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학회에선 묻고 떠들고…불쑥 떠오른 아이디어 행운도

초보물리학자의 "두런두런 세상 이야기"


[4] 학술모임의 경험

sketch_IGST 2012.jpg » 대학원 시절 연구중인 분야에서 가장 큰 학회인 IGST(Integrability in Gauge and String Theory) 2012에 참석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아인슈타인이 공부했던 스위스 취리히 공대에서 열렸다. 출처/ 김민규


국의 대학 학부과정에는 3월에 시작하는 1학기를 마치고서 여름방학, 그리고 다시 9월에 시작하는 2학기를 지낸 뒤 겨울방학, 이렇게 두 번의 방학이 있다. 반면에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선 9월에 학기가 시작되며,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휴가가 있긴 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방학은 여름방학 하나뿐이다. 이 때문에 학부생 강의 의무를 지고 있는 교수들이 시간을 가장 많이 낼 수 있는 여름에 많은 학술모임이 열린다.


학술모임은 목적과 형식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는데 기본 교육 과정과 학술 논문 과정의 중간 즈음에 있는 지식을 주로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여름학교, 겨울학교가 있고, 또한 하나의 주제에 대해 긴 시간을 두고 자세하게 발표하기보다는 짧게 하는 대신에 발표의 주제를 폭넓게 해 발표자 수가 많은 학회(conference)가 있다.


학회에서는 발표 순서가 아침부터 오후까지 가득차 있기 때문에 참가자들끼리 토의하는 시간은 부족하지만 그 대신에 해당 분야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쉽다. 보통 워크숍(workshop)이라고도 부르는 학술모임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보통 하루당 두세 개 정도의 발표가 있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토의하는 순서를 두는 형식을 취한다. 또한 워크숍의 참가인원은 학회와 비교했을 때 소수인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워크숍 형태의 학술모임을 가장 선호하는데 이론물리학의 특성상 1시간의 발표만으론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기가 어렵고, 충분히 주어진 토의시간에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이나 궁금한 부분을 물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너무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학회보다 소수인원이 모이는 워크숍에서는 집중적인 공동연구의 환경이 주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외국 연구자와 어울리기’ 낯선 한국 연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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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둘째 주부터 3주 동안 내가 연구하는 분야의 워크숍과 학회가 헝가리에서 있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2주 동안은 부다페스트에서 워크숍이 이뤄졌고, 마지막 1주는 대륙국가인 헝가리 사람들에게는 바다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발라톤 호수 근처의 티하니라는 곳에서 학회가 이루어졌다. 2년마다 한번씩 개최되는 학술모임인데 나는 4년 전 스페인 베나스퀘에서 열린 해당 학회에 처음 참석했고, 2년 전엔 서울과 제주에서 개최돼 역시 참석했다. 이 학회 시리즈는 세부 주제에 집중되어 있고 그 주제가 정확히 내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내게 아주 많은 영향을 주었고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생애 처음으로 해외에서 발표를 한 곳도 4년 전 스페인에서 열린 이 학회였고,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헝가리 연구실의 그룹 리더인 교수를 알게 되어 많은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학회 덕분이었다.


족한 영어 발표 실력에다가 겨우 논문 하나를 완성한 뒤 처음 구두발표 했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혹시 발표 도중 긴장감 때문에 횡설수설 할까 봐 몇 번이나 발표연습을 하고 예상질문을 뽑아서 답변도 정리했었다. 게다가 발표 30분전 먹으려고 청심환을 한국에서 챙겨서 갔는데, 그런데도 자신감이 없어서 프리젠테이션 파일에다 하고 싶은 말을 있는 그대로 다 적어 놓았다. 좋은 프리젠테이션 파일이라면 위트도 있고, 그림도 좀 넣고, 간결한 내용만 적힌 상태에서 자세한 설명은 말로 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나의 구두발표는 별로 매끄럽지 못하다. 다만, 내가 주도적으로 한 계산이고 그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청중 가운데에 대가가 앉아 있다 하더라도 자신감을 가져야만 한다는 건 깨달았다. 이번 헝가리 학회에서도 발표를 했는데 논문으로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고 현재 진행 중인 일이었기 때문에 발표의 마무리가 붕 떠 있었다고 생각한다. 진행 중인 일을 발표할 때마다 왜 조금 더 속도를 내서 끝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데 그래서 지금 속도를 내는 중이다.


사실 연구자라면 논문이 첫째이겠지만,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잘 전달하고 홍보하는데에 학회발표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학회에서 발표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좋은 발표와 나쁜 발표를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얼마나 중요한 계산을 했느냐,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느냐이겠지만 같은 수준의 내용이라 하더라도 더 나은 발표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문장의 구성같은 기초적인 부분부터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까지 다양한 기술이 있다. 이런 면에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안타깝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워크숍에서는 토의 시간을 많이 주기 때문에 발표를 잘 듣고 좋은 발표를 하는 것은 학술모임 목적의 절반일 뿐이다. 남는 시간에 토론(디스커션)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면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연구자들을 보면 물리 얘기이든 밥을 먹는 것이든 이미 친분이 있는 사람들 혹은 같은 국적의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하는데, 이는 좀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한다. 물론 바쁜 교수님들은 진행중인 일을 하느라 새로운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고 이미 학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대부분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젊은 연구자들이라면 평소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경험많은 교수나 선배 연구자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던지, 정 꺼리가 없으면 차라리 그들과 어울려 맥주라도 한 잔 해야 나중에 남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부다페스트에서 연구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역시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2년전 서울과 제주에서 열린 해당학회에서였는데 헝가리에서 온 교수가 이전에 집필한 논문과 당시 내가 매달리던 문제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나름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를 나누다 보니, 헝가리에서 2주간 방문연구를 하게 되었고 급여가 많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펠로우십이 있다는 얘기도 자연스레 전해 듣게 되었다. 그 뒤에 함께 공동연구 할 문제가 구체화 되었고 지원했던 헝가리 펠로우십을 받으면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이번 학회에서도 일본 교토에서 오신 교수님의 발표가 흥미로워서 질문을 하던 중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생겨 함께 논의해보기로 하였다. 불행히도 해당 아이디어에 기반한 몇 가지 계산을 지난 며칠간 해보았는데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일은 별로 놀랍지가 않은 것이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의미있는 논문으로 결실을 맺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학회 기간에 맛보는 한국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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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학술모임이면 물리학 얘기만 하는 걸까? 물론 아니다. 물리학자라고 해도 어쨌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니 함께 즐길 때엔 즐긴다. 먼저 해당 학회는 2년마다 6월에 열리는 학회이기 때문에 대체로 월드컵 또는 유로축구대회와 일정이 겹친다. 그래서 학회 기간에는 자연스럽게 여럿이 모여 함께 축구 경기를 시청하는 시간을 갖는다. 4년 전엔 스페인의 우승을 스페인에서 직접 보는 흔치 않은 기회도 경험했다. 이번에도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던 중이었으니 몇 차례 함께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관람했다. 불행히도 한국 대표팀과 스페인, 이탈리아 대표팀 등이 모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기에, 그 나라들에서 온 이들은 아쉬움을 달래야 했지만 그래도 승패를 떠나 재밌는 경험이었다. 또한 3주차 학회가 열린 지역의 발라톤 호수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북미의 오대호 정도는 아니더라도 드넓은 발라톤 호수는 마치 바다처럼 느껴졌고, 호수에서 수영을 해보는 경험도 처음 해보았다. 헝가리에 온 지 10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그동안 부다페스트 말고는 다른 곳에 가보지 못했기에 또 다른 도시를 구경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고 그동안 느꼈던 외로움이나 지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00sketch_tihany.jpg » 헝가리의 발라톤 호수 북쪽에 우치한 티하니에는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연구자들은 여름이나 가을에 이곳에 머물며 학회를 열곤 한다.

장 반가웠던 것은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 두 분과 모교의 후배 대학원생을 만났다는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물리와 인생 얘기를 한국어로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게다가 모교에서 오신 교수님은 함께 온 제자와 나를 숙소로 초대해 고기파티를 열어주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식사 할 때 음식 자체의 맛도 중요하겠지만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시고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고기와 술을 먹으니 맛있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해당 학회의 다음 모임은 2년 뒤일 것이다. 헝가리에서 공식 임용기간은 2016년 8월 말까지이니 2016년 6월이면 이미 다음 연구지가 결정된 뒤일 테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고 또 걱정도 된다. 그래서 이번 학회 동안 받았던 영감과 자극의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스퍼트를 내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는 다른 학회에 참석하게 되어 독일 함부르크에 머무는 중이다. 4년전 스페인에서 처럼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독일에서 직접 지켜보았고, 오랜만에 만나는 각 나라의 동료들과 나누는 매순간이 매우 즐겁다. 2주뒤 헝가리로 돌아가기까지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연구를 비롯 여러 가지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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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끈과 장 이론에서 나타나는 이중성과 정확하게 풀리는 모형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인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메일 : minkyoo.kim@wigner.mta.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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