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내 안의 골인지점…나는 말야, 그런 연구자가 되고 싶어!”

최승원의 “새내기 포닥이 만난 사람들”


[1] 박사과정 5년차 코노 마사루의 인연과 열정



이 연재에서 나는 일본에서 만난 재미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려 한다. 아니 이제부터 만나게 될 새로운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꼈던 사람과 삶의 재미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또한 일본에서 만 4년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과학자는 결국 어딜 가도 똑같다는 그 보편적인 속성과 함께, 과학을 하는 데 일본이라는 환경이 지닌 특수성도 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글쓴이

00kono.jpg » 애기장대에 물을 주고 있는 코노 마사루. 보통 흙에 직접 물을 주기보다는 물받침에 물을 담아두는 방식으로 물을 주는데 그는 “자연 안에서는 다 흙 위로 물이 떨어지잖아”라며 흙에 직접 물을 주는 방식을 고집한다. 오른손의 브이(V) 자도 아닌 저 포즈는 헤비메탈을 의미한다나 뭐라나…. 사진/ 최승원


2013년 4월 1일.

드디어 나는 만 23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에 걸친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박사후연구원, 일명 '포닥(포스트닥터)'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연구생활을 곧 시작한다. 하루라도 빨리 나만의 아이디어로 연구를 전개하고 싶은 욕심과 함께, 이제는 학생 아닌 연구원으로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 사이에 지금 서 있다. 이화학연구소(RIKEN) 취직이 결정된 날, 누구보다도 기뻐해준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코노 마사루이다.

 

코노는 나의 박사과정 동기다. 그와 나 사이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박사과정을 도쿄대학으로 옮겨와 시작했다는 점과 정규 박사과정 3년을 넘어선 박사 4년차라는 사실이다. 생물학과의 특성상 3년 안에 박사학위를 따지 못하는 경우야 허다하다지만, 보통 박사과정은 석사를 마친 연구실에서 계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박사과정부터 입학한다는 것은 일본 학생은 물론 나 같은 유학생 사이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다.

  

이 친구와 친해진 것은 겨우 1년 전, ’해피 아워’에서 만난 때부터였다. 해피 아워…, 펍 입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단어들이지만 사실은 세미나 이름이다. 보통의 세미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손에 가볍게 캔 맥주 하나 들어도 된다는 것. 당시 박사과정 3년차였던 나는 논문을 쓸 정도로 충분한 실험 데이터와 함께 내 연구 분야에 열정도 갖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끼곤 했다. 연구생활을 시작할 때 품었던 ‘생명이란 무엇인가’ ‘식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 질문에서 왠지 모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구자의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좀 더 넓은 시야에 대한 갈망이 넘쳤던 나는 당시 자주 술자리를 함께했던 옆 연구실 친구에게 ‘우리 함께 맥주나 마시면서 서로 연구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했고 그 뒤를 따라 식물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생들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하면서 ‘해피 아워’라는 이름의 세미나 모임이 만들어졌다 (사실 정기적인 술자리 모임을 열고 싶다는 다소 불순한 동기가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모두가 같은 논문을 읽더라도 발달이냐 유전이냐 세포냐 광합성이냐 등등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새삼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코노 마사루, 이 친구는 처음에는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발언하지 않을 정도라 이 모임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지 걱정될 정도로 조용한 친구였다. 그러다가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이 친구의 입을 열게 만드는 키워드를 파악하게 됐는데 바로 빛, 산화환원 그리고 헤비메탈이었다. 그렇다. 그는 생태학연구실에서 광합성을 공부하는 친구이다. 그러다 보니 식물을 키우는 빛 조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우리 세포생물학 연구실에서는 식물을 빨리 키우기 위해 밤이 없이 24시간 낮 상태에서 식물을 키우거나, 빛의 변화에 의해 나타나는 미묘한 표현형의 차이는 개체 간의 오차 범위로 간주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에 그는 펄쩍 뛰었다.

  

“밤이 없는 자연이라니 있을 리가 없잖아!”

  

친구는 광합성을 일으키는 여러 빛 조건 중에서도 변동광(變動光, fluctuating light)에 따른 식물의 반응을 연구하고 있다. 변동광이란 말 그대로 변동하는 빛을 의미하는데 무엇이 변동하는가 하면 바로 빛의 세기이다. 특히 이 친구가 주목하는 변동광 환경은 울창한 숲 속의 나무 그늘 아래쪽이다. 그늘 아래에 살고 있는 식물에게는 흔들리는 줄기와 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귀중한 광합성의 재료가 된다. 이 친구는 그늘에 있던 식물이 갑작스레 강한 빛을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요새 부쩍 말이 많아진 그 친구의 머릿속이 궁금해진 나는 여느 때처럼 술자리에서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근데 말야. 너는 언제부터 과학을 하기로 마음 먹었어?”

“뭐 딱히 내가 이걸 꼭 해야 되겠다 해서 시작한 건 아니야. 인생이 다 그렇듯이 한 인간의 중요한 순간을 결정짓는 건 사람 아니겠니. 다 사람 때문이지.”

 

“사람? 누구?”

“대학시절 그리고 내 석사시절 은사님. “

  

이야기를 듣자 하니 사실 그 선생님과 첫 만남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고 한다. 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해서 들어간 첫 생물학 수업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생물 선택하지 않았던 사람 있으면 일어나 봐.” (일본 고등학교에서는 이과생이라고 해도 생물 물리 화학 지학을 모두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이 중에서 두 과목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때 유일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이 코노 마사루였던 것이다.

 

“아니 도대체 자네는 왜 생물학과에 들어왔나?”

  

왜 다짜고짜 좋아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학생의 자유마저 따지고 드는지 어이가 없어진 그는 절대 이 선생님 아래에 들어가는 일만은 없을 거라며 이를 박박 갈았단다. 그러던 그가 선생님을 따르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대학 3학년 때의 실험 실습 수업이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과학을 대하는 태도가 그의 가슴에 와 닿았단다. 도대체 선생님의 어떤 면모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나는 구체적으로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그는 오래된 세월만을 탓하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사실 광합성 따위 귀찮다고만 생각했는데….”


하며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가슴 속에만 고이 담아두고 있는 뭔가 진한 에피소드가 있는 듯했다. 변동광을 이용해 식물의 광합성 효율을 끌어올리는 데에 관심을 모으던 학회의 분위기 속에서 사실은 변동광이란 식물에게 해가 되는건 아닌지, 또 변동광 환경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은 그 해를 넘어서 어떻게 그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또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다 선생님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왜 그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하지 않는 거지?


“선생님은 사실 조류(藻類, algae) 전문이었어. 내가 식물을 가지고 그 연구실에서 계속 광합성 연구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 그래서 선생님 대학 동기이자 식물 광합성 연구의 대가인 지금의 선생님 밑으로 들어가려고 마음먹었지.”

  

00quotation3.jpg 연구실과 연구실 사이의 이동도 또한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석사 시절에 참가했던 학회에서 지금의 선생님과 활발한 토론을 벌인 인연도 겹쳐져 박사과정부터 도쿄대학 생태학연구실로 옮겨와 변동광 연구를 계속하게 됐단다.

  

“그래도 여기는 아무도 변동광을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처음 실험 세팅 하는데 무진장 애썼다.”

  

는 올해 박사 5년차로서, 앞으로 1년 더 박사과정을 보낼 예정이다. 졸업논문과 함께 투고논문 1편이면 도교대학 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지만 그의 선생님은 투고논문 2편을 박사 졸업 조건으로 내걸었단다. 현재는 열혈 논문 집필 중이다. 게다가 요 근래에 했던 실험 결과가 좋았는지, 이런다.

  

“이건 말야. 지금까지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결과야.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른다니까.”

  
하며 요새 들어 부쩍 말도 많아졌다. 한참 신나 있는 그에게 졸업 이후의 이야기를 물었다.

  

“앞으로의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

“그럼 당연히 불안하지. 근데 여기서 내가 질문 하나만 하지. 너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진지모드로 들어간 코노 마사루는 곧바로 대답을 이었다.

“나는 말야, 시간은 미래에서 현재로 흘러오는 거라고 생각해. 그냥 제멋대로 흘러 들어온다니까? 제멋대로 찾아올 일을 지금 걱정해봤자지.”

  

포닥 자리 하나 얻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자기가 원하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인데….

“뭐 일단은 어디라도 좋으니까 들어갈 수 있는 포닥 자리를 찾아야지. 당장은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없을지라도 내 안에 골인 지점만 확실히 결정되어 있다면 무엇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거기에 다다를 거라 믿어. 코노 마사루라는 사람은 변동광에 따른 광합성 반응, 그 중에서도 바로 이것! 이라고 불릴 수 있는 그런 연구자가 되고 싶다.”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꿈을 향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이제 막 한 사람의 독립된 연구원이 되는 우리의 상황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대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한마디 내뱉고 말았다.

“아, 정말 좋은 연구자 되고 싶다.”




[상자에 담은 글 01]

인투 디 어리너 Into the Arena

  


그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서른셋. 결혼도 했다. 병역 의무가 있는 우리나라에서야 남자가 이 정도 나이로 박사과정생이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그렇지 않은 일본에서 그의 나이는 조금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뭐가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니 학부생 때 헤비메탈 밴드에서 기타도 치고, 좀 놀았단다.


“그래도 지나간 시간에 후회는 없어. 오히려 내 안의 힘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함을 얻었다고 생각해.”


헤비메탈엔 문외한인 나는 그에게 좋아하는 헤비메탈 음악을 좀 추천해 달라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를 처음으로 헤비메탈로 인도한 음악, 마이클 쉥커(Michael Schenker)의 “인투 디 어리너(Into the Arena)”를 추천받았다. 박진감 넘치는 기타 사운드가 절묘한 비장함을 준다. 실험 데이터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나왔을 때, 선생님과 디스커션에서 의견이 부딪힐 때, 논문 리뷰어가 자꾸 딴지걸 때,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할 때면 제대로 내 가슴 속의 울림을 증폭해주는 그런 음악이다.

(* arena: 투기장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 중앙에 모래를 깐), 경기장, 활동 무대)


[상자에 담은 글 02]

변동광의 광합성 반응에 대해 정보를 얻고 싶다면(참고문헌)



“Regulation of the photosynthetic apparatus under fluctuating growth light.”

Tikkanen M, Grieco M, Nurmi M, Rantala M, Suorsa M, Aro EM.

Philos Trans R Soc Lond B Biol Sci. 2012 Dec 19;367(1608):3486-93.

::: 변동광 조건에서 광합성의 전자전달계가 에너지 또는 전자의 흐름을 어떻게 제어하는지를 최근의 지견을 중심으로 해설한 리뷰.


“Exploiting heterogeneous environments how do plants ‘decide’ to acclimate to a highly variable light input?”

Murchie E and Johnson G.

The Sixth Mathematics in the Plant Sciences Study Group, 25-28 March 2013, at the University of Nottingham.

::: 시간적, 공간적으로 다양하게 변화하는 변동광 환경에 맞추기 위해 식물은 어떤 단계(빛의 조사 시간, 강도, 광량 등)에서 판단을 내리는가? 그 대답을 얻을 접근방법을 간단히 서술한 문서.


"The dynamics of photosynthesis.”

Eberhard S, Finazzi G, Wollman FA.

Annu Rev Genet. 2008;42:463-515.

::: 광합성에 관여하는 여러 복합체의 존재와 그 구조는 꽤 밝혀졌지만 자연계의 환경 변화(특히 광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아직 완벽하게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유전적 수법과 프로테옴(단백질체) 해석과 같은 다양한 수법을 통해 얻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광합성 반응의 기능적 유연성을 정리함으로써 광합성의 다이나믹스(동역학)를 서술한 리뷰.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최승원 일본 이화학연구소 특별연구원(포스트닥터), 식물병리
과학을 짝사랑하는, 식물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 식물이 주위 환경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지를 세포수준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pleiades20@hotmail.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눈물 짓는 의사’: 좀 더 인간적인 의학을 그리며‘눈물 짓는 의사’: 좀 더 인간적인 의학을 그리며

    청춘 스케치김준혁 | 2017. 05. 12

    김준혁의 이야기: ‘경계에 선 연구자의 유학생활’뒤늦게 의료인문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든 김준혁 님이 유학생활 동안에 겪는 ‘틈바구니에서 연구하기’, ‘경계선 위에서 생각하기’의 삶을 이야기한다. [2] 의사의 덕목, 공감과 감정억제 사...

  • 의학과 사회 중간에서, ‘의료인문학’의 길의학과 사회 중간에서, ‘의료인문학’의 길

    청춘 스케치김준혁 | 2017. 04. 14

    김준혁의 이야기: ‘경계에 선 연구자의 유학생활’뒤늦게 의료인문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든 김준혁 님이 유학생활 동안에 겪는 ‘틈바구니에서 연구하기’, ‘경계선 위에서 생각하기’의 삶을 이야기한다. [1] 연재를 시작하며▒ 2년 전, ...

  • 학술대회서 얻는 다채로운 배움, 아이디어, 인연…학술대회서 얻는 다채로운 배움, 아이디어, 인연…

    청춘 스케치양우석 | 2016. 06. 30

    양우석의 이야기: ‘한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살아가기’한국 이공계 대학원생의 생활을 대학원생 양우석 님이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비슷한 길을 걸었던, 걷고 있는, 걷게 될 사람들에게 조그만 공감과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

  • 매력적이지만 순탄치 않은 이 길을 걷는 이유매력적이지만 순탄치 않은 이 길을 걷는 이유

    청춘 스케치양우석 | 2016. 05. 10

    양우석의 이야기: ‘한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살아가기’한국 이공계 대학원생의 생활을 대학원생 양우석 님이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비슷한 길을 걸었던, 걷고 있는, 걷게 될 사람들에게 조그만 공감과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

  • ‘훌륭한 타자라고 어떻게 늘 홈런을 치겠어요?’‘훌륭한 타자라고 어떻게 늘 홈런을 치겠어요?’

    청춘 스케치양우석 | 2016. 04. 14

    양우석의 이야기: ‘한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살아가기’한국 이공계 대학원생의 생활을 대학원생 양우석 님이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비슷한 길을 걸었던, 걷고 있는, 걷게 될 사람들에게 조그만 공감과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