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과학자 vs 과학자"

여러 과학과 사회의 쟁점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가 가상논쟁을 벌인다. 규칙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되 배려하며, 자기주장을 설득하되 솔직할 것!

[연재] 과학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과학자 vs. 과학자의 가상토론 (2)
 
사이언스 온 11층 회의실. 이 기획토론의 담당자인 온 기자와 사회과학을 전공한 소 박사가 인스턴트 커피를 종이컵에 털어 넣고 있다. 자연과학 전공의 이 박사를 기다리고 있다. 소 박사는 지난번보다는 많이 편안해진 표정이다. 커피 봉지를 말아 커피에 푹 담궈 휘휘 젓는다. 익숙한 손놀림이다.
 

 

800px-Seoul-National.Assembly-02 » 이박 "무슨 말씀이세요. 권력이라뇨. 국회에 가 보세요. 장관들을 보시던가. 과학자 출신은커녕, 대학 학부를 이공계 나온 사람도 찾기 힘들 지경이에요."

 

 

 

사이언스온 기자(온기자): 소 박사님. 지난번에 좀 당황스러우셨겠어요.

 

소시열 박사 (소박): 아, 네….

 

온기자: 그래, 그날 끝나고 두 분이 어디 가서 소주라도 한잔 하시면서 푸셨어요? 말씀도 더 많이 나누시고….

 

소박: 웬걸요. 바쁘시다며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휙 사라지시더군요. 일이 많으신가봐요. 오늘도 이렇게 늦으시고….

 

(이때, 이박사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이학 박사 (이박): 아이고, 죄송합니다. 과제 평가가 있어서… 좀 늦어졌는데, 그나마 뒷정리도 다른 분들에게 떠넘기고 나왔습니다.

 

소박: 흠. 흠. 어디 프로젝트 지원하고 심사 받으시나봅니다?

 

이박: 아, 아뇨. 이번에는 평가위원으로 간 거였어요. 하루 종일 열 개 넘는 과제들을… '계속과제'들의 중간 평가라 그나마 일이 좀 덜하죠.

 

소박: 이 박사님, 프로젝트 직접 하시기도 하죠? 같은 분야면 그 바닥이 그 바닥인데, 어제는 평가자로 만나고 오늘은 피평가자로 만나고 뭐 그러시겠습니다.

 

이박: 허허, 네 뭐 그렇죠. 제가 직접 참여하는 과제의 상위 프로그램에야 평가자로 들어가지 않지만. 하지만 일은 일이니까요. 과학자들처럼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들도 없죠. 선배라고 봐주고, 이런 것 전혀 없습니다. 지난번 우리 모임 끝나고 소박사님이 소주 한잔 하자고 하셨는데 사실 제가 피했죠. 운전하니까 술을 잘 안 마시기도 하지만, 일 때문에 만난 분들하고 술 마시고 사적으로 친해지고, 이런 것 어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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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 그나저나 그쪽(자연과학)은 과제도 많고, 연구비도 굵직굵직하고… (사회과학 쪽하고) 좀 균형이 맞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이박: 요즘엔 그쪽(사회과학)도 연구비 엄청 늘어났다고 하던데요? 저희야 과제가 없으면 연구 자체를 진행하기 어렵죠. 기기도 사야 하고, 재료도 사야 하고 연구원들 인건비 다 챙겨줘야 하고… 몇 년 전부터는 과제에 참여하면 대학원생들까지 정확하게 챙겨서 지급하고 있어요. 사회과학 쪽 보면,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 또닥또닥 하시는데 몇 억씩 하는 과제도 있던데요? 회의한다고 호텔 가서 아침밥 먹고… 그런 것에 비하면 저희는 중노동이고 제 돈 들여 연구하는 꼴이에요.

 

소박: 자연과학 쪽에서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계산만 하는 분야도 있는 걸로 압니다. 그리고 저희쪽 연구에도 돈 많이 듭니다. 사회과학 한다고 하면 책이나 몇 권 사고, 재료비라 해봐야 프린터 토너랑 종이값만 들어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요, 사실과 다릅니다. 자연과학에서 실험이나 관측을 하듯이 저희도 사회 현장에 나가서 필드워크(field work)를 해야 하고요. 각종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야 하는데 어떤 것은 굉장히 비싸요. 설문조사 같은 것 하면, 외주업체에 맡기거나, 조교들 고용해서 나가야 하는데 돈 많이 듭니다. 여러 이해당사자나 외부 전문가의 관점을 녹여내야 하기 때문에 밥값과 자문료가 드는 것도 현실이지요.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기기를 사야 할 일은 없으니 전체적으로나 평균적으로 연구비 규모가 다른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인정하겠습니다. 다만, 자연과학 쪽에는 거의 모든 연구실에 최소한 한두개 과제는 주어야 한다는 그런 의식 비슷한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이박: 자연과학 쪽에도, 과제 안 하고 학생 교육에 전념하는 교수들도 많이 있어요. 물론 사회과학 쪽보다는 그 비율이 낮을 것 같긴 하네요.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우에는 거의 100% 과제가 간다고 봐야 하겠고. 근데, 아셔야 할 것이, 소위 PBS(과제기반시스템)라는 것 때문에 과제가 없으면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단 말이죠. 과학 쪽에서 과제는 수혜가 아니고 그냥 일상 업무에요. 사회과학 쪽하고 개념 자체가 다르달까요.

 

소박: 아, 사회과학 분야 출연연에도 PBS는 적용됩니다. 그 비율은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만. 얘기를 좀 돌려 보죠.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씀은 말이죠, 그 프로젝트라는 게 결국은 공공지출, 즉 납세자가 낸 돈 아닙니까? 자연과학에 대해 폭넓은 지원을 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언제 이것에 대해 뚜렷이 합의한 적이 있었던가요?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에는 인색하거나 심지어 사회과학을 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는 기본적 사실조차 무시되는 게 현실인데요. 자연과학에 대해서는 어찌 이렇게 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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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 그거, 저도 참 궁금하군요. 답은 저도 모르죠. 하지만, 세상사엔 다 이유가 있기 마련 아니겠어요?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과 공감대가 있고, 또 그만큼, 지난 수십년간 과학을 지원해 봤더니 성과가 만족스럽더라, 그러니 계속 지원이 확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소박: 그 말씀은, 사회과학이 사회적으로 덜 필요하고, 지원해도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이박: 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요. 너무 나가신 것 같고요. 뭐,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해요. 사회과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자연과학은 사회과학보다 좀 더 먹고사는 문제에 근접해 있지 않습니까? 국가경쟁력에 아주 크게 기여하고 있잖아요.

 

486px-Paul_Krugman-press_conference_Dec_07th,_2008-8 » 소박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국가 경쟁력이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소박: 먹고 사는 문제라면, 더 넓혀서 삶과 생활과 관련된 문제라면 사회과학의 영향도 결코 작지 않죠. 국가 경쟁력이라…, 국가 경쟁력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입니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왼쪽 사진)는 국가 경쟁력이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개인이나 기업이 경쟁을 하는 것이지, 국가가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지는 않는다고요.

 

이박: 옳습니다. 맞죠. 경제, 복지, 외교, 무역… 뭐 얼핏 생각해 봐도 사회과학이 우리 삶에 영향을 많이 주죠. 하지만 말이죠, 이런 현실 분야에서는 사회과학자들보다 좀 더 실무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일을 맡고 있어요. 정치인이나 관료들이죠. 사회과학의 발전이 현실에 적용되려면 이들을 거쳐야 하지 않습니까? 자연과학은 그렇지 않아요. 물론,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를 볼 때 일상생활과 별 관련이 없는 것들도 있고, scientist2즉각 관련된 것들도 있죠. 하지만 그것들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보긴 힘들어요. 그리고 국가 경쟁력 말씀인데요, 논리적으로야 국가가 경쟁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다고 봐요. 하지만 보세요. 얼마 전 끝난 동계올림픽만 봐도 그렇죠. 각각의 경쟁은 선수들이 하지만 메달 집계는 국가별로 하잖아요. 또, 스노보드는 미국이 강하다, 스키점프는 스위스, 스피드스케이팅은 네덜란드… 이런 식으로 국가별로 특화된 경쟁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국가들은 현실적으로는 경쟁을 하죠. 자연과학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고요. 이 얘긴 그만 하고 싶은데요. 국가 경쟁력 따위, 공허하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해도, 과학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인류 공통의 이익을 위해서에요. 아주 크게 보면 말이죠. 과학이 발전한 덕에 인류의 삶의 질이 지난 수백년간 얼마나 비약적으로 나아졌습니까?

  

소박: 지난 수백년간 삶의 질이 비약적으로 나아진 사람들은 바로 선진국 국민들입니다. 과학이 인류의 공공재인 척 하지만, 실상은 국경을 넘기가 힘들다, 아니, 몇몇 발전된 나라들의 그룹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과학을 '자국 영토 내에서' 발전시키려 하다 보니 각국 정부들이 연구개발 지출을 늘리는 것이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나 위기감이 과학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과학에 대한 지출을 늘린다고 해서 국민들이 더 행복해진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변변한 첨단과학이나 대형산업이 없이도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경쟁주의, 개발지상주의, 그리고 패권주의, 이런 의식 중 하나 이상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과학기술을 맹목적으로 지원하는 현상이 자주 관측됩니다. 과학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 예를 들어 복지 지출을 늘린다던가 복지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에 쓰는 돈과 과학을 위해 쓰는 돈의 경중과 우선순위를 평평한 테이블 위에서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박: 숭고한 말씀이네요. 심정적으로 무척 동감합니다. 그런데, 나누어 쓰는 것, 복지 이런 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거죠. 부가가치를 만들고 외화를 벌어오고, 그래서 우리 나라에 돈이 많고 구매력이 크고 이럴 때에 비로소, 나눠 먹어도 더 큰 파이를 나눠 먹게 될 거고, 소외된 분들에게도 더 많이 쓸 수 있게 된다는거죠. 사회과학 하시는 분들 중에는 유럽식 사회에 대한 무슨 로망 같은 게 있는가 봐요. 미국에서 공부한 분들도 유럽 얘기하는 걸 자주 보고… 언젠가 한때 북유럽 모델이 크게 유행한 적도 있었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과학과 공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국제 경쟁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죠. 사실 국내 사회 문제에 그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편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것은 과학을 한다는 직업 자체가,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과학자들은 사회적으로 무지하다는 둥, 참여의식이 낮다는 둥, 관제 교육에 세뇌당해서 자신의 일이 어떤 이데올로기의 구현에 오용되는지 모른다는 둥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심각한 모욕이죠. 우리 과학자들은 희생적인 사람들이에요.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에요.

 

소박:: 과학자 개개인을 욕되게 말할 의도는 없으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점은,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논문수로 가중치를 두어 그린 세계 지도. 저개발국은 사라져 버린다. » 과학논문수로 가중치를 두어 그린 세계 지도. 저개발국은 사라져 버린다.

 

 

 

 

이박: 무슨 말씀이세요. 권력이라뇨. 국회에 가 보세요. 장관들을 보시던가. 과학자 출신은커녕, 대학 학부를 이공계 나온 사람도 찾기 힘들 지경이에요. 과학자들이야말로 권력에서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이에요. 정치권력 뿐 아니라 경제적 권력, 사회적 권력, 언론 권력, 그 어느 권력도 없어요. 그러니 맨날 휘둘리고, 당하고, 공부는 많이 해도 열악한 처우에, 문과 나온 대학 동기놈 대형차 탈 때 중형차도 겨우 탑니다. 기사 딸린 '장' 자리까지 오르는 것은 꿈도 못 꾸고요.

 

소박: 제가 말하는 것은 '과학자의 권력'이 아니라 '과학의 권력' 입니다. 물론, 고작 대형차냐 중형차냐 이런 것을 지표로 남들과 비교하신다면 실망이기도 합니다만. 과학이 권력이라는 것은, 과학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보니 '과학이 누리고 있는 것'을 줄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대중들로부터 성직자보다 더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더군요. 과학 커뮤니티는 배타적이며, 굳이 배타적이지 않더라도 높은 지식 장벽 덕택에 완벽하게 보호되지요. 직능별 업역을 보장하는 면허증은 없지만 과학 커뮤니티 외의 사람들은 말 섞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자들이 비교하기 좋아하는 직능집단으로 의사가 있죠. 면허와 의대 정원 조절로 업역이 보장되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의학은 수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유사의학, 민간요법, 자가치료, 다들 자기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믿기도 하죠. 일반인들끼리 의학적 지식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습니다.scientist3

 

이박: 과학은 열려 있습니다. 과학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어요. 의사 면허 없이 의술을 행할 수 없지만, 과학은 학위가 없어도 얼마든지 실험을 한다던가, 과학 연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학술지들 역시 투고자에게 어떤 자격이나 지위를 요구하지 않아요. 과학이 배타적이고 권위적이라는 것에 도저히 찬성할 수 없어요. 우리는, 오히려, 대중이 과학에 좀 더 도전해 주었으면 합니다. 허구헌날 과학 대중화, 소통, 이런 얘기 하면서 대민 서비스에 나서라고 닥달하는데 아주 미치겠어요. 자기네가 관심이 있으면 얼마든지 공부하고 다가올 수 있는데, 과학자들보고 억지로 나가서 대중화 하라고 하니, 관심도 없는 사람들한테… 왜 이런 것까지 과학자한테 시키는 건지. 그리고, 과학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바로 창조론자들이죠.

 

소박: 창조론자나 지적설계론자… 모두 특정 종교에 관련되어 있습니다만, 과학에 도전을 하고 있긴 하죠. 하지만 과학자들 대다수는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는 태도 아닙니까? 진화생물학자들 중 언변에 능한 몇몇이 나서서 반격을 가하자 종교계가 타격을 받고, 심지어 유럽에서 무신론이 득세해 가는 형국인데요. 이것만 봐도, 과학은 이제 종교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더 강력한 권력이 된 것입니다. 휘유, 종교보다 세다라… 대단합니다. 마치 수백년 전 종교에 짓눌렸던 과학이 전세를 역전시킨 형국이네요.

 

scientis4이박: 종교와 과학에 대한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도킨스 등 몇몇이 전사로 나섰지만, 사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믿는' 것과 다투고 싶어 하지 않죠. 실익도 없고요. 과학자들이 전부 무신론자인 것도 아니죠. 다시 논점으로 돌아갑시다. 과학이 권력이라…, 저는 찬성하지 않아요. 만약 과학이 사회로부터 받아서 누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대가입니다. 일종의 사회적 계약의 산물이라는거죠. 그리고 저는 과학이 인류 사회에 그동안 해 준 것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도 많이 만들었지요. 저는 사회가 여전히 과학에 기대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과학자들은 사회로부터 더 배려를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소박: 과학의 기여라. 만약, 과학에 대해서 비용 대비 효과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산업혁명기부터 200여년간 비용 대비 효과가 최대였고, 이제는 더이상 그렇지 않다면? 과거에 비해 천문학적으로 증가한 비용을 때려붓고 있지만 과학 발전의 속도는 더뎌졌거나 발전의 효과가 줄어들었다면? 말하자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과학의 시대는 끝나가고, 이제는 과학을 위한 과학이 되어 버렸다면? 그래서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나빠진 상태라면 말입니다. 이래도 과학에 대한 크나큰 기대를 계속 유지해야 할까요?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 비용 대비 효과가 더 큰, 그리고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효과도 즉각적인 그런 부분이 있다면요? 예를 들어, 콜라와 햄버거 먹고 찐 뱃살을 빼기 위한 지방 분해 촉진제를 개발하는 데에 수억달러를 투자하느니, 최빈국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과 전기, 말라리아약과 모기장, 교육과 인터넷을 제공하는 것이 전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박: 거룩한 얘기고, 가치관에 관한 문제고, 하루 종일 과제 심사에 지친 제 머리로는 당장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 큰 문제네요. 오늘 너무 길어졌는데, 이만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소 박사님은 토론 후반으로 갈수록 반과학적인 인식이 자주 보이는데…, 저는 과학을 죽이려는 분과는 토론하고 싶지 않다는 것 밝혀둡니다. 말을 섞는 것 자체가 과학에 누를 끼치는 거라고 봅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온기자: 이 박사님. 소 박사님은 그런 분은 아니신 걸로 압니다. 오해 없으시면 좋겠네요. 오늘 너무 길어졌고, 다들 피곤하시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번처럼 격해지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두 분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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