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의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질병의 원인을 인구집단 수준에서 찾는 학문을 역학(epidemiology)이라고 합니다. 이 분야 전문가인 김승섭 교수가 사회•공동체와 관련해 질병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의 역사를 짚으며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들려줍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병들게 되는지,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 총기를 소지하면, 안전해질 수 있을까

[6] 근원처방 못하고 되풀이되는 사회적 위험들


00gun1.jpg » 2007년 4월16일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때 조승희씨의 총에 맞아 숨진 케이틀린 해머런의 친구들이 버지니아공대 캠퍼스 추모비 옆에서 해머런을 추모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자료사진, AP 연합(2007)


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국보다 넉넉한 그 나라의 많은 것이 신기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에게 직접 배울 기회가 있다는 것, 그리고  대학 시스템이 학생 교육을 행정의 중심에 놓아 합리적이라는 점도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미국이 한국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미국에서는 민간인의 총기 휴대를 허용한다는 점이었죠. 삶의 어느 순간 울컥하여 누군가가 죽도록 미운 때, 그리고 그로 인해 다툼이 있을 때, 충분히 훈련받지 않은 민간인이 총기를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굳이, 아주 특이한 정신질환자의 경우가 아니라 해도 말입니다.


한국에 잘 알려진 2007년 재미 한국인 조승희의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나, 2012년 코네티컷 샌드훅의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그리고 불과 며칠 전인 2015년 10월 1일 발생한 오리건대학 총기난사 사건까지, 미국에서는 민간인이 총기를 이용하여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 보고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총기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31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매년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총기 사고로 죽어간 것입니다.



‘당신이 총이 없었기 때문에 당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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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텍사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미국인 친구와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총기 소유를 적극 옹호하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총기를 휴대하고 다니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자기는 마트에 가면 총을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고, 항상 집안에 총기가 있었다고요. 총기를 가지고 있으면 나를 위협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그러니 총기 소유를 통제하고 금지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총기를 갖고 있도록 해야 한다구요.


시 말해, 모든 국민이 총기를 소유하면 모든 개인이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총기에 의한 사망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이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미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가 총기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는 이야기이자, 실제로 많은 사람이 총기 소유를 옹호하게 만드는 중요한 믿음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가설입니다.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총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 비해 총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안전하다”는 말이죠. 연구자로서, 이런 주제에 덤벼드는 것은 실은 매우 긴장되는 일입니다. 작은 실수라도 찾아내 연구에 흠집을 내려고 하는 미국총기협회를 비롯한 거대한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미국총기협회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총기사고로 죽는다’는 가설은 사실상 연구자가 엄밀하게 검토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총기사고라는 주제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관찰 연구를 해야 하는데, 총기사고와 관련된 여러 요소를 적절히 통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30개월의 열정적 조사 통해 드러난 새로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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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연구자들은 이 가설을 직접 검토하는 대신, 우회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총기를 구입한 적 있는지,[1][2] 집에 총기가 있는지[3][4] 그 여부에 따라 총기 사고 발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는 미국총기협회가 주장하는 ‘사고의 순간에 총기를 가지고 있었으면 안전했을 것이다’는 주장을 반박하기에 근거가 부족합니다.


2009년 이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연구가 미국공중보건학회(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 출판되었습니다.[5] 펜실베니아대학의 브라나 박사(Charles C. Branas)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입니다. 이들은 환자-대조군 연구(Case-control study) 방법을 채택해, 필라델피아 경찰국의 협조를 받아 2003년 10월 15일부터 2006년 4월 16일까지, 2년 6개월 동안 총기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을 확인했습니다. 사후적으로 확인한 게 아니라, 2년 6개월 동안 꾸준히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의 협조를 얻어 사고를 검토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필라델피아에서는 총 3485건의 총기사고(shootings)가 발견되었고, 하루에 평균 4.77건의 총기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총기사건의 피해자 중 총기 소유가 법적으로 금지된 21살 미만인 경우, 피해자 인종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 등을 제외하고, 사망자를 포함한 피해자 중 연구집단을 무작위로 추출했습니다. 그리고 경찰, 응급구조원, 법의학자 등을 통해 총기사고의 상황과 관련된 주요한 정보를 수집했지요. 물론 그 피해자들이 사건 발생의 순간에 총기를 소유하고 있었는지도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적절한 비교집단을 고르는 일이었습니다. 환자-대조군 연구에서 연구의 질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적절한 대조군(control)을 찾는 일이거든요. 연구진이 2년 6개월 동안 해낸 일을 보면서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대단한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거든요. 총기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일을 기점으로 4일 이내에 피해자와 같은 연령대의 대조군(control)을 찾아냅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인터뷰를 거절하지요. 여러 명의 연구자가 동시에 대조군을 찾아낼 때까지 작업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총기사건이 발생한 시간대에 그 대조군(control)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연령, 성별, 인종, 머물던 지역, 직업, 그리고 당연히 그 시간에 총기와 얼마만큼 가까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이죠. 그 작업은 2년 6개월동안 꾸준히 계속되었습니다.


결과, 피해자 집단 677명, 그에 대한 대조군 집단 684명을 찾아내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총기를 소유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총기사고를 경험할 위험이 4.6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에 대해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총기를 가지고 있다 해도, 총기를 사용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사망하면 총기를 가지고 있다는 게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요. 그래서 이 연구팀은 총기를 사용할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다치거나 사망한 이들에 대해 또 다시 분석을 진행합니다. 그러자 위험은 오히려 증가합니다. 총기를 사용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총기를 소유하고 있을 경우, 사고를 경험할 위험이 5.45배로 증가하는 것입니다. 총기가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대응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되고, 총이 없었다면 피했을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증가해 사고 위험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총기 소유’ 금지된 한국은 얼마나 안전한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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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오리건 주 총기사고를 언급하며,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미국에서 총기는 여전히 규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미국의 수정헌법 2조가 있고, 더 현실적으로는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엄청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총기협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난 10년간 총기 테러로 사망한 숫자가 300명이고, 총기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30만 명이라는 미국 질병관리본부 통계 앞에서도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비극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나서도, 현실적 이해관계로 인해 여전히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지속됩니다.  동일한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안타깝지만 언젠가 또 다시 미국에서는 이런 총기사고가 같은 유형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근원적인 원인을 바꾸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는 미국에서 계속되는 총기사고를 보며 ‘416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습니다. 참 두려운 질문 하나도 함께 떠오릅니다. 만약 내년 4월, 또 다시 대한민국 바다 어딘가에서 어떤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304명보다 조금이라도 더 희생자를 줄일 수 있을까? 2014년 4월보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짐작컨대, 이제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누구도 선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따르면 죽게 된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가 알려준 가장 큰 교훈이었으니까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안전요원들에게 목숨을 바쳐 시민들을 구하라고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정규직임에도 목숨을 바쳤던 단원고의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은 ‘순직유족급여’를 받지 못했으니까요. 민간 잠수사들에게도 더 이상 자기 생업을 뒤로 하고 바다에 뛰어들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어지겠지요. 선내 시신 수습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가 사망한 책임을, 전체적인 총괄책임을 지던 해경이 아니라 동료 잠수사에게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되는 총기로 인한 민간인 학살에도 총기를 규제하지 못하는 미국,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도 또 다른 ‘세월호 침몰’을 막지 못하는 한국. 이 두 나라가 과연 얼마나 다를까요? 한국은 ‘민간 총기 소유’가 금지되어 있으니 우리는 안전한 나라라고, 안심해도 되는 걸까요?



[주]


[1] Grassel KM, Wintemute GJ, Wright MA, Romero M. Association between handgun purchase and mortality from firearm injury. Injury Prevention. 2003;9(1):48-52.

[2] Cummings P, Koepsell TD, Grossman DC, Savarino J, Thompson RS. The association between the purchase of a handgun and homicide or suicide.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997;87(6):974-8.

[3] Wiebe DJ. Homicide and suicide risks associated with firearms in the home: a national case-control study. Ann Emerg Med. 2003;41(6):771-82. doi: 10.1067/mem.2003.187. PubMed PMID: 12764330.

[4] Kellermann AL, Rivara FP, Rushforth NB, Banton JG, Reay DT, Francisco JT, et al. Gun ownership as a risk factor for homicide in the home. N Engl J Med. 1993;329(15):1084-91. doi: 10.1056/NEJM199310073291506. PubMed PMID: 8371731.

[5] Branas CC, Richmond TS, Culhane DP, Ten Have TR, Wiebe DJ. Investigating the link between gun possession and gun assault. Am J Public Health. 2009;99(11):2034-40. doi: 10.2105/AJPH.2008.143099. PubMed PMID: 19762675; PubMed Central PMCID: PMC2759797.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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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부교수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경험과 고용불안 등의 사회적 요인이 비정규 노동자, 이민자,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 지에 대해 연구한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메일 : ssk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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