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해는 다시 떠오르고" 국화꽃 싯귀의 위안

오하나의 “식물 실험실의 생명 왈츠”


(6) ’식물 연구의 엑스포’ 식물학회 발표 준비를 하며 

00flower.jpg » 들국화 식물인 감국. 사진/ 국야농원 제공


토대학교에서는 방학이 8월 초에 시작되었다. 한국 대학들에 비하면 한 달 반 정도 늦은 셈인데, 일본의 학기 제도는 한국에 비해 한 달씩 뒤로 밀려 있기 때문에 방학도 늦은 편이다. 

그래서 봄 학기도 3월 초가 아닌 4월 초에 시작하고, 가을 학기는 10월 초에 시작하는 식이다. ‘일본의 꽃’ 벚꽃이 4월 초에 핀다는 까닭에 대학교의 학생들도 이 때에 맞춰 수업에 나간다. 신입 사원들의 첫 출근도 대개 4월부터 시작하고, 공무원들은 2월이 아닌 3월 말에 정산 작업을 하느라 바쁘다. 유학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봄의 시작은 당연히 3월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봄을 정의하고 싶다. 봄에 피는 꽃들 가운데에서 마음에 드는 꽃 하나를 정해 그것이 피는 날이 봄이 찾아오는 때라고 말이다.  


학회 참여의 경험, 충격과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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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plantlab_1.jpg » 일본식물학회의 9월 개최를 알리는 팸플릿. 개최 장소가 되는 대학의 꽃을 심벌마크로 만들어서 책자에 싣는 전통이 있다. 올해 학회의 개최지인 히메지대학의 꽃인 사기소우(일본명)의 학명은 Pecteilis radiata (Thunb.) Raf. 한국명은 해오라기난초이다. 꽃잎이 두 날개를 활짝 편 해오라기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찌 되었든, 8월과 9월은 교토대학교의 여름방학이지만, 실험실의 대학원생들은 대학의 방학에 무심하다. 학기 중에 있는 세미나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어 마음의 부담은 덜었지만, 그 대신에 실험에 더욱 박차를 가하거나 학회에 참여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실 구성원들은 지금 일본식물학회에서 할 발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일본식물학회는 일본에 현존하는 식물 관련 학회로는 가장 큰 학회로, 해마다 9월 중순에 열린다. 사흘에 걸쳐 구두 발표와 심포지움, 관련 집회, 교류 파티가 성대하게 열린다. 발표 분야도 광범위하다. 분류·계통·진화, 세포 골격·운동, 환경 응답, 발생·형태, 대사물질, 생식, 유전자 발현 제어와 정보 전달, 세포 소기관·생체막, 식물미생물 상호작용, 유전 정보 등등…. 지난해에 도쿄대학교에서 열린 학회에서 발표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에 나는 세 가지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충격1: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일본인이다. 
내 자신이 외국인이라 학회장에는 당연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들 줄만 알았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다 일본인이었다! 발표를 영어로 하는 경우는 손에 꼽혔다. 흥미로웠다. 또한, 일본인 학자 중에는 유학파가 적었다. 자국의 대학(국공립, 사립, 지방대 관계없이)에서 박사학위를 받아도 논문 실적만 좋으면 어딘가의 교수로 쉽게 인용이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교수가 되기 위해서 우선시되는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논문수였던 것이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지 않아도, 연구는 잘 이뤄질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한국에 있었을 때에는 깨닫지 못했었는데...  

충격2: 일본 안에 이렇게나 많은 식물학자들이 있었다니! 
일본이 섬나라라고 해서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크나큰 오해이다. 면적만 해도 남한의 3.8배이다. 전국 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모이니 학회장 안은 식물 관련 연구자들로 꽉 들어차게 되었다. 그들의 발표를 듣고 있으면, 연구 수준도 낮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연구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인적 네트워크인 걸까? 

충격3: 같은 식물종을 보고도 궁금해 하는 부분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 
특히 식충식물의 주머니 형태의 진화 과정을 세포의 발생 과정에 주목했던 그 아무개씨… (나중에 파티장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아무개씨, 역시 특이했다.)

나는 이번 학회에서는 지난 번에 투고했던 논문의 내용과 현재 진행 중인 실험 결과를 정리해 발표하기로 했다. 지도교수도 나도 나의 이번 발표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 벌노랑이의 종 분화와 진화라는 연구주제로, 지도교수는 올해 초에 연구실 사상 최초로 ‘A급’ 연구비를 따 왔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에서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과학연구를 지원하고 있는데, 기반 연구는 크게 S급, 그리고 A, B, C급으로 나누어 지원하고 있다. S급은 선단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실에 주는 연구비로, 5000만 이상, 2억 엔 이하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5년에 걸쳐 지원한다. A, B, C급은 3~5년 단위로 지원하며, 지원 금액은 각각 2000만~5000만 엔, 500만~2000만 엔, 그리고 500만 엔 이하이다. 이번 학회에서 내가 얼마나 발표를 잘 하느냐에 따라 다음 번 연구비가 A급을 유지할지, B급, C급으로 내려갈지가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 문제와는 별도로, 난 나 나름대로 연구 성과에 대해 그냥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내 연구 결과가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얻어 미래에 있을 식물 연구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12분간의 연습발표 뒤, 정적이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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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장은 정말이지 연구 주제들을 사고 파는 월드 슈퍼마켓 같다. 학회장 안에 있으면 과학자들이 과학자로 보이지 않는다. 흡사 영업사원들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소속에 상관없이, 자신의 연구가 얼마나 매력적이며, 밝혀진 연구결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며 호응을 얻기 위해 바쁘다. 

연구주제에도 유행이 있다. 요즘에 뜨거운 관심을 받는 연구방법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를 이용한 유전 정보 처리법이다. 미국에서 들여온 이 분석 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학자들은 일본에서도 드문지라, 그쪽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은 교류 파티를 할 때에 인기가 높다. 학자들이 누군가를 빙 둘러 싸고 있어서 뭐 하나 궁금해 기웃거리면 다들 그 누군가에게 명함을 건네고 있다. 명함에는 각자의 얼굴이 아니라 연구주제들이 새겨져 있다. 인맥을 형성한 그 누군가는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식충식물 A의 염색체 수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은데 말이지(식물별로 염색체 수는 아주 다양해 염색체 수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데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단다)… 아, 맞다! 그 때 학회에서 만났던 그 분! 40년 내내 식물의 염색체 수만 세서 노안이 온지도 몰랐다고 했지! 확실히 명함에 염색체 6쌍이 그려져 있었어…’ 

어제 연구실원들 앞에서 한 차례 발표 연습을 했다. 12분 간의 발표를 마치자, 연구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지도교수의 표정을 살피니, 이래가지곤 연구비를 남에게 바쳐야 하겠다는 표정이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연구실원들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연구 타이틀부터 이해가 안 가요.”
“표와 그래프의 설명이 부족해요.”
“표와 그래프의 설명을 일본어로 한 것… 맞죠?”
“채집 지역을 표시한 형광색 때문에 눈이 아파 오는군요.”
“그래서 결국 하나씨가 무슨 연구를 했다는 거죠?” 
“하나씨… 연구비가…” 

다른 연구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연구실은 학회 준비를 오랫동안, 정말 꼼꼼하게 하는 편이다. 두세 번 정도 연구실 구성원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신랄한 지적을 받는다. 연구 자체의 논리성에 대한 질문도 많고, 프레젠테이션 방식에 대한 지적도 많다. 일본인의 꼼꼼한 성격에 준비하는 데에는 고생을 꽤 하지만, 그만큼 좋은 프레젠테이션이 만들어지니 배우는 점은 참 많다. 
00plantlab_21.jpg » 연구실 앞에는 졸업생과 동료들이 이전 학회에서 사용했던 포스터들이 걸려 있다. 학생들은 포스터를 보며 연구실의 연구 현황을 엿보기도 하고, 포스터 발표의 노하우를 배우기도 한다. 사진/오하나


천상병 시인의 ‘국화꽃’이 준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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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당겼다. 학교 뒤에 있는 대중탕 안에서 멍~ 하니 머리를 비우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마침 대중탕 이름도 ‘평안탕(平安湯)’. 평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걸어 돌아 왔다. 앞으로 학회까지 2주가 남았으니 어떻게 해서든 잘 해보고 싶다. 밤이 깊어지자, 매미 소리가 귀뚜라미 소리에 묻혀 들렸다. 귀뚜라미 소리가 여름에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들린다. 조금 더 또랑또랑하고 맑은 소리로 바뀌었다. 이것은 가을이 찾아왔다는 신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신사 앞에는 달맞이꽃이 피어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그윽하기만 했다. 오늘 하루는 식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작해서, 식물로 치유 받으며 끝내는 구나. 

올해 일본식물학회는 효고 현의 효고현립대학교 히메지서사 캠퍼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여러분은 혹시 천상병 시인이 효고 현의 히메지 시에서 출생했다는 걸 아시는지. 나도 친구가 말해 주어서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학회 참여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달라졌다. 천상병 시인은 자연을 소재 삼아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천상병 시인의 ‘국화꽃’이란 제목의 시를 읽으며 잠들면 내일 나는 다시 맑은 눈을 하고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국화꽃

오늘만의 밤은 없었어도
달은 떴고
별은 반짝였다.

괴로움만의 날은 없어도
해는 다시 떠오르고
아침은 열렸다.

무심만이 내가 아니라도
탁자 위 컵에 꽂힌
한 송이 국화꽃으로
나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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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나 일본 교토대학교 인간환경학연구과 석사과정
커피, 식물, 음악, 남자를 좋아한다. 부자가 될 자신은 없지만, 여윳돈이 생긴다면, 남미와 티벳은 꼭 가볼 것이다.
이메일 : hanaoh.plant@gmail.com      
블로그 : flowersneversa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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