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파리의 사생활"

행동유전학 분야에서 이름난 실험실에 있는 초파리 연구자가 오랜 초파리 연구의 역사와 흥미로운 실험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연재] '이야기꾼들이 만들어낸 멘델' ..몇가지 오해

파리의 사생활 (5)

 

 
지난 글에서 다룬 '밸런서 염색체'에 대해 본격적인 설명을 하려고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독자들이 멘델의 유전학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독자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초파리를 이용한 교배실험에 사용되는 밸런서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멘델의 유전학을 설명하려고 생각했더니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멘델에 대해 한번쯤 되짚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글은 그런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다. 바로 밸런서 염색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없었던 점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항상 어렵게만 쓰게 되는 글들을, 그래서 독자들이 편하게 읽지 못하는 글들을 그나마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할리우드의 멘델

 

Gregor_Mendel copy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과학을 배운다. 우리가 가진 유전학에 대한 지식들도 대부분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곳에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그레고어 요한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이다. 멘델이 발견한 것들, 멘델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 그리고 멘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는 기본 법칙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훨씬 복잡한 밸런서 염색체를 이용한 초파리 유전학을 이해할 수 없다. 우선 멘델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을 풀고 지나가도록 하자.

 

잘 알려진 것처럼 멘델은 재발견되었다. 멘델의 생전에 '멘델의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19세기의 멘델이 20세기에 재발견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에른스트 피셔의 말을 들어보자.

 

아주 유명하지만 읽은 사람이 거의 없는 작품으로 그레고어 멘델이 1865년에 쓴 <식물 잡종에 관한 실험>이라는 논문이 있다. 그런데 그 논문에는 '유전'이라는 단어도 유전법칙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든 생물학 책들이 '멘델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모든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그 법칙의 진짜 창안자는 누구인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이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세 명의 유전 연구자들1)이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그들은 수도사인 멘델이 했던 것과 유사한 실험을 1900년경에 했다. 물론 실험 동기는 멘델과 달랐고 각자 매우 상이했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유사한 결과들이 얻어졌고, 최초의 발견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질 뻔했지만, 그때까지 읽히지 않은 채 잠들어 있던 멘델의 글이 발견되어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멘델은 그렇게 20세기에 발견되었다. 19세기의 사람들은 멘델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러 문헌에서 전하는 바와 달리 멘델이 자신의 시대를 앞서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멘델의 글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멘델의 논문은 영국 생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이 1900년 이후에 영어로 번역한 덕분에 비로소 이해되었다. 번역과정에서 베이트슨은 멘델이 남긴 불명료한 대목들을 손질하여 원문을 개선했다.2) 그리하여 영국과 미국의 연구자들은 오로지 개선을 통해 절대적으로 탁월하게 보이는 멘델만을 접했고, 즉시 그를 유전학의 아버지로 떠받들었다. 그리고 독일어권도 언젠가부터 그들의 견해에 동조하게 되었다.3)

 

피셔가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멘델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법칙을 만든 적이 없다. 후대의 학자들이 최초의 발견을 둘러싼 정치적인 싸움을 무마하기 위해 멘델을 이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포장된 멘델의 이미지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교과서 속의 과학과, 실제로 당시에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과학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멘델이 의미 없는 실험을 한 것은 아니다. 멘델이 발견했다고 회자되는 세 가지 법칙, 즉 '우열의 법칙', '분리의 법칙', 그리고 '독립의 법칙' 중 적어도 한 가지는 멘델에게 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법칙들은 부분적으로만 참이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다. 특히 '독립의 법칙'을 둘러싼 문제는 많은 학자들이 멘델에게서 황우석 전 교수의 면모를 발견하는 골치 아픈 문제이기도 하다.

 

 

잡종(hybrid)에 미친 수도사

 

멘델은 생전에 단 두 편의 논문을 남겼다. 게다가 두 편의 논문은 당대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멘델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은 그의 첫 번째 논문과 두 번째 논문 모두에 등장하는 '잡종(hybrid)'이라는 단어다. 멘델의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였는데 육종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던 문제, 즉 "잡종이 새로운 안정된 종을 형성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확연히 대비되는 형질을 가진 부모로부터 생산된 잡종이 과연 안정적으로 새로운 종을 형성할 수 있는지가 멘델의 관심사였고, 멘델은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슬프게도 멘델은 결국 안정된 잡종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사실 이러한 실패야말로 당대의 청중들(그 청중들 속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이 멘델의 작업을 실패로 간주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멘델이 지방의 유명하지 않은 잡지에 논문을 실었기 때문에 당대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실제로 멘델의 두 편의 논문은 실패작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첫 번째 논문에서 얻은 약간의 성공적이고 흥미로운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논문에서 실험이 실패했다는 점을 멘델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두 번째 논문 발표 직후 멘델이 수도원장 직을 수락하고 과학연구를 중단한다는 점에서 명확해진다.

 

에른스트 피셔의 말처럼 많은 이들이 멘델의 논문을 직접 읽지 않았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성경처럼 읽으면서도, 멘델은 교과서에서 주어지는 지식으로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멘델의 1865년 논문을 직접 살펴보는 작업은 의미 있다. 이 세상에서 단 한편의 논문으로 이렇게까지 유명해진 인물은 별로 없으니 말이다.

 

 

한 가지 현상, 두 가지 법칙

mendel1925Harvard » 1925년 미국 하버드대학 출판부가 재출간한 멘델의 <식물 잡종화에 관한 실험들>.

  논문 <식물 잡종화에 관한 실험들(Experiments in Plant Hybridization)>에서 그는 7개의 세트로 이루어진 형질그룹을 만드는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키가 크거나 작은 것, 씨앗이 둥굴거나(S) 주름진 것(s) 등이 그것이다. 이 형질들은 그가 취미로 오랜 시간 동안 교배 연구를 하면서 얻은 지속적이고 대비되는 형질들 중에서 선별되었다. 각각의 그룹으로부터 그는 250여 개의 잡종개체들(F1)을 얻었다. 이렇게 얻어진 잡종개체들은 부모세대의 형질 중 하나를 닮게 되는데(S와 s의 교배로 Ss가 나오면 S의 형질만이 발현된다) 멘델은 이를 우성(dominant) 형질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우열의 법칙'이라고 알고 있는 멘델의 발견이 바로 이것이다. 멘델은 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물론 '법칙'이라는 말은 없다.

 

이후 본 논문에서는 잡종화 과정에서 전체가 전달되거나 혹은 거의 변하지 않는 형질(character)들, 따라서 그 자체로 잡종의 형질을 나타내는 것들을 우성(dominant)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잠복(latent)해 있는 형질은 열성(recessive)이라고 부르겠다. 열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 형질들이 잡종에서는 철회되었거나(withdraw)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아 보이지만,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은 채 그 다음 세대에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 기술하기로 한다.4)

 

이후 멘델은 F1을 '자가수정'해서 F2를 얻는다. 이렇게 얻어진 F2의 개체들은 부모의 형질 중 하나(S or s)를 닮는다. 그리고 그 형질의 비율은 '우성:열성'이 거의 정확하게 3:1로 나타난다. 그는 이러한 실험을 몇 세대에 걸쳐 반복했고 현대유전학에서 '분리의 법칙'이라고 알려진 바를 선언한다. 분리의 법칙에 관한 멘델의 표현은 아래와 같다.

 

잡종개체들은 두 가지 다른 형질을 가진 씨앗들을 형성하는데, 이 중 절반은 다시 잡종개체들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지속되는 형질을 지니며, 우성과 열성이 같은 비율로 나타난다.5)

 

이후 멘델은 두 가지(한 경우에만 세 가지) 형질들을 교차교배 함으로서 그의 두 번째 법칙인 '독립의 법칙'을 선언하게 된다(물론 이것도 뚜렷하게 법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멘델은 논문에서 '발생의 법칙[law of development]'이라는 표현을 몇 회에 걸쳐 사용하는데, 이를 근거로 멘델이 유전학보다는 발생학, 즉 식물의 배 발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루하게 작업을 설명하고 난 후, 멘델은 이 결과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한다. 먼저 그는 잡종개체가 두 종류의 생식세포(꽃가루와 난세포)를 만든다고 가정한다. 첫 번째 종류의 생식세포는 부모세대 중 하나의 형질을 나타내는 요소를 가지고(예를 들어 S), 나머지 종류는 나머지 형질을 가지게 된다(s). 생식세포들의 결합으로 세 종류의 조합이 발생할 수 있다.

 

1. 두 가지 종류의 생식세포 모두가 우성형질을 가진 경우 (S-S): 이 경우 태어나는 자손은 모두 우성형질을 나타내며 이들간의 교배는 이러한 형질을 유지하게 된다.

 

2. 두 가지 종류의 생식세포 모두가 열성형질을 가진 경우 (s-s): 1의 경우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3. 두 가지 종류의 생식세포가 서로 다른 형질을 가진 경우 (S-s): 이 경우 잡종이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잡종은 분리의 법칙에서 기술된 잡종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형질을 가진 생식세포가 같은 비율로 형성되고, 이를 충분한 숫자를 가지고 통계적으로 관찰한다면 잘 알려진 비율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법칙인 '독립의 법칙'은 이러한 형질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독립적'으로 분리된다는 가정만을 요구한다.

 

 

멘델의 형질·원소는

현대 유전학의 표현형·유전형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멘델의 논증이 현대유전학의 대립유전자(allele) 개념과 일치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멘델은 대립유전자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6) 이미 언급되었듯이 사실 멘델은 유전 혹은 대물림의 기제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다. 이는 그의 논문에 사용된 용어를 보면 분명해 진다.

 

A로 지속적인 두 가지 형질(character) 중 하나를 나타내도록 한다. 예를 들어 우성은 A, 열성은 a, 잡종은 Aa로 표시한다. A+2Aa+a 로 이처럼 다른 두 형질의 교배로 형성된 자손들을 기술할 수 있다.7)

 

멘델은 A라는 표시를 설명하기 위해 유전자가 아닌 형질(character)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즉 멘델은 현대 유전학의 용어로 유전형이 아닌 표현형을 다루고 있었던 셈이다. 현대의 유전자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멘델은 원소(element)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멘델에게 원소는 유전되는 물질의 입자를 의미했다. 1865년의 논문에서 그는 원소라는 용어는 10번, 형질이라는 용어는 182번을 사용한다. 만약 멘델이 형질을 표현형의 의미로만 사용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성과 열성의 쌍인 잡종 Aa를 표현할 때 원소 대신 형질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리고 멘델은 바로 그 형질이 유전된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기억해야만 하는 바는 멘델이 물리적 '형질'의 수준에서만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멘델의 용어에서 형질 쌍(paired characters)은 유전자 쌍(paired gene)과 같지 않다. 멘델이 실제 관찰했고 기술하고자 한 것은 형질이지 유전자가 아니었다.

 

이러한 의심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멘델이 순종을 기술하는 데에서는 형질 쌍이라는 말조차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순종의 경우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형질들만을 가지는데, 따라서 쌍이라는 개념이 불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멘델은 잡종을 유전의 특별한 경우로 취급했다. 실제로 멘델은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유전의 기제에 대해서는 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형질을 나타내는 원소들이 존재하고, 그러한 원소들끼리는 절대 섞이지 않는다는 점을 간파한 멘델의 공로는 크다. 하지만 부모의 교배과정에서 원소들이 어떻게 섞이고, 또 어떻게 분리되는지에 대한 멘델의 이론은 추상적이고 모호할 뿐이다. 멘델의 설명을 따라가보자.

 

 

멘델2

 

멘델의 Aa와 현대 유전학의 Aa은 다르다

 

같은 종류의 형질을 보이는 생식세포간의 결합은 정상적이다. 이 경우 그 어떤 불화도 발생하지 않는 완벽한 융합(union)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순종간의 교배는 순종만을 만들어내게 된다. 하지만 잡종의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 다른 종류의 형질을 나타내는 생식세포가 결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경우가 아니다. 멘델은 이처럼 이질적인 두 종류의 생식세포 결합을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구성이 행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부의 힘(inner force)를 상정했고 이 힘은 이질적인 종류의 유전단위를 서로 밀쳐내는 종류의 힘이었다. 이 힘 덕분에 수정된 세포가 발생과정을 겪는 동안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순종의 형질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잡종간의 교배에서 절반이 다시 순종의 형질로 돌아가게 되는 현상이 설명될 수 있었다.

 

아마 이러한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논문을 몇 번이나 읽은 필자도 이 대목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멘델에게도 소설 같은 공상이었을 것이다. 원자론이 득세하던 당시,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던 멘델로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유전입자를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질적인 종류의 유전입자를 지닌 생식세포들은 잠재적으로만 융합하고, 결국은 분리된다. 이러한 분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알 수 없는 힘'이 존재한다. 만약 멘델이 유전의 기제를 설명한 적이 있다면, 그건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 뿐이다.

 

하지만 이 점이 멘델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멘델은 잡종이 순종과는 서로 다른 생리적 기제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유전의 단위를 언급했고 분리를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은 '잡종'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멘델에게 잡종은 특별한 예외였다는 말이다.

 

위에서 멘델이 사용했던 기호를 그대로 언급했었다. 멘델의 경우 1:2:1의 비율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A + 2Aa + a

 

현대 유전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AA + 2Aa + aa

 

이미 언급되었듯이 멘델에게는 대립유전자 개념이 없었으므로 잡종을 나타내는 표현 Aa의 공통점이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다. 사실 멘델이 Aa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것이 가장 손쉬운 표현법이었기 때문이다. 멘델의 관찰결과는 잡종형이 우성과 열성의 형질 모두를 가진 상태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잠재적인 상태의 기술로 Aa를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멘델의 Aa는 잡종형의 상태를 기술하기 위한 단순한 표현법일 뿐, 대립유전자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결국 멘델의 논문에서 나타나는 Aa라는 표현과 현대 유전학의 Aa라는 표현의 유사성으로 이 둘을 연결시킬 근거는 없으며 이를 현대적인 분리의 법칙과 연결시킬 근거 또한 없다.

 

 

사실 현대 유전학의 기본 개념인 대립유전자 개념은 멘델 사후에 많은 과학자들이 현미경을 이용해서 핵 속의 염색체를 관찰한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학문분과를 당대에는 Cytology(세포학)이라고 불렀다. 세포학자들은 현미경과 염색기법의 발달로 인해 세포의 분열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고 감수분열현상도 밝혀내게 된다. 세포학과 더불어 골턴 등의 생물계측학자들(biometricians)에 의해 당시 함께 발달한 생물계측학의 통계적 기법이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되고 정당화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골턴이 생물학에 접근한 방식은 멘델과 두 가지 점에서 유사하다. 둘 모두 개체간의 전체적인 차이가 아닌 특별한 특징(키, 몸무게)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었고, 통계적인 기법을 사용해 데이터를 분석했다. 골턴의 제자들이 이후 다른 생물학자들보다 먼저 멘델의 업적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이를 응용했다는 것은 따라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8) 이후 토마스 모건의 초파리 돌연변이 연구에서 단일 돌연변이 유전자의 유전법칙이 멘델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 발견되면서 '멘델 유전학'이 현재의 모습으로 둔갑하게 된다.

 

 

 

 

멘델1

만들어진 신화: 과거를 과거 시점에서 바라보기

 

형질과 입자라는 용어로 멘델을 이처럼 격하시키는 것이 불만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과학사가들과 멘델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 멘델이 격하되었을 때, 멘델의 지지자들은 그런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멘델의 논문을 통해 멘델을 바라보는 이런 작업은 멘델을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멘델의 시대 속에서 멘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미 언급되었듯이 멘델은 수백~수천 개의 입자들이 각각의 특정 형질을 구성한다고 가정했지만 이들의 융합에 있어서 '동질의 입자 AA, aa'들의 경우에는 분리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오직 '이질적인 입자 Aa'의 융합에 있어서만 분리의 법칙이 요구되었다. 사실 이러한 유전입자에 관해 멘델은 별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입자가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많은 입자가 개체의 특성에 관여하는지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 멘델의 목표는 분명했다. 그는 유전의 법칙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잡종화에 의해 새로운 종을 만들기 위한 실험을 기획했던 것이다. 멘델에게 유전의 법칙은 잡종에 대한 연구에서 얻어지는 부차적인 결과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배후에는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멘델 자신의 한계가 숨어 있다. 그가 관찰한 모든 것이 생식세포 내부가 아닌 외부의, 그리고 표현형질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는 생식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실제 유전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사실 관심조차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잡종'이라는 현상뿐이었다. 이 잡종이라는 개념사를 둘러싼 문제는 매우 흥미로운데 글의 주제를 벗어나기 때문에 다루지 않도록 한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린네의 분류체계와 '존재의 대사슬', 유럽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시작된 이 잡종주의가 멘델에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아래 참고문헌들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9)

 

우리가 교과서에서 만나는 멘델이 실제 멘델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점이 명확해졌으리라 생각한다. 멘델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현대유전학자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업적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지나친 포장과 폄하일 뿐이다. 멘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우리는 멘델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멘델은 우연히 발견되었고, 당대에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지만 성실하고 세심한 관찰자였다. 그가 발견한 완두콩의 형질들은 늦게나마 유전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멘델이 지나치게 위대한 인물로, 역사 속에 가려진 불행한 인물로 포장된 것은, 지나치게 영화를 많이 본 서구학자들의 할리우드 식 역사서술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멘델은 불행한 영웅이 아니라, 성실한 한 명의 과학자였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도 멘델은 위대한 인물일 수 있다.

 

이제 멘델의 논문이 사기극이라는 유명한 논쟁사와 더불어, 동시대를 살았던 멘델과 다윈이 왜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만나게 되는지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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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 행동유전학
“생명에 취한 사람, 초파리들의 날개짓 속에 편안함을 느끼는 몽상가.” 초파리를 이용해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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