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영국 대학의 첨단 실험실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하던 정준호님이 어느 날 의료봉사단을 따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로 날아갔습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그가 아프리카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과 의학의 모습을 아프리카의 시선으로 낯설게 다시 바라봅니다.

[연재] 19세기와 21세기 '백신반대론'의 다른꼴과 닮은꼴

아프리카에서 , 살며 배우며 (19)

 

 

 

 

00vaccine » 백신 접종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알프레드 월러스의 삶과 백신반대론

 

 

 

얼마 전, 젊은 여자 한 분이 가벼운 감기에 걸린 아기를 안고서 우리 클리닉을 찾아 왔다. 나는 요즘에 비가 자주 내려 날씨가 추운 탓에 가벼운 감기에 걸린 것이니 걱정 말고 잘 먹이고 따뜻하게 해주라고 했지만, 아이 어머니는 다른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며칠 전 아기가 백신 접종을 받은 뒤부터 이렇게 된 것 같다는 얘기였다. 아이 어머니는 아기가 자폐증 같은 질병을 앓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분명 소문을 들었거나 인터넷에서 '백신 반대론'과 관련한 글을 본 게 틀림 없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영미권 부모들 사이에서 꾸준히 퍼져나가고 있는 백신반대론이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의 산골에서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도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지만, 사실 이런 백신반대론은 근래 들어 예방의학에서도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백신반대론은 1990년대 영국 의사인 앤드류 웨이크필드가 엠엠아르 백신(MMR 백신: 홍역, 볼거리, 풍진 예방 백신)에 쓰이는 수은 보존제가 아이들한테 위험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자폐증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불 붙기 시작했다. 이 논란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부모들이 아이를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을 집단으로 거부하는 사태를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21세기 들어 이들 지역은 지난 수십 년만에 가장 높은 홍역 집단 발병을 겪기도 했다.

 

2010년 저명한 의학저널 <랜싯(Lancet)>은 웨이크필드 논문의 게재를 철회했으며 백신의 안정성도 여러 차례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기까지 백신반대론의 역사는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실 백신반대론의 역사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 역사의 중심에는 과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은 잊혀진 한 사람인 알프레드 러셀 월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가 서 있다.

 

 

 

'자연선택설 동시발견' 월러스가

사회급진주의자로 변모한 까닭...

 

지지난해인 2009년은 진화론과 자연선택의 법칙을 확립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200번째 생일이자, <종의 기원>이 출판된 지 150년째 되는 해였다. 세계 각지에서 다윈과 <종의 기원>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있었지만,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의 법칙을 확립한 월러스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등장하지 않았다. 월러스가 역사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한 데에는 그의 남다른 생애 때문이기도 하다. 생의 전반부는 헉슬리와 함께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하는 데 힘썼던 그는 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는 정신주의(spiritualism)에 깊이 심취하고 사회 급진주의자로 변모해 천연두 백신 반대론의 가장 막강한 대변자가 되었다. 왜 당시 가장 급진적인 생물학을 대변하던 사람들이 지금 관점에서 보면 과학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듯한 방향으로 급선회를 하게 되었을까?

 

00wallace » 알프레드 월러스, 1862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학문을 해온 찰스 다윈과 달리, 월러스는 1823년 웨일즈 지방의 가난한 중인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13살 되던 해에 그의 가족은 더 이상 월러스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 월러스를 런던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형에게 보낸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학교도 중도에 그만 두어야 했던 그는 런던에서 건설노동자로 형과 함께 일하면서 틈틈이 런던 시내 '과학의전당(Hall of Science)'에서 열리는 강연을 들으며 자연과학자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18살 무렵 월러스는 웨일즈에서 측량사로 일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19살 난 아마추어 딱정벌레 수집가인 헨리 베이츠를 만나 자연과학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둘은 몇 년 뒤 전문 표본 수집가로 돈을 벌면서 아마존 유역으로 '종의 기원'을 연구하러 떠나게 되었다.

 

1850년대 중반까지 월러스는 아마존 유역에 계속 머물며 지역에 따른 생물종 간의 형태 변화를 연구했다. 다윈과 마찬가지로 월러스는 비슷한 종의 생물이 지역에 따라 형태 차이를 보인다는 점, 그리고 당시 발표된 멜서스(Thomas Malthus)의 인구론을 조합해 다윈의 것과 흡사한 자연선택의 법칙을 독립적으로 확립하게 되었다. 1858년 월레스는 자연선택의 법칙에 관한 에세이를 발표하기 전에 다윈에게 먼저 보내는데, 다윈은 이 편지에 자극을 받아 황급히 종의 기원 논문을 정리해 이듬해 발표했다. 하지만 1870년대, 월러스는 과학적 성과를 집대성한 책들의 집필을 마치고 나자 점차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1840년대 부터 시작된 천연두 의무 접종에 관한 문제였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백신 접종 법안이 통과된 것은 1840년의 일이었다. 이 법안이 계기가 되어 실제 천연두 바이러스를 사람들에게 접종하는 불법 백신들이 퇴출되었고, 안전한 우두 백신이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다. 1853년부터는 천연두 백신 접종이 의무화되어 백신 접종에 불응하는 부모들에게 처벌이 가해지는 법안이 상정되었다. 하지만 백신 접종에 불응할 때엔 가중 처벌을 하는 법안이 1870년대에 상정되자, 사람들의 불만도 차츰 높아졌다. 당시의 백신은 지금처럼 안전하지도 않았고, 일회용품을 이용해 접종하는 게 아니어서 혈액 감염 같은 여러 부작용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점차 백신반대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백신반대론자들은 반이성적, 반현대적, 반과학적인 사람들과는 상당히 멀었다.

 

월러스를 비롯해 반대론자들은 정량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반대론을 설파했다. 1880년 즈음, 이미 월러스는 사회개량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다. 또 이런 배경을 통해 그는 건강이란 단지 천연두라는 감염성 질환에 의해 일어나는 문제, 또는 백신 하나로 간단히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계급에 따른 영양과 위생의 차이에 따라 질병의 역학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전체론적인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질병에 대한 철학적 관점과는 별개로 그는 여전히 경험주의적 과학자였다. 월러스는 공중보건 문제를 통계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다른 학자들과 함께 백신에 정확히 어떤 병원체가 사용되는지, 그리고 백신의 효과나 성공률이 얼마나 되는지 정량적으로 파악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세기 말엽은 면역학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고, 항원이나 항체를 분리해 백신 접종의 효과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월러스는 백신반대론의 중심 틀이 되는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첫째, 백신 접종자와 비접종자 간의 사망률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있는가? 둘째, 백신 접종자의 경우에 감염률이 훨씬 낮은가? 셋째, 백신 접종이 천연두의 임상적 증상을 경감해주는가? 월러스가 던진 이런 질문들에 대해 백신 찬반론자들은 서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통계의 변수나 해석에 대한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데다 천연두로 인한 사망률이나 전체 사망률 보고가 그리 정확하지 않았던 시기였던지라 통계 결과들은 찬반 양쪽의 입맛에 맞는 대로 해석되기 일쑤였다.

 

월러스는 특히 의사들이 천연두 사망자를 보고할 때 비접종자 위주로 보고하기 때문에 원본 데이터 자체에 큰 편견(bias)이 있다는 주장을 견지했다. 또 사회적 위치와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월러스는 사회 계층에 따라 천연두에 각기 다른 감염률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즉 낙후된 지역에 사는 가난한 사람은 백신 접종 기회도 낮을 뿐 아니라, 거주 여건이나 영양 상태로 인해 감염후 사망률도 훨씬 높다고 보았다. 그리고 관찰을 통해 백신 의무 접종 도입 뒤에도 저소득 계층의 사망률은 꾸준히 증가했고, 백신 접종자들도 사망률에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관찰의 결과로 인해 월레스는 백신 이외의 사회적 요인이 질병에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되었다.

 

 

 

과학 계몽만으로 충분치 않은,

백신 접종과 공중보건 정책

 

19세기 월러스가 백신반대론의 주장을 펼친 것은 21세기 부모들이 백신반대론을 펼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비록 오류는 있었더라도 월러스가 백신반대론을 펼친 것은 질병이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월러스는 과학계에서도 이단 또는 사회적 급진주의자로 낙인 찍혔으며, 그 바람에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설을 확립했다는 그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00여 년이 흐른 지금에 질병을 바라보는 폭 넓은 관점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

 

월러스를 중심으로 한 백신반대론은 과학과 의학의 역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월러스는 의학적, 역학적 정보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정책을 비판하는 데 사용한 첫번째 인물이었다. 그가 통계의 변인이나 데이터를 선별하는 세세한 방법론에는 문제가 있었을지라도, 통계를 사용한 정책 비판이 향후 의학과 공중 보건 정책의 수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19세기 당시에도 백신 찬반론은 과학과 비과학의 대립으로 비추어졌고, 그래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영국에서는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가 더 명확히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백신반대론을 현재 백신반대론자들이 정통성(?)을 주장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일도 슬픈 일이지만, 19세기 백신 의무 접종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21세기 정부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는 슬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19세기 백신 의무 접종이 영국 전역에서 백신반대론에 불을 지핀 것은 대중이 몽매하다고 판단하고 접종을 의무화해 강제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런 억압적인 정책은 사람들의 공포와 거부를 낳았고, 20세기 초반에는 이에 대한 반발로 백신 접종 거부율이 신생아의 25%에 달할 정도가 되었다. 정책결정자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은 백신 접종이 단순히 과학적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는지만을 고민할 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현실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1. Fichman M, Keelan JE. Resister's logic: the anti-vaccination arguments of Alfred Russel Wallace and their role in the debates over compulsory vaccination in England, 1870-1907. Stud Hist Philos Biol
Biomed Sci
. 2007;38: 585-607.
2. Spier RE. Perception of risk of vaccine adverse events: a historical perspective. Vaccine. 2001;20:S78-84. DOI: 10.1016/S0264-410-X(01)003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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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 byontae@gmail.com       트위터 :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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