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피험자가 이상해, 실험 중단해!” 판단은 옳았다

김서경의 “D랩의 팀워크, 시스템, 그리고 fMRI 이야기”


[2] fMRI 실험은 어떻게 시작되고 끝나나

00fMRI1.jpg » 벡맨연구소 1층에 있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의 모형 스캐너. 실물을 상당히 닮은 구조다. 밀대에 피험자가 누우면 버팀쇠를 풀어서 밀대를 모형 스캐너 안으로 밀어넣는다. 그 안에서 피험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연습 실험을 하며 반응을 체크한다. 사진/ 김서경


지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우리 랩에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실험은 엑기스 중의 엑기스, 호빵의 앙금, 연꽃 속의 보석 같은 존재다. 일반 병원에서는 뇌의 구조에 결함이 있는지 알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하지만, 인지신경과학 연구실에서는 특정한 행동이나 사고를 할 때 뇌의 어느 영역이 주로 기능하는지 알기 위해 자기공명영상을 촬영한다. 이를 일컬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RI)이라 하는데, 이 글에선 편의상 ‘자기공명영상’으로 통칭하겠다.


00fMRI222.jpg »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의 한 예.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하면 그 부위를 에워싼 혈관에 산소가 몰리는데, 자기공명영상은 산소가 몰리는 뇌 부위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산소가 많이 공급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부위가 활발하게 기능한다는 증거이므로, 이런 증거를 토대로 뇌 영상을 해석한다.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하면 그 부위를 에워싼 혈관에 산소가 몰리는데, 자기공명영상은 산소가 몰리는 뇌 부위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산소가 많이 공급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부위가 활발하게 기능한다는 증거이므로, 이런 증거를 토대로 뇌 영상을 해석한다. 자기공명영상 실험을 위해 피실험자(피험자)를 모집하며, 연구자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피험자의 뇌 영상을 촬영·수집해 분석한다.


피험자 한 명의 자기공명영상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자기공명영상 데이터를 얻기 위해 팀워크가 굴러가며, 잘 굴러가는 팀워크 덕분에 정확한 자기공명영상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오늘은 자기공명영상 데이터 수집에 관련해 작지만 인상적이었던 실험실의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갑작스런 실험 중단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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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공명영상 촬영 예정 시각은 오전 열한 시였다. 앞으로 삼십 분 남았으니, 준비 시간은 충분했다. 여유있게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실험 설명을 하러 옆방으로 피험자를 데리고 갔던 산다 돌코스 박사가 다급한 걸음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산다 박사는 우리 랩의 지도교수인 플로린 돌코스 박사(이 연재에서는 ‘캡틴’으로 등장한다)의 아내이자 랩의 공동연구자로, 랩 안에선 ‘미스트리스’로 불린다.


“신경심리검사 결과 어디 있어? 비디아이(BDI, 벡 우울척도) 결과랑, 리보비츠(LSAS, 리보비츠 사회불안척도) 결과도 이리 줘봐.”

☞ 신경심리검사: 뇌 신경의 기능과 손상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자기공명영상 촬영 이전에 시행하는 검사로, 학습, 기억, 시지각 등 광범위한 인지능력을 측정한다.

벡 우울척도(BDI): 우울 상태를 측정한다

리보비츠 사회불안척도(LSAS): 사회적 상황에 따른 불안과 회피 정도를 측정한다.


급히 엑셀 파일을 열었다. 피험자의 우울척도 점수는 중간 정도였고 아주 낮진 않아도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사회불안척도 점수도 큰 문제 없었다. 피험자가 어딘가 소심해 보였지만 웃으면서 대답을 잘 했고, 촬영이 가능한지 묻는 물음에 몇 번이나 괜찮다고 강조한 탓에 그러려니 했다. 한참이나 데이터를 응시하던 미스트리스의 입에서 단호한 한 마디가 떨어졌다.


“촬영 취소해.”

“예?”

“느낌이 이상해. 다섯 번이나 실험설명을 다시 했는데도... 이대로라면 데이터 안 나와. 알렉스, 낸시에게 전화 좀….”


00fMRI2.jpg » 랩 동기 매트가 학부 연구생인 라시드한테 뭔가 설명하고 있다. 실험 관련 사항일까. 랩 동기인 매트와 내가 당황해서 멍하니 지켜보는 사이, 언제나 침착한 우리 랩 선배인 알렉스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휴대전화를 들어 이날 당직인 자기공명영상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낸시. 미안한데, 사정이 생겼어요. (자기공명영상 촬영실에) 못 내려갈 것 같아요. 혹시 비용 지불 없이도 이번 촬영 일정을 취소할 수 있을까요?”


어렵게 찾은 백인 피험자였다. 평시였다면 ‘소나(SONA)’라는 온라인 피험자 모집 시스템에 실험 조건, 날짜, 장소만 올려두면 실험 참가를 통해 학점을 채우려는 학생들이 알아서 등록하고 실험실로 찾아올 것이었다(전 과정이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이루어져 부담이 없으니, 부담 없이 펑크를 내버리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럴 땐 학점을 주는 대신 ‘No-Show without excuse’, 즉 '사전 연락 없이 실험 불참'이라는 항목에 표시를 해두어 응징을 한다. 이걸 받으면 아무리 학점 취득이 급해도 같은 실험에 다시 등록할 수 없다. 그러니, 제발 연구자들을 김새게 하지 말라). 허나 지금은 봄방학 기간이었다. 학생들이 전부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그 주 내내, 피험자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게다가 이 실험은 백인 피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탓에 조건에 맞는 피험자 찾아내기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데이터를 빨리, 많이 받아두어 나쁠 건 없다. 다만 모두가 노심초사하며 피험자 모집에 애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행동실험만이라면 문제될 게 별로 없다. 실험실로 정해진 방엔 이미 컴퓨터가 두 대나 있고, 무엇보다 우리 연구실 내부의 스케줄이니 언제든지 쉽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공명영상 실험에 들어서는 순간 많은 게 달라진다.



영상촬영 전에 거치는 여러 과정과 팀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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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맨연구소 지하에는 자기공명영상 스캐너가 세 대 있다. 그 중 한 대는 14T(T는 Tesla의 약자로, 자기장의 세기를 측정하는 단위. 높을수록 강하다)짜리로 동물 실험을 할 때만 쓰인다. 남은 두 대 중에서 인간 대상의 신경과학 연구자들이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위해 예약해 사용할 수 있는 스캐너는 딱 한 대(3T 시멘스 트리오)뿐이다. 그러니 좋은 시간대의 스케줄을 선점하려는 연구실 간의 물밑 경쟁도 은근히 벌어진다. 6월 실험 일정이 일찌감치 4월 초에 공지될 정도니 말 다했다.


이뿐 아니라 자기공명영상 스캐너는 저절로 돌아가지 않는다. 돌리는 데 돈이 들고, 사람이 든다. 그래서 사용할 떄마다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예약이 취소되면 그만큼 비용과 인력이 고스란히 낭비된다. 그런 낭비를 미리 막기 위해서는, 정해진 일정의 24시간 전까지 당일 촬영을 전문으로 맡는 관리자한테 일종의 ‘실험확인서(confirmation form)’을 꼭 보내야 한다. 피험자가 촬영 예정시각 한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모든 준비를 마치겠으며 지정된 시각에 정확히 자기공명영상 스캐너를 사용하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확인서다.


정 스케줄에 맞춰 촬영이 어렵다면 떼일 비용을 감안해 미리 취소라도 해야 한다. 한번 촬영 시각을 정하면 그 시각엔 다른 연구자가 사용할 수 없으므로, 취소가 너무 잦으면 내달 예약을 할 때 사용 가능한 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불이익을 받는다. 이 때문에 정해진 일정에 맞춰 실험을 진행하는 게 가장 좋으며, 그래서 반드시 적합한 피험자를 미리 구할 필요가 있었다.


00fMRI22.jpg » 연구실에 딸린 실험방. 안에 파티션으로 나뉘어진 두 개의 방이 있다. 왼쪽 방에서는 SCR, 즉 피부 전도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하며 오른쪽 방에서는 신경심리검사와 일반 행동실험을 한다. 일정을 정하고, 피험자를 구하는 건 시작일 뿐이다. 이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다.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에게 그 어떤 사고도 일어나선 안 된다. 사고라도 나면 랩에 타격이 되는 건 나중 문제다. 자기공명영상 스캐너는 자기장의 힘으로 돌아간다. 자기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게 하기 위해서, 자기공명영상 교육과정에 참가하는 연구자들은 모두 한 번씩은 금속 봉이 들어간 플라스틱 박스를 쥐고서 기계 바로 곁에 다가가 보도록 한다. 직접 느껴보면, 금속 물질을 몸에 지닌 채 스캐너의 강력한 자기장이 미치는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는다. 스캐너에 들어갔는데 금속으로 된 심장박동기를 차고 있었다면? 머리나 목에 철가루가 들어간 문신을 하고 있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모집 단계, 신경심리검사 단계, 그리고 촬영 직전 단계, 이렇게 3단계에 걸쳐서 피험자의 신체 조건이 실험에 적합한지를 철저하게 검토한다. 한 번의 자기공명영상 실험을 위해 피험자는 두 번 방문해야 한다. 첫 번째 방문에서는, 세 시간에 걸쳐 다양한 인지 및 감정 기능을 측정하는 신경심리검사를 마친 뒤에 모형 스캐너(mock scanner)에서 실제 촬영 상황과 비슷한 순간을 직접 겪어보게 한다. 이때 연구자는 피험자에게 폐소공포증이 있는지, 다른 신체와 심리의 특별한 문제는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에  비로소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위해 두 번째 방문 약속을 잡는다. 신경심리검사 때 작성한 신체조건 확인서는 촬영시 자기공명영상 관리자에 넘겨져 재차 확답을 받는다. 이처럼 각 단계가 엄격하기 그지없다.


이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스트리스의 그 한 마디가 어떤 의미인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모든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촬영만을 앞둔 찰나에 갑자기 취소라니.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캡틴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이유가 뭐지? 신경심리검사도 큰 문제는 없다는데.”


미스트리스도 역시 찌푸린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피험자와) 얘기해 보면, 그냥 느끼게 돼.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냐.”


캡틴은 미스트리스를 잠깐 쳐다보다 어깨를 움츠렸다. 어디까지나 이 실험의 책임자는 미스트리스였다.

“그럼 취소해. 대신 행동실험만 스캐너 안에서 하는 것처럼 똑같이 진행해봐.”


우리는 모두 다 황망한 기분으로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피험자를 데려와 행동실험을 시킨 뒤에 시간에 맞춰 피험비를 지불하고는 어리둥절한 피험자에게 상황을 잘 설명해 돌려보내느라 애를 좀 먹었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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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행동실험 결과를 정리한 뒤에 데이터 차트를 열어보았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연구 결과와 관련된 얘기라 자세히 밝힐 순 없으나, 피험자의 행동은 통상적으로 보일 만한 반응이 분명 아니었다. 메일함에 도착한 피험자의 메일은 대소문자도 잘 맞지 않는 문장으로 “나 이제 괜찮아, 어제는 좀 피곤했지만 오늘은 푹 자서 멀쩡하니까, 기다리고 있어! 정말 괜찮아. 괜찮으니까, 오늘 촬영은 언제야?”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오싹했다. 이 사람, 사정이 생겨 스캐너 밖에서 실험을 모두 마쳤으니 이제 오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듣고 끄덕거리며 돌아갔잖아. 새삼,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연신 불안하게 깜박이던 파란 눈이 떠올랐다. 이제 갓 연구에 돌입한 새내기는 미처 느끼지 못한 무엇을, 피험자를 오래 대해본 연구자는 그 눈빛에서 읽은 것일까?


미스트리스의 판단은 옳았다. 우리는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었고 잘못된 자기공명영상 데이터가 초래할 오류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그 주의 랩미팅에서 캡틴은 회고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심리학자는 아니야. 정량화된 수치를 믿을 뿐이지. 예스 아니면 노, 딱 떨어지는 결과만을 토대로 판단해. 하지만 어제 산다 박사는 직접 피험자를 마주하면서 숫자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어떤 부분을 본 거야. 그 눈은 정확했지. 심리학자의 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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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경 미국 일리노이대학(어바나-샴페인) 인지신경과학 박사과정
10년차 INTP. 종교는 대우주의 의지와 문학. 좋아하는 것은 호르차타. 질 좋은 편지지. 요가 매트 위에 누워서 듣는 말러. 거의 모든 계절의 꽃. 보이지 않는 것들. 망설이는 순간. 싫어하는 것은 사람 키치. 잿빛으로 변하는 윈도우즈 바탕 화면.
이메일 : suhkyungbu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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