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오래된 위협’ 감염병의 과거, 현재, 미래"

2014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사태, 2015년 한국 메르스 사태, 2016년 남아메리카 지카 바이러스 사태 등, 신규감염성 질환이 과학과 의학계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국도 더 이상 감염병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감염병의 원인과 연구 동향, 그리고 대응 정책 방향 등에 관해 기생충 연구자 정준호 님이 이야기합니다.

‘오래된 낯선 위협’ 감염병에 맞선 인류,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

[1] 연재를 시작하며


00infection11.jpg » 1980년, 제33차 세계보건총회에서 세계보건기구가 마침내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irectors_of_Global_Smallpox_Eradication_Program.jpg


간을 감염시키는 감염성 질환 중 다수는 인수공통감염병, 혹은 동물원성감염병(zoonosis)이라 불리는 질병들이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이름에도 나타나다시피 동물에서 유행하던 감염병의 병원체가 인간도 감염시킬 수 있는 그런 감염병을 말한다. 박쥐나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옮아온 에볼라 바이러스, 역시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옮아온 지카 바이러스, 쥐에서 벼룩을 통해 인간으로 옮아온 페스트(흑사병) 균, 그리고 소나 돼지를 숙주로 하지만 인간도 감염시킬 수 있는 돼지/소 촌충이 좋은 예다.


그뿐 아니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뿐 아니라 광우병, 그리고 인간에서 변형 크로이펠츠-야콥병을 일으킬 수 있는 프리온 단백질도 역시 인수공통감염 병원체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물론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주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인수공통감염병은 인간에게 영향을 끼쳐왔다.



인류 문명의 부침과 함께한 감염질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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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공통감염병은 아마도 인류가 집단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끊임없이 영향을 끼쳐왔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 균, 쇠>에서 세균, 즉 감염성질환이 인류 문명의 형성과 충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고 주장한다. 그 핵심적인 주장은 바로 대규모 집단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감염병들이 대부분 가축에서 진화해왔다는 내용이다. 소와 돼지를 가축화 할 수 있었던 유라시아 민족은 일찌감치 소에게서 홍역, 천연두, 결핵을, 돼지에게서 인플루엔자라는 인수공통감염병을 획득하게 된다. 이런 인수공통감염병은 대규모로 정주 생활을 해온 인류 문명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아 인간 전염병으로 진화하게 된다. 문명의 형성 과정에서 인수공통전염병은 인구 집단 내 전염병의 창궐과 대량 사망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문명 단위로 보면 그 집단이 해당 질병에 대한 면역을 획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일찌감치 다수의 가축을 보유한 유라시아인들은 총보다 강력한 전염병이라는 무기, 그리고 쇠보다 강한 면역력이라는 갑옷을 입고 신대륙에 진출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아메리카 대륙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소나 돼지처럼 가축화 하여 대규모로 사육하기에 적당한 동물이 없었다. 따라서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다양한 인수공통감염병이 노출되어 면역을 획득하기 어려웠다. 초기의 문명 간 충돌에서 전파된 전염병(즉 인수공통감염병에서 유래한)은 면역이 없는 문명을 초토화 시켰으며, 유라시아인들의 신대륙 진출을 가속화 시켰다는 것이다. 유라시아인들이 가져간 천연두와 말라리아는 이미 유럽 군대가 총을 앞세워 신대륙 깊숙히 진출하기 전에 원주민 인구를 몰살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인수공통감염병의 교환에 의해 역사의 흐름이 바뀐 사례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런 위협은 점차 줄어들었다. 20세기 들어 성공적인 백신 접종 활동, 안전한 상하수도의 보급, 주거환경의 개선 등의 보건의료 환경 개선은 이런 감염병의 위협을 크게 줄여 한때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인류는 천연두라는 오래된 천형을 백신 접종을 통해 지구상에서 멸종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불과 수십년 동안 일어난 극적인 변화 덕분에 20세기 후반에는 감염학이나 미생물학, 기생충학 분야가 현실의 질병을 다루기보다는 기초 학문에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도 했다. 감염이란 더 이상 현실의 위협이 아니라 지난 세기의 흔적, 혹은 보건의료 기반이 취약한 저소득, 저개발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사라진 듯하다 다시 잦아진 ‘오래된 낯선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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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감염성 질환에 승리를 거두었다고 인간이 자만하고 있을 시점에도 병원체들은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인간의 주거지역에서 더 잘 번식할 수 있는 매개체들이 생겨났고,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 대륙간 인구 이동이 증가하면서 병원체가 이동하는 거리와 빈도도 늘어났다. 인구 증가로 개발되지 않았던 외진 환경에도 개발의 손길이 미치면서, 일부 야생동물에서만 유행하던 질병이 인간으로 옮아오는 경우도 늘어났다. 그렇게 점차 세를 불려오던 감염성 질환들은, 다시 인간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감염성 질환의 귀환은 이제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전지구적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광범위한 감염병의 전지구적 유행, 즉 대유행(pandemic)은 전례없이 흔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감염병의 대규모 유행은 과거에는 비교적 드문 일이었으며, 전지구적 규모로 일어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대륙간 인구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대항해 시대 이전에는 페스트 정도가 전지구적 유행병의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1차 대전 직후 일어났던 스페인 독감이 사람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대유행의 사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이런 대유행이 점차 흔해지기 시작한다. 발병에서 사망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 사람들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1980년대 이후 전세계에 퍼지기 시작한 ‘인간면역 결핍 바이러스/에이즈(HIV/AIDS)’의 유행 역시 대표적인 인수공통감염병에서 기원한 대유행이다. 유인원 면역결핍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HIV/AIDS는 현재 세계적으로 주요한 사망 원인 중 하나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상황이 또 변화했다. 2003년 4월 등장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2009-2010년을 강타한 ‘에이치원 엔원(H1N1) 인플루엔자’를 시작으로 대유행이라는 단어는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한 용어가 되었다. 게다가 2014년부터 이름조차 낯선 질병들이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에볼라, 메르스, 지카, 중증열성 혈소판감소 증후군 등 일반 대중은 물론 감염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던 질병들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등장했다.


이제 대유행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재앙’에서 해마다 일어나는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렇듯 지난 20여 년 간, 혹은 근미래에 광범위한 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감염병을 ‘신규감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s)’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SARS나 HIV/AIDS처럼 새로 등장한 질병, 인플루엔자처럼 변이를 일으켜 재유행하는 질병, 라임병(lyme disease)처럼 생태적 변화로 유행 지역이 변화하는 질병 등이 포함된다.

00infection2.jpg » 2003 SARS 발병 분포도. 흑색은 사망자가 발생한 국가, 적색은 확진 환자가 발생한 국가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opyrights to Maximilian Dorrbecker,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ARS_map.svg



새로운 감염질환이 잦아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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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인수공통감염병이 신규감염병으로 눈에 띄게 늘어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후변화다. 많은 인수공통감염병들은 모기나 진드기 등 매개체를 통해 전파된다. 기후변화로 연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태풍,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늘어나면 모기나 진드기의 활동 영역과 시기도 늘어난다.


둘째, 병원체의 진화다. 항생제나 백신, 항바이러스제 등의 투여를 통해 지난 세기에는 성공적으로 병원체를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도 병원체가 진화하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듯 보인다. 빠르게 늘어가고 있는 항생제 저항성 병원체의 등장은 전염병 통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광범위하고 무분별한 항생제 남용의 문제도 숨어 있다.


셋째, 인구 이동 및 무역의 증가다. 잠시 언급했듯이 세계화의 물결로 인한 전세계적 불평등의 확산, 자유무역으로 인한 무역량의 증가는 인간, 그리고 교역품에 병원체가 편승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치 과거 유라시아인과 신대륙 사람들이 조우했던 순간처럼, 병원체는 면역이 없는 인구에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게 되었다.


넷째, 개발의 확대다. 지난 수십년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식량과 집을 위해 더 많은 주거지,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과거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지역까지 개발의 손길이 미치게 되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기존에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병원체에 노출되었다. 또한 경작지를 위해 땅을 개간하고 댐을 짓고 지표수의 분포를 변화시키면서 매개체와 병원체의 분포도 함께 변화하게 되었다.


다섯째, 경제 위기다.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 위기는 저소득, 저개발 지역의 보건의료 시스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적절한 의료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잘 통제되고 있던 감염병이 돌아오거나,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밖에도 다양한 요인들이 신규감염병의 증가를 불러 올 수 있다. 국가 간 갈등으로 증가하고 있는 내전과 테러리즘에는 생화학 무기가 사용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일어난 2001년 탄저균 테러가 그 사례 중 하나다. 또한 에이즈 환자의 증가로 정상적인 면역체계를 가진 사람이라면 감염되지 않는 병원체가 인간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신규감염병을 증가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더불어 다양한 사회, 문화, 경제적 요인들이 작용할 수 있다.

00infection3.jpg » 2015년 한국 메르스 유행은 총 186명의 확진 환자를 발생시키며 한국도 더 이상 신규감염병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출처/ copyrights to Phoenix7777,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15_MERS_in_South_Korea.svg



한국의 위기대응과 위기관리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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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정부 차원의 감염병 관리 주요 지침인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중 제4군감염병, 즉 ‘국내에서 새롭게 발생했거나 해외에서 국내로 유입이 우려되는 신종전염병’에 해당되는 19종의 감염병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이다(2016.03 기준). 현재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병원체는 총 1415종이 확인되어 있는데, 이 중 61%가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이 중 30-40%가 한국에서도 발병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반해 한국의 대유행 위기대응 수준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2015년 한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메르스 사태에서도 적절치 못했던 정부의 대응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기존에는 이런 대유행에서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겼던 한국도 다양한 신규감염병에 노출될 수 있으며, 이는 메르스나 조류 인플루엔자의 유행 등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인수공통감염병과 신규감염병은 인간의 역사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쳐왔고,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앞으로 연재글에서는 인수공통감염병, 특히 신규감염병들의 증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 요인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 질병에 인간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대항해 왔는지를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들을 통해 다뤄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신규감염병의 유행을 어떻게 바라보고 분석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할 것인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1. 이우송(2015). 인수공통감염병 연구동항.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전문가리포트 12호.

2. Morens, D. M., Folkers, G. K., & Fauci, A. S. (2008). Emerging infections: a perpetual challenge. The Lancet infectious diseases, 8(11), 710-719.

3. Jones, K. E., Patel, N. G., Levy, M. A., Storeygard, A., Balk, D., Gittleman, J. L., & Daszak, P. (2008). Global trends in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Nature, 451(7181), 990-993.

4. Hoberg, E. P., & Brooks, D. R. (2015). Evolution in action: climate change, biodiversity dynamics and emerging infectious disease. Phil. Trans. R. Soc. B, 370(1665), 20130553.


정준호/ 기생충 독립연구자, 과학저술가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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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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