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과학자 vs 과학자"

여러 과학과 사회의 쟁점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가 가상논쟁을 벌인다. 규칙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되 배려하며, 자기주장을 설득하되 솔직할 것!

[연재] 기후변화를 보는 두 시선, 터놓고 얘기해봅시다

과학자 vs. 과학자의 가상토론 (3)
사이언스온 11층 회의실. 이학 박사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무도 없음을 발견한 이 박사. 자리 잡고 앉더니 뚱뚱한 검정 레자 가방의 지퍼를 열고 날렵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낸다. "아니 무슨 신문사 회의실에 무선랜 하나가 없냐?" 하고 혼잣말을 하는 순간, 소시열 박사가 회의실로 들어온다.
     

소시열 박사(소박): 아, 이 박사님,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1등이시네요.

 

이학 박사(이박): (노트북을 '철컥' 소리 나게 닫으며) 안녕하셨습니까. 저도 방금 왔습니다. 그나저나 온 기자는….

 

소박: 오겠죠. 뭐. 아 저기 오네요.

 

온기자: (손에 생수병 두 개와 종이컵 몇 개가 들려 있다) 제 시간들에 오셨네요.

 

(대충 분위기를 잡은 뒤)

 

온기자: 실은, 여기 오기 직전에 데스크에서 호출이 있었습니다. '과학자 vs. 과학자' 코너가 과학을 놓고 추상적인 논쟁을 벌이는 코너냐, 그거 앞으로 할 얘기 많이 남았느냐. 대뜸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이러저러한 주제가 남아 있다고 보고를 했더니 에디터 말이, 독자들이 과학 자체에 대한 얘기에 크게 관심이 있겠느냐. 과학을 중심에 놓고 토론한다는게 좀 어렵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가감없이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박: 그럼, 뭐, 연예인 뒷담화라도 할까요. 여기서. 하하.

 

소박: 할리우드 영화 속의 과학적 오류 이런 것?

 

온기자: 그런 건 아니고요. 저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과학을 주제로 놓기보다도 어떤 관심사에 대해 두 분의 시각이나 접근법을 대조해 보는 식으로 가면 어떨까 합니다. 저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 분들의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는데요. 어떠십니까.

 

e121d7d4a142bee53da82f86105c8ee9. » 영화와 책을 통해 <불편한 진실>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고발했다.

   

이박: 방향에는 동감하고요. 그런데, 기후변화…, 그거에 대해 뭐 할 말이 있을까요? 기후변화 막아야 한다는 것 시대적 조류인데…, 개인적으로 생각이 있더라도 함부로 말하기도 그렇고.

 

소박: 기후변화. 아주 중요한 주제죠. 다만 사회과학 하는 입장에서는 기후변화 자체가 있다 없다 이런 과학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많지 않고요. 사회경제적 의미라던가 그런 거라면야….

 

 

기후변화파와 회의론파의 주된 논거는 뭔가

 

온기자:  이 박사님. 과학자 대표로 말씀해주시라는 건 아니니, 어차피 익명이니까, 시원하게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적 생각도 좋고, 주변 분들의 분위기도 종합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소 박사님, 네, 바로 그런 쪽으로 말씀 주세요. 단도직입적으로, 제가 먼저 질문을 드리죠. 기후변화가 큰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과장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양쪽 진영 모두 과학자들이 중심에 있습니다. 즉, 과학 대 반과학 이런 구도로는 볼 수 없는데요. 이것을 과학 논쟁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까요? 사실이 밝혀지거나,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까요?

 

이박: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뭐가 '사실'이냐? 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봐요. 데이터도 부족하고요. 기후라는 큰 스케일의 주제를 다루는데,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것은 불과 수십년, 아무리 길게 잡아도 수백년에 지나지 않잖아요.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그룹이 있고 회의적인 그룹이 있죠. 기후변화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은 냉소적 회의론으로 치부된 채 소수 의견에 머무르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은 방관하는 입장이에요. 어느 한 편을 들기에는 확신이 부족해요.

 과학적 사실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죠. 힘겨루기나 다수결로 정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충분한 데이터가 확보되고 과학적 토론에서 어느 한 진영이 옳고 다른 진영이 그른 것으로 판명이 날 때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틀린 진영은 깨끗이 승복합니다. 해당 학계는 다시 하나가 되죠. 이것은 합의나 파워게임의 결과가 아니에요. 다시 기후변화 얘기로 돌아가면, 기후변화에 대해 맞서는 의견들이 있지만, 이것은 아직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목소리 큰 쪽이 이기는 식으로는 되지 않을 겁니다.

 

소박: 독자들을 위해 몇가지 반론적인 부연 설명은 간단히 해야겠습니다. 과학사와 과학사회학 분야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패러다임론을 발표한 토머스 쿤은 물리학자였습니다. 과학 발전의 역사를 보면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기 전에는 기존 학계의 저항이 존재했다고 하죠. 이것은 과학활동 역시 과학자들 사이의 사회적 현상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즉 '합의'와 비슷한 일을 겪는다는거죠. 기후변화 논의에는 사회·경제·정치·외교 등 다양한 요소들, 인자들, 그리고 주체들이 엮여 있습니다. 즉, 기후변화 담론은 과학적인 동시에 사회적입니다. 과학적인 토론이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전선일 뿐이죠. 사회적 논쟁에서는 파워게임이 작동하기 마련이고, 합의라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바람직한 해법 중의 하나죠.

 

이박: 무슨 말씀인지는 어렴풋이 알겠는데요. 과학자들 뒤에 누가 있는가 하는 것은 과학자들에게는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해 납득할만한 객관적인 증거와 합리적인 계산과 예측이 나온다면 모든 과학자들은 수긍해버릴 테니까요.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해 생겼고 실존하는 위기라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 중 어느 쪽이 해당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중 한 쪽의 과학자들은 지지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상대측에 투항할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오랜 기간 믿어온 이론이 하루아침에 뒤집히더라도 본인이 납득한다면 받아들입니다. 어제까지 싸우던 상대측 과학자들도 패자를 배척하지 않고 동료로 받아들이죠. 글쎄, 사회과학쪽에서는 이 얘기를 믿으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입니다.

 

소박: 제가 묻겠습니다. 이 박사님은,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일반 대중보다는 더 잘 아시리라 봅니다. 기후변화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이 일으킨 것이 맞습니까?

 

이박: 말하기 조심스러운데요. 남이 뭐라 할까봐 두려운게 아니라, 몇년이 지나고 나면 제가 한 말을 제 스스로 틀렸다고 생각하게 될까봐 그것이 우려됩니다. 기후변화는 관측된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200년간 인간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이 있었고, 그것이 공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증가시킨 것 역시 인정됩니다. 게다가 지질학적 데이터를 보면 먼 과거에도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지구상의 평균기온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존재하고 있고요. 종합하자면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킨 것이 맞고,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 상승의 상관관게가 존재하니까, 인간이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온기자: 일부러 교과서적인 대답을 하신다는 느낌인데요. 이 박사님. 기후변화가 ‘하이프’(hype), 그러니까 일종의 ‘과장’이라는 주장들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죠?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박: 역시 말하기 조심스러운데요. 몇가지 들어는 봤습니다.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양이 기후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던가, 이산화탄소 농도와 평균기온의 상관관계는 사실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다 라던가….

 

온기자: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이박: 저도 주워들은 수준입니다만…,  예를 들어 태양활동의 주기적 변화야말로 지구의 온도에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지요. 또한 이산화탄소는 바닷물에 용해되고 식물에 저장되고 하는데, 지질학적 과거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기온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논리입니다. 온도가 높아지면 해수에 대한 이산화탄소의 용해도가 작아지거든요. 특히, 남극의 아이스코어(ice core)로부터 지질학적 과거의 기온 변화를 보면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와 대략 일치하는 패턴이지만, 전후 관계나 변동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아요. 결국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감과 기온의 변화는 자연의 사이클일 수 있다는거죠. 

 

1400년대부터 현재까지 태양활동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흑점수가 많아지는 것은 태양 복사가 더 강해짐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18세기를 전후해 평균기온이 떨어졌던 '작은 빙하기'의 원인으로 이 시기에 태양흑점이 사라졌던 것을 드는 학자들이 있다. » 1400년대부터 현재까지 태양활동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흑점수가 많아지는 것은 태양 복사가 더 강해짐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18세기를 전후해 평균기온이 떨어졌던 '작은 빙하기'의 원인으로 이 시기에 태양 흑점이 사라졌던 것을 드는 학자들이 있다.

 

소박: 문제는, 그 자연의 사이클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지구라는, 지질학적인 스케일을 생각할 때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것은 너무나 단기간에 일어난 일이죠. 과거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수백만, 수천만년간 축적해 땅 밑에 있던 탄소를 인간이 고작 200년간 캐내어 대기중으로 퍼붓고 있어요. 향후 몇백년이란 시간은 평형에 도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닐 것입니다. 수십만~수백만년을 두면 다시 평형에 도달할 지 모르지만, 현재 진행중인 기후변화는 그 원인이 인간에 의해 급격히 제공된 것만큼 그 결과도 자연이 완충해 주기에는 부족한 시간 내에 닥치게 된다고 봅니다.  심지어, 어떤 임계점을 지나 버릴 경우 일방통행식으로 온난화가 가속화될 수 있습니다.

 

이박: 잠깐만요. 소박사님은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신 것 같네요. 맞습니까?

 

소박: 네. 저는 기후변화가 인간이 만든 문제고, 시급한 문제며, 이것을 완화하고 이후 벌어질 일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전인류의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주류 의견이기 때문에 신뢰한다?

 

이박: 저도 기후변화 회의론을 지지하는 입장은 아닙니다만 과학자로서 여러 가능성에 대한 여지는 항상 열어 두고자 합니다. 소수 의견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외람되지만, 과학을 좀 더 알고 좀 더 과학적으로 사고한다고 자부하는 저보다도 오히려 소 박사님의 입장이 분명한 것은…, 저로서는 참 신기하네요.

 

소박: 저도 주어진 정보들을 종합하여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능력은 갖고 있습니다. 물론, 제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들은 자연과학자들이 쓴 책이나 보고서들이겠지요. 예를 들면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보고서들이나, 코펜하겐 회의 등에서 채택되고 인정되는 사실들 등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제 판단 근거의 대부분은 자연과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제가 보기엔, 적어도 현재까지는, 기후변화는 진행중인 과학적 사실이며 인류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반면 기후변화 회의론은 비주류 의견으로 보이는군요. 또한 사견입니다만, 아마도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과 공유하는 의견일텐데요, 화석연료에 의존하며 저효율 과소비 상태인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박: 그러니까, 단지 주류 의견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현상과 제기된 위협들을 신뢰하신다는 말씀이신지요? 또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운동가적인 이념 때문에…?

 

소박: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건 너무 나가신 것 같네요. 물론, 사회과학자가 자연과학의 논쟁 사이에서 어느 한 편을 들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과학계의 주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과학자들은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자연과학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거죠. 저희는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의 정책적 활동에 조력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해당사자들을 조율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죠. 대중의 이해를 도모하고 반응을 살필 필요도 있습니다. 공공지출이나 규제 분야에서는 비용 대비 효용을 극대화해야 하죠. 시급한 당면 과제를 선별해내는 것, 그 수행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몇 가지 가정을 해 봅시다. 첫번째 가정. 만약 기후변화가 단순히 사실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감소할 원유 생산량과 그에 따른 산업경제적 문제, 국지화된 자원과 에너지 안보, 나아가 세계 평화의 문제, 도시 대기환경의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습니다. 두번째 가정. 만약 기후변화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이 아니라고 판명되면? 사람들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화석연료를 소비하지만 앞서 언급한 문제들은 여전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자연적으로’ 변할 기후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새로운 기후에 대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더 더운 여름과 더 추운 겨울, 더 강해진 태풍에 대비한 사회간접자본을 갖춰야 하고, 제도상의 변화도 필요할겁니다. 유럽 국가들은 이 문제에 특히 예민하죠. 세번째 가정으로, 최악의 경우이겠습니다만,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기후변화가 가속되고 있다면, 화석연료 사용을 즉시 줄여야 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로 빠르게 전이해 가야 합니다.

 

이박: 소 박사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나쁜 경우일 때 사회과학자들의 할 일이 더 많아지는군요? 

06c19c50b0958e05f1eecc1ee587c036. » 라젠드라 파차우리 박사. 2002년부터 IPCC를 이끌고 있다. IPCC는 2007년 앨 고어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9년 11월 <포린 폴리시>는 그를 'Top 100 Global Thinkers' 5위에 올렸다(1위는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2위는 오바마 대통령).

 

 

해프닝 때문에 심각성이 훼손되진 않아야

 

소박: 그런 셈인데, 그렇다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건 아니라는 점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두는 것이 잠재적 위험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래 자연과학 분야에서 기후변화 때문에 지구과학 분야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연구비도 늘고 있고요.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말할 것도 없죠. 또, 자연과학자들의 영향력과 사회적 위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봐야겠죠. 

  

이박: 그건 현실이죠.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국제정치적 담론에 의해서 과학연구의 방향이 좌우된다고도 볼 수 있어요. '기후변화파'가 돈줄을 쥐었으니 그에 반기를 드는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따기가 쉽지 않죠. 과학자들조차도 위기를 강조해야 먹고 살 수 있는 형국이 되었어요. 심지어,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자는 얘기는 누가 뭐라고 딴지를 걸 수 없는 무슨 절대선 같은 말씀이기에, 기후변화 회의론이나 음모론을 주장했다가는 거대 석유 메이저의 뒷돈을 먹은게 아니냐는 둥의 오해를 받기 십상이죠. 과학의 목표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이건 과학자들이 만든 상황이 아니에요.

 

온기자: 얼마전 떠들썩했던 '기후게이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신뢰도가 떨어지는 데이터를 자의적으로 선택한다거나 반대파의 논문을 배척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어찌보면 일종의 사회적 압박 탓이라는?

 

♦ 기후게이트(Climategate):코펜하겐 총회가 열리기 직전인 2009년 11월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기후연구소(CRU)에 있던 1천 건 넘는 전자우편과 문서 파일이 해킹당해 인터넷에 공개된 이래 이어지는 파문을 말한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를 중심으로 “공개된 문서 자료를 통해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과장됐음이 드러났다”는 주장이 제기돼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슷한 시기에, 히말라야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어 2035년이나 그 이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보고서가 과학 논문이 아닌 어떤 잡지 기사를 인용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은 더욱 커졌다. 기후게이트는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이 인간의 산업활동이냐 자연현상이냐를 둘러싼 논란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과학의 신뢰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이박: : 진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저는 적어도,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과학자들이나 IPCC의 과학자들이 그들의 신념이나 주변의 정치사회적 압박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려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또 그들이 믿는 신념때문에, 또는 그들 주변의 정치사회적 압박때문에 고의로 그랬다고도 보지 않고요. 사회적 발언과 마찬가지로 과학 연구에도 과학자 각각의 스탠스가 있고 일관성이 있어요. 자신이 계속 발표해 온 학설을 이어 나가는 일종의 관성이 있단 말이죠. 사실 큰 실수들도 아니었어요. 워낙 눈들이 많이 쏠려 있고, 또 소박사님 말씀마따나 그들의 입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어쨌든, 기후게이트로 대표되는 해프닝들 탓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희석되고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지표면 빙하 총량은 1980년대 중반 이후 17년 연속 감소 추세입니다. 온대지역의 식생과 생태가 변하고 있고요. 바닷물의 열팽창 때문에 해수면은 매년 평균 1.8㎜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정도면 기후변화를 보여주는 근거로 충분하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기후변화를 사실로 인정하고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는지를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f14394f7db1d56d78a4bdcd05771d63e. » IPCC는 2007년 보고서에서 빙하 축소 속도를 신뢰할 수 없는 출처로부터 인용하며 과장하였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보고서는 "히말라야 빙하가 녹고 있는 속도는 지구상 어떤 다른 곳보다 빠르며 이대로라면 2035년 또는 그보다 일찍 사라지게 될 것" 이라고 적었다.

 

 

온기자: 이 자리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려는 것은 아니었고요. 사회과학자와 자연과학자의 시각 차이를 살짝 들여다 본 것으로 일단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박: 한 마디 추가하고 싶네요. 사실 자연에는 에너지가 넘치게 흐릅니다. 인간이 그것을 잡아서 쓸 노력을 게을리한 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문제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에너지 문제는 반드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소박: 기후변화 담론은 에너지 체계를 바꾸기 위한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죠. 화석연료는 에너지원이면서 동시에 저장, 운송, 변환이 쉬운 아주 환상적인 자원이죠. 반면, 예를 들면 전기는 바로 캐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량 저장도 어렵습니다. 화석연료가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압축적인 발전에 기여한 점은 인정됩니다. 이견은 있겠지만, 현대 사회를 만들어 낸거죠. 물질문명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건사회에서 벗어나고 인권이 신장된 것, 위생과 건강, 문화와 예술 등등 모두 석탄과 석유에 의존한 산업화와 사회변화에 닿아 있습니다. 아직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화석연료에 대적할만한 경쟁력을 갖춘 대체에너지는 없습니다.

에너지 시스템과 같은 대규모 사회기술시스템의 경우 과학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성공적인 전환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낙관론은 경계해야 합니다.  기후변화의 위협이 화석연료에는 사회적 비용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체에너지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수용성이 증진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후변화는 신재생에너지에게는 기회가  되는 셈이죠.  

 

 

강제 억제는 ‘사다리 걷어차기’ 

 

SolarPowerPlantSerpa » 태양광은 중요한 신재생 에너지이다.

이박: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은 죄다 선진국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가난한 나라 국민들에게 신재생에너지는 '녹색 사치'입니다.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독점된 상태에서 개발도상국들의 화석연료 사용을 강제로 억제한다면 그것은 '사다리 걷어차기'일 뿐입니다.

 

소박: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 협상, 예를 들면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 같은 데서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그것이죠.

 

온기자: 처음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마치는 것 같습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번 더 기회를 만들도록 해 보겠습니다. 오늘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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