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

인간의 과학과 기술인 뇌과학과 인공지능은 다시 ‘나, 너,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뇌과학 박사과정 송민령 님이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의 모습을 전하면서 나, 너,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의 이야기를 독자와 나눈다.

맥락을 놓치기 쉬운, 만들어진 ‘자유의지 논란’

[9] 기계화 된 마음 ④: 자유의지


00freewill1.jpg » 선택.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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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의 문제는 이처럼 서구의 맥락과 인식틀에서 생겨난 ‘그들’의 문제였다.

‘선진국’에서 중요시하는 문제를 따라가다보면

다른 맥락과 다른 인식틀을 가진 우리나라는 영문을 모르기 쉽다.

문제란 실제의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식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이 만든 문제를 따라가기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다양한 문화권의 경제 수준과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

음악에 재즈와 힙합이 더해지며 풍성해졌듯이

다양한 맥락에서 생겨난 다양한 문제를 다루게 될 때, 과학도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


지식에 끌려 다니지 말고, 지식을 딛고 서기를.

그래서 남들이 만들어둔 문제를 빠르게 추격해서 푸는 단계에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창조하는 수준까지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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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실험을 상상해보자. 피험자들에게 스스로 원할 때마다 손목을 움직이라고 하고, 뇌전도(EEG)를 활용하여 피험자들의 뇌 활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손목을 자발적으로 움직인 시각보다 최대 1초 전에 그런 동작을 준비하는 뇌의 활동인 ‘준비 전위’가 관찰되었다. 그렇다면 피험자들은 자기 의지로 손목을 움직였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뇌 속에서 이미 결정된 선택을 따랐던 걸까? 자유의지란, 환상에 불과한 걸까?


1980년대에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였던 벤자민 리벳(1916-2007)이 수행한 유명한 실험이다. 리벳의 실험은 뇌에 대한 환원적인 인식, 그리고 물질의 운동은 예측 가능하다는 뉴턴 역학식 세계관과 맞물리며 자유의지 논란에 불을 붙였다.[1][2]


자유의지를 따른다고 믿어온 인간 행동이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도 충격을 주었다.[3] 한 실험에 따르면, 와인 가게에 독일 음악을 틀어두면 독일 와인이, 프랑스 음악을 틀어두면 프랑스 와인이 더 잘 팔렸다고 한다. 피험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배경음악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지 못했으며, 실험 결과를 듣고 난 뒤에도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했다.[4]


자유의지에 의문을 품게 할 만한 근거는 더 있다. 경두개 자기 자극(TMS) 장치를 활용해, 왼손을 들어올리는 동작과 관련한 뇌 부위를 피험자 몰래 활성화하면 피험자는 왼손을 들어올린다. 실험자가 시침을 뚝 떼고 갑자기 왜 왼손을 드셨냐고 물어보면, 피험자는 그냥 들고 싶어서 들었다는 둥, 가렵다는 둥 어떤 이유를 댄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 조작으로 몸이 움직인 경우에도, 자신의 의지로 그랬다고 ‘해석’하는 것이다.[5]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1): 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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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벳의 실험과 이후의 유사한 실험들에서 관측된 것은 자발적인 뇌 활동(spontaneous brain activity)일 가능성이 크다.[6] 뇌는 쉬는 동안에도 컴퓨터의 대기 모드처럼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 상황을 예측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학습한다. 따라서 자발적인 뇌 활동은 무작위적인 소음이라기보다는, 주위 환경, 몸 상태, 감정 상태, 염두에 두고 있는 일들, 방금 전에 일어난 일들, 관련된 과거 경험 등과 관련되어 있다 [ 지난 연재글 “기계는 결코 알 수 없는… 나와 우리 뇌의 ‘지금’” 참고]. 리벳의 실험처럼 원할 때 손목을 움직이라고 지시된 맥락에 있다면, 피험자의 뇌에서는 손목을 들어올리는 행동에 대한 자발적인 뇌 활동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


경들의 네트워크인 뇌에서는 컴퓨터처럼 순차적인 계산이 이뤄지는 대신, 여러 활동이 동시다발로 일어난다. 이 모든 활동이 의식적으로 지각되거나, 말해지거나, 행해질 수는 없기에 경쟁에서 이긴 활동들만이 말이나 행동이나 의식적인 생각으로 드러난다.[7][8]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기 이전의 뇌 활동은 당연히 선택 시점의 뇌 활동과 상관관계가 있지만,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마음은 물질의 작용으로 생겨나지만, 뉴턴 역학으로 날아가는 공의 궤적을 예측하듯이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지난 연재글 “사랑은 화학 작용일 뿐일까?” 참고]. 생체의 단백질 분자들은 브라운 운동 (미소입자들의 무작위 운동)을 하며 끊임없이 움직인다.[9] 더욱이 개개인은 날씨처럼 우연이라 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겪으며 살아가고 이 사건들은 뇌를 구성하는 물질들, 뇌에 입력되는 정보들, 뇌의 활동 방식 등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뇌와 마음은 미리 결정된 대로 움직이는 기계와는 다르다.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2):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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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뇌의 활동이 예측 불가능하더라도 그것을 ‘의지’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실험자가 피험자의 뇌를 몰래 자극해서 피험자가 왼손을 들게 되었는데도 피험자는 “갑자기 들고 싶어져서 들었다”는 해석을 지어내고, 와인 가게에 틀어둔 배경 음악의 영향을 받아 와인을 골랐으면서도 자신이 영향을 받았음을 모른다면,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을까?


경과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의식’이 존재하고, 이 의식이 모든 뇌 활동과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앞의 두 사례는 충격적이다.[10] 하지만 의식은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며, 뇌 속에서 일어난 여러 활동을 조율하고 ‘자아’라는 내적 표상에 걸맞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용’을 한다고 보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지난 연재 글 “신경과학으로 다시 보는 ‘나’” 참고].


잔잔하던 수면에 바람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파도라는 현상이 생겨나는 것처럼, 의식은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5] 그래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을 때면 일어나지 않는다. 예컨대, 깊은 수면 단계인 비-렘(Non-REM) 수면 동안에는 뇌세포들의 활동이 동기화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식이 발현될 수 없다. 사고로 뇌 속 에너지 대사량이 크게 감소했을 때에도 의식 없는(coma) 상태가 생겨난다.


현상에 불과한 파도가 해안선을 깎아내는 작용을 일으키듯이, 의식이라는 현상도 뇌와 행동을 바꾸는 작용을 일으킨다. 특히 의식의 창이 작다는 점은 와인 가게 배경 음악의 경우처럼 가짜 이야기를 지어내게도 하지만, 선택의 여지를 주기도 한다 [ 지난 연재 글 “기계는 결코 알 수 없는… 나와 우리 뇌의 ‘지금’” 참고].


‘흔들다리 효과’를 생각해보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상황에서, 눈앞의 이성에 초점을 두면 두근거림은 ‘꺅~ 나 이 사람 좋아하나봐!’로 해석되지만, 까마득한 아래에 초점을 두면 두근거림은 ‘높은 곳은 끔찍해!’로 해석된다. 한편, 심장이 두근거리는 상황과 흔들다리 효과에 대한 지식에 초점을 두면 ‘두근거리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야’가 된다. 복잡하고 복합적인 세상에서 의식의 창이 어디를 비추느냐에 따라 다른 경험,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무엇이 나의 행동과 마음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00freewill2.jpg » 흔들다리. 출처/ wikimedia.org


동물이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행동을 수정해야만 하고, 환경에 잘 적응할 수만 있다면 환경이 주는 영향의 내역을 일일이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의식을 통해서 나에게 더 유리해 보이는 외부 상황의 측면, 생각,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와인 가게 배경 음악의 경우도, 피험자가 배경 음악의 효과를 의식하고 나면 배경 음악은 이전과 같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모르지만, 의식의 덕분에 어느 정도의 주도권(혹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자유의지를 만든 인식틀 속의 신기한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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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유의지는 인간과 환경을 분리하는 개체분절적인 시각, 원인이 되는 속성을 찾아들어가는 환원적인 태도와 얽혀 있다. 개체분절적이고 환원적인 인식틀이 없었다면 애시당초 자유의지처럼 모호하고 증명하기 힘든 개념을 그렇게까지 신봉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리벳의 실험과 환경의 무의식적인 영향이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체분절적이고 환원적인 접근은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고 지식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접근 대상을 대상화해 버린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오래 신봉해온 것치고는 놀랍게도, “본성이냐, 양육이냐”라는 다른 오래된 논쟁에서는 자유의지가 쏙 빠져 있곤 한다.


[ Nature vs. Nurture, https://youtu.be/chzDR3feSHY ]


“본성 대 양육” 논쟁에서는 체중, 지능, 내/외향성 등의 특징들이 타고나는 것인지, 환경의 영향으로 길러지는 것인지, 유전과 환경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면 무엇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묻는다. 하지만 유전과 환경 외에, 주체도 ‘주체’와 ‘주체에 영향을 주는 환경’을 바꾸어 간다. 운동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에 따라서 몸이 달라지고, 타인을 공감하려고 얼마나 자주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사회적 태도가 달라지며, 어떤 사람이 조직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조직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안다.


자유의지를 중시하면서도 “본성 대 양육” 논쟁에서는 빼버리는 이 신기한 모순은 인생을 완전히 독립적인 두 단계로 나누어, 첫 단계에서는 본성과 양육을 통해 만들어지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완성된 인격대로만 살아가되 자유의지를 가진다고 가정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구분되어 있지 않고, 사람은 평생토록 변해가며 [ 지난 연재 글 “나이 들면 머리 굳는다? 아니, 뇌는 변화한다 -가소성” 참고], 만들어진 대로 사는 것이 ‘자유’ 의지인지도 의문스럽다.


관계와 변화를 중시하는 동아시아의 인식틀에서는 본성이나 자유의지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보고 심신의 수양을 강조하였으며, 자유의지처럼 추상적인 개념이 존재하느냐보다는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 거냐’와 같은 현실적인 고민을 더 중요하게 다루었다.[11][12][13] 자유의지에 대한 떠들썩한 논란은 범지구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개체분절적이고 환원적인 시각을 가진 일부 문화권에 한정된 고민이었던 것이다.



자유의지 논란의 다양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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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논란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구축된 서구 사회의 제도와 곳곳에서 충돌했다. 개인에게 자신을 위해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capacity)이 있다는 믿음은 개인에게 사회적 자유와 책임을 부과하는 전제 조건이었다. 그런데 뇌의 특징을 통해 능력의 유무를 추론할 가능성이 엿보이자 자유와 책임에 대한 논란이 곳곳에서 벌어진 것이다.[14]


컨대 “내 뇌가 시켰어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사람을 죽이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는 뇌에 문제가 있어서 자신의 의지로 살인 행동을 조절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살해 의도의 유무가 형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데, 정신적 문제가 있으면 자유의지로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고 보고 형량을 줄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15]


“마음은 뇌에 있다. 뇌 영역별로 담당하는 마음의 기능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뇌 영역이 손상되면, 이 영역이 담당하는 마음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라는 추론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결론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반사회적인 행동에 관련된 생물학적인 위험 요인을 파악하여 장래의 범죄를 예측하는 방법, 범죄자가 출소할 때 다시 범죄를 저지를지 여부를 예측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16][17]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느냐는 논란도 불거졌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사기를 당해서 자산을 탕진하거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꼭 필요한 치료를 거부하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는 등의 분쟁이 잦아지자, 알츠하이머 환자의 자기 결정권은 반드시 넘어야 할 중요한 고비가 되었다.[18][19]


독 환자에게 자유의지가 있느냐는 논란도 있다. 중독은 뇌 속의 단백질 발현을 비롯한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 변화가 중독 환자들이 생업과 인간 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약물을 추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약물 중독을 도덕적 타락이 아닌 뇌 질환으로 볼 경우, 감옥에 가두기보다는 신경가소성을 활용해서 치료하는 식으로 접근하게 된다.[5]


뇌의 특징으로부터 행동이 결정된다는 인식은, 뇌의 특징을 약물 등으로 조작해서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로도 이어졌다. 예컨대 뇌 속의 옥시토신 수치를 높여 ‘도덕 알약’(moral pill)으로 사용하려는 연구가 있었다. 실험적으로 옥시토신 수치를 높인 피험자들에게서 타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20]


현실의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진행되는 이 논란들은 모두 자유의지라는 공통된 주제를 향한다. 높은 재범률, 포화 상태에 이른 감옥, 유럽 전체의 재소자들보다 더 많은 수의 약물 사범이라는 미국의 상황은,[5]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과학 지식을 활용하고픈 유혹을 부채질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유의지가 없다면 어떻게 개인에게 자율과 그에 따른 책임을 부여할 수 있을까? 자유의지가 없으면 법과 제도는 불가능해지는 게 아닐까?



자유의지와 무관한 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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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가 있든 없든 움직임은 언제나 어떤 결과를 일으키고, 그 결과는 권선징악이 아닌 자연 법칙에 따른다. 의지가 없는 유리컵도 딱딱한 지면으로 떨어지면 깨지고, 무인도에 혼자 있어도 밤늦게 라면을 먹으면 살이 찐다.


또 주변 사람들의 가치 기준에 따른다. 남편과 사별한 부인이 자결을 시도하면 요즘 사람들은 기함할 테지만, 조선 시대라면 열녀문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특정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은 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영받겠지만 그 정당과 대립하는 사람들한테는 공격받을 것이다.[21]


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채택한 현대 국가라면 대체로 비슷한 가치 체계를 따를 것 같지만 의외로 다르다. 비슷한 점이 많다고들 하는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 볼까? 지하철 자살이 잦아지자 한국에서는 스크린 도어를 설치했다. 비슷하게 자살율이 높은 일본에서는 유가족에게 고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22] 한 쪽에서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함께 비용을 분담하는 식으로 대응했고, 다른 쪽에서는 자살을 민폐로 보고 배상을 요구하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생명과 가족에 대한 태도조차 비슷하다는 두 나라가 이렇게 다르다.


행동에 뒤따르는 결과는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꾼다.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자연 법칙을 바꿀 수는 없지만, 어떤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인가는 논의를 통해 바꿔갈 수 있다. 그러니 합의에 따라 선택된 가치를 공유하고, 호모 사피엔스에 주로 작용하는 자연 법칙에 따라 공유된 가치를 구현할 수만 있다면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자유의지의 유무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들의 모임인 사회가 정말로 인간을 존중하느냐, 나와 내 친구와 이름모를 누군가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느냐이기 때문이다.



과학: 인간을 위한 인간의 문화적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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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유의지는 꼭 필요한 개념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역사-문화적인 맥락에서 생겨나, 유럽과 미국의 사회 제도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된 개념이었다. 자유의지에 관련된 과학 연구들도 이런 맥락에서 형성되고 수행된 것이었다. 사실 자유의지에 대한 과학 연구뿐 아니라 과학 자체가 서양의 사회-역사적 맥락과 세계관에 따라 발전해 왔다. 그래서인지 이학 박사 학위를 뜻하는 PhD도 Doctor in Philosophy (철학 박사)의 약자이다.


흔히 과학은 절대적인 진리나 객관적인 사실을 표방한다고 여겨지지만, 과학 지식도 과학자라는 전문가 집단이 엄밀한 연구 과정과 상호 검증을 통해 대체로 합의한 이야기일 뿐이다. 전문가들끼리도 조금씩 다르며, 사회적인 맥락이 바뀌고 새로운 정보가 더해지면 질문과 답이 변할 수 있는 이야기.[23][24] 그래서 장하석 교수는 “과학은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인간적으로 하는 문화적 활동(인본주의적 과학)”이라고 한 바 있다.


[ 특강6 - 인본주의와 과학 | 장하석 https://youtu.be/X7Ob40TlD_8]

 
렇기에 과학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이해,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 인간과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을 통해 서구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발전해왔다. 예컨대, 뇌영상 기술로 거짓말을 탐지하고, 마음을 읽는 기술에 대한 연구는 ‘911 사태’ 이후 국가안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무렵부터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과학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기존의 가치와 충돌하기도 했다. 앞서 말한 마음을 읽는 기술은 사생활 보호에 대한 가치와 충돌한다. 마음은 개인의 가장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2]


과학으로 인간을 이해하게 되면서 기존 가치의 구현 방식이 달라지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청소년에게 높은 수준의 자율을 허용하는 대신, 중죄를 저지르면 성인과 마찬가지로 사형이나 종신형을 언도해 왔다. 그런데 감정을 조절하고 행동을 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인 전전두엽이 20대 중반을 지나야 성숙된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10대와 20대 초반에 대한 처벌의 강도와 자율의 범위를 줄이기 시작했다.[25][26]


런 과정은 다양한 영역의 더 많은 사람들을 논의에 끌어들이며 진정한 의미의 융합을 일으킨다. 학문의 분야란 대학의 학과나 전공 서적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장의 사람들에게 있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교류하면서 융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필요와 관심에 따른 자발적인 융합은 중앙집권 방식처럼 질서정연하지는 않지만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넘친다. 굳이 수요를 파악하고 적임자를 찾아서 자원을 할당하지 않아도, 환경만 허락한다면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능력을 가진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필요한 융합이 일어난다.


자신들의 필요와 문제 의식에 따라 연구를 수행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그렇게 얻어진 과학 기술이 논의와 시행착오를 거쳐 현장에 정착되고, 그 과정에서 학문이 창조되거나 융합되고…. 정말 부럽지 않나. 우리에게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만 비춰지곤 했던 과학은 이렇게 서구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태어나고 발전해왔다.[27]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창조하는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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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다고들 하는 자유의지의 문제는 이처럼 서구의 맥락과 인식틀에서 생겨난 ‘그들’의 문제였다. 이러니 ‘선진국’에서 중요시하는 문제를 따라가다보면 다른 맥락과 다른 인식틀을 가진 우리나라는 영문을 모르기 쉽다. 문제란 실제의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식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러니 남이 만든 문제를 따라가기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다양한 문화권의 경제 수준과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 음악에 재즈와 힙합이 더해지며 풍성해졌듯이 다양한 맥락에서 생겨난 다양한 문제를 다루게 될 때, 과학도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다원주의적 과학).[24]


요즘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과학이 인기다.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같은 대중을 위한 과학 팟캐스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과학기술인 단체인 ‘이에스시(ESC)’가 주최한 ‘초파리 실험실 체험’ 프로그램에 많은 사람들이 신이 나서 찾아온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인문학 붐이 과학 붐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하고, 강연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마음이 이끄는 주제를 찾아 공부하고 질문하는 내공이 자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과학은 인문학과 분리되어 있지만, 이런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 과학을 다시 생각할 무렵엔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식에 끌려 다니지 말고, 지식을 딛고 서기를. 그래서 남들이 만들어둔 문제를 빠르게 추격해서 푸는 단계에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창조하는 수준까지 이르기를.



[남은 이야기]

* * *

과학이 서양의 문화적 맥락에서 탄생한 문화적 활동이기에 과학의 시선은 이데아를 상정하고 절대적 진리를 추구해온 서양의 오랜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 주체와 객체 사이를 단절하고, 객관을 주관의 우위에 둔 것부터 그렇다. 하지만 관찰하고 실험하는 동안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오가는 정보는 결국 관계의 문제다.


예컨대 장미의 붉은 꽃잎은 사람이 보기에는 붉지만, 쥐가 보기에는 붉지 않다. 똑같은 장미꽃을 두고 다른 색을 보는 것은, 장미 꽃잎의 성질과 보는 이의 눈의 성질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정의”라는 단어를 보면 인문계열 전공자는 “Justice”를, 이공계열 전공자는 “Definition”을 먼저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보는 이의 역사와 사전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잘난 사람도 더 잘난 사람들 틈으로 가면 못난 사람이 된다. 상대적인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햇볓 아래서 붉던 장미꽃은 푸른 빛 아래서 다른 색으로 보인다.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객체의 성질 뿐만 아니라 주체의 성질과 역사, 객체와 주체의 관계, 맥락이 인식의 차이를 만든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학적 성질을 공유하는 주체들이, 서구 문화(혹은 서구화된 문화)라는 비슷한 맥락에서, 지구와 지구에서 보이는 우주라는 동일한 객체를 연구하다 보면, 객관으로 여겨질 만큼 널리 공유되는 주관이 생겨날 수 있다. 비슷한 존재들이 비슷한 대상을 보다보니 생겨난 주관의 공통성이 객관이 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객관의 부정은 자칫 객체까지 부정하는 허무주의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객체의 성질 뿐만 아니라 주체의 성질, 대상과 주체의 관계, 맥락을 모두 고려하면 객체를 부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오히려 주체와 객체가 평등해지고, 서로 다른 주관을 이해하고 소통할 길이 열린다. 객체인 자연(때로는 환자)을 대상화하지 않고도 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객관이냐 주관이냐”는 그들의 문제를 붙드는 순간, 관계와 맥락, 객체를 보는 주체를 배제한 그들의 인식틀(frame)에 걸려들고 만다.

* * *



[출처와 각주]



[1] 신경인문학 연구회. 뇌과학, 경계를 넘다. 바다출판사 (2012).

[2] 닐 레비. 신경윤리학이란 무엇인가. 바다출판사 (2011).

[3] 리처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  넛지. 리더스북 (2009).

[4] North AC, Hargreaves DJ & McKendrick J (1997). In-store music affects product choice. Nature 390: 132-132.

[5] David Eagleman. The brain: the story of you (2015).

[6] Schultz W (2015). Neuronal reward and decision signals: from theories to data. Physiol Rev 95:853-951.

[7] Schmidt R et al. (2013). Canceling actions involves a race between basal ganglia pathways. Nat Neurosci 16:1118-1124.

[8] Sotres-Bayon F & Quirk GJ (2010). Prefrontal control of fear: more than just extinction. Curr Opin Neurobiol 20:231-235.

[9] 마크 호. 원자와 우주 사이. 북스힐 (2011).

[10] Roskies AL (2010) How Does Neuroscience Affect Our Conception of Volition? Ann Rev Neurosci 33:109-30.

[11]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돌베개 (2004).

[12] 최진석.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위즈덤하우스 (2015).

[13] 박태원. 원효: 하나로 만나는 길을 열다. 한길사 (2012).

[14] The Royal Society. Neuroscience and the law (2011).

 인간의 능력(Human capacity)은 르네상스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15] Science. The brain on tria (2010.02.21). http://www.sciencemag.org/news/2010/02/brain-trial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없음을 근거로 자기 행동에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을 정신이상 항변(insanity defense)이라고 한다. 정신이상 항변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아마도) 최초의 정신이상 항변은 그리스 신화에 나온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주술에 빠져 정신 착란이 된 상태에서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만다. 극악한 범죄였으나 정신 착란 상태였음이 인정되어 (정신이상 항변) 12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속죄할 기회를 얻었다. 조선시대에도 심증(정신분열증)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부역을 면제하고 감형을 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신 미약 상태 (예: 만취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감형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뇌가 손상되었다고 해서, 관련된 정신적인 능력이 반드시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의사 결정과 미래 예측, 충동 조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이 손상된 살인범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전전두엽의 동일한 부위에 생긴 비슷한 수준의 손상이 언제나 합리적인 사고와 충동 제어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뇌의 다른 부위들을 동원해서 손상된 기능을 보완 수행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뇌는 가소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사건 시점의 뇌 상태와 재판을 위해 촬영한 시점의 뇌 상태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변수가 된다.

[16] Aharoni E et al. (2013). Neuroprediction of future rearrest. PNAS 110:6223-8.

[17] Glenn AL & Raine A (2014). Neurocriminology: implications for the punishment, prediction and prevention of criminal behaviour. Nat Rev Neurosci 15:54-63.

[18] Widera E et al. (2011). Finances in the Older Patient with Cognitive Impairment “He Didn‘t Want Me to Take Over”. JAMA 305:698-706.

[19] Marson DC (2013) Clinical and Ethical Aspects of Financial Capacity in Dementia: A Commentary. Am J Geriatr Psychiatry 21:392-390.

[20] Levy N et al. (2014). Are You Morally Modified? The Moral Effects of Widely Used Pharmaceuticals. Philos Psychiatr Psychol 21:111-125.
 옥시토신이 내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더 친화적으로 대하는 대신,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더 공격적으로 반응하게 한다는 단점이 밝혀지자 이 논란은 다소 주춤해졌다. 옥시토신 이외에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SSRI) 등 다른 약물을 사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약물이든, 하나의 맥락에서 유리한 특징은 다른 맥락에서는 반드시 불리할 수밖에 없다. ( 지난 연재 글 “개성을 통해 다양성을 살려내는 딥러닝의 시대로” 참고) 더욱이 무엇이 도덕적인지를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도 쉽지 않다.[21]

[21]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웅진 지식하우스 (2014).

[22] 주간경향. [월드리포트]누가 자살 좀 말려줘요 (2006.01.03).

[23]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까치 (2003).

[24] 장하석.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EBS 지식채널 (2014).

[25] Steinberg L (2013) The influence of neuroscience on US Supreme Court decisions about adolescents’ criminal culpability. Nat Rev Neurosci 14:513-8.

[26] BBC Megazine. Is 25 the new cut-off point for adulthood? (2013.09.23).

[27] 2012 대선 과학기술 정책 제안 타운미팅 - 8분과: 헌법 내 과학기술의 지위 검토. http://scienceon.hani.co.kr/townmeeting/73051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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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빗소리를 좋아하고, 푸름이 터져나오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도파민과 학습 및 감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뇌과학이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 되기를, 우리가 이런 존재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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