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영국 대학의 첨단 실험실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하던 정준호님이 어느 날 의료봉사단을 따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로 날아갔습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그가 아프리카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과 의학의 모습을 아프리카의 시선으로 낯설게 다시 바라봅니다.

[연재] 기후변화로 걱정 더 커진 말라리아

말라리아 질병의 정치경제학 ①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13)

 

 

 

 

스와질랜드와 말라리아

 

00malaria » 말라리아 매개 모기의 일종.

 

 

 

얼마 전 일요일에, <사이언스온>에 원고를 보내기 위해 읍내의 컴퓨터를 쓰려고 버스를 타고서 산길을 덜컹거리며 내려가고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친근하게 말을 건네왔다. 알고보니 클리닉에서 언덕을 죽 따라 올라가면 있는 마을 커뮤니티 센터에 새로 온 활동가 중 한 명이었다. 원래 여기에서 나고 자랐는데,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여기저기 떠돌다가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서 기후 변화와 관련한 홍보를 하러 지역 커뮤니티 센터에 와 있다고 했다.

 

이상 기후에 따른 강수량 변화, 강풍이나 냉해 같은 재해에서 작물을 보호하고 옥수수 이외에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있게 홍보하는 것과 더불어 기후 변화를 어떻게 막고 대처해나갈 수 있을지도 홍보하고 싶다고 했다. 별 도움은 되지 못하더라도 혹시 기후 변화와 관련된 강의 같은 것을 계획하고 있으면 보건 쪽의 발표는 꼭 맡아서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는데, 마침 길가에 걸린 대형 광고판에 말라리아와 관련된 광고가 걸려 있었다. 고열, 오한, 두통 같은 증상이 있으면 말라리아일 가능성이 높으니 될수록 빨리 가까운 보건소에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최근 스와질랜드도 기후 변화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최근 들어 바람이 무척 심해졌고 내년에는 남부 아프리카에 사이클론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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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수백만 명 사망' 말라리아, 

기후변화로 확산 우려

 

기후 변화와 관련해 가장 큰 우려를 낳고 있는 질병은 바로 말라리아다. 이미 해마다 수억 명의 감염자가 발생하고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낳고 있는 질병이 전반적인 기온 상승과 더불어 다른 아열대, 온대 지방으로 확산하기 시작하면 그 피해 규모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스와질랜드 역시 이런 기후 변화와 말라리아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올 초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말라리아 광고판을 정부 보건당국에서 내건 것이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말라리아 유행의 원인이라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다. 스와질랜드의 말라리아 유행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현재 기후 변화,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열대 질병의 확산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열대 제3세계 국가들은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에 노출되어 있었다.

 

남아프리카 동북부의 트란스발(Transvaal)과 스와질랜드 동부는 남아프리카 일대에서 최대의 금 산지다. 그래서 스와질랜드에 지배권을 가지고 있던 영국 정부는 20세기 초반부터 스와질랜드 동부를 개발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하지만 동부는 저지대라 기온이 높고 습지가 많은 탓에 모기와 말라리아가 들끓었고, 금광을 개발하거나 정착촌을 만들려는 노력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 뿐만 아니라 대다수 거주민들이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저지대 대신에 고지대인 서부에 살고 있어서 인력 수급이 쉽지 않았던 것도 영국 정부의 노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대전 직후부터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를 기점으로 DDT를 이용한 말라리아 방제 프로그램이 전 세계적으로 실시되었다.

 

스와질랜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식민지 개발 조합(Colonial Development Corporation)에서 스와질랜드에 금광과 설탕, 오렌지 플란테이션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말라리아 방제 사업도 함께 시작되었다. 1949년 처음 시작된 살충제 살포 계획은 1년 뒤에 스와질랜드 저지대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살충제 살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살포 지역에 사는 어린이들의 말라리아 감염률은 65%에서 2%로 감소했다. 1954년부터는 살포 지역에서 더 이상 새로운 감염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이렇게 몇 년이 흐르자 DDT 살포 작업도 서서히 느슨해졌다. 1946년 8000명에 달하던 스와질랜드 전체 감염자는 1960년대 초반 100명 이하로 낮아졌다.

 

1959년, 스와질랜드의 말라리아 박멸이 눈 앞에 있다고 선언한 스와질랜드 보건 당국은 앞으로 닥칠 문제점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말라리아 유행 지역 중에 살충제 살포가 이뤄지지 않은 지역은 정치적 이유로 살포가 불가능했던 모잠비크 국경 지대였다. 이 지역에서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잠비크나 남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이민자들 중에 감염자가 있다면 말라리아가 스와질랜드에 다시 유입될 가능성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전국적인 감염 감시와 이민자에 대한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00malariamap » 2003년 기준, 말라리아 위험을 지닌 국가들(노란색)의 지도. 말라리아 위험은 열대 뿐 아니라 아열대, 온대 지역에도 걸쳐 있다. 주의: 노란색으로 표시된 국가 전역이 아니라 그 국가의 특정 지역이 말라리아 위험을 지닐 때에도 해당 국가 전역이 노란색으로 표시돼 있다. 출처/ Wikipedia.org, 미국 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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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멸 직전 되살아난 말라리아 유행,

스와질랜드에선...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다시 나빠졌다. 스와질랜드 안의 연간 말라리아 감염자 수는 1000여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1970년대 당시 말라리아의 재유행은 전세계의 추세였다. 국제 말라리아 방제 프로그램이 공식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는 인식이 팽배해 관리가 느슨해졌고, 살충제 저항성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나 중앙아메리카는 이 살충제 저항성 모기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스와질랜드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말라리아가 다시금 유행하기 시작했다. 앞서 식민지 개발 조합에서 내세운 개발 프로그램이 바로 그 원인이었다. 1950년대, 말라리아 방제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역설적으로 식민 정부는 말라리아가 유행하기 좋은 환경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지금도 사탕수수 농장과 설탕은 스와질랜드의 거의 유일한 수출원 중 하나다. 하지만 여기에는 말라리아라는 몇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첫째, 사탕수수 농장에는 상당량의 물이 필요한데 여기에 물을 대는 수로가 문제다. 사실 수로가 잘 관리되는 상태라면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살기에는 부적합하다. 하지만 수로 관리가 엉망이 되어 곳곳에서 물이 새고 막히기 시작하면, 이 수로의 물이 고여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살기에 이상적인 환경이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식민 정부가 파견한 사탕수수 농장 관리인들은 직원들에게 제대로된 집이나 위생시설을 제공하지도 않았고, 작업 조건 자체도 굉장히 열악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대한 플랜테이션 안의 수로들이 제대로 관리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게다가 일단 말라리아가 물러났음을 확인하고 최대한의 노동력을 얻어낼 수있으리라 확신한 시점부터 식민지 정부는 말라리아 방제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만다.

 

둘째, 말라리아가 주변 국가에서 재유입 되었다. 1950년대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말라리아 방제 사업 덕택에 스와질랜드 사람들에게서는 말라리아 기생충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무리 사탕수수 농장 때문에 모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해도 기생충 자체가 다시 유입되지 않았다면 말라리아 유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1960년대 스와질랜드는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 중 경제적으로 보아 이른바 '잘나가는' 국가였다. 식민지 개발 조합이 사탕수수와 탄광, 금광, 벌목 등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면서 경제 개발 붐이 일어난 탓이다. 하지만 스와질랜드 사람들은 주로 광산이나 벌목 쪽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했다. 수입은 똑같은데, 배급과 작업 환경 등을 따져볼 때에 광산이나 벌목 작업장보다는 사탕수수 농장이 훨씬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농장 관리인들은 처우나 환경을 개선해 스와질랜드 인력을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모잠비크 같은 국외에서 인력을 들여오는 쪽을 택했다. 스와질랜드 보건당국에서는 당시 말라리아 방제 사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던 모잠비크에서 다수의 인력을 들여오는 것이 말라리아 재유행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경고했지만, 식민 정부에서는 경제 효용 따지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런 경고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결국 말라리아 유행이 심각하던 모잠비크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말라리아 기생충도 함께 편승해 스와질랜드에 다시 유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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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말라리아

계속되는 버거운 싸움 

 

1950~60년대 이후에 스와질랜드 농경산업의 급격한 변화와 말라리아의 재유입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 1968년 스와질랜드가 독립하면서 많은 양의 자본이 국외로 빠져나갔다. 결국에 스와질랜드는 경제 침체를 겪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보건 예산과 말라리아 방제 예산도 상당히 삭감됐다. 더불어 말라리아의 재유입으로 생산성이 낮아지고 있던 사탕수수 농장도 식민지 농장주들이 매각해버리고 떠났을 뿐 아니라, 경제적 이득이 작아지면서 모잠비크에서 온 노동자들도 떠나버렸다. 이 노동력의 공백을 스와질랜드 사람들이 메꿔야 했다.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스와질랜드 거주민들의 대다수는 서부 고지대에 살고 있었다. 사탕수수 농장은 한철 농사이기에 계절에 따라 고향인 고지대와 일터인 저지대를 오가며 사는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말라리아가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퍼져나가는 역할을 하게 됐다. 이제 스와질랜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역이 말라리아 유행 지역이 되었다.

 

얼핏 보면 1950년대 식민지 정부가 말라리아 방제를 하면서 식민지에 좋은 일을 해준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더 체계적인 착취, 그리고 노동력과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방책이었을 뿐이지 식민지 거주민을 위해 한 일은 아니었다. 생산력 극대화를 위해 말라리아 관리 프로그램에는 눈을 감아버린 채 모잠비크 노동력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인데에서 그 배경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식민지의 무분별한 개발(스와질랜드의 경우에는 사탕수수 농장)과 그런 개발의 결과와 경제체제를 억지로 떠안을 수 밖에 없는 독립 이후 스와질랜드 정부가 겪는 어려움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식민지 시대의 개발, 그리고 이후에 그 관성으로 불가피하게 지속된 개발로 인해 스와질랜드는 이제 1950년대에 성공적으로 이룬 말라리아 방제 사업은 물거품이 된 채 말라리아의 주요 유행지 가운데 하나가 돼버렸다. 이와 더불어 2000년에 사이클론이 남부 아프리카를 강타한 직후에는 유행병으로 번져나가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내년에 또 다시 사이클론이 올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미 에이즈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태에 이른 스와질랜드의 보건당국이 과연 말라리아의 유행에 대처하는 것이 가능할까? 걱정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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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 byontae@gmail.com       트위터 :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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