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의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질병의 원인을 인구집단 수준에서 찾는 학문을 역학(epidemiology)이라고 합니다. 이 분야 전문가인 김승섭 교수가 사회•공동체와 관련해 질병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의 역사를 짚으며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들려줍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병들게 되는지,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성결혼 불인정은 성소수자 건강에 어떤 영향 끼치나

[3] 미국 동성결혼 합헌 판결 계기로 본, 사회제도적 차별과 건강


00samesexmarriage2.jpg » 미국 연방대법원이 6월26일 동성결혼이 헌법적 기본권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 백악관은 외벽에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조명을 밝히며 환영했다. 페이스북 이용자 2600만여 명도 자신의 프로필에 무지개 색깔을 입혔다. 출처/ AP연합


혹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을까’라고요. 예를 들어, 노예해방 이전과 이후에 흑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물론 ‘해방’이 선언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삶이 바뀌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더 이상 법적으로 노예가 아닌 것은 분명 큰 변화였고, 거대한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씨앗이 오랜시간을 거쳐 ‘혁명’에 버금갈 만한 변화를 꽃피운 것이구요.


2015년 6월 26일은 누군가에게는 ‘노예해방’만큼 중요하고 역사적인 날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법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동성결혼(Same-Sex Marriage)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그 결과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동성애자들이 정신질환을 지닌 환자로 취급받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동성애자들끼리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동성결혼 합헌 결정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제 미국에서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대법원이 확인해준 셈이니까요.


사회적 환경이 사람들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사회역학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과연 ‘동성결혼 합헌’ 판정은 미국 성소수자들의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 라고요. 이 질문은 아직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한국사회에 더 유용하게 다음과 같이 바꿔볼 수 있습니다. ‘동성결혼 불인정’이라는 제도적 차별은 성소수자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1][2]



동성결혼과 성소수자 건강에 대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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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연구는 어떻게 설계하고 진행할 수 있을까요. 흡연과 폐암의 관계는, 흡연을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추적관찰하는 코호트(cohort) 연구를 통해 폐암 발생을 비교하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동성결혼 불인정’이라는 제도적 차별은 개인적 수준의 위험인자가 아니라 공동체/국가 수준의 위험인자라는 점이지요.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은 같은 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같은 사회에서 ‘동성결혼 불인정’이라는 제도적 차별을 받지 않는 비교집단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10년간 그런 어려움을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한 연구들이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의 와이트(Wight) 박사는 캘리포니아에서 2008년 6월 16일에 동성결혼 합법화가 결정되었다가 같은 해 11월 5일에 그 결정이 뒤집혀 동성결혼이 금지되는 상황이 2013년까지 지속된 점에 주목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동성애자 커플들은 2008년 6월부터 11월까지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만 ‘합법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에는 ‘합법적인 결혼’을 한 성소수자 커플과 ‘합법적인 결혼’을 하지 못한 성소수자 커플이 같은 지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와이트 박사와 동료들은 2009년 진행된 ‘캘리포니아 건강 인터뷰 연구(California Health Interview Survey)’를 분석하여, (1) 합법혼을 한 성소수자 커플, (2) 합법혼을 하지 못한 성소수자 커플, (3) 합법혼을 한 이성애자 커플의 정신건강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합니다.[3] 그 결과, 합헌혼을 한 성소수자 커플은 이성애자 결혼 커플과 유사한 정신건강 상태를 보였고, ‘합헌혼’을 하지 못한 성소수자 커플과 비교했을 때 정신건강 상태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양호한 상태로 나타났습니다. 즉, 법/제도적으로 인정받는 ‘합헌혼’을 할 경우 성소수자들은 그렇지 못한 성소수자들에 비하여 더욱 건강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논문은 단면연구를 분석했기에 피할 수 없는 약점을 지닙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던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합법혼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성소수자 커플들이 그렇지 못했던 커플에 비해서 원래부터 더 건강한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같은 결과에 대해 ‘원래 건강한 사람들이어서 5개월의 짧은 기회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지, 합법혼을 한 성소수자여서 건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 ‘동성결혼 불인정’이 성소수자들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동성결혼 불인정’이 제도화되기 이전과 이후에 같은 사람의 건강 수준을 비교해야 하는데, 단면연구로는 그러한 분석이 불가능하니까요.



미국 전역의 성소수자 건강 추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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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약점을 보완한, 동성결혼 불인정이라는 사회적/제도적 차별이 성소수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연구는 하첸뷜러(Hatzenbuehler) 등이 2010년 미국공중보건학회지에 출판한 논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96년에 미국연방의회가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정의하여 동성결혼을 부정하는 ‘결혼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을 통과시킨 이후에, 동성결혼을 금지하고자 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미국 전역에서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2004년과 2005년에 16개 주에서 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적극적으로 금지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하첸뷜러 교수와 하버드대학, 콜롬비아대학의 교수들은 미국 전역에서 음주 관련 역학 연구(National Epidemiologic Survey on Alcohol and Related Condition)의 1차 조사(2001/2002년)과 2차 조사(2004/2005년)가 진행되는 사이에 16개 주에서 동성결혼 금지가 공식화된 것에 착안했습니다. 같은 사람을 추적조사하는 ‘패널 데이터’를 이용해서, 동성결혼 금지가 법제화된 16개 주에 거주하는 성소수자와 나머지 30개 주에서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에서 ‘동성결혼 금지’가 성소수자들의 정신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지요.[4]


물론 그 이전에 동성결혼이 미국에서 허용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메사추세츠주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한 것이 2004년이었으니까요. 1996년 ‘결혼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 통과 이후에, 미국의 몇몇 주들은 동성결혼을 적극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려 했고, 그 결정을 주민투표에 부쳤습니다. 투표를 앞두고 캠페인 과정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내용들이 텔레비전과 신문에 나타났습니다. 그러한 시기를 지나 투표로 ‘동성결혼 금지’라는 적극적인 반대 법안이 제정되었고, 그로 인한 건강 효과를 연구는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 결과, ‘동성결혼 금지’ 법안을 통과시킨 주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은 1차 조사에 비해 2차 조사에서 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 유병율이 248.2% 증가했고, 정동장애(any mood disorder) 유병율은 36.6% 증가했습니다. 반면에 동성결혼을 금지하지 않은 주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의 정신 건강은 상대적으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악화되지 않았습니다. 불안장애는 48% 증가에 그쳤고, 정동장애는 오히려 23.6% 감소했던 것입니다. 즉 동성결혼 금지 법안이 통과된 주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의 경우에만 정신 건강이 유의하게 악화된 것입니다.

00samesexmarriage1.jpg »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대표가 지난 7월 6일 오후 3시 서울시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동성결혼 소송 첫 심문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김성광 기자


2015년 6월 26일, 그 이전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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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에 비해서 더 많이 아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5] 1966년부터 2005년까지 출판된 성소수자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출판된 28편의 연구을 분석한 한 논문은 성소수자한테서 이성애자에 비해 자살시도 유병율이 2.5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유병율이 1.5배 높은 것으로 보고했습니다.[6]


앞서 살펴본 2편의 연구는 성소수자들이 이처럼 더 많이 우울증에 걸리고 또 더 자주 자살 시도를 하던 이유 중 많은 부분이 사회, 제도적 차별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7][8][9] 동성결혼 불인정과 같은 제도적 차별이 동성애를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반과학적인 사고와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조롱하는 몰지각한 행동들을 강화했습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학교와 직장에서, 의료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차별을 겪게 되고, 성소수자들은 그 차별을 감내하거나 그 낙인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부정해야 했습니다.


미국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정 이후에도 일상 곳곳에 스며든 차별적 제도가 시정되고,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상처를 입고 또 견디며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동성애를 질병으로 취급하던 시대를 지나 동성결혼 합헌 판정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간의 싸움 덕분에, 다음 세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한국의 성소수자들도요.[10]


[주]


[1] Gonzales G (2014) Same-sex marriage-a prescription for better health. N Engl J Med 370: 1373-1376.

[2] Kamerow D (2012) Does gay marriage improve health? BMJ 345: e8586.

[3] Wight RG, LeBlanc AJ, Lee Badgett M (2013) Same-sex legal marriage and psychological well-being: findings from the California Health Interview Survey.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03: 339-346.

[4] Hatzenbuehler ML, McLaughlin KA, Keyes KM, Hasin DS (2010) The impact of institutional discrimination on psychiatric disorders in lesbian, gay, and bisexual populations: A prospective study.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00: 452-459.

[5] Blosnich JR, Silenzio VM (2013) Physical health indicators among lesbian, gay, and bisexual U.S. veterans. Ann Epidemiol 23: 448-451.

[6] King M, Semlyen J, Tai SS, Killaspy H, Osborn D, et al. (2008) A systematic review of mental disorder, suicide, and deliberate self harm in lesbian, gay and bisexual people. BMC psychiatry 8: 70.

[7] Krieger N, Sidney S (1997) Prevalence and health implications of anti-gay discrimination: a study of black and white women and men in the CARDIA cohort. Coronary Artery Risk Development in Young Adults. Int J Health Serv 27: 157-176.

[8] Logie CH, Newman PA, Chakrapani V, Shunmugam M (2012) Adapting the minority stress model: associations between gender non-conformity stigma, HIV-related stigma and depression among men who have sex with men in South India. Soc Sci Med 74: 1261-1268.

[9] Hammelman TL (1993) Gay and lesbian youth: Contributing factors to serious attempts or considerations of suicide. Journal of Gay & Lesbian Psychotherapy 2: 77-89.

[10] 이혜민, 박주영, 김승섭 (2014)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체계적 문헌고찰. 보건과 사회과학 36: 43-76.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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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부교수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경험과 고용불안 등의 사회적 요인이 비정규 노동자, 이민자,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 지에 대해 연구한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메일 : ssk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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