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현실 힘들어도 문제풀이의 희열 얻을 수 있다면

초보물리학자의 "두런두런 세상 이야기"


[5] 알 수 없는 인생

00KMG.jpg » 몇 년 전 학회 겨울학교에 참가했다가 찾아간 마하발레슈와르(Mahabaleswar)의 전경. 인도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는 곳이었는데 장대한 협곡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웅장한 자연의 예술품 앞에서 막연하게나마 알 수 없는 인생을 느꼈다고나 할까?


춘 스케치 연재 코너에서, 박사후 연구원(포닥)의 생활을 말하면서 오로지 연구 활동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어쩌면 불편한 진실을 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리학을 연구하며 월급을 받고 있으니 어쨌든 직업 물리학자이긴 하지만 2~3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박사후 연구원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대학원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시작은 돈이 필요한 개인 사정 때문이었으나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중에는 벌이가 커지면서 씀씀이도 함께 커졌고 다시 그 생활을 유지하려고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다. 물리학 대학원생이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과외나 학원 강사라, 나도 그 일을 했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 대부분은 ‘물리 올림피아드’를 대비하던 학생들이었고, 그래서 가르쳤던 과목도 대학의 일반물리학이나 대학 2학년 때 배우는 역학, 전자기학 등이라 가르치는 내게도 재미는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학생들 외에 내가 만난 다른 동료 강사 선생님들도 대부분 인간적으로 배울 점을 많이 갖춘 분들이었고 내 인생 전체를 보자면 그런 경험에서 얻은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 멀리하고 연구 매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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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일 대학원에서 현재 공부 중인 후배나 더 어린 학생에게 조언하는 입장이라면, 될수록 아르바이트는 멀리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차라리 그 시간에 연구에 더 정진하는 것이 낫다는, 어쩌면 뻔한 이유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쉽게 깨닫기는 힘들다. 1주일을 잠자는 시간과 밥먹는 시간을 빼서 100시간이라 잡고 그중 고작 10시간 정도를 아르바이트에 투자한다고 해서 얼마나 연구에 방해가 될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뿜어내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과학 연구가 고시 공부처럼 명확한 목표가 정해져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단기간에 능력을 뽑아내는 것보다는 꾸준한 연구가 훨씬 중요한데, 다른 일을 하면서 온전히 연구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째 이유가 사실 내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인데, 이런 이유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을지 모르겠다. 온전히 내 경험에 근거한 조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적 풍요를 맛본다는 것이 연구자의 길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좀 더 명확히 얘기하자. ‘경제적 풍요가 연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나의 얘기는, 물론 과학자가 본래 ‘헝그리 해야’ 좋은 연구도 할 수 있고 연구 효율도 높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는 길이란 게 졸업 뒤에 취업해 대체로 안정적인 생활로 접어드는 보통 사람의 길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현실은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이 이해하기가 어렵고, 박사과정 학생이나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할 때에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친구들이 평사원에서 대리가 되고 과장으로 승진하며 없던 부동산도 생기고 저축도 착실하게 해나가는 동안에, 연구를 목표로 삼아 나아가는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만남이나 모임의 자리에서 비용을 치를 때, 직장인 친구에 비해 자신이 자꾸 뒤쳐지는 듯한 느낌이 싫어서 아르바이트 소득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채워 나가려 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야 할 연구에 방해가 될 만한 상념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차라리 학생 때부터 교수님들이 주는 연구비만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편이 연구에 집중해야할 시간에 스트레스를 좀 덜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려워도 연구를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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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KMGgroup.jpg » 헝가리 위그너연구소에서 내가 속한 연구그룹을 소개하는 포스터. 그룹 내에서 맡은 역할을 잘 해내야 다음 자리를 따낼 수 있을 것이다. 학부 시절에서 시작해 안정적 연구직을 얻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린다. 특히 내가 속한 이론물리나 수학 분야에서는 대학 입학부터 계산하면 대략 15~20년을 잡아야 하는 시간이다. 그동안 실적이 훌륭하고 성실하다 해도 그런 사람한테 모두 다 교수직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이 트레이닝을 거쳐 졸업하고 ‘시장’에 나오지만 연구직의 일자리 자체가 워낙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간에, 특히 졸업 뒤에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어느 나라에서도 연구원 월급만으로 가정을 꾸려 아이를 기르고 미래를 준비하는 저축을 하며 살기는 쉽지 않다.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지원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힘만으로 연구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앞에서 말한 현실을 바로 알 필요가 있다.


러나 경제 사정이 넉넉하다고 해도 박사후 연구원 생활에서 겪을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박사후 연구원이라는 일자리가 애초에 비정규직이라 2~3년 안에 다음 자리 걱정을 해야 한다는 건데, 만일 2년 계약이라면 사실상 1년이 좀 더 지난 뒤에는 다음 자리를 찾아 지원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결국 1~2년 안에 논문 실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게다가 박사과정 동안 지도교수 아래에서 실적을 쌓다가, 지도교수 없이 홀로서기를 하는 첫 번째 박사후연구원의 자리에서는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아마 정신력이 강하고 주변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심지의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겠으나, 나 같은 보통 사람은 분명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란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위 ‘연구 파급 효과의 부가가치’를 논하기 쉬운 공학 분야에 비해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기도 어려운, 게다가 경제 사정도 시간 투자에 비해 넉넉치 못한, 마지막으로 몇 년마다 다른 자리를 걱정해야 할 수학이나 물리학 연구의 길에는 무슨 장점이 있단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모든 물리학 교수님들과 동료 연구자들은 예외없이 공부나 가르치는 것 혹은 연구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원해서 이 길을 간다는 건데, 이게 다른 직업군과 비교해본다면 월등하게 높은 비율일 거라고 자부한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중고교 시절에 고민하던 수학 문제가 풀렸을 때 희열을 느껴본 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내용을 공부하고, 새로운 실험을 하거나 새로운 계산을 해낼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돈을 주고 살 수는 없을 기쁨이다.



다시 태어나도 물리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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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학계의 시스템을 지금 당장에 대폭 바꾸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인간사회에서, 당장 그 가치를 증명하기 어려운 특성의 순수학문에 최우선으로 투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 투자는 중요하지만 당장 내일 먹을 밥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10년 뒤를 대비해 저축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여타 학문과 산업에 비해 순수과학이 가장 중요하니 여기에 집중 투자하자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연구하며 산다는 것’의 현실을 얘기하고 싶었다.  


단히 말해 스스로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는 것은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가능하다. 연구하면서도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거나 덜 해도 되는 운좋은 사람들을 보면 좀 부럽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부러움 이상으로 지나치게 서로 비교하면서 나 자신에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환경에 휘둘리는 성격이라면 차라리 그런 운좋은 사람들과 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내게 다시 태어나도 물리학을 할거냐고 묻는다면 답은 물론 ‘예스’다. 대신 아르바이트는 안 할 것이고 연구에 더 빠져 좀 바보 같더라도 세상 물정을 늦게 알고 싶다 할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스스로 내가 좀 멍청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런 글을 쓰는 동안에 걱정도 들지만 다시 내일이면 다 필요없고 아까 하던 그 계산이 왜 안 되나 하는 생각에 빠져 그런 걱정을 다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 역시 헝가리에 있는 남은 2년 1개월 동안에 나 자신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니 연구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이번 글은 여기서 마쳐야 할 듯하다.


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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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끈과 장 이론에서 나타나는 이중성과 정확하게 풀리는 모형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인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메일 : minkyoo.kim@wigner.mta.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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