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영국 대학의 첨단 실험실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하던 정준호님이 어느 날 의료봉사단을 따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로 날아갔습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그가 아프리카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과 의학의 모습을 아프리카의 시선으로 낯설게 다시 바라봅니다.

[연재] '말라리아 유행의 3박자': 아프리카·미국 역사에서

말라리아 질병의 정치경제학 ②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14)
     00malariaBAC »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원인 기생충. 출처/ Wikipedia.org    

말라리아와 불안정성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라는 말이 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 말은 엄밀히 보면 대체로 반쪽짜리 진실이다. 현재 고소득 국가들의 산업은 대부분 서비스업이나 공업 쪽에 집중해 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먹을거리를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현금을 가져다주고, 이 현금을 통해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는 간접 관계에 놓여 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의 스와질랜드 같은 열대 지역의 저소득 국가에서는 다르다.  이런 나라들의 산업은 농업 쪽에 집중해 있다.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 일을 하는 흔하다. 이런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정말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하지만 고소득 국가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고된 노동을 하며 밭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간신히 먹고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가뭄이나 자연재해라도 발생하면 굶주림, 말라리아, 다른 감염성 질환에다 사회·정치적 불안까지 겹쳐 수많은 문제들이 동시다발로 발생한다. 대체 어떻게 이런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수입'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제금융기구(IMF), 세계은행 같은 금융단체들, 그리고 심지어 여러 비정부단체(NGO)나 국제 개발 단체들은 현금 수입의 부족이 근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도 거대 육종회사들, 식품 유통업체들, 담배 회사들은 이것이 근본 문제라고 너무나도 굳게 믿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를 한번 살펴보자.

 

제3세계 사람들이 끊임없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작물 수확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밭에서 키우는 작물은 키워 먹기 위해 기르는 옥수수나 타로, 카사바 같은 작물이라 현금화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생산량을 늘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생산량을 늘리려면 기계도 필요하고 비료도 필요하다. 비료나 기계를 사려면 현금이 필요하다. 어떻게 현금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단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아주 간단하다. '환금작물'을 키우면 될 일이다. 언뜻보면 논리적인 말로 들린다. 환금작물을 키워 현금을 얻는다! 이 현금으로 사람들은 생산량도 늘릴 수 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도 있고, 생활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 행복한 일이다(이론적으로는). 그런데 과연 현실도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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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주는 '환금작물',

과연 가난과 굶주림을 물리쳤나?

 

현실로 돌아와보자. '환금작물'이란 담배, 코코아, 커피, 향신료, 면화 따위를 말한다. 이런 작물의 공통점은? 기호품이지 식량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이 지역 사람들도 먹고 살기 위해 현금을 벌어야 하는 구조에 편입된다. 많은 환금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가뭄이나 우박 같은 자연재해, 또는 국제 기호품 가격의 폭락 사태가 닥쳤다고 생각해보자. 더욱이 급격한 기후 변화와 불안정한 세계경제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환금작물을 키우던 사람들은 현금을 얻지 못한다. 이제 현금이 없으니 먹을거리를 구할 수도 없다. 자급형 작물을 대부분 환금작물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환금작물로 급격히 바꾸게 된 것은 정책적인 장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담배라는 환금작물이 어떤 지역에 새로운 농업으로 소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수출형 작물이라 국가 수입이 증대된다는 점 때문에 정부도 장려하고, 여러 담배 회사들도 농업의 비법를 전수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해준다. 고수익 작물이라는 말에 끌린 사람들은 과거에 옥수수나 타로처럼 먹을거리를 기르던 지역을 밀어내고 그 대신에 담배 작물을 심어, 지역 전체의 농업은 금세 단일 작물이 차지한다.

 

하지만 몇년이 지나 생산량이 최고치에 이르고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생각되면 국가나 지원단체들의 지원이 끊기게 마련이다. 이제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한다. 지역 전체에서 단일 작물을 기르고 있으므로 공급량은 지나치게 늘어난다. 이를 약점으로 삼아 유통업체들이 헐값에 작물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해 초에 기계나 씨앗, 비료를 사기 위해 진 빚을 값으려는 농부들한테는 현금이 꼭 필요하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작물을 헐값에라도 판다. 빚이 늘어나면서 생산에 필요한 물품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생산량도 낮아지고 밭을 제대로 관리하기도 어려워진다. 게다가 자본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사람들은 기계화 농업보다는 기존의 인력에 의존하는 농업 방식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돈이 들지 않는 추가 인력은 가족에서 얻는다. 결과적으로 농부는 더 큰 가족을 원하고, 아이들이 늘면서 모두 교육시키기도 힘들어진다.

 

더 큰 문제는 식량이다. 담배로 단일 작물화된 지역에서는 이제 식량을 직접 구할 수 없다. 그래서 먼 지역, 또는 해외에서 식량을 수입해야 한다. 사실 수입-수출 구조와 보급망의 인프라가 잘 구축된 고소득 지역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식량 생산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공급과 가격이 어느정도 안정돼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소득 지역에서는 경제가 위축되면 식량 같은 필수 품목의 가격이 널뛰게 마련이고, 사회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보급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업 구조가 기계에서 인력 쪽으로 옮겨가면서 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에, 식량 사정은 더욱 더 나빠진다. 이제 사람들은 굶주리는 데다, 인구가 늘면서 인구밀도도 높아져 생활환경과 삶의 질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들을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 넣는 것은 이즈음 나타나는 말라리아의 유행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회-경제의 급격한 변화, 특히 농업 분야의 부정적인 변화가 말라리아의 광범위한 유행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농업은 말라리아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300년 동안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 전역의 사람을 괴롭혀온 말라리아,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말라리아 유행은 거의 예외 없이 농업 구조의 변화와 관련돼 있었다. 18세기 이후에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 형성된 식민지 플랜테이션(단일 작물을 광범위한 지역에서 키우며 거의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하는 농장)이 그랬고,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말라리아 유행 지역으로 손꼽힌 이탈리아 남부와 미국 남부가 그랬다.

 

전 세계가 막 세계경제로 편입되기 시작하던 식민지 시대로 돌아가보자. 유럽 지역의 제국에서는 공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값싸고 안정적인 원료가 필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생산된 제품을 팔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다. 자본가들은 급속히 확장하는 식민지에서 기회를 보았다. 특히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지역은 광범위한 농장을 형성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자본집중형 농업을 위해서는 광범위한 숲을 베어내거나 불태웠고, 숲이 사라진 지역에다 작물을 심어 최대한 높은 생산량을 제공받았다. 땅에 영양분이 떨어져 생산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새로 숲을 불태워 농장을 넓히면 그만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1년에 수천 명씩 서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끌어오면서 이런 자본집중형 농장에 노동력까지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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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유행의 삼위일체:

기생충, 숙주, 매개 모기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회·경제의 급격한 변화, 특히 농업 분야의 부정적인 변화가 말라리아의 광범위한 유행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농업은 말라리아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300년 동안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 전역의 사람을 괴롭혀온 말라리아,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말라리아 유행은 거의 예외 없이 농업 구조의 변화와 관련돼 있었다. 18세기 이후에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 형성된 식민지 플랜테이션(단일 작물을 광범위한 지역에서 키우며 거의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하는 농장)이 그랬고,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말라리아 유행 지역으로 손꼽힌 이탈리아 남부와 미국 남부가 그랬다.

 

전 세계가 세계경제로 편입하기 시작하던 식민지 시대로 돌아가보자. 유럽 지역의 제국에서는 공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값싸고 안정적인 원료가 필요했을 뿐 아니라 여기에서 생산된 제품을 팔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다. 자본가들은 급속히 확장하는 식민지에서 기회를 보았다. 특히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지역은 광범위한 농장을 형성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자본집중형 농업을 위해서는 넓은 숲을 베어내거나 불태웠고 숲이 사라진 곳에다 작물을 심어 최대한 높은 생산량을 얻었다. 땅에 영양분이 떨어져 생산량이 줄면 새로운 숲을 불태워 농장을 넓히면 그만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1년에 수천 명씩 서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끌어오면서 자본집중형 농장에 노동력까지 집중할 수 있었다.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말라리아 유행의 삼위일체, 즉 기생충과 숙주, 매개체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숲이 사라지고 농장이 들어선 자리에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인 얼룩날개모기들이 번식하기에 좋은 환경이 형성되었다. 삼위일체의 한 축인 매개체의 등장이다. 그리고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들이 있었다. 노예들 대부분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끌려왔는데, 이 지역은 말라리아가 유행하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노예들의 몸 속에는 말라리아 기생충이 있었다. 두번째 축인 기생충의 등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예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힘겨운 노동을 간신히 견뎌낼 정도의 식사량에다 연속된 고된 노동은 몸의 저항력을 약하게 만들었고, 이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함께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질병의 전파도 쉽게 이루어졌다. 세번째 축인 취약한 숙주의 등장이었다.

 

말라리아 유행의 삼위일체가 완성되면서 이전에는 말라리아가 없던 지역, 또는 말라리아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던 지역도 말라리아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다. 말라리아 때문에 노동력에 심각한 공백이 생기면서 플랜테이션의 생산력도 꾸준히 낮아졌다. 생산력 저하 문제에 대해 자본가들은 농장 규모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했다. 말라리아는 플랜테이션의 확대를 타고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새로운 플랜테이션으로 말라리아가 뒤쫓아오면 자본가들은 또 다른 지역으로 옮아가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결과적으로 플랜테이션의 계속되는 확대와 그에 따른 말라리아의 계속되는 확산은 수많은 숲과 환경, 문화, 삶을 파괴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18세기를 지나며 말라리아는 전 세계로 확산해갔고 피해 규모는 커졌지만, 정작 본래 말라리아 때문에 고생했던 북유럽이나 북아메리카 지역은 말라리아의 피해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북부, 영국 같은 지역들도 산발적인 말라리아 집단 발병으로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와 미국 남부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이 지역의 말라리아 유행은 너무나 심각해서 지역 경제를 마비할 정도였을 뿐 아니라, 이후 수십 년 동안이나 이곳을 낙후 지역으로 남아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도 어김없이 농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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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부 면화경제의 문제

흑백 구분 없이 찾아든 말라리아

 

미국 남북전쟁 직후를 돌아보자. 남북전쟁 직후에 미국 전역은 말라리아로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지난 세기의 열대 지역과는 달리 미국 북부와 중서부가 말라리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농업에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었기 때문이었다. 자본의 투자는 삶의 질을 향상하고 이 지역에서 말라리아를 거의 박멸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남북전쟁 뒤 농업의 자본화는 지난 세기와는 방향이 달랐다. 플랜테이션에 투입된 것은 자본 뿐 아니라 막대한 인력이었다. 자본과 인력을 바탕으로 생산량을 향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의 투자는 인력에 집중하기보다는 기계와 자동화에서 폭넓게 이뤄졌다. 또한 농업 지대에 더 나은 관개시설을 놓아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도 많은 자본이 투자되었다. 다시 한번 말라리아 유행의 삼위일체를 살펴보자. 관개시설이 개선되어 고인물이 사라지고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면서 얼룩날개모기가 번식하기에는 부적당한 환경이 되었다. 매개체라는 축이 무너진 셈이다. 또 인력 대신에 기계가 투입되면서 모기가 피를 빨 수 있는 숙주도 사라졌다. 매개체와 숙주가 줄어들자 자연스레 기생충도 줄었다. 이 뿐만 아니라 키니네가 더 광범위하고 저렴하게 공급되면서 기생충을 치료할 방법도 생겨났다. 미국 북부처럼 공업화가 진행되는 지역에서 이제 말라리아는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남부는 이런 특혜를 입지 못했다.

 

남북전쟁 당시에 농업, 특히 면화농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남부 경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농장주들이 전쟁 때문에 북부로 떠나자 농사 지을 사람들이 없어 많은 농지가 황무지로 변해버렸다. 전투 때문에 파괴된 농경지의 면적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는 농경지를 재건할 인력으로 노예들을 부릴 수도 없어진 데다 전쟁 중에 쌓인 막대한 빚으로 수많은 백인 농부들이 지난날의 노예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노예해방 이후에 남부에서 토지를 얻은 흑인들도 토지 이외에는 별다른 자본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면화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소작계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즉 대부분 사람들이 거대 지주의 밑으로 들어가 소작을 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면화 농사에 목숨을 거는 형태의 농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하지만 남부에도 활기가 돌아왔다.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는 북부에서 직물 산업이 크게 번창하면서 면화에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면화 가격도 크게 올랐고, 많은 농장주들이 이를 기회로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 직후인지라 충분한 자본이 부족했던 남부에서는 기계화로 전환하는 대신에 땅을 잃은 전직 농부나 아직 남부에 머무는 이전 노예들의 노동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해방된 흑인 노예들은 백인에게 고용되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남부의 불합리한 법률 때문에 다른 백인 농장주에게 소작농으로 일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불합리한 조건으로 일하는 소작인들이 경작지를 제대로 관리할 리가 없다. 게다가 생활 수준이 낮아지면서 인구밀도도 높아지고, 상하수도 시설이나 위생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주거지역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런 조건은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이야기 아닌가! 역시 말라리아는 남부를 습격했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20세기 초반 무렵만 해도 말라리아는 너무 흔해서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말라리아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편적인 질병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키니네도 널리 보급되어 있었고, 모기로부터 집을 보호할 수 있는 방충망도 개발돼 있었는데도 소작인에 대한 토지 주인의 착취는 가혹한 수준이라 이렇게 간단한 예방과 치료 조처조차 취할 수 없는 소작농들이 대부분이었다. 자본 때문에 시작된 불균형은 말라리아로 되돌아왔고 이제는 심지어 많은 남부 백인들이 과거 노예들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되었다. 백인들은 불평등의 원인을 흑인들에서 찾았다. 곧바로 전례없이 격렬한 인종 갈등마저 빚어졌다. 결과적으로 1900~1930년대에 흑인의 북부 대이동이 시작돼 이들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면화산업을 유지하던 남부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노예제도에서 면화산업의 몰락, 그리고 노동력 유지를 위한 인종차별의 제도화는 결국에 남부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넣었던 셈이다.

 

00plantation1 » 1930년대 미국 남부의 대규모 면화 재배단지에서 흑인들이 일하고 있다. 출처/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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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금작물,

달콤한 독약?

 

플랜테이션 농장과 미국 남부 면화지대에서 보았듯, 말라리아의 대유행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취한 가혹한 착취, 무분별한 농경지 확대와 개발, 단일 작물을 중심으로 한 농업 구조가 바로 말라리아를 유행시킨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단순히 말라리아 기생충과 매개체인 모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가 말라리아를 유행시킨 장본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지금 제3세계 농민들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물론 여러 개발 프로그램 단체들이 주장하듯이, 환금작물이 사람들에게 현금을 가져다주고, 현금을 통해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300여년 동안 우리가 지켜본 역사 기록은 반대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만약에 집중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해 충분한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환금작물이라는 단일 작물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것은 말라리아의 폭발적 증가를 낳고, 이어 더 심각한 경제적 빈곤, 그리고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질 뿐이다. 게다가 제3세계 농민들은 환금작물을 한번 키우기 시작하면 그 고리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환금작물에는 자급형 농업보다 더 많은 종자돈이 들어간다. 개발 프로그램에서 지원이 이루어진다 해도 이후에는 농사 과정에서 계속 빚을 지게 되는데, 한번 농사를 망치면 그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결국에 농민들은 부채 상환과 생존을 위해, 그리고 약간의 현금이라도 기대하며 계속해서 환금작물을 키울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자급형 농업으로는 아예 현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악순환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각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에게 풍족한 생활과 안녕이라는 희망을 약속해준 환금작물이 현금이라는 덫에 빠져들게 하는 셈이다. 동시에 이 '거짓 희망'은 말라리아라는 치명적인 재앙의 씨앗까지 선물하고 말았다. 이제 사람들은 가난과 굶주림 뿐만 아니라 말라리아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세계경제 안에 편입되면 더 나은 삶이 보장되리라는 비전은 널리, 그리고 깊숙하게 퍼져 있다. 이런 비전이 보장해주는 꿈의 환상은 너무나도 달콤해 이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해야 할 사람들조차 그런 환상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고 만다. 세계경제에 편입돼 수입, 즉 현금을 더 얻는다면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제3세계 사람들이 겪고 있는 가난은 돈 문제가 아니라 안정성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몇몇 거대 다국적 기업체에 휘둘리는 환금작물 가치의 불안정성, 제3세계가 안고 있는 사회, 경제,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바로 가난을 심화하는 요인이다. 환금작물은 달콤한 약속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런 불안정성을 가중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농민들한테 필요한 것은 현금이라는 환상이 아닌, 기본적인 자급형 농업을 통해 생활의 안정을 되찾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만약 흉작이 오더라도 사람들은 몇푼 되지도 않는 현금 대신에 당장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본 욕구가 충족된 안정된 상태에서 이들은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마저 박탈한 채 경제적인 '러시안 룰렛'(실제로 사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러시안 룰렛이다)을 시도하는 일이 과연 옳을까. 이제 현금, 수입, 경제성보다는 정말 이들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같은 물음을 던져봐야 한다. 과연 우리가 내세우는 '경제성'이 정말 경제력, 그리고 부와 행복을 약속해주는가? 아니면 환금작물이 말라리아라는 독을 품고 있는 것처럼 달콤한 독약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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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 byontae@gmail.com       트위터 :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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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에서 , 살며 배우며 (19)             알프레드 월러스의 삶과 백신반대론       얼마 전, 젊은 여자 한 분이 가벼운 감기에 걸린 아기를 안고서 우리 클리닉을 찾아 왔다. 나는 요즘에 비가 자주 내려 날씨가 추운 탓에 가벼운 감기에 걸린 것이니...

  • [연재] '만들어진 영웅' 파스퇴르[연재] '만들어진 영웅' 파스퇴르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정준호 | 2011. 02. 11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18)             자연발생설, 파스퇴르, 헤게모니       어제 스와질랜드 산골 마을의 클리닉에서 의료봉사 일을 마치고서 간식으로 우유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우유 곽에 적힌 글귀를 무심코 읽어보는데 "패스터라이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