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의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질병의 원인을 인구집단 수준에서 찾는 학문을 역학(epidemiology)이라고 합니다. 이 분야 전문가인 김승섭 교수가 사회•공동체와 관련해 질병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의 역사를 짚으며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들려줍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병들게 되는지,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근대 해부학, 가난한 주검 위에 꽃피우다

[10] 가난, 몸, 그리고 해부학의 역사

anatomy2_Vesalius.jpg »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1543)에서. 출처/ Wikimedia Commons


과대학에서 가장 먼저 배웠던 과목은 해부학입니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저는 해부학 실습실에 처음 들어갔던 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내 앞에 누군가의 몸이 놓여 있고, 내가 메스로 그 사람의 피부를 가르고 근육과 뼈와 신경과 혈관을 구분하는 작업을 한다는 게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은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일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중세까지 인간 몸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은 고대 로마의 의학자 갈레노스(Galenos: 129-199?)의 저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세기 로마 아우렐리우스 황제 주치의였던 ‘의학의 황제’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로부터 내려온 서양 의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부학의 시작, 갈레노스와 베살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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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omy1.jpg »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인체 해부도. 출처/ <콜럼버스의 교환> (황상익) 갈레노스는 인간을 해부하지는 않았지만 원숭이, 돼지, 개를 해부하고 그 내용으로 인간의 몸을 유추했습니다. 또한 당시 로마 검투사들을 치료하는 주치의 역할을 맡았기에 그는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검투사들의 상처를 치료하며 팔, 다리의 절단면이나 복부의 일부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의 몸을 해부하지 않은 채, 인체의 해부학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했지요. 결국 중세에 출판된 인체해부도는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조악한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레노스가 인체해부를 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사회적 금기였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해부학적 지식에 기반한 진단과 치료가 아니라, 당시 의사들은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로부터 내려오는 ‘4체액설’을 기초로 인간의 몸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몸은 혈액, 점액, 황담액, 흑담액과 같은 4가지 체액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때 병이 발생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환자를 치료할 때에는 그 무너진 균형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피가 너무 많은 사람들은 사혈을 통해 피를 빼주고, 점액이 넘치는 사람들은 구토를 하게 해서 몸 안의 점액을 밖으로 빼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에 기반한 의학은 기본적으로 해부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포크라테스 전집과 갈레노스의 의학서적을 변치않는 진리처럼 따르던 중세가 지나고 근대가 찾아오면서 해부학에도 서서히 변화가 생겨납니다. 12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인체해부에 대한 금기가 풀리기 시작했고, 이후 유럽에서는 인체해부가 간헐적으로 진행됩니다. 14세기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하게 했던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기에도 인체 해부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체해부는 산발적이고 단편적으로 진행되었고 그러한 관찰 결과에 기반해 인간의 몸을 새롭게 이해하는 시각은 생겨나지 못했습니다. 16세기 해부학이라는 학문을 실질적으로 만든 안드레아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벨기에 출신의 해부학자 베살리우스는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 (De humani corporis fabrica libri septem)>를 1543년에 출판합니다. 근대 해부학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 책은 놀라울 만큼 정교한 인체해부와 정확한 그림을 담고 있습니다. 베살리우스 이후, 해부학은 의과대학 교육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병들지 않은 인간의 몸을 이해하고 또 병들었을 때 어떤 부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당시 유럽에서 인체해부를 위한 시신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해부학 연구에 쓰인 사형수와 절도된 주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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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영국의 헨리 8세(King Henry VIII)는 사형당한 죄수의 몸을 해부학자들에게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인체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탐구를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수의 몸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해부는 대중이 모두 보는 데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졌고, 해부를 마치고 남은 인체 부위는 동물에게 먹이로 주었으니까요. 이러한 내용은 사형수의 시체에 한해서 인체해부를 허용하는 1752년 살인자법(Murder Act of 1752)으로 공식화됩니다.


러나 이후 의과대학의 수가 급증하면서 사형수 시신으로는 해부를 위한 충분한 시체 숫자를 확보하기 어렵게 됩니다. 결국 암시장에서 시체 거래가 활성화되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합니다. 사체 절도(body snatching)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8세기에 등장한 그들은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fresh) 시체를 구하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시체 처리를 걱정하는 친척에게서 시신을 인수받기도 했지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사망한 사람의 친척인 것처럼 속이거나 뇌물을 주고 시신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1]


anatomy3.jpg » ‘사체도굴자 윌리암 버크(William Burke)의 시신은 해부에 사용된 이후, 현재 에딘버러 대학교 해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체절도범이 해부학자에게 넘긴 시체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시체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시에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가족이 치료비를 지불해야 시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치료비를 지불하지 못한 경우, 시신은 사체절도범에게 넘어갔지요. 설사 병원비를 어렵사리 지불하고 시신을 받아내도, 가난한 가족들은 허름한 나무 관이나 혹은 그조차 없이 공동묘지에 묻어야 했습니다.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훔치는 사체절도범들에게는 좋은 목표물이 되었지요.


사체절도범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1828년 영국의 윌리엄 버크(William Burke)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과 술을 제공한 뒤에, 그들은 살해했습니다. 시체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가슴 부위를 강하게 눌러 숨을 못쉬게 만들어 살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해부용으로 판매했지요. 그 시신을 구입한 사람은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을 연구하던 로버트 녹스 박사(Dr. Robert Knox)였습니다. 이후 이러한 범죄행위가 발각되어 그는 1829년 사형당합니다. 사형당한 그의 몸은 당시의 법령에 따라 해부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체절도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에 만연하던 시기에, 부유한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안전한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훨씬 더 단단하고 열기 어려운 비싼 관을 구입했던 것이지요. 1818년 당시 관에 대한 특허(Patent Coffin of 1818)는 사체절도의 걱정 없이 안전하다는 점을 핵심 내용으로 담았습니다. 부유한 가족들에게서 돈을 받은 공동묘지 관리인들은 안전하게 사체를 화장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고요.


이와 같은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시체 거래에 대한 대중의 불안이 커지자, 영국에서 1832년 해부학 법령(Anatomy Act of 1832)이 시행됩니다. 사형수의 시체만이 아니라 기증 받은 시체도 해부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해부용 시체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19세기 영국을 기준으로 당시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실습에 사용되었던 시체의 99% 이상이 가난한 사람들을 수용하던 구빈원(poor house)에서 나온 것이었으니까요.



가난한 몸을 다루던 해부학 지식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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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살아 있을 때의 경제적 불평등이 죽음 이후에 시체 해부의 측면에서도 지속된다는 것 말고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시체만 해부되고 기록되면서 해부학의 역사는 여러 오점을 지니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난은 인간의 몸은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anatomy4.jpg » <닥터 W. 반 데르 미어의 해부학 수업, 델프트에서(Doctor W. Van der Meer‘s Anatomy Lesson in Delft)>, Pieter van Miereveld 작(1617)

 

늘날 우리는 가난이, 또는 경제적 결핍과 사회적 폭력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코티졸(cortisol)을 높이고, 그 결과 심장병,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병 발생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과학적 사실입니다. 코티졸을 분비하는 신체기관은 신장 뒤에 있는 부신(adrenal gland)입니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많이 사용하면 근육세포가 커지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몸에서 일상적으로 코티졸이 더 자주 더 많이 분비되면서 부신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게 되는 것이지요. 1930년대까지 이러한 사실을 학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해부학자들은 그들이 해부하는 시신들이 일생 동안 가난 탓에 받았던 스트레스로 인해 부신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시신에서 부신은 커져 있었으니까요.


몇몇 해부학자는 간혹 드물게 고소득 계층 사람의 몸을 해부하다가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비정상적으로’ 부신이 작은 경우를 발견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학자들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부신 조직이 축소되는 질병이 있다는 보고를 합니다. 그 때 사용한 질병이 ‘특발성 부신 위축증 (idiopathic adrenal atrophy)’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발견은 당황스러운 에피소드로 끝나게 되지요.  부유한 사람들의 부신 크기가 인체의 정상적인 부신 크기였던 것이고, 그동안 해부용으로 사용된 가난한 사람들의 시체에서 발견된 부신이 비정상적으로 컸던 것이니까요.[1]



근대 지식에 투영된 경제불평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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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의학의 탄생은 해부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해부학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질병의 원인에 대해 중세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수준에서 질병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진단명은 거의 모두 해부학적 지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대장암은 대장에 암이 생겼다는 뜻이고, 폐결핵은 폐가 결핵균에 감염되었다는 뜻입니다. 해부학이 자리잡기 전에는 증상 자체가 진단명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열, 설사, 기침, 구토, 황달 같은 것들이, 그 자체로 진단명으로 사용되고, 사망자 통계를 낼 때도 그대로 사용되었던 것이지요.


류 역사에서 오랜 시간 사회적 금기였던 인체해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몸을 발판으로 한 걸음씩 전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해부학적 지식 뒤에는 가난으로 인해 물건을 훔치다가 사형을 당한, 가난으로 인해 구빈원에서 죽어갔던 이들의 몸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주]


[1] Sapolsky RM. Anecdotal Evidence. The Sciences. 1991;31(5):8-10.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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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부교수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경험과 고용불안 등의 사회적 요인이 비정규 노동자, 이민자,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 지에 대해 연구한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메일 : ssk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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