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영국 대학의 첨단 실험실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하던 정준호님이 어느 날 의료봉사단을 따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로 날아갔습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그가 아프리카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과 의학의 모습을 아프리카의 시선으로 낯설게 다시 바라봅니다.

[연재] '경제성' 따지는 말라리아 박멸사업의 슬픈 현실

말라리아 질병의 정치경제학 ④ -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16)

 

 

00RBM » 세계보건기구가 주도하는 세계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인 'RBM'의 홈페이지 화면 일부. 출처/ http://www.rbm.who.int

 

 

 

말라리아의 경제학

 

  며칠 전에는 산 아래 동네에서 살충제 살포 팀에서 일하는 사람이 피부염에 걸려 우리 클리닉을 방문했다. 높은 농도의 살충제와 자주 접하는 살포 팀 직원들은 종종 피부염으로 고생하곤 한다. 물론 여러 가지 한계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살충제 살포는 굉장히 효과적인 말라리아 억제 수단 중 하나다. 말라리아 매개 모기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집을 살포 팀이 방문해 집 벽에다 살충제를 도포하면 적어도 몇 달 동안 이 집 안은 말라리아의 위험에서 벗어나 대체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앞에 쓴 글("기후 변화로 걱정 더 커진 말라리아: 스와질랜드와 말라리아")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한때 말라리아를 박멸했던 스와질랜드는 현재 기후변화와 농업 형태의 변화로 말라리아가 증가 추세에 있다. 며칠 전에는 말라리아 감염으로 다섯 살 난 손녀딸만을 남겨두고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 때문에 스와질랜드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 말라리아 방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재정난에 시달리는 스와질랜드 정부를 돕고 있는 것은 '롤 백 말라리아', 줄여 '아르비엠(RBM: Roll Back Malaria)' 프로그램이다.

 

☞ RBM :  199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은행, 유엔개발계획(UNDP), 유니세프(UNICEF)과 공동으로 시작한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 2010년까지 말라리아 사망자를 50% 줄이고, 다시 2015까지 50% 줄이는 것이 목표다. 말라리아 검진, 치료와 예방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사이언스온

 

1992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102개 국 정부의 보건책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말라리아에 대한 특단의 방책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이 모임에서는 1960-70년대 세계 말라리아 박멸 프로그램(Malaria Eradication Program: MEP)의 실패를 거울 삼아, 사업을 새로운 방향에서 진행하자는 논의가 주로 진행됐다. 특히 지난 실패의 경험은 지나치게 중앙집권화해 경직된 사업 방식에서 유래했으며, 여기에서 벗어나 더 유연하고 비용 효율성을 지니며 지속가능한 사업 체계를 꾸려나갈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말라리아 관리 사업 자체가 다른 의료 보건과 사회 인프라 개선 사업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 데 얽혀 있기에 좀 더 종합적인 접근 방법을 따를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당시의 정책 계획서를 보면, "말라리아 관리 사업은 단지 보건 관료에게만 의미 있는 동떨어진 사업이 아니다. 이 사업에는 지역 주민, 교육 사업에 관여하는 사람들, 환경 전반, 식수 공급, 위생,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개발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말라리아 관리는 국가 보건 향상 사업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하며, 국가 보건 향상 사업은 궁극적으로 국가 개발 사업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고 보았다. 모임의 결론을 기반으로 하여 199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하고 유니세프(UNICEF),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은행을 주축으로 한 지원단이 함께하는 RBM 사업이 발족했다. RBM은 1960년대 말라리아 박멸 사업과 비교할 때에 몇가지 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반면, 정작 몇몇 중요한 부분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 RBM의 발전과 한계를 살펴보며 말라리아의 경제학, 나아가 질병의 경제학에 대한 환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00malariachild 

말라리아 박멸에만 몰두

지역사회 개발엔 눈감은 '실패'의 교훈

 

일단 RBM의 가장 큰 발전은 정책 계획서에도 드러나다시피, 말라리아 관리는 단순히 살충제나 치료제 보급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역 발전이라는 더 폭넓은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는 인식과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전의 말라리아 박멸 프로그램, MEP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또 다른 발전 중 하나는 MEP와 달리 사업 계획의 유연성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세계보건기구의 주도 아래에 각 사업 지역의 사회, 문화, 경제, 환경적 차이와는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똑같은 방침에서 사업이 이루어졌다. 즉 집 안에 살충제를 도포하는 것이 말라리아 억제와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 드러난 지역이라 해도 세계보건기구 중앙지부가 지원하는 사업 내역이 살충제 도포 뿐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살충제 살포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그에 반해 RMB은 좀 더 유연한 방식을 채택했다. 세계 2차대전 뒤 살충제를 통한 매개체 박멸에만 집중하던 사업 방법에서 벗어나 모기장 공급과 함께 말라리아 사망률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임산부와 어린이를 집중 보호하고 치료하는 방법도 병행했다. 또 지역사회에 적합한 사업 내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추진한 덕분에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렇지만 RMB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지 10년 이상이 지난 2011년 지금, 세계적으로 말라리아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 한계는 바로 RBM이 자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정책 계획서에도 드러나듯이, RBM 사업 취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바로 말라리아 관리 사업이 지역 개발과 함께하는 '복합적 접근 방법'이 돼야 한다는 합의였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물론 초기에는 의욕적으로 지역 보건 시설과 인프라를 개선하는 등의 사업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사업에는 단순히 말라리아 관리에만 집중하는 것에 견주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충분한 지원금을 확보하는 일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지원단체들이 약속한 금액 중 실제 집행된 금액은 턱없이 적은 수준이었다. 세계은행이 2004년이 되어서야 자금 집행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고, 2002년 이후까지도 유엔개발계획의 지역 지부 담당자들은 자신들이 RMB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2001년 무렵에 RMB은 지원단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금 지원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 하나를 손에 넣게 되었다. 바로 '경제성' 논리였다. 이런 주장의 근간을 제공해준 이는 <빈곤의 종말>의 지은이로 유명한 제프리 삭스(Jeffery Sachs)였다. 특히 2001년에 삭스가 미국 열대의학 및 위생 저널에 발표한 '말라리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Economic Burden of Malaria)'이라는 글은 RMB이나 세계보건기구에서 말라리아 관리 사업의 경제성을 주장하기 위한 자료로 널리 사용되었다.1)

 

이 논문은 대단한 파장을 불러왔다. 지금도 RBM이나 다른 관련 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추천 자료로 삭스의 논문이 링크돼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간 말라리아를 비롯해 광범위한 질병 관리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설득한 주된 논리는, 그것이 인간의 기본 권리라는 인본주의 논리도,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 논리도 아닌 바로 경제학의 논리였다. 무엇보다도 질병의 박멸이 사람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더 높은 생산성과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달콤한 사탕은 열대지역 정부와 이런 광범위한 사업을 지원하는 단체들을 설득하는 강력한 논리로 작용해 왔다. RBM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견 논리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 질병이라는 부담이 사라지면 개개인은 더 나은 노동력과 생산성을 제공할 수 있고, 국가는 질병 때문에 부담해야 하는 막대한 자본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단순한 논리가 말라리아, 그리고 질병의 경제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1950년대, MEP도 역시 말라리아 박멸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득을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당시에 MEP 사업 자금의 상당 부분은 사업을 진행하는 해당 국가의 정부가 일정 부분을 지불해야 했으므로, 향후에 말라리아 박멸 사업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득을 설득하는 일은 아주 중요했다. 만약 경제적 이득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적어도 10년에 걸쳐 이뤄야 하는 막대한 규모의 말라리아 박멸 사업을 적극 지원할 정부도, 단체도 없을 테니 말이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께, 세계 말라리아 박멸 사업은 실패로 결론이 났지만, 그렇다고 사업이 진행된 지역 전체에서 모두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국가나 지역은 사업을 통해 말라리아 박멸에 성공했다. 이후에 이렇게 말라리아를 몰아낸 지역을 대상으로 여러 경제학자들이 말라리아 박멸 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조사작업을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토착 지역을 대상으로 이런 연구들이 많이 이루어졌다.2) 이들이 내놓은 결과는 놀라웠다. 말라리아 박멸이나 억제가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말라리아 억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지역 개발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MEP의 한계라 생각할 수도 있다.

 

 

 

00malariachild 

"말라리아 몰아내면 경제 돌아온다"

인도주의마저 앞지른 경제 논리?

 

RMB은 MEP와 거의 똑같은 논리를 펼치고 있다. RBM의 모토 중 하나는 '말라리아를 몰아내면, 경제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즉 MEP와 마찬가지로, 선후 관계를 잘못 짚고 있는 셈이다. 말라리아는 경제 성장의 주요 걸림돌이며, 말라리아가 사라지면 성장은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논리를 지지하는 삭스는 논문에서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나라는 1965년과 1990년 사이에, 1인당 GDP의 성장률이 말라리아가 없는 국가에 비해 1.3% 낮았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리고 말라리아 유병률이 10% 감소하면 GDP 성장률이 0.3% 상승한다고 주장했다. 삭스는 말라리아와 경제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회귀분석을 사용하여 8개의 변수를 적용해 150개국의 말라리아와 1인당 GDP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논문의 결론만을 보자면 말라리아와 경제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는 게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이미 앞에서 쓴 글들에서 살펴보았듯, 이 결론은 말라리아가 정치경제적 질병이라는 사실을 지지해주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결론이 말라리아를 억제함으로서 경제성장을 불러온다는 RMB과 삭스의 주장을 지지해주고 있는 것일까?

 

회귀분석을 통해서는 말라리아가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변수가 어느 방향으로 영향을 주는지 명확히 보여주기는 힘들다. 즉 말라리아가 유행하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느린 것인지, 아니면 경제 성장이 느리기 때문에 말라리아가 유행하는지 명확히 따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이 분석에서 채택한 변수에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상당수의 열대 저소득 국가, 특히 잠비아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1970~1990년대의 시기에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막대한 대외 채무에 시달려 왔다. 이러한 채무는 경제성장을 억제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지만, 삭스는 이런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분석 도구의 한계, 그리고 분석 방법의 문제점 때문에 삭스의 연구 자체는 경제학자들에게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2006년 이전 경제학 논문에 삭스의 말라리아 논문이 인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에 반해 경제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책 결정자들은 삭스의 논문을 기반으로 말라리아 사업의 경제성과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리고 이후에 경제학자들은 삭스의 분석 방법에 심각한 허점이 있으며, 이 논문을 기반으로 말라리아의 경제성을 추측하기는 힘들다는 데 대체로 같은 의견을 냈다. 특히나 말라리아가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가정에 어떻게, 얼마만큼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시적으로나 거시적으로 말라리아의 경제적 영향력을 측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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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 보장돼야 질병퇴치 사업하나

더 큰 좌절의 씨앗

 

경제학은 중요하다. 사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쪽자리 진실만을 기반으로 한 경제학으로 측정한 경제성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없는 경제성을 만들어내어 당근으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말라리아 사업의 경제성을 측정한다는 것, 그것은 슬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질병 박멸 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게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경제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런 관점은 질병 박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당장 가진 자본을 어떻게 분배하고 사용해야 좋은지에 대한 비용 효율 분석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질병 박멸 사업이 가져올 경제성이 보장돼야만 그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는 크나큰 허점이 있다. 희망을 약속하는 미래가 실제로 실현되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더 큰 재앙의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1960년대 MEP 사업에서 DDT가 실패했을 때 각국 정부들이 '즉효약'만을 기다리다 어떤 재앙이 다가왔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MEP 사업에서 약속했던 경제적 보상이 따라오지 않자 많은 국가들은 다시금 말라리아 관리 사업을 재개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질병 박멸 사업은 언제나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아니, 언제나 성공할 가능성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실패한 다음의 일을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허황된 믿음과 약속만을 주는 상황에서 과연 다음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MEP의 실패 이후에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RBM이라는 세계적인 말라리아 관리 사업이 재개되었다. 해당 극가들이 MEP의 약속에 철저히 배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번 RBM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과연 다음 시도는 언제쯤에나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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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 byontae@gmail.com       트위터 :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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