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랩미팅 스타일’ 실험실마다 달라도, 두근두근 긴장과 설렘

한아름의 “실험실의 좌충우돌 일상” (7)


언제나 짜릿했던 랩미팅의 시간들

00labmeeting1.jpg » 실험실 생활 동안의 여러 추억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는 랩미팅의 추억! 그 추억이 이렇게 컴퓨터 그림판에 그려진 모습으로만 남겨져 있기에 당시의 짜릿함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제공/ 한아름


두 분주하게 움직이는 금요일. 식사도 거른 채 각자의 실험에만 집중하고 있다. 실험 결과를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언니의 표정이 꽤 심각하다. 후배 녀석은 각종 색깔의 펜으로 ‘화려하게(?)’ 난도질을 당한 논문을 다시 한 번 더 읽느라 정신이 없다. 서로 대화도 삼간 채 알 수 없는 긴장이 실험실 전체에 감돈다. 바로 내일, 토요일 오전에 열리는 ‘랩미팅’ 때문이다. 랩미팅이 뭐기에….


랩미팅(Lab meeting)이란 실험실에서 규칙적으로 여는 일종의 ‘전체 회의’ 같은 개념이다. 이 ‘회의’에서는 그동안 진행된 실험 경과를 보고하고 앞으로 진행할 실험의 방향을 교수님이나 동료들과 함께 토의한다. 모든 회의가 그렇듯이, 랩미팅를 준비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랩미팅을 하는 중에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나에게는 실험실 생활 중에서 논문을 쓰는 일 다음으로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 받던 일이 바로 랩미팅을 준비하고 랩미팅에 참석하는 일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실험실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단연코 랩미팅의 중요성(때로는 중압감)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만큼 이 랩미팅에 관련된 추억 혹은 사연들도 또한 대수롭지 않다.



실험결과를 발표하고 평을 듣는 긴장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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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labmeeting2.jpg » 금요일 저녁. 토요일 아침 랩미팅에서 발표할 내용을 준비하기 위해 마무리 실험 중. 여러 실험실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험실마다 랩미팅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실험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지만 실험실의 규모나 지도교수의 성향도 큰 영향을 끼친다. 실험실의 구성원이 너무 많거나, 하는 일에 따라 몇 개의 팀으로 나누어져 있는 실험실의 경우에는 팀 별로 미팅을 진행하며 랩미팅 할 때 실험실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월간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지도교수 미팅은 상시로 진행하는 연구실도 보았다. 이런 실험실은 지도교수가 연구 외에 다른 대외 활동을 많이 하는 경우나 실험실 규모가 너무 커서 한번에 진행할 수 없는 경우에 주로 나타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우리 실험실의 경우에는 매주 토요일 오전 9시에 모든 실험실 구성원과 지도교수님이 참석한 가운데 랩미팅이 진행되었다. 시간이 되면 우리 학과에서 사용하는 세미나실로 올라가서 일주일 동안 실험한 내용과 그 결과를 각자 준비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이용해 발표해야 한다. 몇몇 사람들은 금요일 밤에 한 실험 결과의 정리를 마무리하거나 발표 자료를 수정하기 위해서 새벽 일찍 출근하기도 한다. 그만큼 실험실 구성원들이나 교수님이 랩미팅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랩미팅을 하면서 내 실험의 결과를 발표하고, 해석 불가능한 결과가 나왔을 때는 교수님 혹은 박사과정 언니오빠들의 의견을 듣기도 하며 다음 실험 방향이나 내 실험에 맞는 더 나은 실험 방법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랩미팅이라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의미에서 실시하는 것이지만, 일주일 간 열심히 실험한 결과를 실험실 식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 자체가 긴장되는 일인 것은 틀림없다. 또한 랩미팅은 내 실험을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잘 진행하고 있는지 실험실 식구들 및 교수님께 검사 받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미팅 준비를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우선 랩미팅의 고충을 설명하기 위해서 실험 전반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곁들여야 하겠다. 우리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생화학 실험은 다음과 같다. (1) 이틀 정도 실험에 필요한 세포를 기르고(cell culture), (2) 화학 물질을 처리(chemical treatment)한 다음에, (3) 화학 물질이 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일정 시간을 놔두고(incubation), (4) 세포를 취합해(cell harvest), (5) 화학 물질이 세포의 특정 물질 발현에 영향을 주었는지 분석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시간의 지연이 있을 경우에 세포 상태가 변하거나 화학 물질이 세포에 주는 영향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위의 실험 과정을 순서대로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


즉, 내 실험에 사용될 세포들이 영양 가득한 배지에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는 동안에 나는 처리할 화학 물질을 만들어 준비해 두어야 하고, 특정 물질 발현의 정도를 측정할 때 다양한 시약이나 기계를 사용해 측정해야 하므로 화학 물질을 처리하기 전에 미리 감별시약이나 사용 기기의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 예약해두거나 준비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결과확인을 한 후 진행하게 될 실험을 위해 세포 배지와 기본적인 용액들이 부족하지는 않는지 항상 관리해야 한다.



발표할 만한 데이터 없을 땐, 발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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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labmeeting3.jpg » 랩미팅 전날에는 실험결과를 정리하고 저널클럽 발표 준비로 뒤돌아 볼(^^) 시간도 없다. 이 모든 일이 날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토요일 오전에는 실험 결과를 내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이 너무 짧고 바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빡빡한 일정 속에서 실험을 하다 보면 난감한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실험용 세포를 기르다 보면 배지가 오염되는 경우, 액체질소에서 보관되는 세포 자체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 아니면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실컷 세포를 키우고 나서 보니 화학 물질을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세포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에는 애써 길러놓은 세포를 모두 폐기하고 또 며칠 동안 새로 세포를 길러야 한다. 그렇게 세포만 기르다 일주일이 다 지나면 랩미팅 발표시간이 참으로 곤욕스럽다.


또한, 실험을 처음으로 계획하고 실험 조건을 잡아야 할 때에는 세포에 처리할 화학 물질의 용량을 결정하느라 제대로 된 실험은 해보지도 못한 채 세포를 기르고 화학 물질 농도를 바꾸어가며 처리하기만 반복하면서 일주일이 그냥 지나갈 때도 있다. 다행히 조건을 잡게 되면 할 말이 생기지만 그렇지 못하면 일주일을 누구보다 고뇌하며 바쁘게 보냈건만 정작 랩미팅 당일에도 결과라고 내세워 얘기할 만한 결과가 마땅히 없는, 텅 빈 발표 슬라이드를 망연히 쳐다보며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식사도 거르면서 그렇게 열심히 세포들을 마주했던 시간들이 ‘이번 한 주는 화학물질 농도를 변화시키며 실험 조건을 잡았습니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되니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민망해진다.


이 뿐만 아니다. 눈에 띄는 좋은 결과를 내거나 연구에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경우에는 아낌없는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실험에 진전이 없고 뚜렷한 결과가 없이 미궁에서 헤매는 듯이 깜깜한 터널의 한 가운데 있는 동안에는 매주 토요일 오전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다. 실험이 잘 되다가도 누구에게나 잠깐의 침체기 또는 고비가 찾아오게 마련인데 이 때에는 계속 논문을 찾고 온갖 해결책을 모색해 보아도 실험 결과로 쓸 만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실험실에서 아무리 적어도 한 명쯤은 꼭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이 발표를 하게 되면 화기애애하던 세미나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 붙으면서 시계의 초침 또한 얼어붙었는지 좀체 시간이 흐르지를 않고, 혹여 그 사람이 내가 될 경우에는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다. 빨리 논문을 써야 하는데 실험 결과는 나오지 않고, 시간은 흐르고, 그러면서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교수님도 답답한 마음에 꾸지람을 하시고 당사자는 세미나실을 걸어나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지난 번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이런 날은 절대로 학교 식당에서 3000원짜리 밥을 먹을 수 없다. 적어도 두 배 비싼 비빔밥 정도는 먹어야 힘이 난다.)



밤새워 준비하는 ‘저널클럽’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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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개인 실험 발표가 끝나면 저널클럽도 진행되었다. 이것은 매주 두 명씩 실험실 사람들에게 설명해 줄 논문을 발표하는 것인데, 저널클럽 담당자들은 랩미팅 때 본인의 실험도 발표해야 하고 논문 발표도 해야 하기 때문에, 금요일엔 무조건 밤을 새야 한다고 보면 된다. 또한 토요일 아침의 미팅 직전까지 바쁘게 슬라이드를 수정하는 사람들은 백발백중 저널클럽의 발표 담당자들이다.


발표할 논문을 고르는 일에도 심사숙고 해야 한다. 같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고, 모두 생화학 실험을 하고 있지만 세부 연구주제가 달라서 다른 구성원들이 하고 있는 실험의 자세한 방법이나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나 협소한 기술을 다룬 논문보다는 우리 실험실에서 하는 실험과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두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의 논문을 선택 하는 일이 중요하다. 게다가 선택한 논문을 잘 이해해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 까지 준비해야 하니 어찌 제때 출퇴근 할 수 있으랴.


또한, 저널클럽 담당자들은 랩미팅을 하면서 먹을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 오는 것이 우리들 사이에서는 규칙이었는데, 이것이 자칫 우울해 질 수 있는 랩미팅에 던져주는 상큼한 포인트가 되었다. 성북동에 사는 수진이는 토요일 아침마다 북악산 주말 등산객을 위해 등산로 초입에서 파는 김밥을 사왔는데, 김밥을 먹고 감탄사가 나오기는 처음일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 맛있는 김밥 때문에 수진이가 저널을 발표하는 날을 내심 기다리기도 했다. 그리고 분당에 사는 경현 오빠는 집 앞 도넛 가게에서 매번 본인만 좋아하는 도넛을 잔뜩 사와서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 한번은 내가 학교 근처 카페에서 평소 자주 먹던 샌드위치를 준비해 간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너무 좋아하셨다. 언니들은 그 날 화기애애했던 랩미팅 분위기를 샌드위치 때문이라고 속단해, 한 동안 같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랩미팅을 하기도 했다. 새로 온 후배들은 전화 한 통으로 ‘맥모닝 세트’를 배달시키며 간식 준비를 해결하는 스마트함을 보여 실험실에 새로운 트렌드를 열기도 했다.



잘나온 ‘젤 사진’ 한 장이 너무 반가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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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 실험이라는 것이 음식으로 비유하면 한식을 만드는 것과 비슷해 한 번의 실험에 필요한 버퍼나 시약 및 재료들이 너무 많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손수 준비하여 반응을 시켜놓고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신경 써야 한다. 배추를 절여 숨을 죽이고 마늘과 고추를 일일이 다듬어 ‘김치 한 접시’를 내어놓듯이, 생화학 실험도 또한 이런 갖가지 노고가 곁들여지지만 그 결과는 ‘젤(gel) 사진 한 장’으로 마무리되어 적잖은 허탈감을 느낄 때도 있다.


00labmeeting5.jpg » 석사과정 중에 매주 만들었던 랩미팅용 발표 자료들의 폴더 화면. 148개의 랩미팅 발표 슬라이드에 깨알 같은 실험 자료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 실험실의 랩미팅은 일주일에 한번씩 착착 돌아오니 이런 젤 사진 한 장마저 아쉬울 지경이었다. 당시에는 실험결과 발표를 하기도 버거운데 논문 발표까지 하려니 너무 힘들기도 했고, 실험의 특성상 랩미팅을 격주로 해야 한다며 교수님께 귀여운 항의를 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매주 모여서 결과 내용을 주고받고 토의를 해야 발전이 있고 긴장감을 놓지 않는 법이라고 말씀하시며 실험이 오래 걸리는 것을 알고 있으니 미팅 때 결과가 없으면 없는 대로 발표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논문을 쓸 때가 되고 보니 선배들이 남기고 간 랩미팅 발표자료들이 그렇게 유용하게 사용될 수가 없었다. 만약 미팅을 격주로 했다면, 매주 한 장의 슬라이드라도 더 남기려 발버둥 치던 흔적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을까? 아마 세부적인 실험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기록되어 있어 실험을 재현하거나 참고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졸업을 한 뒤에도 후배들이 참고 자료를 부탁할 때마다 랩미팅 때 만들었던 자료를 열어보게 되었고, 저장된 148개의 슬라이드에 깨알같이 기록된 실험 내용을 보면서 지난 날의 고생들이 좋은 자료로 사용 될 수 있어서 뿌듯했다.


석사과정 동안에 매주 랩미팅을 하면서 느낀 것이, 실험을 할 때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세심한 관찰력과 더불어 그것을 기록하는 습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 실험 결과에 대한 교수님이나 동료의 조언이 ‘나’라는 인간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내가 수행한 ‘실험’, 아무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위한 충고와 격려라고 받아들이는 마음 가짐이라는 것이다. 실험실 생활 동안의 여러 추억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는 랩미팅의 추억! 그 추억이 이렇게 컴퓨터 그림판에 그려진 모습(맨위 그림)으로만 남겨져 있기에 당시의 짜릿함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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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경북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대학원생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래 희망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과학인이 되는 것.
이메일 : areumhan24@gmail.com       트위터 : @areumhan24      
블로그 : http://plug.hani.co.kr/areumha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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