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문·이과 벽 넘어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조범식의 ‘후배에게 들려주고픈 실험실 이야기’

  “이 글을 통해 학부생연구원으로 살고 있는 나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고, 그래서 후배 아닌 자연과학 학부생들이 이 글을 통해 실험실을 선택하거나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앞으로 학부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다른 실험실 대학원생들의 고충, 연애, 진로, 취미활동, 군 입대 등등 술자리에서 술 한 잔 마셔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6] 나를 살찌우는 다양한 학문과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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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관하여 많은 논쟁이 오가고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과정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올해는 비단 국정화 교과서 이야기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 관한 새로운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던 시기였다.


중학교에서는 앞으로 정보사회에 발맞춰 2018년부터 ‘정보’라는 새 교과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하기로 했다. 또한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자 병기는 유보되었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찬반 여론이 대립했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2018년도부터 문·이과가 통합되어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과학탐구실험이 공통과목으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공통과목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내신에 모두 반영하도록 한다는 방침을 교육부가 발표했다. (그림1)

00learning1.jpg » 그림1. 교육부 2015년 업무계획

하지만 정작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학생들은 어른들이 정해주는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을 수동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공부는 대입 수능 시험으로 치르는 과목만 집중했고, 또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내가 듣고 싶은, 공부하고 싶은 과목은 대학교에 가면 듣겠다’라고 생각하며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대학생이 되어서 정말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들을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교양과목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개설된 교양과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중에 듣고 싶은 과목들을 선택하여 들을 수 있다. 나는 대학교에 가면 심리학을 꼭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던 터라, 1학년 1학기에 심리학과 관련된 교양과목을 들었고 2학년 때에도, 3학년 때에도 이와 관련된 과목들을 수강하였다. 또한 중·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운 중국어도 조금 더 알고 싶어 교양중국어를 수강했고 디자인에 관한 것도 듣고 싶어 교양 중에 관련된 과목을 수강했다. 4년 동안 정해진 학과의 교과과정 이외에 듣고 싶은 과목을 추가하는 수강신청 과정은 너무나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알면 알수록 더 배우고 싶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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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목도 그 나름대로 전문성이 있는 과목들이지만 나는 특히나 교육학에 관심이 더 많았다. 고등학생 시절의 꿈은 생명과학 선생님이었다. 친구들에게 문제 푸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어떻게 공부하면 가장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찾을지에 관해 스스로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선택할 때 ‘교직과정 이수’를 할 수 있는 학교를 선택했다. 대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학교에서 교직과정 이수를 받을 수 있어, 3학년 때부터 교직과정을 들었고, 교육방법, 교육평가, 교생실습을 비롯해 사범대 교과과정에 맞춰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다.


음에는 단순히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선택했던 교직과정 이수였지만 하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수업들 이외에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특수교과교육론에서는 장애아동의 교육에 대해 배웠는데 아이들과 나누는 ‘눈 맞춤’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감정의 상호 교류임을 알게 되었다. ‘입맞춤’이라는 말은 익숙했지만 ‘눈 맞춤’은 그렇지 못했다. 수업시간 이후에 이 말을 곱씹어 보니 상당히 따듯한 말인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특수교육학 수업이 아니었으면 내게 의미를 주지 않았을 단어였을 것이다.


교직과목들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우고 싶었던 것이어서, 그리고 교사는 어린 시절의 장래 희망이었기에 꼭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어 신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보니 듣고 싶은 과목이 더더욱 많았다. 첫 번째로 컴퓨터 공학을 배우고 싶었다. 나의 대학교 1학년 시절에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앱(APP)이라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앱을 개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어떨지 친구와 함께 고민했다. 4학년이 된 지금도 컴퓨터 공학은 배우고 싶은 과목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앱 개발보다는 생명과학 전공의 관심사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컴퓨터가 1과 0의 이진법을 사용하여 데이터를 처리하듯이 사람의 유전자는 사실 염기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라는 4진법의 유전암호를 사용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2000년대 초반에 전장 유전체 염기서열분석(Whole Genome Sequencing)이라는 프로젝트에 의해 사람 유전자가 전부 밝혀짐에 따라 유전암호에 관한 데이터의 양이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생물을 연구하는 몇몇 사람들이 유전암호를 해석하는 도구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였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그램들과 달리 컴퓨터에 명령어를 입력하여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들이다. 생물에 초점을 둔 연구자들은 아무래도 이쪽 분야를 잘 모르니 데이터가 있어도 컴퓨터를 전공한 사람 없이는 해석하기 힘들다. 앞으로 데이터의 양은 점점 많아질 테니,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면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지 최근 들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둘째로는 화학이다. 생명과학과 화학이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생명과학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화학이라고 하면 계산이 먼저 떠오르고 조금은 복잡한 수식들을 다뤄야 한다는 생각에, 내게는 어려운 과목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생명과학과 커리큘럼에도 1학년 때에는 일반화학, 2학년 이후에는 생화학, 유기화학이 개설되어 있는데 배울 때마다 수식 때문에 애를 먹었다. 그래도 화학을 듣고 싶은 이유는 생명과학에서 화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부전공/다중전공 생활,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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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는 흔히 ‘부전공’으로도 알려진 ‘다중전공’이는 제도가 있다. (그림2) 둘은 서로 다른데, 부전공은 학위 취득이 불가능하지만 다중전공은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전공을 하나만 들어도 힘이 드는데 전공을 두 개씩이나 하면 힘듦이 배가 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내가 하는 교직과정 이수도 넓은 의미에서는 다중전공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다중전공의 범위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난느 다중전공의 힘듦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같은 과의 후배 중에는 실제로 화학을 다중전공으로 택하여 생명과학과 화학을 모두 전공으로 삼은 친구가 있어 ‘다중전공의 대학생 생활’을 엿들을 수 있었다.

00learning2.jpg » 그림2. 전공제도 비교

일 먼저 화학을 다중전공으로 택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화학과를 다중전공으로 택한 이유는 ‘화학과의 교육과정을 보니 생물학과 관련된 생화학 이외에도 세포 생화학, 분자 환경 생화학과 관련된 과목들이 개설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명과학 분야를 이해하는 데 폭을 넓히고 싶어 다중전공을 선택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친구도 역시 나처럼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따라서 자신이 앞으로 연구자로 나아가는 데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을 지을 수 있기에 화학과를 선택한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말했다.


나는 생명과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하기 이전에 교육학이라는 전공을 생각하며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이 친구는 화학과를 염두에 두고서 다중전공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다른 과의 수업을 들어보고 자신의 ‘학문적 시야’를 넓혀줄 만한 전공을 찾던 중에 화학과를 택했다고 한다. 나아가 기초학문인 생명과학, 화학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분야들의 융합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응용학문도 염두에 두고 찾아보았다고 하였다. 과학의 응용 학문이라면 공학을 들 수 있는데, 생체공학과 재료공학도 선택해봤으면 했던 전공 중 하나였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하지만 다중전공이라 하는 것이 전공을 여러 개 듣는 것이기 때문에 힘든 점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다고 하였다. 공부해야 하는 양이 두 배 이상에 달하는 것, 전공과목의 특성상 시험을 여러 번 치르는 과목도 있었다고 하였다. 또한 아무래도 전공자에 비해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고 하였다. 반면에 좋은 점을 꼽자면 다른 학과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 다른 과 교수님들의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점이라고 하였다. 일례로 그 친구가 화학과의 ‘물리화학’이라는 과목을 배울 때 너무 어렵게 느껴져 힘들었는데 교수님이 생명과 학생인데도 열심히 한다며 칭찬해주셨을 때 힘든 것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고 표현해 주었다. 생명과학만 공부했다면 물리화학의 어려움도 알지 못했을 테고 그것을 아는 교수님의 칭찬도 들을 수 없었을 테니 저 칭찬은 더 소중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00learning3.jpg » 그림3. "나는 최근에 중·고등학생들한테 생명과학 학과를 소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는 최근에 사범대 교수님의 부탁으로 중·고등학생에게 생명과학과에 대해 소개해주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림3)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 형들이 와서 대학교 소개를 해주던 것이 정말 멋있게 보였는데 지금 그런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 사범대 교수님에게 너무 감사드린다. 또한 교직과정 이수를 하면서 우리 대학에 있는 국문학과, 영문학과, 사학과, 국악과, 연극영화과, 피아노과 등 다양한 학과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수업 시간에 사회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그 사람들의 생각을 엿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 다중전공이나 교직이수 제도는 학문의 즐거움을 찾는 것 이외에도 수강자에 따라 다양한 만남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제도로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존재한다.



학문의 가지치기와 통섭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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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은 1998년 저서 <통섭(Consilience)>에서 학문 간의 통합을 이야기하였다. 본래 지식은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으로 정의되는 것처럼 서로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를 지니며, 여기에서 가지가 뻗어나간 것이 각각의 학문이라고 하였다. 이 가지들이 근래 들어 더더욱 세분화되었고 가지와 가지가 서로 멀어졌기 때문에 이를 함께 어우를 수 있는 태도가 현대의 지식인들에게 요구된다고 하였다.


창하게 통섭을 위해서 인문학도 전공하고 자연과학도 전공하고 공학도 전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럴 만한 주변인이 필요하고 그럴 만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 시절의 다중전공, 교직이수와 같이 다양한 학문의 추구는 통섭을 준비하는 현대 지식인의 태세(態勢)가 아닌가 생각한다. 반드시 다중전공을 할 필요는 없지만 다중전공을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다른 지식을 수용할 수 있는 태세가 서로 다르지 않을까?


지난해에 다른 학교의 뇌과학과에서 인턴을 하였을 당시, 대학원에는 생명과학을 전공하신 분들 이외에도 심리학 전공을 하고 생명과학과에 계신 분들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함께 인턴을 했던 형들 중 한 명도 다른 학교의 심리학 전공자였다. 또한 심리학을 전공하는 중이지만 생명과학을 다중전공으로 선택한 형이었다. 생명과학과에 있는 것만이 생명과학을 배운다는 나의 상식을 멋지게 부숴버린 형이었다. 멋있어 보이는 건 당연했다.


대학교 후배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다른 전공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기를 권해주고 싶다. 학교 내에서도 나와 다른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친구들이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경험은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적 멋있음’은 돈으로 환산이 불가한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문과 대 이과’라는 대립구도로 이야기하면서 이과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계산적이고 수치적인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시각도 많다. 서로 편 가르기를 하기 이전에 서로에 대해 이해를 하려는 시야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경험했던 다양한 사고를 통한 생각의 나눔,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을 후배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우리 사회가 지금 교과과정을 두고 떠들썩한 이유도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막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지 않은가.


조범식 한양대 시스템신경생물학 실험실 학부생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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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식 한양대학교 시스템신경생물학 연구실 석·박통합과정 대학원생
대중들에게 생명과학을 널리 알려주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패기로 이상을 좇아 살아가며 어떤 일이든 집념을 가지고 끝까지 하고야 마는 고집쟁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먼 훗날 강단에 서서 사람들에게 멋지게 이야기 할 날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2016년 학부 과정을 졸업하고 대학원 생활(석박통합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메일 : ciou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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