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실험실 옆 간이식당에서 먹던 ‘추억의 샌드위치’

한아름의 “실험실의 좌충우돌 일상” (6)


실험실 사람들의 또 하나의 여가, 식도락

00sandwich3.jpg » 한겨레 자료사진



난 번 글에 이어 ‘노는’ 얘기, 그러니까 실험실 생활을 하며 즐기는 또 다른 여가에 관한 얘기를 하나 더 해보려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 식, 주의 하나인 먹는 얘기를 ‘노는’ 얘기에서 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흔히 식도락(食道樂)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니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이라고 한다. 세상에 여러 가지의 즐거움이 있겠지만 음식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도 역시 실험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또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대학원의 실험실에서는 하루 종일 실험을 하기 때문에 아침 식사는 집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오는 경우가 많지만 점심, 저녁 식사는 모두 학교에서 먹곤 한다. 그나마 내가 있던 학교는 학교 안에 교내 식당도 여러 개 있었고,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 있어서 식사 때가 되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학교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었지만, 식당 시설이 충분하지 학교나 연구소에서는 끼니 해결이 골치거리일 수 있겠다는 얘기를 우리 실험실 사람들끼리 한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많은 식당과 다양한 메뉴를 보유하고 있는 곳에서도 때로는 늘 먹던 식단에 질려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헤매니, 그런 식당 시설이 풍족하지 않은 곳이라면 오죽하랴.


실험실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즐거움을 찾는 시간은 퇴근할 때를 빼면 단연 무언가를 먹으러 나설 때이다.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하늘의 별을 벗삼아 퇴근하는 그 때의 느낌이란, ‘퇴근하는 맛에 출근한다’는 명언이 나올 정도이니 천하의 식도락도 퇴근하는 일에는 비할 수 없다!) 우리 실험실에서는, 월요일이 되면 학교 식당의 주간 메뉴를 점검하는 것이 일주일 간 실험할 시약 재고를 점검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메뉴 중에서 우리 실험실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메뉴가 나오는 날은 실험 스케줄을 서로 맞춰서 다함께 교내 식당으로 향했다. (사람들마다 하는 실험이 다르기 때문에 점심 시간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전기영동 실험을 하는 동안에는 간단히 식사하고 와야 하고, 오전에 샌드위치를 사 들고 와서 틈틈이 먹으면서 하루 종일 실험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실험에 이용할 세포가 예상만큼 잘 자라지 않아 계획된 실험을 할 수 없게 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각자 그날마다 일정이 달라진다.)



식당의 주간메뉴 챙기기는 실험실 생활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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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하는 메뉴라고 해서 특별한 음식은 아니다. 학교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이 아무리 좋다 해도 값비싼 스테이크나 고급 요리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우리 실험실에서 수진이라는 친구는 콩비지찌개를 매우 좋아했다. 그 메뉴가 나오는 날에는 영락없이 맛있게, 그릇이 뚫어질 때까지 국물을 떠먹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한 번 맛보았는데 그 이후로 콩비지찌개의 매력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또, 우렁 된장찌개나 과일탕수육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면 ‘열렬히 환호하며’ 학교 식당으로 뛰어들어갔다.


학교 식당에는 외부업체가 운영하는 곳도 있었는데, 이런 곳은 정말 특별할 때에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중 우리 실험실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곳이 바로 ‘솔밭식당’이라는 독특한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식당의 간판이나 메뉴판을 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왜 솔밭식당인지, 학교의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아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인지, 아니면 자그마한 이름표라도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이 식당의 주메뉴는 늘 소고기국밥과 선짓국이었다. 이 두 가지를 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잔치국수 메뉴를 선택할 수 있으나 이 세가지 이외의 메뉴는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식당은 고지대에 있어서 식사하러 가는 길이 거의 등산하러 가는 길과 비슷했다. 산 속 숲길을 뚫고 지나가면 야외의 넓은 평지에 나무로 된 평상 몇 개와 작은 테이블 몇 개가 놓여져 있다. 우리 실험실의 박사과정 오빠가 즐겨 찾는 식당이라 소개를 받아서 종종 갔는데, 날씨가 선선하고 햇살이 좋은 날에는 교수님과 함께 와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좁은 실험실에서 각종 화학약품과 함께 실험을 하다가도 솔밭식당에 오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00lablife3.jpg » 좋은 실험 결과를 축하하며 근사한 파스타 식당에서. 또 다른 특별한 식당은 교내의 비빔밥 집인데, 이곳은 실험실 사람들의 생일이나 또는 큰 고비라고 느꼈던 랩미팅이나 실험실 행사가 끝난 뒤에 주로 찾은 곳이다. 왜 그런 때에 이곳을 자주 찾았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이곳은 보통의 학교 식당과 다르게 다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우리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역시 6000원짜리 비빔밥은 3000원 미만의 교내 식당 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뭔가가 있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비빔밥인데, 아무튼 우리는 참 맛있게도 먹었던 것 같다. 오늘 랩미팅은 어땠고, 혼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분이 좋다, 논문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간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많이 나누었던 곳이기도 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상당한 미식가이신 지도교수님 덕분에 내가 석사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실험실 식구들은 자주 다함께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으러 다녔다. 더운 여름 복날에는 어김없이 함께 삼계탕과 인삼주를 한 잔씩 하며 무더위를 이겨내자고 하셨고, 학회를 가더라도 꼭 근처의 맛집을 수소문해서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곤 했다. 특히 졸업생들이 찾아오면 교내에 있는 맛있는 일식집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졸업한 언니들이 스승의 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 실험실로 교수님 선물만 보내지 말고 바빠도 꼭 학교로 와주기를 바랐다.



축하가 오가던 파스타집, 힘내자 북돋우던 삼겹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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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식구들이 다 함께 참 많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목을 도모했지만 우리 실험실의 회식 장소 하면 떠오르는 곳은 딱 두 곳이 있었으니, 파스타 요리 집과 삼겹살 집이 바로 그곳이었다. 실험실에서 가장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은 바로 오랜 시간 공들여 진행한 연구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우리 실험실에서 쓴 논문이 국제학회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거나 학회지에 발표되면 온 식구들이 함께 가는 이탈리아 음식점이 있다. 교수님이 파스타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 실험실 식구들이 와인을 좋아했기 때문에 모두가 이 식당을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이곳은 실험실에 새 식구가 들어오거나 국제학회지에 논문이 실릴 때에만 갈 수 있는 연례행사 장소라서 여기에서 저녁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포크에 하얀 크림소스 파스타를 돌돌 감으며 신입생들의 입학을 축하해주고, 잘 구워진 야채 샐러드를 썰면서 졸업하는 선배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었으며, 와인 잔을 부딪치며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사람의 노고를 칭찬하는 동시에 나도 얼른 좋은 논문을 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00lablife4.jpg » 밤늦게 실험을 마치고, 간단하게 소주 한 잔! 그러나 또 다른 회식 장소인 삼겹살 집에서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 식당에는 우리 실험실 사람들이 조금 더 힘을 내야 할 때에 주로 찾던 장소이다. 최근의 실험 결과가 좋지 않아 다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 또는 실험이 어려운 난관에 봉착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 이런 식으로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동기 부여가 필요할 때에 주로 이곳에 와서 회식을 했다. 이 곳의 고기 맛은 정말 일품이다. 처음으로 잘 익은 삼겹살을 한 점 집어먹고는 정말 감탄했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 무렵에는 이 식당에서 먹은 고기 맛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바로 술 때문이다. 실험실 사람들끼리 회식을 할 때에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편인데 유독 이 식당에서는 교수님을 비롯한 구성원들이 모두 과음을 하게 된다. 고기를 구워 먹는 자리에 소주가 빠질 수 없을 뿐더러 학생을 격려하는 상황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교수님도 자연스럽게 술을 많이 드시고 또 권하게 되는 것 같다. 경험상 대체로 화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술을 잘 마신다고 하던데, 우리 실험실에는 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 마시는 언니가 한 명 있었다. 한 잔만 마셔도 취하지만 분위기를 위해서는 전혀 마시지 않을 수는 없는지라 첫 잔이자 마지막 잔으로 한 잔을 마시고는 거의 반쯤 눈이 감긴 상태로 고기를 먹는다. 어느 날엔 낮에 이 고기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고기를 다 먹은 뒤에 후식으로 나오는 매실차를 받자마자, ‘어머, 여기 매실차도 나왔어요?’라며 석사과정 2년 동안에 멀쩡한 정신으로 후식을 처음 먹어봤다고 말해 모두가 크게 웃은 적이 있다.



밥 먹으러 식당 갈 시간조차 없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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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함께 멋진 식사를 한 기억도 좋은 기억이지만 특히 나에게 기억에 남는 음식점이 있는데, 바로 우리 실험실의 바로 아래 건물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이다. 공대 건물과 우리 실험실 건물이 만나는 곳에 있었는데 가게 이름에 ‘랩(lab, 실험실)’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연구자들한테는 인기가 많았다. 그곳의 잘생긴 아르바이트생도 한 때 우리 실험실의 관심사였다.


00lablife2.jpg » 초밥 앞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하는 이야기이지만 나와 우리 동기 언니가 그 ‘랩’에 앉아서 샌드위치 빵을 뜯으며 흘린 눈물을 모으면 아마 한강을 이루고 남을 것이다. 당시 우리 실험실에서 주력으로 연구하던 펩타이드가 있었는데 그 펩타이드가 암세포에서 많이 발현되는 RNA와 특이적으로 잘 결합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좋은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제 이 펩타이드에 화합물을 하나를 새로 더 이어붙이면 더 좋은 효과를 낼 것으로 모두가 기대하는 중에 연구하던 선배가 졸업하고 우리 동기 언니가 입학하자마자 이 프로젝트를 이어받았는데, 수많은 시도 끝에 기존의 합성법으로는 이 화합물을 펩타이드에다 이어붙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이 합성법까지 연구해야 하는, 그야말로 누구도 해보지 않은 시도를 처음 석사과정에 입학한 학생이 하게 된 것이다. 정말 처음 6개월 동안은 언니도 나도 학교 식당에서도 밥과 국이 나오는 한 끼의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침에도 그 가게에서 파는 베이글을 사들고 오고, 점심 때에도 옆 사람에게 부탁해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거나 김밥 같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밤 늦은 시간까지 머리를 싸매다가 너무 답답하면 언니랑 함께 그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빵과 커피를 먹었다.


그곳은 24시간 문을 열었기 때문에 집에 가기 전에도 언니와 잠깐 들러서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그때는 작은 실수나 실험 착오에도 그렇게나 속상하고 서러웠는지 곧 눈물바다가 되곤 했다. 어쩌면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는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대로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지냈는데, 이 실험이라는 것이 단순한 시험 공부와는 다르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기에, 살면서 처음으로 맛본 불가항력적인 좌절을 눈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한 일이 잘못된 것이지 내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나와 나의 일을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아는 방법도 눈물과 함께한 이 샌드위치 가게에서 터득하였다.



먹으며 어우러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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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사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먹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단순히 생명 유지에 필요하다는 데 그치지 않고 먹는 일 자체에 다양한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의 뚝배기에 식구들이 다 함께 숟가락을 넣고 찌개를 떠먹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 특히나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우리는 ‘과학 실험’을 하는 또 하나의 독특한 집단에 속해 있지 않는가. 졸업한 뒤에 다시 학교를 찾으면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식사했던 곳을 찾게 되고, 또 그곳에 함께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실험할 때의 힘들던 기억, 배 아프게 웃던 기억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무엇을 먹으며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까지 되짚어 내는 것을 보면 신기할 뿐이다. 평소에 잘 지내다가도 실험실 간식을 권하지도 않고서 혼자 꺼내 먹은 일에 토라지는가 하면, 실험이 너무 안 되고 짜증이 나다가도 달콤한 시럽이 발린 700원짜리 와플 한 입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실험실로 향하기도 하니 먹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반주가 곁들여진 맛있는 식사와 함께 힘들 때엔 스트레스를 떨쳐 버리고, 기쁠 때엔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연구실 생활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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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 경북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대학원생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래 희망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과학인이 되는 것.
이메일 : areumhan24@gmail.com       트위터 : @areumhan24      
블로그 : http://plug.hani.co.kr/areumha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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