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파리의 사생활"

행동유전학 분야에서 이름난 실험실에 있는 초파리 연구자가 오랜 초파리 연구의 역사와 흥미로운 실험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연재] 멘델과 황우석…

 파리의 사생활 (6)

 

 

 

 

 완두콩, 조밥나물, 그리고 줄기세포

 

 

0mendel2 » 멘델의 실험 데이터가 '지나치게' 정확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통계학자 피셔는 멘델이 적절한 실수를 했다면 교배결과로 얻어진 순종과 잡종이 '201 대 399'라는 거의 완벽한 비율로 나타날 수는 없다는 점을 들어 누군가 멘델을 만족시키기 위해 실험 결과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멘델의 실험결과가 기대값과 지나치게 일치한다는 주장은 1902년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멘델이 재발견된 지 불과 2년 후에 동물학자 웰던(WFR Weldon)은 동료인 칼 피어슨(Karl Pearson)이 개발한 카이제곱법을 이용해 멘델의 실험결과들에 대한 적합도검정을 실시한다.1) 적합도 검정이란 관찰된 분포가 모집단에 대한 기대분포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결정하는 통계적 방법이다. 웰던은 피어슨과 함께 골턴의 전통을 계승하던 생물계측학(Biometry)파의 일원이었다. 다윈의 사촌동생이었던 골턴은 다윈의 생각을 통계학을 이용해 증명하고 싶어했던 인물이다.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라는 다윈의 말처럼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탄생에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과정은 필수적이었다. 피어슨과 웰던은 진화의 연속성을 선호했고 이를 증명하는데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반면 웰던과 같은 동물학회에 속해 있던 윌리암 베이트슨(William Bateson)은 불연속적인 변이에 의해 새로운 종이 생긴다는 주장을 펼치며 웰던과 일찍부터 대립하고 있었다. 베이트슨은 진화는 불연속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멘델의 재발견으로 둘 사이의 대립은 심화되었고, 이 논쟁은 '생물계측학-멘델주의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훗날 로날드 피셔(Ronald Fisher)라는 뛰어난 인물에 의해 논쟁이 해결되기 전까지, 양 진영은 십여 년에 걸쳐 치열한 설전을 거듭했다. 웰던이 멘델의 실험결과를 걸고 넘어지는 맥락엔 바로 이 논쟁이 있었다.2)

 

 

'지나치게 완벽한 결과': 로널드 피셔 경의 적합도 검정

 

웰던의 주장은 큰 논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멘델의 데이터가 지나치게 정확하다는 직격탄은 피셔에게서 나왔다.3) 여전히 멘델이 실험을 조작했다는 증거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주장은 피셔의 것이다. 피셔의 논증은 그다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피셔의 논문 125쪽에서 126쪽에 걸쳐 있는 문장을 직접 들어보자.

 

만약 각각의 자손들이 독립확률(independent probability)4)을 가진다면, 우성형질은 0.75의 비율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손 10개체가 모두 그럴 확률은 0.75의 10승, 즉 0.0563이 된다. 결과적으로 잡종인 부모의 5~6%가 순종인 것으로 분류될 것이고, 기대되는 분리비는 2 : 1이 아닌 1.8874 : 1.1126 이거나 600개체의 자손 중 377.5 : 222.5 정도로 나타나야 한다. 멘델이 시험한 600개체의 식물 중 201개체가 순종으로, 399개체가 잡종으로 분류되었다. 비록 이 숫자들이 그가 기대한 200 : 400의 비율과 매우 근접하게 맞아떨어지긴 하지만, 측정된 자손 표본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음을 생각해보면 편차는 분명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우리는 이 경우에 있어 이론의 오류를 보상하기 위해 수집시에 나타나는 오류가 정확한 방향으로, 또한 매우 정확한 배율로 편차를 만들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멘델의 경우처럼 운 좋은 편차라는 것은 29번 시도해야 한번 겨우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이다.5)

 

멘델은 우성형질을 나타내는 제3세대의 개체들 중 잡종과 순종의 비율은 2 : 1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열성을 나타내는 개체들(aa)은 계산에서 제외하기로 하자. 열성형질을 제외하면 순종 대 잡종의 비율만을 고려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멘델에게 중요한 것은 우성과 열성이 아니라 순종과 잡종이었다. 우성을 나타내는 개체들 중 3분의 2는 잡종(Aa)일 것이고, 3분의 1은 순종(AA)일 것이다. 따라서 비율은 2 : 1로 나타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멘델은 제2세대의 자가수정을 통해 제3세대에 나타나는 형질을 살펴보았다. 만약 제3세대에서 열성형질이 나타난다면 제2세대는 잡종(Aa)이었을 것이고, 모두가 우성형질이라면 순종(AA)이었을 것이다. 멘델은 10개의 씨앗을 골라 심었고 다음 세대에서 나타나는 열성형질을 근거로 잡종 대 순종의 비율이 2 : 1로 유지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각 형질마다 그는 600개의 씨앗을 측정했다.

 

피셔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멘델이 적절한 실수를 했다면 201 : 399라는 거의 완벽한 비율이 나타날 수 없다는 점이다. 피셔에 따르면 멘델은 자신의 실험결과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들을 애써 무시했다. 혹자는 멘델이 실제로 실험을 통해 비율을 밝혀내는 귀납적 방법이 아니라, 1:2:1 이라는 등비수열로부터 실험결과를 연역했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6)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피셔가 멘델을 폄하한 것은 아니다. 피셔는 멘델의 조수를 의심했다. 그리고 멘델을 연구하던 대부분의 학자들이 피셔의 의견에 동조했다. 결과를 미리 알고 있던 멘델을 만족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다.7)

 

 

멘델과 미지의 조수, 황우석 박사와 김선종

 

멘델의 알려지지 않은 조수에 대한 에피소드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멘델에겐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수가 있었고, 황우석 박사에겐 김선종이라는 연구원이 있었다. 멘델의 조수는 멘델을 위해 정확한 비율의 실험결과를 선사했고, 김 연구원은 황 박사에게 완벽한 실험결과를 선물했다. 두 경우 모두 논문이 출판되었다. 멘델의 논문은 들통나지 않았지만 황 박사의 논문은 조작임이 들통났다.

 

황우석 박사를 여전히 지지하는 이들은 멘델도, 심지어는 뉴턴도 결과를 조작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은 무언가 착각하고 있다. 멘델과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은 완전히 별개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멘델과 황우석 박사가 추구한 학문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멘델은 자연에 존재하는 법칙을 탐구하는 과학자였고, 논문을 통해 잡종의 형성에서 나타나는 법칙을 찾으려 했다. 황우석 박사가 논문을 통해 밝히고자 한 것은 자연 법칙이 아니다. 그는 줄기세포의 핵치환을 통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고자 했다. 이건 공학이나 기예지 과학은 아니다.

 

멘델이 재발견된 데에서 그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멘델이 재발견 된 이유는 멘델이 출판했던 논문의 결과들이 수십 년 후에 다른 학자들에 의해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학자들은 선취권에 대한 합의를 위해 멘델을 이용했다. 이 말은 그들이 발견한 현상과 멘델이 발견한 현상이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멘델이 무슨 생각으로 실험을 수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형질을 나타내는 단위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거의 정확한 정수비로 분리된다는 사실만은 변함없었다. 멘델의 결과는 지나칠 정도로 정확했지만, 이론이 예측하는 결과에 합치했다. 지금 다시 노란 완두콩과 초록색 완두콩을 교배해도 멘델의 실험결과를 얻을 수 있다. 과학은 '재현가능'한 측정량에 몸을 기대고 있다. 이론은, 즉 멘델의 잡종에 대한 집착은 유전학의 이론으로 탈바꿈했지만 그 결과들은 영원하다.

 

0hwang1 » 줄기세포 논문조작과 관련한 첫 공판이 열린 2006년 6월20일 오후 황우석 전 서울대교수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취재진과 경호원에 둘러싸여 들어오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박종식 기자

황우석 박사의 실험도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난자의 핵을 다른 세포의 핵으로 치환하면 유전체가 뒤바뀐 줄기세포를 '이론적으로'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실험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핵치환을 통해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드는 일은 자연에 숨겨진 법칙을 찾는 작업이 아니다. 자연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성공률은 경우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황우석 교수팀의 조작된 논문에도 이처럼 낮은 성공률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따라서 성공적인 핵치환을 위해서는 엄청난 수의 난자가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했다. 엄청난 윤리적 비판이 쏟아진 이유가 맞춤형 줄기세포의 이런 측면 때문이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은 자연에 존재하는 현상을 찾고 이해하고자 하는 과학의 성과물이 아니다. 과학이 예측하는 바를 현실에 적용하고자 하는 공학의 영역인 셈이다. 그리고 젖가락질에 대한 강조에서 볼 수 있듯이 그건 거의 기예에 가까운 일이다. 따라서 재현이 되건 안되건 언제든 조건이 달랐다는 이유의 면죄부가 주어지게 된다. 이런 건 과학이 아니다. 이런 기예는 이론을 건설하기 위한 모재료가 되지 않는다. 어제는 되고, 오늘은 되지 않는 그런 불분명한 결과들은 과학의 토대가 될 수 없다. 내가 하면 되고 남이 하면 안 되는, 그래서 언제든지 상대방의 젖가락질을 탓할 수 있는 결과물은 과학이 아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그런 현상들을 과학자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과학자에겐 내가 해도 로맨스요, 남이 해도 로맨스인 사실들만이 인정된다. 그래야 자연은 언제고 자신의 신비를 수줍게 드러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연구의 정직성을 이야기하는 윤리학자들은 단 한번도 현장에서 실험을 해보지 못한 것 같다. 과학자들이 모든 실험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과학자도 인간이기에 가설에 합당한 결과들만을 보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과학자들을 견제하는 무형의 압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치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험결과가 동료들에 의해 다시 재현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과학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재현되는 결과들만이 선택되고 진화한다. 동료들을 속이려 했던, 권위로 동료들을 찍어 누르려던 시도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과학자도 인간이다. 그들도 서로를 속이고 자신을 속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재현가능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다.

 

따라서 멘델의 결과가 지나치게 깨끗하다는 것은 심각한 논란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피셔가 지적한 멘델의 비율이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잡종과 순종의 비율은 1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2 : 1의 비율로 나타난다. 아마도 멘델은 자신이 세운 가설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쯤 측정을 멈췄을 것이다. 멘델의 실험을 재현하려 했던 많은 식물학자들도 자신들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과학자들의 작업이 윤리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순결할 수는 없다. 가설에 부합하는 결과는 단 한 사람의 과학자에 의해서만 테스트 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성과 일반성에 대한 추구는 과학자의 덕목이다. 그 둘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실험결과에 약간의 조작이 가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조작은 재현되거나 재현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의 운명을 지닐 뿐이다.

 

멘델은 가설이 예측하는 결과를 미리 마음 속에 품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정확히 2 : 1의 비율이 나오지 않았던 결과들은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완벽주의자였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논문 외에 멘델이 남긴 노트들과 메모들을 보면 그가 정말 철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숫자들을 기록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도 철저했다. 물론 그에게 완벽주의자의 면모가 있었다고 해서 논문의 실험을 조작했다는 의심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멘델은 '없는 것을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멘델은 가설을 세우고 측정을 진행하는 전형적인 과학자의 일상 속에서 행동했을 뿐이다. 그는 '완벽하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가끔씩 나타나는 예외들은 자연의 복잡함 속에 맡겨둔 채 멘델은 굳건히 자신의 가설을 믿었다.

  하지만 황우석 박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김 연구원의 논문 조작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멘델처럼 개인의 윤리적 차원에 해당하는 문제일 뿐이다. 논문 조작 사실을 알고도 계속해서 정당함을 주장한 것도 윤리적 차원의 문제일 뿐이다.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그는 '없는 것을 있다'라고 주장했다.

 

0sjong » 김선종 연구원의 한양대 박사학위 논문에 실린 미즈메디 줄기세포 1번 사진들(왼쪽)과 황우석 연구팀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배아복제줄기세포 사진들(오른쪽). 김 연구원 논문의 사진 B가 황우석 연구팀 논문의 사진 D와 모서리가 겹쳐 나타난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미 사람의 난자로 핵치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상황이었다. 그가 조작한 논문은 과학적으로 새로운 현상을 알리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다양한 환자들의 체세포로 핵치환의 기술적인 진보를 이루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핵심은 정말 핵치환이 기술적으로 향상되었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이 논문이 조작된 이유일 것이다.

 

그에게 재현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재현의 기회를 주면 그는 성공할 것이다. 난자의 핵을 치환하는 일은 이미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그것이 가능하냐는 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말 그들이 말한 것처럼 효율적인 핵치환 기술이 마련되었느냐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황 박사는 실패했다. 황우석 박사는 멘델처럼 자연의 법칙을 찾고 있지 않았다. 그는 과학적으로 이미 알려진 현상을 기술적으로 향상시키고 싶어한 공학자였을 뿐이다. 따라서 재현가능성이라는 과학의 문제에서 그는 비껴서 있다. 교량을 건설하는 기술자가 값싼 재료를 사용해 부실한 다리를 건설했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건 다리를 다시 건설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조밥나물에서 얻어진 실패: 멘델이라는 사람

 

멘델의 연구는 재현가능성에 열려 있지만 황우석 박사의 것은 그렇지 않다. 둘은 다르다. 멘델은 언제나 재현되는 자연의 법칙을 찾고 있었지만, 황우석 박사는 지식을 응용하고 있었다. 멘델의 논문은 조작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현되고 있지만, 황우석 박사의 것은 그렇지 않다. 나아가 멘델은 개인의 윤리적 차원에서도 황 박사와는 달랐다.

 

0mendel3 » 멘델의 실험 정원. Courtesy of Villanova University Archives

그의 두 번째 논문 <인공선택에 의한 조밥나무 종의 잡종에 관하여>8)는 이미 언급했듯이 실패작이다. 이 논문에서 멘델은 완두콩에서 얻어진 결과들이 거의 재현되지 않는다는 점을 통렬하게 인정했다. 잡종을 형성하고 다시 분리시키는 입자유전의 원리는 완두콩에서 조밥나물로 넘어가는 순간 깨져버렸다. 멘델은 "제시된 실험에 따라 조밥나물에서는 완전히 상반된 현상이 보인"다고 인정했다. 멘델은 그런 사람이었다.

 

멘델이 야심찬 사람이었고 과학적 태도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두 번째 논문을 완벽하게 조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고, 좌절된 꿈을 안은 채 연구를 포기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완두콩에서의 야심찬 성공이 조밥나물에서 재현되지 않았을 때 이 과학자가 보여준 태도, 그 외의 무엇이 필요한가. 멘델은 과학자로서 미숙했을지도 모르고, 몇몇 결과들은 그에 의해서든 조수에 의해서든 조작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조밥나물에서의 실패를 계기로 과학자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수도원장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그의 두 번째 논문과 이후의 행보는 왜 우리가 멘델이라는 과학자를 절대로 황우석 박사와 비교할 수 없는지를 말해주는 결정적인 차이다.

 

여전히 황우석 박사를 과학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공학과 과학, 기술과 과학이 혼재되어 있는 현대에서,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걸 통칭해버리는 이 저급한 문화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혼합되어 버린 그 속에서도 여전히 과학자와 공학자의 목표는 다르다. 둘은 문화적으로 다르다. 둘 중 무엇이 우월하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둘은 다르다. 황우석 박사를 과학자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과학을 공학의 우위에 두려는, 과학과 공학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황우석 박사의 지지자들과 언론의 무지함에 있을 뿐이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다. 그가 논문을 조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작업은 원래 과학자들의 그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조국을 위해 연구하겠다고 했었다. 그것도 훌륭한 목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단 한번도 자연을 이해하고 싶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그는 과학자가 아니다. 인류와 조국의 번영을 꿈꾸는 훌륭한 공학자였던 적은 있을지 몰라도, 그는 단 한번도 과학자였던 적은 없다. 그를 과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 그에게도 과학자들에게도 모욕이 될 듯 싶다.

 

 

'연관'이라는 현상, 멘델 미스터리

 

멘델의 '지나치게 깔끔한 결과'를 놓고 20세기 중반 많은 학자들이 논쟁을 벌였다. 한편에선 멘델을 깎아 내리려는 의도로, 한 편에선 멘델이 그럴 리 없다는 항변으로 지루하게 계속되는 논쟁이었다. 평생에 걸쳐 단 두 편의 장황한 논문만을 남겼던 이 학자는 낱낱이 해부되었다. 처음에 멘델은 포장되었고, 그 다음엔 폄하되었다. 1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멘델을 포장하는 것도 폄하하는 것도 그다지 의미 있는 작업이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멘델을 넘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멘델의 논문은 피셔가 말한 방식으로는 확실히 조작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 무작위적인 실수를 가정하는 통계학자의 욕심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분명 단일 형질을 가지고 발표한 그의 결과들은 여전히 재현되며 사실이기 때문이다. 멘델이 지나치게 꼼꼼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들도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멘델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폄하하기도 어려운 이유다.

 

첫 번째 논문의 후반부에서, 멘델은 독립의 법칙을 설명한다. 두 개의 형질, 혹은 세 개의 형질을 뒤섞어 진행한 일련의 실험들은 각각의 형질들이 독립적인 비율로 후손에 나타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실험외에도 다른 형질을 둘, 또는 세 가지씩 잡종으로 결합한 실험을 비교적 소수의 실험 식물을 이용하여 여러 번 시도했는데 이들 실험에서 모두 근사한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실험에서 다룬 모든 형질에 대하여 독립 법칙이 통용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9)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멘델이 교배한 7개의 형질이 독립의 법칙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가 모두 다른 염색체에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혹은 같은 염색체 안에 존재하더라도 유전자간의 거리가 아주 멀어서 다른 염색체 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교차율이 아주 높아야만 한다. 하지만 후대에 밝혀진 것처럼 멘델이 사용한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들 중 상당수가 같은 염색체 상에, 그것도 교차율이 그다지 높지 않을만한 거리에 존재한다. 멘델은 교차율이 낮은 동일 염색체 상의 형질들에 관해서는 실험을 하지 않았거나 결과를 조작했음이 분명하다.

 

'연관(linkage)'이라고 불리는 현상, 즉 생식세포에서 한 쌍의 염색체가 서로의 몸을 꼬면서 같은 위치의 유전자들을 교환하는 현상은 훗날 초파리를 이용한 모건의 실험실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건에게 노벨상을 안겨주는 계기가 된다. 유전자간의 거리를 뜻하는 '연관'은 생식세포의 염색체 재조합에 의해 일어난다. 그리고 밸런서라는 염색체는 그 재조합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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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 행동유전학
“생명에 취한 사람, 초파리들의 날개짓 속에 편안함을 느끼는 몽상가.” 초파리를 이용해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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