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과학자 vs 과학자"

여러 과학과 사회의 쟁점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가 가상논쟁을 벌인다. 규칙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되 배려하며, 자기주장을 설득하되 솔직할 것!

[연재] "거인의 어깨위에서 멀리 보다"..그런데 어떤 거인?

과학자 vs. 과학자의 가상토론 (4)



♦...♦...

 

거인의 어깨 위에서... 그런데 어떤 거인?

 

 

 


사이언스온 11층 회의실.

 

 사이언스온 기자(온기자):  이 연재물을 읽으시는 여러 독자님들께서 다음 이야기를 많이 기다리셨는데, 지난 몇 달 동안 모임이 없었습니다. 먼저 독자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요…. 모처럼 열린 모임에서도 조금 변화가 있습니다. 이학 박사님께서 너무 바쁘셔서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그러시네요.  어쩔 수 없이, 이번 모임부터는 새 대담자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인사 나누시죠. 나이철 박사님, 소시열 박사님.

 

소시열 박사(소박): 반갑습니다.


나이철 박사(나박): 잘 부탁드립니다. 이학 박사님만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온기자: 오늘은 제가 주제를 정해 왔습니다. 일단, 화두는 ‘책’입니다.


 



00book2 » 서재. 한겨레 자료사진/ 박미향 기자


 




00book3소박: 책이요? 과학도서에 대해 얘기하는건가요?


온기자: 저는 화두만 던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흥미롭습니다.


나박: 책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책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많이 읽어야 된다는 생각은 있는데, 시간도 나지 않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요. 책에 대해 무슨 할 얘기가 있을까 싶네요. 동료들 중에 보면 교양서적이나 동서양의 고전을 읽는 분들도 있긴 한데, 흔하지 않아요. 이거, 첫날부터, 대담자로 부적격 판정이 날까 우려되네요.


온기자: 아… 아무래도, 전공서적을 주로 보시기 때문일까요?


나박: 전공서적요? 학부 때는 교과서를 좀 보지만, 대학원 공부를 한 뒤로는 전공서적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요. 핸드북이나 매뉴얼북은 가끔 볼 일이 있습니다만….


소박: 서점에 가면 교양과학도서, 그러니까,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과학책이 참 많습니다. 그런 책들은 대개 과학자나 과학저술가 분들이 집필하시는데요. 그런 책들도 안 보십니까?


나박: 과학도서는 대중을 위한 책들이지요. 저희가 보기에는 너무 쉽고 지루해서요…. 일단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도서에는 손이 가지 않더군요. 왜 그런 것 있잖습니까. 대학생이 고등학생 참고서 보지 않듯이… 그런데 이거, 자꾸 이런 책도 저런 책도 안 읽는다 하니 좀 머쓱하군요. 인문사회학자들이 과학기술인들을 ‘무식한 공돌이’라고 비하하는 경우가 있다던데…,  자기 전문 분야 외엔 지식과 교양의 폭이 넓지 않다고…. 오해입니다!


소박: 흥미롭군요. 저희는 이래저래 책을 많이 접하는 편입니다. 연구에도 자주 이용하고요. 그러고보니 연구결과를 책으로 내는 경우도 자연과학자 분들보다는 많은 것 같습니다.


 나박: 저는 그 점이 항상 신기하더군요. 사회과학 쪽 연구를 보면 책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고 그러던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그렇게 해도 됩니까?


소박: 네? …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니 어떻게 논문에다 책 내용을 인용하나요?" "네? 무슨 말씀을..."

 

 00book4나박: 아 그러니까… 책이라는 게 그닥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매체가 아니잖습니까.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한 3년 전에 책을 쓰기 시작해서 1년간 집필작업을 하고, 또 몇달간 출판 작업을 하고, 서점에 깔리고…. 아무리 빨라도 몇년 전의 데이터이고 연구결과인데 구닥다리 흘러간 내용이 되어 버릴텐데요.


소박: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논문 쓸 때에 수십년, 심지어 수백년 된 책도 인용합니다. 예를 들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나박: 아니, 사회과학에는 발전이란 게 없습니까? 옛날 이론들도 여전히 쓸모가 있나요?


소박: 현대사회에서 적확하게 적용 가능하다기보다는, 뭐랄까요, 오래 전 선배 학자들의 업적인 학문적 원류로부터 내려온 생각의 흐름을 리뷰하고 그 끝에 내 생각을 추가하는 식이랄까요. 사상과 이론의 흐름을 쫓아 올라가다 보면 흔히 있는 일입니다.


나박: 자연과학도 선배 학자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해서 발전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논문을 쓸 때 역학 계산을 했다고 뉴튼을 인용하거나, 전지에 관한 논문이라고 해서 볼타를 인용하지는 않아요! 사회과학하시는 분들, 혹시 옛날 책 많이 읽었다고 과시하기 위해서 그렇게 오래된 자료들을 주렁주렁 참고문헌으로 다는 것 아닌가요?


소박: 글쎄요. 과시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인 것도 같습니다. 왜냐면, 내가 이만큼 공부를 했고, 학문의 긴 흐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내 연구가 어떤 학문적 조류의 연장선상에, 어느 위치에 놓이며 어떤 가치를 갖는다 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참고문헌을 열거하는 측면도 있거든요. 그런데요, 그러면 자연과학자들은 대체 무엇을 참고문헌으로 답니까?


나박: 과학자들은 논문에 인용된 다른 과학자들의 데이터, 내 논문에서 채용한 가설을 이미 다른 사람들도 채용했다는 근거, 내 주장을 지지할 수 있는 다른 이의 결과물, 그리고 나의 새로운 연구성과가 기존의 성과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비교 대상 등등을 논문에서 인용하고 참고문헌으로 답니다.


소박: 그 점에서는 저희 사회과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마지막 부분은 ‘다른 이의 주장을 비판하거나 반박할 때’로 바꾸어야겠네요.


온기자: 논문에 열거된 참고문헌의 개수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사회과학 논문에 참고문헌이 더 많더군요. 그런데 인용지수(임팩트 팩터)를 보면 자연과학쪽 저널이 사회과학 저널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소박: 아무래도 자연과학 하시는 분들이 많고, 또 논문도 많이 쓰시다 보니까 서로 인용할 일이 많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나박: 사실, 자연과학 쪽 저널의 인용지수를 보면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좋은 저널에 실린 주목도가 높은 결과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용을 하죠.


소박: 사회과학 쪽에서는 다른 이의 논문을 인용해서 내 논문이 출판되고 하는 데에 몇 년씩 걸리기도 합니다. 인용지수가 올라가는 게 더딜 수밖에 없죠.


나박: 몇 년씩 걸린다고요??? 아니, 답답해서 어떻게 연구를 합니까? 자연과학에서는 톱 저널이라 하더라도 몇 달 이내에 게재 여부가 결판이 납니다. 연구결과가 좋으면 좋을수록 급행으로 실어주기도 하죠.


소박: 사회과학에서는 일류 저널의 경우 2~3년 걸리는 건 다반사입니다. 첫판부터 거절당하면 차라리 몇 달이면 되는데, 수정요구가 오면 장기전이 시작됩니다.


나박: 거참 답답한 노릇이군요. 자연과학에서는 시덥잖은 논문을 거창한 저널에 투고하면 단박에 거절 당하긴 하지만, 일단 실을만 하다 싶으면 내용을 크게 고치라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일단 데이터를 보고하는 데에만도 의의가 있는 경우도 많고 해서…. 논문 게재가 수락되면 온라인 버전으로 먼저 나오는데, 이 단계에서 이미 관심있는 사람 대부분은 논문을 접하게 되죠. 심지어, 이만큼도 기다리지 못해서 피어리뷰(peer review) 심사 단계를 건너뛰고 서로의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사이트가 있을 정도죠. 학술지가 인쇄되고 배달되고 이걸 기다리는 연구자는 없습니다.





학문계보를 중시하는 사회과학, 최신 연구결과를  중시하는 자연과학

 

00book3소박: 아, 그러니까… 자연과학자들은 오래된 책을 참고하는 일은 거의 없고, 거의 실시간으로 세계 각국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물을 보는 일이 주가 되는거군요?


나박: 맞습니다. 소통이 빠르고, 지식의 공유가 잘 이루어지고 있어요. 몇달 만에 학회에서 만나 “A박사가 이번에 새로 낸 책, 읽어 보셨어요?”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일은 절대 없죠.


소박: 그렇다면, 자연과학자들은,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누가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왜 하는지, 기존의 어떤 결과에 바탕을 두고 하고 있는지 서로 뻔히 안다는 말씀인가요?


나박: 네. 웬간한 경우에는 그 연구실에 어떤 장비가 있는지, 어디에서 돈이 나오는 얼마짜리 몇년짜리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까지도 서로 알 정도입니다. 

소박: 이제 이해가 좀 됩니다. 학술적 결과물을 들고 서로 소통할 때에도, 이 연구의 배경이 뭔지, ‘계보’가 뭔지 구구절절이 ‘깔고 나서’ 얘기할 필요가 없겠군요. 바로 결과가 이건데, 누구의 결과하고는 뭐가 다르고 … 이렇게 들어가면 되겠군요.


나박: 사회과학에선 그런 귀찮은 단계가 필요합니까?


소박: 물론, 저희도, 서로 친한 그룹 내에서야 어느 정도 이심전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사회과학쪽에, 뭐랄까요, 학문적 분파가 더 미세하고 다양하달까요, 그런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연과학에 ‘어느 학교는 학문적 조류가 이렇다’ 이런 것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경제학에서는 시카고 학파, 프린스턴 학파 이런 식으로 …


나박: 음…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글쎄요. 과거에야 아인슈타인 진영, 보어 진영 이런 유명한 사례가 있었고… 근래에는, 어느 학교는 입자물리가 세다, 어느 학교는 유기화학이 세다 이런 것이야 당연히 있지만요…


소박: 학문적 의견이 충돌하거나 학문 연구의 풍토가 다른 경우는 거의 없다?


나박: 자연과학 분야는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용됩니다. 학설의 대립이야 얼마든지 존재합니다만 ‘시각’의 차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과학만큼 심하지 않을 것 같네요. 자연이라고 하는 사실이 기준이 되는 것이니 바라보는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죠.


소박: 진화론과 창조론, 그러니까 진화생물학과 지적설계론의 대립이 있지 않습니까?


나박: …… 소박사님.  저는 과학 커뮤니티 내의 현상에 대해 말씀드린 것이고요.


소박: 네에. 죄송합니다.





"인문사회 도서 많다고 학식 높나요?..  소장도서 적은 자연과학자는 억울"


 00book4온기자:  …오늘의 주제인 책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마무리를 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책 얘기로 시작했는데 연구방법, 연구결과의 공유와 소통의 문제로 논의가 확대되었군요.


나박: 꿈보다 해몽입니다. 허허.

 

온기자: 얼마 전에 국내 모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중인 ‘지식인의 서재’ 코너에서 국내 자연과학 연구기관장의 서재를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중의 기대에 비해 소박한(?) 서가와 폼나지 않는 추천도서를 두고 네티즌들이 재미있는 반응을 보였었어요.

 

나박: 그러니까, 실망스럽다는 것이었나요? 저도 그 코너가 첫 화면에 뜨면 가끔 클릭해 들어가보곤 하는데, 지식인이라는 분들의 선정 기준도 잘 모르겠고…. 소설가나 인문학 저술가가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어려운 책들을 죽 늘어놓고 애독서라고 하시는데… 그분들의 과학 지식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합니다. 아닌 말로, 원소기호는 몇 개나 알며, 간단한 열역학 계산을 할 수 있나요? 과학 지식을 외면하고 인문사회쪽만 편식하는 분들은 ‘아 유식하시다’ 하고, 과학자 사무실에 책 몇 권밖에 없다고 ‘실망이다’ 하면 이게 억울한 일이 아니고 뭡니까?


온기자: 나 박사님… 진정하세요. 맺힌 게 있으셨나봅니다. 오늘 나 박사님 말씀을 들어보니, 자연과학자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는 첨단, 최신의 연구결과들을 읽느라 바쁘고, 학문적 기반이라는 측면에서 책이 즐비하게 꽂힌 서가의 역할은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나박: 그렇습니다. 머리 속에 다 들어 있는데 왜 지나간 얘기들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죠? 과학은 계속 발전해서, 지나간 이론이 새로운 더 나은 것으로 이미 대체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용도폐기된 내용이라면, 그것이 씌여 있는 책은 고전이 아니라 철지난 잡지나 마찬가지예요.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날 내다 버려야 합니다. 저는 실제로 많이 버렸어요. 두껍기는 또 어찌나 두꺼운지.


소박:  제게는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하네요. 저는 학부 때 읽었던 책들이며 교과서들까지 버리지 않고 모두 소중히 갖고 있습니다. 제 성장을 함께한 생각의 뿌리들이지요. 제 분야 뿐 아니라 사회과학 제분야에서 핵심적인 고전들은 두루 소장하려는 욕심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때론 고전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다시 읽지 않더라도, 제 서가는 제 머릿속의 지도와 같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학자로서의 제 아이덴티티(identity)를 드러내는 얼굴과도 같습니다.


나박: 좀… 닭살스럽습니다. 혹시 이학 박사님이 그만두신 이유가 바로…?




"거인의 어깨"의 의미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서 다르다


00newton » “내가 만약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거인'의 비유는 뉴턴이 처음 창안한 것은 아니지만, 뉴턴의 이 말은 널리 알려져 자주 인용된다.

온기자: 아, 아닙니다. 아니고요.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나이철 박사님, 첫 대담이셨는데 좋았고 이학 박사님과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편안하게 잘 해주셨습니다. 뉴튼이 한 말이라죠. “내가 만약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에서 ‘거인들’이란 선배 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과학의 진보라는 것이 과거로부터 누적된 결과 위에 보태는 것이라는 뜻이죠. 최근에 이 ‘거인들’을 조금 달리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선배 학자들 뿐 아니라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 과학자들을 칭하는, 그러니까 거인들이란 과학자 커뮤니티라는 의견입니다. 어떤 해석이든, 한 명의 천재가 모든 것을 이뤄내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오늘 대담을 정리해 보니, 사회과학의 경우에는 학문적 계보가, 자연과학의 경우에는 집단 지성이 각각 ‘거인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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