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잘 하고 있으니까 힘든 거야”

박수현의 이야기: 우리 자랑스런 어깨 ‘토닥토닥’
해외에서 유학중인 박사과정 박수현 님이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겪는 희노애락을 나누며, 또한 해외 유학생한테 필요할 법한 유익한 정보와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1] 연재를 시작하며


00science_pixabay.jpg » 출처 / pixabay.com


‘힘들다.’

힘들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그 마음이 다 표현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글에서는 “실제로는 몇 배 더 힘들지만 이공계 학생들은 어휘 구사 능력이 부족해서 표현을 잘 못한다”고 했다. 이런 말에 이공계 대학원생으로서 깊이 공감한다. 나도 이공계 공부를 몇 년 하는 동안 표현하지 못하는 막막함을 많이 느꼈다. 아마 수많은 이공계 대학원생들도 공감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실제로는 어휘 구사력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쉽게 공감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수식 단 한 줄에 막혀서 진척이 없거나, 어제까지 잘 되던 장치가 갑자기 이유 없이 안 돌아간다거나 할 때 느끼는 막막함은 대개 이야기나 대화로 푸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인지하면 일반적으로는 그 문제가 풀릴 때까지 사색과 검증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공계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훈련을 받은 대로 머릿속에서 그런 고독한 싸움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말이나 글로 어려움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특수 신분’(?)인 대학원생들한테는 여기에 더해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추가된다. 연구와 학업을 동시에 하는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학교 바깥의 외부 사람이 대학원생의 사정을 들으면 그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공계 대학원생이 ‘출근’을 한다면서 매일 연구실에 가면서도 때가 되면 ‘기말고사’를 봐야 한다고 도서관에서 밤을 샌다고 말하면 배경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직장인인지 학생인지 분류하기조차 모호할 것이다.


나는 머리 끝까지 스트레스가 쌓인 날 동네 친구나 가족을 만나 하소연을 하기도 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여러 번 되묻고 나서 결국엔 애써 공감하려 노력하지만 잘 이해하지는 못하겠다는 듯이 묘한 표정을 보여준다. 그 모습도 나름 안쓰러운 것이라 나는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얘기하기 애매모호한 나만의 걱정을 속으로 삭이게 된다. 나라마다, 학교마다, 전공마다, 심지어 연구실에 따라서도 대학원생 개인이 겪는 상황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옆 연구실에 있는 같은 과 대학원생도 가끔은 내가 겪는 어려움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전문화 된 연구만큼이나 고민들도 단절적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이들의 성공담… 평범한 우리 일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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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더 공부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인생들이 대학원생들이다. 주변에서는 그 좋아하는 공부 실컷 하라며 필요한 비싼 장난감이나 책과 자료들을 다 지원해 준다(여기서 ‘장난감’이란 실험 장비 등을 말한다). 상황이 좋다면 경우에 따라는 학비와 생활비도 줄 테니 연구만 열심히 하라고 한다. 외부에서 지원을 다 해줄 테니 좋아하는 것만 계속 열심히 하라는 것은 참 좋은 조건이다. 그 일을 좋아하기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는 행운이다.


나도 학부 때 공대 공부를 좋아했고, 더 배우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다. 학부를 졸업할 즈음에 계산기를 조금 두드려 보고 마침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입학 전에는 힘들다는 선배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이 와 닿지 않았다. 재미있는 연구 주제 잡아서 호기심도 충족하고 저명한 학자들 앞에서 연구성과 발표도 하고 공인된 전문가를 증명해 주는 학위도 받고 꿩 먹고 알 먹는 좋은 상황에서 무슨 이유로 저렇게 힘들어 할까, 저 사람들 눈 밑에 있는 다크서클은 무슨 의미있까, 하는 것이 모두 의문이었다.


학원에 발을 들여 놓고 현실을 체감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직접 겪어본 이공계 대학원 생활은 가벼운 지적 호기심 충족이나 좋은 구직 요건을 목표로 이겨내기에는 정말 버거운 과정이다. 누구보다 공부를 좋아하고 연구에 대한 흔치 않은 강한 동기와 목표에 대한 집념이 있는 뛰어난 사람들도 때로 대학원 학위 과정 중 어려움을 겪는다. 거기에 들어갈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잠재적 위기를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은 대학원생이 되어서 체감할 때 비로소 스스로 처한 현실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다.


대학 학부 시절에 교수님께 질문을 드릴 때, 가끔은 내가 어떤 부분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교수님께 전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울 때가 있었다. 옛날 그림 그리기를 알려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던 밥 아저씨가 “참 쉽죠?”라고 말할 때 느끼는 어이없음과 비슷하다.


도대체 이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어떻게 넘어갔는지 아무런 연결고리를 못 찾고 있는데 교수님은 다 설명했다고 생각하시고 나를 흐뭇한 얼굴로 보고 계셨다. 사람이 머리가 너무 좋으면 웬만한 것은 다 쉬워서 평범한 사람이 어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일까 싶었다. 우리가 이공계 연구원들이나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나와는 다르게 자신감이 넘치고 그만큼 성과도 훌륭한 사람을 볼 때 그렇다. 많은 이가 천재라고 말하는 뛰어난 연구자들 중에는 ‘연구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결과만을 내며 성공에 성공을 거듭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왜 힘들어하는지 공감해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터넷이나 책으로 접하는 다른 연구자들의 경험담을 보면 다들 자기 꿈을 위해 젊음을 불태우며 알찬 시간을 보내왔다고 한다. 성실하게 대학원 생활을 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해 가며 논문을 쓰고 촉망 받는 학자로 성장해 가는 모습들이다. 노력하면 성공하고 진실하면 인정받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렸을 때 과학자가 되는 꿈을 키우는 데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요즘은 젊은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리는 그런 능력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말하는 희망찬 성공담에 사실 나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젊음에서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서른 즈음이 되고 나서는 내 손이 닿지 못한 그런 성공담에 나는 인간적이게도 약간의 질투심을 느낌과 함께 왜 나는 아직 그런 멋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지에 스스로 아쉬움을 느낀다. 말하자면 ‘교과서만 열심히 봤어요’ 하는 수능 만점자의 인터뷰가 떠오르며 그다지 찬란하지 않은 내 현실과 공감할 수 없는 그 말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내 이야기가 따분하고 별로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열심히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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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연구자가 되고 싶어하는 대학원생들의 바람이 모두 순탄하게 차근차근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실패를 겪고 나서 찾아오는 것이 성공이듯이 학위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최선을 다해도 최선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연구에서, 박사학위 자격시험(qualifer exam)에서, 논문 제출에서, 인간 관계나 재정적인 문제로 예측하지 못하게 상황이 꼬여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때가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다. 실력과 노력이 충분하더라도 외부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다이내믹한 과정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3년 만에 박사과정을 마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6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원 생활을 잘 아는 사람들은 누가 일찍 졸업하느냐가 노력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는 데 대개 공감할 것이다. 선배 연구자들의 이력서를 보면 어떤 때는 한 줄 한 줄에서 애환이 보인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양한 경험과 많은 성과로 보이겠지만 그 한 줄에 얼만큼의 노력이 들어갔는지 결국 이력서에 들어가지 못한 노력들도 얼마나 많았는지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행간의 눈물’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박사학위를 가진 많은 분들은 힘겨운 학위 과정을 꿋꿋하게 버텨낸 분들일 것이다.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슬기롭게 이겨낸 뒤에 마침내 전문가가 된 선배 연구자들에게 존경심이 든다.


에게 여러 가지 겹친 악재가 닥쳐서 정말 힘들어하던 때에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잘 하고 있으니까 힘든 거야.”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 친구도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힘들어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해준 진심어린 말이다. 아마 그도 나처럼 막막함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에 내 심정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나 혼자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지친 마음을 조금은 달랠 수 있다. 각자 자기 일만으로도 바빠서 여유가 나지 않지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마음을 열고 내 이야기를 <사이언스온> 독자들과 나누려고 한다.


나는 <사이언스온>의 ‘청춘스케치’ 연재를 통해 힘들어 하는 청춘들, 좌절을 거듭하며 평범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대학원생 연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스로 선택한 가시밭길에서 발버둥 치며 어려움 속에 혼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대학원생이 어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위로를 받고 힘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미성숙한 연구자인 우리 대학원생들은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연구를 했다는 경험담을 말할 수 없고,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이르다. 하지만 우리가 젊음과 열정으로 버티며 살아온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나와 세상을 위해 정말 잘 해온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앞으로 남은 난관을 헤쳐나갈 때 큰 힘이 될 것이다. 언젠가 지금의 노력이 빛날 날을 위해 각자의 힘겨운 싸움을 해 나가고 있는 다른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도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힘들 일도 없다. 잘 하고 있으니까 힘든 것이다.


박수현 미국 버지니아텍 기계공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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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미국 버지니아텍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물 맑고 공기 좋은 미국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라는 작은 도시의 버지니아텍에 다니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입니다. 기계공학 전공인데 광학 측정이 전문 분야라고 주장하면서 상당히 특이한 연구를 하겠다는 학생입니다. 스스로 융합형 인재의 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메일 : ppakti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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