연결된 5개의 빨간 공을 36개의 칸을 가진 상자 위에 떨어뜨렸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분포들. [C]: 가로축은 분포, 세로축은 분포들이 나타날 확률을 나타낸다. 깊이가 깊을수록 확률이 높고 안정적인 분포임을 뜻한다.


아래 그림 A처럼 36개 칸을 나누는 벽의 높이가 낮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고무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상황에서는 빨간 공이 벽을 넘어 다른 칸으로 이동할 것이다 (아래 그림 B). 이 과정에서 빨간 공들의 네트워크는 불안정한 분포에서 점점 더 안정한 분포로 변해간다 (아래 그림 C).

이처럼 요소들이 서로 제약하는 네트워크에서는 다른 상태보다 특별히 더 안정적인 상태들이 존재한다. 이 상태들을 끌개(attractor)라고 한다 (아래 그림 C).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네트워크는 근처의 안정적인 끌개를 향해 점차 변해가는데, 특정한 끌개를 향해서 변해가는 상태들을 끌개 유역(attractor basin)이라고 부른다.[1][2] 아래 그림 C에서 하늘색과 연보라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각각 파란색과 보라색 끌개 유역에 해당한다.


반면에 위 그림 A처럼 독립적인 요소들이 단지 모여 있는 경우(합)에는 딱히 더 안정적인 상태랄 게 없다(위 그림 C의 왼쪽). 따라서 끌개와 끌개 유역도 없고, 요소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정지해 있다. 네트워크는 외부에서 별다른 힘이 가해지지 않아도 끌개를 향해 스스로 변해가지만, 독립적인 요소들의 합에는 외부의 힘이 가해져야 비로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3]


brain_network3.jpg » 끌개(attractor)와 끌개 유역(attractor basin). [A]: 칸을 나누는 벽의 높이가 낮은 경우를 보여준다. 벽의 높이는 네트워크가 한 분포에서 다른 분포로 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비유할 수 있다. [B]: 빨간 공들의 네트워크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한 상태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무줄이 당기는 힘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던 빨간 공이 벽을 넘어 점차 가까운 칸으로 이동한다. [C]: 네트워크가 그림 B처럼 변해갈수록 네트워크가 안정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깊이가 깊을수록 네트워크가 안정적임을 나타내는 그래프에서 끌개는 '극소점'으로 표시되고, 끌개 유역은 끌개를 중심으로 움푹 들어간 골 모양으로 표시된다.



의식은 네트워크의 ‘어디에’ 있는가?

00dot.jpg

하나의 끌개 유역에서 네트워크는 특정한 방식으로 동작한다. 그러다가 어떤 요인에 의해서 다른 끌개 유역으로 네트워크 상태가 전환되면, 이전 끌개 유역에 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동작하게 된다. 따라서 네트워크에 두 개 이상의 끌개 유역이 있으면 하나의 네트워크라도 상당히 다른 행동 양식을 보일 수 있다.


예컨대 깊은 수면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는 서로 다른 끌개 유역이라고 볼 수 있다(아래 그림). 잠자는 동안에는 외부에서 뇌로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크게 감소하며, 신경 세포들의 활동이 동기화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의식이 없다. 하지만 깨어 있는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신경 네트워크가 잠잘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동작하며, 의식도 있다.[4][5] 이처럼 의식이 있는 상태를 신경 네트워크가 특정한 끌개 유역에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6]


brain_network4.jpg » 신경 네트워크의 끌개 유역들을 개념적으로 보여주는 그림. (개념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그림일 뿐 정확한 데이터와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식이 신경 네트워크의 특정한 끌개 유역이라면, 의식은 뇌 속의 어디에 있을까? 손상 연구(lesion study)를 하듯이 (☞ ‘"내 탓 아닌 뇌 탓" 주장의 오류’ 참고) 뇌 영역들을 하나씩 손상시켜 가다가 의식이 사라지면, 마지막에 손상시킨 영역이 의식에 필요한 영역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아래 그림에서 빨간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이 ‘의식’의 끌개 유역이라고 하자. 뇌 영역이나 영역들 사이의 연결을 손상시켜 네트워크의 구조를 바꾸면, 뇌 영역들이 서로 제약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 결과, 네트워크의 끌개 유역들의 분포가 달라질 수 있다 (아래 그림). 또, 아래 그림의 BC처럼 몇 개의 영역과 연결들을 손상시켜도 남아 있던 ‘의식’의 끌개 유역은 아래 그림 D처럼 B와 C에서 손상시킨 영역들을 모두 손상시키면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의식의 끌개 유역이 ‘어디에’ 있다고 특정하기는 어렵다.


brain_network5.jpg » ‘의식’은 신경 네트워크의 ‘어디에’ 있을까? 빨간 화살표로 표시한 움푹 들어간 영역은 의식의 끌개 유역이고, 그 오른쪽의 움푹 들어간 영역은 깊은 수면 상태에 대한 끌개 유역이라고 생각해 보자.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의식의 끌개 유역이 남아 있으므로 A-C 네트워크에는 ‘의식’이라는 상태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B에서 가한 손상과 C에서 가한 손상을 모두 가해서 얻은 D 네트워크에는 깊은 수면 상태에 대한 끌개 유역만 약하게 남아 있고, 의식에 대한 끌개 유역은 사라져 버렸다. 이 경우 D 네트워크에는 ‘의식’이라는 상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것이 외부 자극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뇌 손상 환자가 식물인간 상태(vegetative state; 의식이 없는 상태)인지, 최소의식 상태(minimally conscious state; 가끔 미약한 수준의 의식을 보이는 상태)인지, 락드인 증후군(locked-in syndrome; 의식이 있어서 외부 자극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자신에게 의식이 있음을 알릴 수 없는 상태)인지 판명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7] 만일 특정한 뇌 영역에 의식에 있다면, 이 영역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만 보고도 의식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의식의 끌개 유역이 존재하기 위해 특별히 더 중요한 영역들이 있을 수는 있다.[7] 하지만 특별히 더 중요한 영역들이 포함된 네트워크의 구조 덕분에 의식의 끌개 유역이 생겨나는 것이지, 그 ‘영역들에’ 의식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적 경험의 차원을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혼란

00dot.jpg

자유의지와, 자유의지를 가능케 하는 의식은 뇌과학과 철학 분야의 뜨거운 감자다. 객관적으로 관측이 가능한 뇌의 물리적 작용을 통해 마음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되면서, ‘비물질적이고 주관적인 내적 경험인 자아, 의식, 자유의지란 허상(illusion)에 불과한 게 아닐까’라는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이 내적 경험을 고려하지 않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


학에서는 어떤 사람이 실험하든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객관성은 높이고 주관성은 배제하려고 한다. 그런데 “객관이냐, 주관이냐”는 인식틀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대등하지 않다. (☞ ‘맥락을 놓치기 쉬운, 만들어진 ‘자유의지 논란’’, 글 끝 부분의 [남은 이야기] 참고) 주체의 객체 인식(주관과 객관)만을 고려할 뿐, 객체의 내적 경험 (객체의 주체 인식과 객체의 객체 인식)은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 이는 2차원 세계에 사는 사람이 가로와 세로 외에 ‘높이’ 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객체의 객체 인식이라는 차원과 객체의 주체 인식이라는 차원이 없으면 감정과 의식같은 객체의 내적 경험을 설명할 방법도 없다. 그러니 수 세기 동안, 자연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한 인간에게만 감정과 의지가 있을 뿐, 다른 동물들에게는 감정과 의식같은 내적 경험이 없다고 여겼다.[8]


brain_network6.jpg » “주관이냐, 객관이냐”는 인식틀에서 배제된 객체의 내적 경험(객체의 객체 인식과 객체의 주체 인식).


체의 내적 경험 차원이 없어도 대부분의 자연 현상을 탐구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기 시작하자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결과를 도출했다. 연구자(주체)는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겠다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연구를 시작했는데, 연구자를 포함한 인간의 마음이 객체가 되는 순간, ‘의지’라는 내적 경험은 2차원 세계에서 보는 ‘높이’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눈으로는 3차원 사물을 보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느끼면서도), 입으로는 이 사물이 2차원 평면에 드리운 그림자만을 설명할 수 있어서 (과학에는 객체의 내적 경험이라는 차원이 없으니까) ‘높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허상이다’(자아는 허상이다, 자유의지는 없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하다.



끌개 유역의 내적 경험의 차원

00dot.jpg

이제 주체가 객체를 보는 차원(물리적 현상의 차원)과 객체가 객체를 보는 차원(내적 경험의 차원)에서 네트워크의 끌개 유역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각 끌개 유역에서 네트워크는 독특한 방식으로 동작한다. 끌개 유역별로 주체가 객체를 보는 차원에서는 독특한 물리적 현상이 일어나고, 객체가 객체를 보는 차원에서는 독특한 내적 경험이 일어날 것이다.


컨대 깊은 수면 동안에는 몸/환경과 뇌 사이의 정보 교류가 깨어 있을 때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뇌 신경망이 깨어 있을 때와는 다른 양식으로 동작한다. 깊은 수면 동안에만 나타나는 이 독특한 양식 덕분에 물리적 차원(주체가 객체를 보는 차원)에서는 시냅스 세기가 변하면서 장기 기억이 저장되고, 시냅스 항상성이 회복되며, 뇌 속 노폐물이 처리된다.[4] 한편, 객체의 내적 경험이라는 차원에서는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된다.[5][7]


이와 달리 깨어 있는 상태에는, 뇌 속의 신경 네트워크가 뇌 밖의 몸이라는 네트워크, 환경이라는 네트워크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잠잘 때와는 다른 양식으로 동작한다. 그 결과, 주체가 객체를 보는 차원(물리적 차원)에서는 신경 네트워크 속의 어느 한 부분의 활동인 네트워크 곳곳에 두루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 관찰된다.[7] 한편, 객체의 내적 경험이라는 차원에서는 느끼고, 생각하고, 의도하는 등의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객체의 내적 경험이라는 차원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면, 몇몇 끌개 유역에서 일어나는 내적 경험만이 유별난 사건으로 지각될 수 있다. 예컨대 철학적, 법적, 윤리적 관심을 받는 내적 경험인 의식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이렇게 여러 내적 경험 중에서 의식만을 별도로 생각하면, 기계 속에서 웬 허깨비같은 유령이 있다가 없다가 하면서 놀라운 일들을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비유하자면 바다의 표면과 비슷하다. 바다의 표면에서 파도만 똑 떼어놓고 보면, 경계가 불분명한 뭔가가 있다가 없다가 하면서 해안가의 절벽을 깎는 놀라운 일을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 ‘신경과학으로 다시 보는 ‘나’’ 참고). 하지만 바다의 표면 전체를 고려하면, 조건에 따라 어떨 때는 수면이 잔잔한 상태가 있고, 어떨 때는 파도라는 상태가 있을 뿐이다. 바다 표면 전체를 고려해야 비로소 파도를 연구할 수 있듯이, 내적 경험의 차원 전체를 고려해야 의식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내적 경험의 차원과 물리적 차원의 상호작용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의식’이라는 독특한 끌개 유역

00dot.jpg

물이 절벽을 깎는 특별한 일은 잔잔한 수면이 아닌 파도일 때만 일어난다. 이와 유사하게, ‘의식’이라는 끌개 유역에서는 주체가 객체를 보는 차원(물리적 차원)과 객체의 내적 경험이라는 차원이 마치 같은 종이의 양면처럼 동작하는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즉, (마음을 고쳐먹어서 뇌의 물리적 동작이 바뀌는 게 아니라) 마음을 고쳐먹는 것과 뇌의 물리적 작동이 바뀌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런데 ‘의식’이라는 끌개 유역을 주체가 객체를 보는 차원(물리적인 차원)에 비춰보았을 때 보이는 것들과, 내적 경험이라는 차원에 비춰보았을 때 보이는 것들은 너무도 다르게 느껴진다. ‘의식’과 ‘의지’라는 내적 경험은 비교적 논리적이고 개연성 있다고 ‘느껴지지만’ (우리의 사고가 실제로 논리적이지는 않다), 복잡계인 신경 네트워크는 예측하기 어렵고 무작위적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의식’이라는 끌개 유역 안에서는, 신경 네트워크도 ‘의식’이 개연성 있다고 느껴질만한 범위 안에서만 작동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와 각주]


[1] RC O‘Reilly & Y Munakata. Computational explorations in cognitive neuroscience. MIT Press (2000).

[2] RK Logan (2012) Review and Precis of Terrence Deacon’s Incomplete Nature: How Mind Emerged from Matter. Information 3: 290-306.

[3] 개체분절적인 서구 세계관에서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적인 변화를 고려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4] Tononi G & Cirelli C (2014) Sleep and the price of plasticity: from synaptic and cellular homeostasis to memory consolidation and integration. Neuron. 81:12-34.

[5] David Eagleman. The brain: the story of you. Pantheon (2015)

[6] Bayne et al. The Oxford Companion to Consciousness .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https://goo.gl/s61u6V

[7] 마르첼로 마시미니 & 줄리오 토노니.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 뇌의 신비를 밝혀가는 정보통합 이론. 한언 (2016)

[8] Jonathan Balcombe. Second Nature: The Inner Lives of Animals. St. Martin's Griffin (2011)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cienceon

트위터   https://twitter.com/SciON_hani

한겨레 스페셜   http://special.hani.co.kr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빗소리를 좋아하고, 푸름이 터져나오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도파민과 학습 및 감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뇌과학이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 되기를, 우리가 이런 존재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기를 바랍니다.
이메일 : ryung20@gmail.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뇌는 몸의 주인일까?뇌는 몸의 주인일까?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10. 20

    [17] 몸이 뇌에 끼치는 영향 뇌는 몸의 주인일까? 삶에서 마음은 중요한 부분이고, 뇌가 마음의 작용에서 특별히 중요한 기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뇌는 에너지 대사를 전적으로 몸에 의존하고 있으며 몸이 전해주는 외부 환경에 대한...

  • 뇌영상 기술로 마음과 미래를 알 수 있을까?뇌영상 기술로 마음과 미래를 알 수 있을까?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08. 31

    [16] 신경부호 해독과 ‘마음 읽기’ 뇌를 연구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신경 해독 기술은 사회적인 필요와 만나서 거짓말을 탐지하거나, 성향을 파악하거나,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고, 질병에 걸릴 위험을 예견하는 쪽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뇌의 구조적...

  • “내 탓 아닌 뇌 탓” 주장의 오류“내 탓 아닌 뇌 탓” 주장의 오류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06. 26

    [14] 뇌가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생겨난 특징들 ① ‘뇌는 네트워크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한 말인데도 막상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뇌가 네트워크이면 어떤 특징들을 갖기에, 네트워크 네트워크 하는 걸까? 뇌가...

  • 기억의 일생: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하는가기억의 일생: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하는가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05. 29

    [13] 기억의 형성, 변형, 회고 우리는 많은 것을 빨리 외우고 오래 기억하기를 바란다. 대개는 시험을 잘 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익과 취직 걱정이 없는 동물들도 기억을 한다. 기억은 왜 필요한 걸까?기억은 ...

  • 감각을 확장·전송하며, 생명들 기계를 맞이하다감각을 확장·전송하며, 생명들 기계를 맞이하다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송민령 | 2017. 04. 24

    [12] 생명과 기계의 경계 ②: 흐려지는 경계  (①편에서 이어짐) 지난번 연재 글(“모방하며 진화하며, 기계들 생명에 다가서다”)에서는 기계가 생명을 모방하며 얼마나 생명에 가까워졌는지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생명이 어떻게 기계와 가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