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민의 "추리과학소설 '해석기관'"

과학자를 동경했지만 수학 성적 때문에 문과로 진로를 튼 대학생 성여울, 그리고 과학자의 길을 걷던 중 불의의 사고로 꿈을 접고만 도나혜 석사. 서먹한 자취방 룸메이트인 그들에게 차례로 찾아오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 두 사람은 과학지식과 경험과 증거를 열쇠삼아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이해하지 못한다 -제6화①


00Particle2D.jpg » 출처 / Wikimedia Commons


제6화. 상자 속 입자




“아무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리처드 파인만(미국의 물리학자)




“자, 그럼 뜯어보자.”


왼손으로는 드라이버를 꼭 쥔 채, 과학자 룸메이트의 눈은 호기심이 상당부분 섞인 기묘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평소에 게임을 하거나 과외 아르바이트를 나갈 때는 축 처져 있는 이 언니가 눈을 반짝일 때는 뭔가 궁금증을 자극하는 일이 생겼을 때뿐. 하지만 그럴 때는 100% 호기심이고, 지금의 눈빛은 조금 다르다. 한참 동안 같이 살면서 몇 번이고 사건을 해결해온 내게는 언니의 무표정한 얼굴을 얇게 덮은 또 하나의 감정이 보인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분노 반 장난기 반? 얼마나 엉망인지 보고 싶어서 못 견디겠다는 비틀린 두근거림? 그런 언니의 오른손에 달린 갈고리는 엘이디(LED)와 버튼 몇 개가 달린 하얀 상자를 단단히 눌러 바닥에 고정시킨 채였다. 문제의 상자 옆면에는 파란색으로 이런 글자가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헬시퀀텀 가정용 양자파동치료기 QTM2000’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양자물리학의 원리로 산성화된 몸을 알칼리성으로!’


00openclipartorg_6_1.jpg 얼마 전에 돌아가신 작은어머니 댁을 정리하며 언니는 쌓여 있던 이 수상쩍은 의료기기 몇 개를 챙겨왔다. 당연히 산성화된 몸을 알칼리성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아마 물리학도 출신으로서 가만히 둘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양자물리학’이라는 단어 바로 위의 나사를 향해 나혜 언니의 드라이버가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손가락을 요령 좋게 움직이자 나사가 하나하나 풀리며 놀라운 양자파동치료기의 속살이 형광등 불빛 아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언니 맞은편에 앉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개봉박두의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건……,”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니는 그 안쪽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 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빈 상자나 다름없네.”


LED에 연결된 단순하기 짝이 없는 회로, 자석, 그게 ‘가정용 양자파동치료기’의 내용물 전부였다. 이걸로 산성화된 몸을 알칼리성으로 바꿀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건 문외한인 나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절로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광경이었지만 그래도 언니는 언니다운 꼼꼼함으로 회로 기판을 붙잡고 있는 나사까지 전부 풀어냈다. 그 아래에 신비로운 물질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듯이.




론 그럴 리 없었다.


기판 아래에는 그 어떤 신비로운 물질도, 장치도 없었다.


단지 하얀 종이 한 장만이 가만히 접혀 놓여 있을 뿐.


사무용지를 작게 잘라놓은 그 조각을 언니는 왼손으로 가만히 집어 들었다. 옛날에 반장투표 할 때 썼을 법한 작은 쪽지. 그 안에는 뭔가 쓰여 있었지만, 반장 후보의 이름은 아니었다. 아주아주 짧은 한 문장이었다. 나도 모르게 따라 읽게 될 만큼 강렬한 한 문장.


“살려주세요.”


수상쩍은 양자치료기 안에서 발견된 쪽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을 읽는 순간 언니의 눈빛이 다시 한 번, 장난스러운 분노에서 순수한 궁금증으로 바뀌는 것을 나는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바쁜 학기 중에 모처럼 맞은 한가한 주말의 시작에, 나와 언니는 자취방에서 버스로 한참 가야지 있는 교외의 공장 문 앞에 서 있다. ‘대학 취업동아리에서 우리 주변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실한 기업을 취재하고 있는데요……,’ 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내 둔 뒤였고, 흔쾌히 방문 허락도 받았지만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지 못했고 소문조차 들은 적 없다. 하지만 문제의 양자치료기는 이곳에서 만들어졌고 쪽지는 분명 그 안에 있었다.


“뭔가 있어.”


언니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확실한 건 없지만-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확률만은 분명히 있어.”


문이 열리고, 상쾌하게 웃는 얼굴의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사람이 ‘헬시퀀텀’의 사장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기업 홈페이지 중에서도 유난히 조잡한 사이트에 처음 들어가면, 화면 한쪽에 대문짝만하게 떠오르는 것이 이 사람의 얼굴이었으니까. 다만 그 사진의 미소가 홍보용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접착제로 붙이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달라붙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뿐.


“아이구, 학생들! 어서 들어오세요. 환영합니다!”


신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자그마한 공장 안을 한 바퀴 쩌렁쩌렁 울린 뒤 문 밖까지 튀어나왔다. 나와 언니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색하게 인사하며 사장의 안내를 따랐다. 살려달라는 외침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이 쾌활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받아들이려고 애쓰면서, 앞으로도 이상한 일을 얼마든지 겪을 각오를 하면서.




장실의 푹신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다과까지 대접받는 동안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지만, 그런 느낌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이 사장이라는 사람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였다. 아무래도 이 사람은 모든 표현을 신나 죽겠다는 뉘앙스로 하지 않으면 정말로 죽는 병에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선후배 사이시구나! 그럼 그럼, 선후배끼리 친한 게 좋지! 사회 나오면 그게 다 인맥이고, 어, 그리고 그런 게 다 기회가 되고 그러는 거예요! 취직자리 알아볼 때도 그게 아주 절대적이지, 그럼.”


이런 지긋지긋한 얘기의 화제를 어떻게든 바꿔놓기 위해서는 역시 나혜 언니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이 언니한테는 주변 분위기와 상관없이 궁금한 건 꼭 답을 얻어내고야 마는 추진력이 있으니까. 물론 ‘여기서 혹시 죽은 사람이 있나요?’ 같은 질문을 하는 건 아니었다. 답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그거보단 더 똑똑한 질문이 필요했다.


“저희는 이 기업에서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생산직에서는 뭘 하고 연구직에서는 또 어떤 일을 하는지, 그런 걸 학교에 알리고 싶습니다. 혹시……,”


“아, 그래! 연구! 연구가 또 중요하지. 혁신의 시대! 스티브, 그 뭐야, 스티브 잡스 알죠? 그런 사람이 돼야 창조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가지고 그걸로 아주 창의적인 사업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젊은 패기로다가 그런 걸 도전을 해 봐야지.”


“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게 중요해요. 그 에디슨이란 사람도 어릴 때 달걀을 직접 품어보고 그랬다잖아? 안 된다, 안 될 거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나쁜 파동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일이 안 되는 거니까. 그 책에 나온거 알죠? 베스트셀러잖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지 그 양자역학적인 파동으로다가 좋은 일이 이렇게 우리한테 끌어당겨지는 거 상식이잖아요? 대학생이면 독서도 하고 그래야지.”


이런 식의 대화가 길게길게 이어진 끝에 언니는 다시 한 번 강수를 두었고,


“실제로 어떻게 연구나 생산이 이루어지는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물리학부 유범운 교수님의 자문을 받아서 교지에 추천사를 실을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먹혔다.


“물리학 교수분을 아나요? 진작 말해주지! 아이구 이럴 때가 아니네, 우리 연구자료를 다 보여줘야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100% 먹힌 건 아니었다. 우리가 원한 건 공장 안을 둘러보는 거였지만, 사장은 그 전에 이 공장의 연구 책임자라는 사람을 불러와 홍보용 피피티(PPT)를 보여주게 했으니까. 연구 때문에 바쁘다고 그가 불평하자 사장은 말을 끊으며 이렇게 밀어붙였다.


00openclipart_6_3.jpg “바쁘다, 안 된다, 이런 부정적인 말 안 된다니까. 그 밥에다가 긍정적인 말 하면 안 썩는 거 알지? 말해 줬잖아, 내가. 우리 공장 최고의 브레인이 그런 건 다 알아야지.”


그래서 우리는 연구 책임자(알고 보니 공장의 유일한 연구원)의 발표까지 억지로 감상해야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조별과제 때 동기가 만들어온 것보다 나쁜 피피티를 보는 순간 크나큰 충격을 받았지만, 언니는 그 내용에 더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매 슬라이드마다 언니의 표정에 나타났으니까. 그래프 하나, 차트 하나, 수치 하나하나가 언니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 자명한 고통의 표정을 사장은 이렇게 해석했다.


“입이 딱 벌어지지? 양자 파동으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무병장수도 꿈이 아닌데, 이걸 교수님한테 보여드리면 아마 교수님도 깜짝 놀라실 거야. 그렇죠?”


“그러게요…….”


“자, 자! 그러면 마음대로 공장 돌아보고,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우리 회사가 또 아주 노동환경이 좋아요. 만사를 긍정적으로! 이게 사훈이거든.”


그 말을 듣자마자 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홱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그 뒤를 따르는 내 발걸음도 어느새 전력질주에 가까울 만큼 빨라져 있었다.




“지긋지긋한 양자 신비주의.”


숨을 몰아쉬며 언니는 그렇게 말을 내뱉었다. 그게 뭐냐고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내 과학자 룸메이트는 방금 들은 얘기에 대해 하나하나 지적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상태인 모양이었으니까.


“연구실 다닐 때 가끔 저런 사람이 찾아왔어. 사이비들, 자기가 현대과학을 뒤집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리학 교수들 찾아다니면서 인정받고 싶어 하거든. 그래서 나도 교수님 이름 댄 거고. 그 중에 양자 신비주의자들이 많았어. 양자역학을 어디서 들은 건 있으니까 대충 아무거나 갖다 붙이는 거지.”


“긍정적인 파동 뭐 그런 거요?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00wikimedia_6_3.jpg “양자역학은 우리 생각대로 우주가 결정된다는 편리한 이론이 아니야. 마법도 아니고, 긍정적인 사고하고는 관련도 하나 없고. 장담하건대 저런 말 하는 사람은 슈뢰딩거 방정식 한번 제대로 풀어본 적 없을 거야. 제일 간단한, 1차원 상자 속 입자 모델도.”


거기서 더 놔뒀다면 아마 언니는 나한테 ‘1차원 상자 속 입자’가 뭔지에 대해 설명해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 뒤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양자역학 강의는 잠시 중단되었다.


“아니, 여기서 뭘 하고들 있나? 표정은 긍정적으로! 어디부터 가야 할 지 모르겠으면 내가 안내를 해 줄 테니까 따라오세요. 자, 신비로운 양자의 세계로 갑시다!”


언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지만 사장은 그 어떤 부정적인 신호도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문제의 양자치료기가 만들어지는 곳은 가내수공업보다 약간 나은 수준의 작업장이었고, 신나는 트로트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주머니 다섯 분이 싱글벙글 웃으며 기판을 조립하고 계셨으며, 사장은 그 모든 것이 자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신나게 일을 해야지 능률도 올라가고, 건강도 좋아지고! 이게 내가 그냥 지어내는 소리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다 증명한 얘기예요. 그렇죠, 여러분?”


“그럼요, 사장님!”


언니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나는 다행스럽게도 양자역학에 대해 잘 모르는 덕택에 공장 여기저기를 둘러 볼 여유가 생겼다. 낡은 선반, 널브러져 있는 공구들, 그리고 한쪽의 작은 신발장까지. 신발장 각 칸에는 직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단 하나, 여섯 번째 칸을 제외하면.


“언니, 이거 좀 봐요.”


직원이 다섯이니 여섯 번째 칸은 물론 비어 있었다. 단지 이름표 스티커가 붙어 있던 흔적이 남아 있었을 뿐. 여섯 번째 직원이 있었다가 어느 날 없어졌다는 암시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긍정으로 가득 찬 이 공장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는 것 같았다.


“확실한 건 없지만.”


“그래도 뭔가 있었을 확률은 더 높아진 거네요.”


공장 안을 자세히 살펴볼수록 그 확률은 점점 높아졌다. 이를테면 부자연스럽게 비어 있는 개인 공구함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벽의 화이트보드에 적힌 시간표도. 오래 되어 눌어붙은 유성매직 선들 사이로 명백하게 최근에 그어진 것이 몇 개 있었다. 수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나는 문득 우주에서 오는 입자들을 감지하기 위한 안개상자 실험을 떠올렸다. 입자 자체는 직접 볼 수 없지만, 증기를 헤치고 지나가는 궤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흐려져 가는 모습을. 이 공장에도 그런 입자가 있었던 걸까? ‘긍정’의 증기 속에 희미한 궤적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소립자가?


“고부가가치 창조산업 아니에요, 이게. 양자물리학을 이용해서 이렇게 가정용 치료기기를 만든 건 우리 회사가 세계 최초, 세계 일류거든.”


“저, 사장님?”


“아유, 아가씨가 또 뭐가 궁금하실까?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세계 일류라서 자랑할 게 아주 많어, 그냥.”


“홈페이지에 보니까 숙소 제공이라고 되어 있던데, 혹시 좀 볼 수 있을까요?”


이 곳에 남기고 지나갔을 흔적, 존재했을 확률의 조각,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것을 모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 모든 존재확률을 모으면 진실이 눈 앞에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론부터 말하자면 숙소 자체에는 별로 볼 게 없었다. 하룻밤 묵으려고 잡아 둔 작은 모텔보다도 훨씬 나빴고, 자취방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나빴다. 게다가 여기에도 트로트가 틀어져 있었다. 신나는 음악이 긍정적인 진동 그 자체라도 된다는 듯이.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사장이 담배 한 대 피우겠다며 자리를 비운 순간 내려앉는 애매한 분위기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숙소 안내를 도우러 따라오신 아주머니 한 분의 미소가 어딘가 미심쩍었던 것이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나혜 언니가 담담하게 묻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렇다고 침묵을 지키시지도 않았다.


“아니 그냥, 젊은 애들이 온 게 반갑고 신기해서 그러지.”


“젊은 사람들은 많이 안 오나요?”


“그게, 지난번에 청년이 한 명 오긴 했는데……,”


아주머니는 말을 흐리며 더 이상의 대답을 회피하셨고, 사장까지 돌아오는 바람에 정보를 더 얻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확실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가 있었다, 누군가가 지금은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그저 추측의 영역. 해결되지 않은 의문은 떨쳐낼 수 없는 찝찝함으로 남았다. 공장을 나섰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린 뒤였고, 잡아 둔 모텔까지 걸어가는 내내 그 찝찝함이 어둠과 섞여 우리 두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저기, 언니.”


그 무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보려고 나는 실없는 질문을 했다. 아무튼 나혜 언니가 이런 질문에 답해 줄 거라는 건 잘 알았으니까.


“양자역학 가지고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잖아요. 아까 그 사장도 그렇고, 왜 하필 양자역학일까요? 과학 분야가 그렇게 많은데.”


예상대로 언니는 대답을 해 주었다. 아주 간결한 대답이었다.


“양자가 어렵거든.”


그리고 간결한 대답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길고 긴 보충설명이 붙었다.


“나한테도 어려웠어. 일상적으로 이해가 가는 것도 아니고, 에너지 장벽이라든지 그 안의 입자라든지 하는 이상한 모델로 시작하고, 식을 세워서 계산은 열심히 하는데 나온 결과도 이상하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제대로 배워도 처음에는 그런데, 그걸 혼자서 이해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단편적이고 신기한 이야기만 접하게 되는 거야. 입자가 벽을 뚫고 지나가고, 모든 것은 파동이자 확률이고, 고양이가 살아 있거나 죽어 있고,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그런 것들.”


“그래서 잘못 이해하게 되는 건가요?”


00wikimedia_6_22.jpg “매력적이고 신기하고 이해할 수 없고. 마법이나 다름없게 되는 거지. 그래서 마법처럼 아무 데에나 붙여보는 거야.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생각의 파동이 우주로 퍼져나가서 긍정적인 일을 끌어당긴다거나, 병을 고칠 수 있다거나. 어떤 사람들은 그걸 진짜로 믿고 또 다른 사람들은 사기를 치지.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걸로 남을 속이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니까.”


어려우니까 모른다.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게 된다. 모르니까 속는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어쩐지 조금 분한 기분도 들었다. 대단한 과학적 발견일 텐데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상한 사이비 이론에 휘둘리게 된다니. 그런 분함 속에서 하나 부탁을 할 생각이었다. 양자역학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 과외해줄 수 없는지, 적어도 아까 그 가장 간단하다는 ‘1차원 상자 속 입자’라도 이해시켜줄 수 없는지. 조금이나마 안다면, 내가 무엇을 알고 또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면 그래도 터무니없는 양자 신비주의를 접했을 때 한 번 의심해볼 기회는 생길 테니까. 그렇게 부탁하면 내 과학자 룸메이트는 분명 들어줄 것이고, 그래서 막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뒤가 서늘했다.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린 것 같았다.


누군가 따라오고 있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마자 나는 홱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남은 것은 기억 속의 발소리와 아직 서늘한 등줄기뿐이었다. 언니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고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애써 그 흔적들을 지우려고 애썼다.


“찝찝해서 그럴 거예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저 어둠 속에서, 공장에서, 희뿌연 안개상자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입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는지 아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정말로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었는지도. 만일 그렇다면 그 동기는 무엇인지도.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그 억누를 수 없는 미지의 불안감은 유령처럼 내 뒤를 밟았다.


<제6화 ②에서 계속>  


박상민 광주과학기술원 대학원생(화학전공)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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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민 광주과학기술원 석사과정 대학원생, 화학 전공
화학 전공 대학원생 겸 초보 작가. 과학이 좋은지 글쓰기가 좋은지 계속 갈팡질팡했지만, 지금은 죽을 때까지 갈팡질팡하기로 결심했다. 제대로 갈팡질팡하는 것도 어렵다는 사실을 매일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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