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과학자 vs 과학자"

여러 과학과 사회의 쟁점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가 가상논쟁을 벌인다. 규칙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되 배려하며, 자기주장을 설득하되 솔직할 것!

[연재] 자연과학-사회과학에서 '과학'은 대체 뭡니까?

• 과학자 vs. 과학자의 가상토론 (1)

 

 

가상토론 첫 만남, 인사를 나누다

 

2010년 2월 어느 날. 사이언스온 사옥 11층 회의실에 세 사람이 얼쭘하게 앉아 있다. 그 중 이 박사와 소 박사라는 두 사람은 서로 초면인 게 분명해 보인다. 잠시 뒤 언론사 고위 인사인 듯한 ‘노회한 언론인’이 회의실에 들어온다. 오늘 대담토론회의 사회자 격인 온 기자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작은 변화가 반갑다는 듯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악수하기를 중개한다. 생경하고 부담스런 주제의 토론회에(그것도 기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건물에서 열린 토론회에) 나와 있는 것 자체를 몹시 불편해하던 두 사람은 언론사 간부에게 무언가를 계속 부탁한다. 익명을 확실히 보장해 달라, 사진은 물론이고 캐리커쳐도 삼가 달라, 대담료(?)는 얼마를 줄 거냐 등등….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언론사 간부는 ‘참, 지나치게 신경을 쓰시는군요’라고 말하려다 마는 표정으로 이내 회의실을 빠져나간다. 싸~ 한 분위기는 여전하고, 온 기자는 살짝 긴장한다.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가 한 자리에 만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두 문화’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펼치는 연속 가상토론의 첫날 현장이다.

 

맞수3 » 그림 / 사이언스 온

 

 

 

사이언스 온 기자(줄여 '온기자')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과학웹진 '사이언스 온'에서 야심적으로 준비한 '과학자 대 과학자' 기획토론의 첫번째 모임입니다. 자연과학 전공의 이 박사님과 사회과학 전공의 소 박사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민감한 얘기가 오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에 두 분 박사님의 자세한 전공은 밝히지 않고 성함도 익명으로 처리하게 된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보호막을 쳐 드림으로써 때론 가시돋힌 설전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합니다. 두 분, 인사 나누시죠.

 

이학 박사(줄여 '이박')  잠깐만! 온 기자님. 이 코너 제목이 '과학자 대 과학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저하고 또다른 과학자 한 분이 오셔서 과학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온기자  아…, 자연과학자 대 사회과학자라는 의미였습니다. 이공계와 인문사회계의 서로 다른 두 언어와 문화의 소통과, 서로 다른 시각을 통해 들여다본 과학의 모습을….

 

이박  사회…과학자요? 대학마다 사회과학대학이 다 있고 외국에서도 '소셜 사이언스(Social Science)' 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는 것은 압니다만, 그래도 과학자, 사이언티스트(scientist)라고 하면 과학자를, 제 말은 그러니까, 자연과학자를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 통념적으로도 그렇고요.

 

소시열 박사(줄여 '소박')  흠…흠…. 온 기자님. 제가 좀 당혹스러운데요. 물론 과학자라 하면 자연과학자나 공학자를 연상하는 것이 자연스럽긴 합니다만, 이 박사님께서 모르고 오셨을 리 없는데, 지금 샅바싸움을 거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박  샅바는 모래판에서 찾으시고요. 저희는 그런 거 할 줄 모릅니다. 말솜씨도 없고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온 기자한테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온기자  (이 박사님 왜 이러세요~. 판 깨실 건가요? 아, 네…, 그건 아니시라니 다행입니다. 휴. 진땀…) 그럼 두 분 인사 나누신 것으로 하고, 예의 차리는 것은 이따가 제대로 하시기로 하고요. 지면관계상 바로 토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첫 만남인만큼 가볍게….

 

이박   잠깐만요. 사회과학 하시는 분 만난 김에, 아까 그 얘기를 좀 물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늘 궁금해하던 것인데요. 물론 지인 중에 사회과학하는 분들이 많지만, 차마 면전에서 물어볼 수가 없었거든요.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 말인데요. 

 

소박  네. 말씀하십시오.

 

이박  사회과학이라는 거 말씀인데요. 그거, 왜 '과학'이라고 부르는지요? 요즘 경영과학, 심지어 인문과학 이렇게…, 아직 예술과학이란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지만서도, 대학에 단과대학으로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과학'이라는 말을 붙이는데요. 일단 차치하고. 사회과학이라는거 왜 과학입니까? 아니, 왜 과학이라고 부릅니까?

 

소박   이 박사님. 대답하기 전에 제가 반문하고 싶은데요. 자연과학은 왜 과학입니까? 이 박사님이 생각하시는 과학이 뭔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왜 사회과학이 과학인지 말씀드리기가 편하겠습니다. 

 

이박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 제가 하는게 과학입니다. 과학자들이 연구실에서, 실험실에서 수백년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일들이 과학이죠. 또한 과학활동의 결과로서 축적된 지식과 그 체계를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표현하기도 하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자연을 관찰하고 합리성을 갖춘 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하며, 귀납적 정보와 연역적 논리가 함께 중요하죠. 지식, 경험, 새로운 발견을 기반으로 약간의 직관, 영감, 그리고 창의성의 산물인 과학적 가설을, 재현 가능한 실험 또는 추가적 관측을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해 나가는 활동과 그 산물을 통칭합니다. 

 

소박   상당히 놀라운데요. 말씀을 굉장히 잘 하시는군요. 혹시 과학철학 분야의 공부를 따로 하셨습니까?

 

이박   과학철학이라는 철학의 분야가 있다는 것을 지금 알았습니다. 철학과학이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저는 그냥 제가 살아오면서 제 일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말한 것 뿐입니다. 남한테 듣거나 책에서 읽은 얘기가 아닙니다. 소 박사님, 혹시 과학자들은 '무식한 공돌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계셨던 건 아니겠지요?

 

소박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그럴리가요. 아무튼, 알겠고요. 그럼 사회과학이 왜 과학인지 말씀해드리죠. 사회과학자들도 자연과학자들과 똑같은 일을 합니다. '자연'을 '사회'로 바꾸면 됩니다. 사회를 관찰하고, 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하며, 가설을 세우고 객관적으로 검증하지요. 사회과학 중에서 자연과학과 가장 가까운 분야는 역시 경제학일 것입니다. 수리와 통계를 필수적으로 사용하고,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간의 상관관계를 탐구하기도 하죠.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여러 명이 실은 수학자입니다. 최근의 심리학은 인지과학, 정신의학과 따로 생각하기 힘들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리학, 사회학, 인류학, 행정학들도….

 

data2 copy »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저마다의 방법론으로 갖가지 데이터들을 산출, 수집하며 분석한다.

 

 

 

자연과학자의 공격 - "사회과학이 객관적 관찰을 하는 과학 맞나요?"

이박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자연' 대신에 '사회'라고요? 저는 그것부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자연과 사회는 다릅니다. 첫째, 과학의 눈으로 보았을 때 자연은 한 가지 모습만 보여주지만, 사회는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신뢰할 수 있는 관찰 대상이 아닙니다. 관찰자들도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믿을 수 없습니다. 과거 냉전시대에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에서 이념에 따라 사회과학이 얼마나 다른 길을 갔었습니까? 하지만 냉전시대에도 자연과학자들간의 소통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학문적 이견은 있을지언정 이념의 차이 때문에 자연을 다르게 본 적은 없었습니다.

  

둘째, 사회는 인간들이 만들었고 바꾸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관찰자가 사회적 행위자이기도 한데, 그러니까, 소위 사회과학의 결과물에 의해 사회가 변할 수도 있고, 결과물에 의해 사회과학에서 검증이 완료되었다고 믿고 있던 학설이 뒤집히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무용지물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사회과학을 어떻게 관찰 대상에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과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과학적 방법론이라고요? 수식과 통계만 쓴다고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에서 수식이란 자연현상을, 또는 현 시점에서 가장 그럴듯한 모형을, 인류가 공유하는 가장 완벽한 논리적 언어를 이용해 표현한 것입니다. 즉, 관찰 대상으로서 '사회'가 '과학'만큼의 신뢰성을 갖지 못하고 관찰자의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아름다운 수식도 일종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계량적 분석 결과를 본적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통제되지 않은 변수들을 무차별적으로 일차결합한 뒤 외삽하여 상관계수를 구하더군요.

 

그리고 자연과학자들이라면 판별이 어렵다고 판단할 수준의 낮은 상관계수를 갖고도 '상관관계가 성립한다'고 결론을 도출하더군요. 무엇보다도 그 결론은 일반 대중들도 뻔히 알만한 수준의 내용이 많더군요. 그나마도 '특허출원수와 GDP의 상관관계를 볼 때, 발명을 장려하면 부자 나라가 된다' 식으로 닭과 달걀의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나, '높은 저축률은 경제성장에 좋다. 다만 일본은 예외다' 식으로 '그때그때 달라요'식이더군요. 과연 사회과학에 공리라는 것이 있을까요? 만약 없다면, 그게 과학일까요?

 

 

사회과학자의 반격 - "자연과학은 늘 절대적 객관성을 지닙니까?"

소박  상대의 전공 학문에 대해 그렇게 배타적이시라니, 저는 정말 당혹스러운데요. 물론 모든 과학자들이 다 이 박사님과 같은 생각이시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이 박사님. 사회과학의 약점들에 대해 잘 알고 계시네요. 전반적으로 보아 완전히 반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사회과학에 대한 변호가 필요한 듯 합니다.

 

첫째, 사회과학의 그런 모호함과 특징 탓에 생기는 한계에 대해서는 사회과학자들도 역시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가 자연에 비해 좀 더 느슨한 보편성을 지닌다고 할까요. 또한 자연과 비교할 때 여러 요소들간의 상호작용들을 단순화시키는 데에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사회가 자연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며, 이 박사님 말대로 행위자인 사람들이 사회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회과학의 결과물은, 그것으로부터 영감이나 때론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회 변화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를 관찰하는 동안, 즉 연구를 수행하는 동안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사회과학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한다는 것은 사회과학자들이 자연과학을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객관적 증거가 결여된 단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 변수들을 일차 결합하여 분석하는 이유는 그것들 중 두개 만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여러 변수들 중 어떤 변수가 다른 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유효한지 서로 비교하여 유용한 함의를 찾기 위해서이지, 완결적인 함수관계를 수립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상 외의 공격을 받았기에, 저도 할 말을 좀 해야겠습니다. 이 박사님은 자연과학이 완벽하게 객관적이어서 과학자들의 의도나 과학자 사회 내의 역학관계 따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으로 생각하시는 듯 한데, 과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아니, 지금 이순간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활동들을 포함해도, 실험적 증거는 때로 왜곡되고 심지어 과학자 스스로에 의해 사익을 위해 조작되며, 과학자사회 안의 목소리 크기에 따라 합리적인 소수 의견이 묵살되기도 하죠. 이념에 의해 윤색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과학의 결과가 오용되어 자연을 파괴하며, 불확실한 위험이 알려지지도 않은 채 생활 깊숙이 들어오기도 하죠.

 

과학의 방법은 기기에 크게 의존하여 기기가 과학적 발견의 종류와 지식의 범위를 미리 정해버리죠. 잘못된 기기로부터 얻은 잘못된 증거에 속기도 하고요. 변치않는 진리라고 믿고 있던 이론이 송두리째 부정되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경우도 여러번 아닙니까?

 

이박  …본색을 드러내시는군요! 한번 해 보시겠다는 것이죠? 알겠습니다. 진리? 진리라고요?

   
토론 과열 조짐!…오늘은 이 정도에서 끝내고 다시 만나죠

온기자  다루려던 첫 주제는 말도 못 꺼내보고…. 토론이 지나치게 과열된 것 같습니다. 이 정도에서 일단 중단하고, 다음 만남에서 계속하면 어떨까요. 여기서 마이크를 끄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뒤에서 "꽉 막힌 이과 같으니라고!!" 하는 고성과, "과학을 건드리지 말고 놔 두라고!!" 하는 고성들이 오간다)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 [연재] 융합의 시대..융합학문, 융합형인간이란 무엇인가?[연재] 융합의 시대..융합학문, 융합형인간이란 무엇인가?

    과학자 vs 과학자박상욱 | 2011. 04. 05

    과학자 vs. 과학자의 가상토론 (5) 온 기자: 두 선생님들, 어서들 오세요. 상당히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안녕들 하셨는지요. ...오늘은 최근에 점점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융합학문'이라는 주제를 두고서 두 분 박사님의 토론 자리를 마련했...

  • [연재] '거인의 어깨위에서 멀리 보다'..그런데 어떤 거인?[연재] "거인의 어깨위에서 멀리 보다"..그런데 어떤 거인?

    과학자 vs 과학자박상욱 | 2010. 07. 05

    과학자 vs. 과학자의 가상토론 (4) ♦...♦...♦   거인의 어깨 위에서... 그런데 어떤 거인?       사이언스온 11층 회의실.    사이언스온 기자(온기자):  이 연재물을 읽으시는 여러 독자님들께서 다음 이야기를 많이 기다리셨는데, 지난 몇 달 동안 모임이 ...

  • [연재] 기후변화를 보는 두 시선, 터놓고 얘기해봅시다[연재] 기후변화를 보는 두 시선, 터놓고 얘기해봅시다

    과학자 vs 과학자박상욱 | 2010. 04. 12

    과학자 vs. 과학자의 가상토론 (3) 사이언스온 11층 회의실. 이학 박사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무도 없음을 발견한 이 박사. 자리 잡고 앉더니 뚱뚱한 검정 레자 가방의 지퍼를 열고 날렵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낸다. "아니 무슨 신문사 회의실에 ...

  • [연재] 과학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연재] 과학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과학자 vs 과학자박상욱 | 2010. 03. 11

      과학자 vs. 과학자의 가상토론 (2)   사이언스 온 11층 회의실. 이 기획토론의 담당자인 온 기자와 사회과학을 전공한 소 박사가 인스턴트 커피를 종이컵에 털어 넣고 있다. 자연과학 전공의 이 박사를 기다리고 있다. 소 박사는 지난번보다는 많이...

  • [연재] '자연과학-사회과학 두 언어의 논쟁'[연재] "자연과학-사회과학 두 언어의 논쟁"

    과학자 vs 과학자박상욱 | 2010. 02. 04

    '과학자 vs. 과학자의 가상토론' 연재를 시작하며        자기분열적인 1인 2역 가상 논쟁.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가 과학기술에 관한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서로 전혀 다른 언어로 싸운다. 영국의 작가이자 과학자인 찰스 퍼시 스노(1905~80)가 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