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영국 대학의 첨단 실험실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하던 정준호님이 어느 날 의료봉사단을 따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로 날아갔습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그가 아프리카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과 의학의 모습을 아프리카의 시선으로 낯설게 다시 바라봅니다.

[연재] 말라리아 '연구 의지'인가, '연구비 의지'인가?

말라리아 질병의 정치경제학 ⑤ –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17)




00malaria_WHO » 출처 / 세계보건기구(WHO)



말라리아의 미래, 그리고 백신.


 

 

 

지금까지 "말라리아 질병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주제로 이곳에 쓴 몇 편의 글에서, 말라리아가 인간 역사와 과학, 그리고 정치경제의 무대에서 어떻게 전개되어왔으며 우리는 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이런 역사를 되돌아보며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유엔(UN)이 제시한 '새천년 개발 목표(MDG)'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말라리아 억제'다. 이런 가시적인 목표가 본격 제시되면서 유엔 산하 단체들의 주도 아래 여러 민간단체들이 협력해 말라리아 질병 관리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전 글들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현재 이들이 말라리아 질병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에는 문제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1980-9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말라리아 백신 연구와 그 폐해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지난 세기까지 이루어진 말라리아 박멸 및 관리 사업은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실패의 근본 원인은 비현실적인 목표, 부풀려진 미래의 기대, 사회경제적 요인을 무시하는 접근방법 등에 그 바탕을 두고 있지만, 정책 결정자들은 사업 실패의 원인을 모기나 기생충의 저항성 획득, 또는 효과적이고 값싼 약품의 부재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말라리아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보다는 말 못하는 기생충이나 모기에 책임을 돌리는 편이 훨씬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편에서 과학자들은 대체로 말라리아 기초 연구에 충분한 연구비가 지원되지 않아 큰 발전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불평의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기생충의 저항성, 개발 의지 부족, 자금난 같은 원인은 실패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거기에서만 원인을 찾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이제 눈을 돌려 정책 결정자들과 과학자들의 책임 방기 또는 회피가 어떻게 말라리아 백신 개발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자.


 

 

 

허황된 '백신 올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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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종두법을 발견해 광범위한 천연두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면서, 백신이야말로 공중보건이 감염성 질환에 대항하는 데 쓸 가장 강한 무기로 떠올랐다. 특히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천연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면서 천연두의 발생은 급감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중반에는 대부분 지역에서 박멸을 성취해냈다. 이런 성공에 자극을 받아 다른 여러 감염성 질환, 특히 기생충 감염 부분에 대해서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백신 개발의 의지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나 1960년대 세계보건기구(WHO)를 중심으로 야심차게 진행한 세계 말라리아 박멸 프로그램이 붕괴하고, 이에 대한 원인으로 말라리아 및 모기의 항말라리아제·살충제 저항성이 주목받으면서 백신 개발의 의지는 더 강하게 타올랐다. 감염 이후에 기생충을 치료하는 방식보다는 원천적으로 감염 자체를 방지할 수 있는 백신은 훨씬 더 매력적인 무기였다. 그리고 백신 개발에 가장 강한 의지를 보였던 것은 세계 말라리아 박멸 프로그램에 가장 많은 자금 후원을 했던 미국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 말라리아 박멸 프로그램이 붕괴 직전에 몰려 있을 때, WHO와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프로그램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사람이 바로 폴 실버만이었다. 영국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한 실버만은 말라리아에 대해서는 별 경험이 없었지만 뛰어난 언변으로 USAID의 보건 책임자를 설득해 무려 100만 달러에 달하는 연구비를 타낼 수 있었다. 1960년대에 100만 달러 규모의 연구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당시에는 백신의 원료가 될 '항원'을 구하기 위해 말라리아 기생충을 실험실에서 꾸준히 배양할 수 있는 기술도 없었고, 백신을 시험해볼 모델 동물도 없었으며, 이런 난제를 극복하고서 백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백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막대한 연구비를 큰 어려움 없이 타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USAID에 과학적 조언을 해줄 만한 전문가 패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변 좋은 '전문가'의 말만 믿고, 즉 '막대한 자본'과 '대형 연구 프로젝트'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말을 믿고, 현실성이 없는 연구 프로젝트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 것이다. 이런 눈 먼 투자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말라리아 연구 분위기를 뿌리채 흔들어 놓는 기반이 되었다.


당시 인간 말라리아를 실험실에서 꾸준히 유지하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었다. 바로 '인간 자원자'를 구해 지속적으로 말라리아 감염을 일으키는 방법이었다. 이는 윤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불가능한 방법이었으므로, 실버만은 구하기 쉬운 원숭이 말라리아를 대상으로 백신 연구를 진행했다.

 

여기에서 백신 연구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원숭이 말라리아와 인간 말라리아는 많이 다르다. 몸 안에서 행동하는 양식 뿐 아니라 그것들이 나타내는 항원도 다르고, 원숭이의 면역계와 인간 면역계가 말라리아에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다. 또한 말라리아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과 병리학도 다르다. 따라서 원숭이 말라리아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똑같은 기술이 인간 말라리아에도 그대로 적용되리라고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결국 5년 간의 연구와 150만 달러의 연구비를 투자한 실버만이 밝혀낸 사실은 원숭이 말라리아 모델이 연구에 적합치 않다는 것, 그리고 1940년대 개발 시도 중 치명적인 부작용과 미약한 효과 때문에 완전히 폐기된 백신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실망스런 결과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실버만의 연구가 실패를 거듭하고 현실적인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결과를 내놓자 결국 실버만은 자리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USAID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과학자들이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말라리아 백신을 개발해 더 나은 인류 미래에 공헌하겠다는 순수한 의도도 있었지만,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USAID가 제공하는 막대한 양의 연구비를 탐내고 있었다. 전문가 패널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외부 전문가의 의견조차 묵살하기 일쑤였던 USAID의 연구비는 그야말로 눈 먼 돈이나 다름 없었다. 비전문가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로 현실성 없는 기한을 잡아 연구계획서를 내면 연구비 지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구가 계속 실패로 돌아가던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USAID는 대부분 관료주의가 그러하듯이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에 더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면 성공이 보장되리라 믿고 있었다. 연구비 지원은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지원 범위도 확장했다. 하지만 말라리아 백신, 즉 기생충 백신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백신을 개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말라리아 기생충은 체내에서 포자소체, 분열소체, 생식모세포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며, 각 단계는 서로 다른 유전적 특성과 항원 특성을 지닌다. 즉 백신을 개발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병원체 여럿에 대한 여러 백신을 동시에 개발해야 하는 것과 다름 없다. 당시에는 기생충의 유전적, 항원적 특성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기술도 부족했다. 지금도 기생충의 특성에 대해서는 일부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며, 여전히 인간을 대상으로 한 기생충 백신은 상용화한 게 하나도 없다는 현실에서 비춰보면 기생충 백신의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민간 연구기금은 눈먼 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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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후반 들어, 미국의 말라리아 백신 연구자를 살펴보면 과학자들이 연구 자체보다는 연구비라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USAID의 연구관리자 뿐 아니라 과학자 여섯 명이 절도, 탈세 등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USAID에서 연구비를 받은 일리노이대학, 하와이대학의 수석 연구자들은 컨퍼런스 개최, 장비 구입 등 명목으로 수 만 달러를 착복했지만, 대외적으로는 기자회견을 주기적으로 열어 당장이라도 말라리아 백신이 상용화할 수 있을 것처럼 대대적인 홍보를 계속했다. 감옥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말라리아 백신 임상 시험에서는 접종자 3명 중 2명이 감염되었는데도 3분의 2의 실패가 아니라 3분의 1의 성공으로 부풀려 대단한 업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와이대학에서는 나중에 탈세와 절도 혐의로 기소된 연구자에게 석좌교수 자리를 주기도 했다. 이 연구자가 연구비 착복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던 당일에 USAID는 그한테 165만 달러 연구비를 추가 지급하기로 결정하며 그를 '수석 연구자'로 임명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런 우습고도 슬픈 사실은 당시 USAID의 연구비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후임 연구원으로 임명된 사람은 말라리아 연구와는 관련이 없는 심리학자였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상황이 얼마나 나아졌을까?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비는 과거에 비해 더 철저하게 운용되지만, 많은 민간단체들이 연구비로 지원하는 돈은 전문가 패널의 검토를 충분히 거치지 않고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는 연구 지원서 쪽에 돌아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는 연구자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업계 연구자들은 그동안 열대의학 및 기생충학 연구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정부 연구비를 써서 개발된 신약 물질이나 백신 등의 특허를 해당 대학이나 연구자의 이름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즉 공적 자금을 이용해 개발된 약품이나 백신이라 하더라도 개인 혹은 대학에서 그 이익금을 챙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80년대 뉴욕대학에서 진행된 말라리아 백신 연구가 단적인 사례이다. 대학과 연구자가 정부 지원금을 통해 개발한 항원 추출 방식에 특허를 내자 특허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이 추출 방식을 사용하는 백신 개발이 완전히 중단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이 추출 방식은 백신 순도를 향상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다른 많은 연구자들이 피해를 보았다. 이제 공공자금을 이용한 개발이 공공의 자신이 되기는 커녕 개인이나 기업체의 자산으로 넘어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즉 과학자들이 열대의학이나 기생충학으로 별 경제적 이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 핑계에 불과하다.


정책 결정자들의 핑계도 비슷하다. 이들은 기생충 연구에 충분한 공적자금이 투자되지 않는다는 불평을 자주 내놓지만, 이 역시 충분한 사실이 아니다. 물론 말라리아의 피해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이 투자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규모에서 보면 말라리아에 투자되는 연구비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오히려 충분한 공적 자금이 투자되지 않는 곳은 제3세계 저소득 지역의 연구시설들이다. 고소득 지역, 예를 들어 미국 정부에서는 기생충학 연구가 당장 가시적인 이득을 내지 못하더라도, 연구 시설이나 임상 시험, 백신 개발 노하우 등을 축적하고 자국의 과학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용의를 갖고 있다. 이미 1970-80년대 미국에서는 USAID를 통해 말라리아 백신 개발에만 수천 만 달러에 달하는 연구비를 자국 내 연구시설에 투자한 바 있다. 이 시기에 축적된 말라리아에 대한 지식 덕분에 미국은 열대의학 연구를 주도하는 나라의 반열에 올랐고, 지금도 수많은 제3세계의 우수한 연구자들을 끌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연구 의지? 연구비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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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정책 결정자들과 과학자들의 불평으로 돌아와 보자. 말라리아의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과연 자금이나 연구 부족의 문제일까?

 

말라리아 백신 연구에서도 보았다시피 이는 반쪽짜리 사실일 뿐이다. 혹자는 지금을 '과학-기술 제국주의'의 시대로 보기도 한다. '연구 의지'보다는 '연구비 의지'가 더 강력한 고소득 지역의 연구자들이 과연 말라리아 같은 질환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연구를 적극적으로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 현실에서 얻는 노하우 없이 실험실 안에서만 바라보는 관점으로 말라리아, 나아가 소외 열대 질환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눈 먼 연구비가 누구에게 주어지든 자기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정책 결정자들과 과학자들이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기생충학자 밥 데소위츠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범죄자는 연구비를 착복한 연구자들 뿐만이 아니라고. 과학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채 침묵하고 있는 우리들이 바로 범죄자라고. 과학자로서, 연구자로서 우리는 보다 강력한 윤리적 책임감을 느껴야만 한다. 특히나 열대의학이나 기생충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우리의 연구비는 말 그대로 지금 당장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돈'에서 전용된 것이다. 현실 속 사람들의 목숨과 맞바꾸어 우리는 우리의 연구를 통해 미래를 사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 안에서 목숨의 무게를 느낄 수 없다면, 대체 연구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실험실 속의 우리가 그 책임의 무게를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말라리아의 미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1. GAO report to the Honorable Daniel Inouye, U.S. Senate, October 1989
2. Desowitz, Robert S. The Malaria Capers : more tales of parasites and people, research and reality. W.W.Norton.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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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 byontae@gmail.com       트위터 :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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